〈 3화 〉#0.5.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사람의 인생 회고록이 다 그렇듯, 글로 적으면 별 것 아니었다. 지구에서 싸움꾼 노릇을 하며 거칠게 살던 한 청년이 뜬금없이 판타지 세계에 소환되고, 용사가 되어 모험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여자 하프엘프 정령궁수 만나고, 여자 성기사 만나고, 무희 만나고, 여검객 만나고, 여자 흑마법사 만나서 6인 파티를 꾸려서 마왕을 족쳤다. 그 후 자신을 판타지 세계로 소환한 시공의 수호자가 나타나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했고, 용사는 고향인 지구로 돌려보내 달라고 했다. 그러자 평생을 함께할 것을 맹세한 다섯 여인들도 용사를 따라 지구로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여섯 명이 지구로 왔는데, 이게 웬걸. 문제가 하나 생겼다. 마왕이 죽으면서 용사와 다섯 여인들에게 강력한 저주를 건 것이다. 그 저주는 바로….
[스킬]
-용사의 무구
-강인한 자
-이상 성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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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의 의지(비활성화)
-정화의 불꽃(비활성화)
-정령의 축복(비활성화)
-바위 피부(비활성화)
-불사조의 가호(비활성화)
…
[더보기]
…유독 눈에 띄는 저거. '이상 성욕' 스킬. 저게 바로 마왕의 저주였다.
저주에 대해 얘기하려면, 그에 앞서 스킬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한다. 용사가 소환된 판타지 세계는 스킬이라는 특이한 시스템이 존재했다. 그곳에선 마나를 익힐 경우 스킬 시스템을 얻는데, 스킬 시스템을 통해 각 사용자는 자기만 볼 수 있는 홀로그램 비스무리한 화면을 통해 자신이 무슨 스킬을 익혔는지, 그 효과는 무엇인지를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용사는 처음 스킬 시스템을 보고 지구의 '게임'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게임과는 다르게 스킬 시스템에 적히는 스킬들은 종류가 한정되어 있는데, 게임에서 흔히 말하는 '패시브 스킬'만이 스킬 시스템에 노출된다. 판타지 하면 흔히 떠올리는 소드 마스터의 검기나 대마법사의 메테오 같은건 스킬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스스로 익혀야만 했다. 아무튼, 이 스킬 시스템은 지구에 와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용사의 업을 마치면서 수많은 스킬들이 비활성화되어 사실상 사라졌고, 여전히 남아 있는 스킬은 세 가지였다.
[용사의 무구] 스킬은 말 그대로 용사가 사용하는 무구들을 소환하는 스킬이다. 패시브 스킬이 아니지 않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이것도 일종의 패시브 스킬이다. 소환하려고 마음 먹는다고 소환되는게 아니라, 마왕 토벌과 관련된 전투를 하면 저절로 소환된다. 소환되는 방식도 허공에서 빛과 함께 뿅 나오는게 아니라, 마치 용사의 몸 속에서 돋아나는 것처럼 갑자기 붉은 갑옷이 피부 표면에 두두둑 드러나서 초창기엔 기분이 굉장히 이상했다.
현재 이 스킬에 대한 용사의 평가는 '무의미'였다. 이미 마왕을 때려잡아서 이젠 쓰고 싶어도 못 쓰는 스킬이다. 비활성화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인한 자]. 이 스킬도 제법 골때리는 스킬이다. 일단 효과를 특정짓기가 정말 어렵다. 왜냐하면 너무 폭넓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은 스킬 사용자의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과, [강인한 자] 스킬과 호환되는 다른 스킬들이 일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용사의 여자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씨받이] 스킬이 [강인한 자]와 호환된다. 이름부터가 굉장히 에로틱한 [씨받이] 스킬은 여자들이 받은 마왕의 저주 중 하나인데, [강인한 자] 스킬 보유자를 향한 복종심을 느끼고 성욕을 발생시키는 스킬이었다.
덕분에 다섯 여자들이 수많은 남자들과 네토 플레이를 하고도 용사에게 찰떡같이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한 때 용사는 자신이 스킬의 도움을 받아서 여자들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가 하는 자존감 떨어지는 생각을 했었다. 또한 불안하기도 했다. 다른 [강인한 자] 보유자가 나타나면 보통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아무튼 스킬이 떨어져 달란다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좋은게 좋은 것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지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이 스킬… [이상 성욕]. 마왕이 죽으면서 도대체 어떤 저주를 걸었는진 자세히 모르겠으나 스킬 꼬라지를 보아하니 대충 알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하호호 사는 평화로운 삶을 파괴하려는 목적이었겠지. 하지만 저주는 완전하지 못했다. 무려 마왕이 건 저주인데 성능이 꼴랑 이 정도일리가 없으니까. 아마 [강인한 자] 스킬이나, 다른 여러 가지 가호 스킬들에 막혀 상당부분 약화되고 변질된 것 같았다.
….
'덕분에 즐기고 있어.'
이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현재 용사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9점이었다. 용사가 만점을 잘 안 주는 성격임을 감안하면 거의 만점이나 다름없었다.
처음 네토 플레이를 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와 씨발, 존나 재밌다'였다. 불구대천의 원수인 마왕의 저주가 오히려 축복처럼 용사에게 쾌감을 주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했다. 이제는 용사나 여자들이나 마왕의 저주를 좋게 생각할 지경이었다. 이 재미를 몰랐으면 인생의 절반을 손해봤을 거라면서.
[이상 성욕]의 스킬 효과는 간단하다. 네토 플레이… 그러니까 네토라레(NTR) 플레이를 즐기는 '네토라세(NTS)'라는 성벽을 갖게 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따먹히는 것에 흥분하는 성벽을 갖게 되었다. 나름 저주라면 저주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구에서 그 정도 성벽은 귀여운 축에 속한다. 아마 마왕도 억울하겠지. 고작 이 정도 저주를 생각한건 아닐테니까.
스윽, 스윽.
"우응… 훙…."
침대에 누워있던 용사가 옆으로 손을 뻗어 잠든 미라의 레몬빛 금발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칭도 은근히 긴 '하프엘프 정령궁수 미라'는 엘프의 피가 반이나 흐르기 때문에 감각이 인간보다 더 예민해서 용사의 손길을 분명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번의 격렬한 섹스 후에 나른한 상태로 반쯤 잠들어서, 그저 귀여운 동물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 전부였다.
저주는 용사뿐만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뿌리를 박았다. 용사와 마찬가지로 저주의 강도가 약화되었고, 특이하게도 내용이 모두 달랐다. 즉 용사 포함 여섯 명에게 각기 다른 여섯 개의 저주가 가해진 것이다.
스킬은 본인이 아니면 절대 볼 수 없지만, 자기가 읽고서 내용을 말해주면 그만이었다. 생판 남에게야 당연히 자기의 중요한 정보를 말해줄리 없지만, 여자들은 용사를 사랑하여 고향마저 버리고 따라온 사람들이다. 또한, 여자들도 서로에게 등을 맡기고 같이 목숨 걸고 싸운 진정한 동료였기에 숨길 것 없는 돈독한 관계였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모든 스킬을 다 알고 있었다.
용사가 그랬듯, 여자들도 지구로 넘어온 후 대부분의 스킬들이 비활성화 되었다. 그나마 활성화된 스킬 중에서 두 개는 마왕의 저주로 인해 생겨난 스킬이었다. 하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적용된 저주 스킬이고, 나머지 하나는 여자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된 [씨받이]라는 스킬이었다. [씨받이] 스킬은 앞서 [강인한 자] 스킬을 설명할 때 나온 스킬인데, 아까보다도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강인한 자] 스킬 보유자의 소유물이 되는 것이다. 일단은 지구에는 스킬 시스템이 없었으므로, 전세계에서 [강인한 자] 스킬 보유자는 용사가 유일했다. 어떻게 보면 여성들에게 목줄이 단단히 채워져 있었고, 다섯 개의 목줄 용사가 꽉 쥐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 누구에게서도 불만이 나온 적은 없었다.
각자의 저주 스킬로 넘어가자면, 개별 적용된 저주 스킬들은 마치 그 사람의 취향처럼 본능 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았다. 실제 취향은 아니겠지만… 혹시 모르지?
옆에서 곤히 잠들어 색색거리는 미라의 저주 스킬은 [바람기]였다. 스킬의 이름대로, 미라는 용사를 사랑하면서도 외도를 원하며 외도 상대와의 섹스에서 큰 쾌감을 얻는다. 심지어 외도 상대에게도 마찬가지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고 하니, 용사 입장에선 미라가 여자들 중에서 네토라레의 가능성이 가장 큰 여자였다. 그리고 그 말인 즉, 용사의 [이상 성욕] 저주 스킬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또다른 형태의 속궁합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용사는 미라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씨받이] 스킬로 인한 종속 관계와, [바람기] 스킬로 인한 네토남을 향한 사랑. 이 두 개의 충돌은 용사의 가슴을 쿵쾅쿵쾅 뛰게 하는 흥미 요소였다. 두 스킬 효과의 팽팽한 싸움은 아직까진 일방적인 구도였다. 두 저주 모두 강력하지만, 거기에 더해 미라는 용사를 사랑하기 때문에 한 번도 네토남 쪽으로 마음이 기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용사는 내심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도,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심장이 뛰고 좆이 서는 모순적인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스킬의 효과를 말로만 들으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스킬은 보유자에게 생각보다 큰 강제성을 가진다. 벙어리도 말하게 하고, 앉은뱅이도 일으키는 기적을 만드는게 바로 스킬의 힘이다. 그토록 강인한 용사가 저주 스킬에 저항하기는 커녕 오히려 네토 플레이에 환장하는 것처럼, 미라 역시 양다리 걸치며 바람 피우는 것을 스스로 자제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아까 미라의 후장 개통을 꿈꾸던 남자와 오랜 기간 사귀었던 것도 단순히 미라가 용사의 네토 플레이에 어울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남자와의 연애를 진심으로 즐겼던 것이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용사의 반응이 시큰둥하니 그 남자와는 오래 가지 못할 테지만, 헤어져도 쾌락을 위해 새로운 남자를 찾을 것이 뻔했다.
….
"흠."
'이런 삶도 나쁘진 않잖아?'
이건 용사만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라, 모두의 생각이 그러했다. 처음 저주를 자각했을 때, 하나같이 당황하면서도 몸이, 본능이 이성을 잠식하는 것을 똑똑히 느꼈다. 저항할 수 없는 미지의 힘이다.
숨을 쉬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생존 본능이다. 의식해서 조금 참을 순 있지만, 오래 버티진 못한다. 그런 것과 같았다. 아니, 오히려 훨씬 더 지독한 종류의 것이었다. 마치 온몸을 도는 혈류(血流)와 같았다. 숨이야 잠깐이나마 의식해서 참을 수 있겠지만, 몸 속에 흐르는 피는 사람이 통제할 수 없다. 본인이 싫다고 해도 혈류를 막을 수 없듯이, 용사는 네토 플레이를 참을 수 없고 미라는 바람기를 억누를 수 없다. 의지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마성의 본능…. 이런 면에선 이게 저주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사실 '그 순간'부터 다들 내려놓은 거지만."
침대에 누워서 양손으로 머리를 받친 자세로 천장을 멍하니 보던 용사가 과거를 회상했다.
….
….
….
===회상
처음엔 두려운 마음마저 들었던 저주는 생각보다 약해서 귀여울 지경이었다. 세상을 벌벌 떨게 만든 마왕의 저주가 고작 네토 플레이에 바람기 같은 거라니. 하지만 저주 자체는 너무 강력해서 뿌리를 뽑아낼 수가 없었다. 온갖 사술이나 흑마법을 인간 중 최고 수준으로 연마한 레이아가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해주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결론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였다. 흑마법의 원조는 마족이고, 마족 중 가장 강인한 자가 마왕이니 따지고 보면 흑마법 계통의 방계에 불과한 흑마법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악랄하기는 커녕 의외로 기분 좋은 저주에 다들 저도 모르게 안심할 때 쯤. 용사는 오랜 노력 끝에 자신을 두 번이나 차원이동 시킨 빌어먹을 시공의 수호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저주에 대해 물었고,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저주 스킬을 없애는 것은 어렵다.)
(시공의 수호자는 개인사에 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씨발 것아, 그럼 난 왜 이계로 납치해서 용사로 만들었냐. 용사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거친 욕설을 참느라 애써야만 했다. 시공의 수호자에게 아무리 아부하고 살살 구슬려봤자 떡고물 하나 얻을 수 없지만, 모욕하거나 기분을 나쁘게 하면 무슨죄 무슨죄를 물어서 얼마든지 좆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속으로 온갖 욕을 하면서 참는 용사를 흘끗 본 시공의 수호자가 자기도 찔리는 게 있어서인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대에겐 나름 빚이 있으니 이 기회에 그걸 탕감하겠다.)
(그대가 지금 필요로 하는 정보를 주겠다.)
'오?'
기대도 안한 희소식에 마구 구겨졌던 용사의 표정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시공의 수호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그대와 여인들에게 걸린 저주는 지구로 차원이동하는 과정에서 정화되었다.)
(정확히는 시공을 넘어설 정도로 강력한 차원의 힘을 잠시나마 받아들이면서 저주의 악영향이 제거된 것이다.)
(안심해도 좋다.)
용사의 안색이 밝아졌다. 시공의 수호자가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차원의 힘은 멀쩡한 스킬을 제거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그대들이 지금 가진 스킬들은 어쩔 수 없이 계속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 말에 용사가 저주 스킬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다지 걱정은 되지 않았다. 이미 용사와 여자들은 저주 스킬을 하나의 성벽, 취향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짜로 위험성이 없다면 오히려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미 모두가 각자 다른 자신의 스킬 효과에 재미를 붙였기 때문이다.
(충분한 대답이 되었으면 좋겠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다 해줬으니.)
용사는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물러나는 용사의 뒷모습을 보던 시공의 수호자가 입을 열었다. 용사에겐 들리지 않을 뒷말이 그 입을 통해 나온다.
(차원의 힘은 오직 악영향만을 제거한다. 그런 고로.)
수호자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만약, 저주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계속 일자를 유지하던 무표정한 입술이, 한쪽으로 살짝 비틀렸다.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기를.)
….
용사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여자들에게 시공의 수호자로부터 들은 정보를 말해줬다. 다들 안심하면서도, 내심 기뻐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게 좋아하며 핸드폰을 만지는 미라의 이마에 용사가 딱밤을 때렸다.
따악.
"꺅."
"이젠 눈앞에서 바람을 피우네."
"바, 바람이라니?"
"지금 세컨드한테 톡한거 아니야?"
"…."
침묵은 곧 긍정. 용사가 딱밤을 한 대 더 때리며 응징했다.
"꺅! 왜, 왜 나만 갖고 그래. 다른 애들도…."
"네가 제일 가까워서."
그 말에 불만 가득한 표정이 된 미라를 뒤로 하고, 용사가 손뼉을 짝 쳤다. 모두의 시선이 용사에게로 집중됐다.
"아무튼, 이제 저주로 전전긍긍할 필요 없어. 스킬은 남아있지만… 뭐, 그건 알아서들 생각하고."
용사는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결국 말했다.
"……즐기고 싶으면, 즐겨. 나도 즐길테니."
….
….
….
==현재
그 시점 이후로,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무서운 저주라던가, 용사에 대한 사랑과 신의라던가 여러 가지로 눈치를 보던 여자들이 본능에 더더욱 솔직해졌다. 다들 각자의 취향대로 때로는 용사를, 때로는 다른 남자들 끌어들여서 즐겼고, 만족했다. 여자들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즐기자 용사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쾌락을 탐했다. 정석적으로 여자들과 섹스하는 것도 기분 좋아서 자주 몸을 섞었지만, 점차 네토 플레이의 비중이 높아졌다. 또, 그런 용사의 영향을 받아 여자들도 더 노골적으로 즐기는 선순환, 혹은 악순환이 이어졌다. 예를 들면, 미라는 용사와 섹스하는 와중에 따로 사귀는 네토남에게 전화를 걸어 평범한 연인처럼 사랑을 속삭였다. 핸드폰 화면에 찍힌 '우리 여보♥'라는 글자를 보며 용사는 평소보다 많은 정액을 싸질렀었다.
….
불끈.
지금 생각해도 고추가 서는 시츄에이션이었다. 미라와의 플레이 중 손꼽을만큼 꼴렸던 플레이였다.
"음…."
상상만으로 서는 건 오랜만이었다. 항상 성욕을 직접적으로 풀기도 하고, '플레이'를 통해 여자들이 여러 방식으로 뽑아줘서 이런 경우가 드물었다.
'아무튼, 좀 꼴리는 거 없나?'
우우웅.
타이밍 좋게 울린 한 차례의 진동. 딱 한 번 울렸으니 전화는 아니고, 문자겠지. 용사가 핸드폰을 꺼내어 상단바를 내려보니 가장 널리 쓰이는 메세지 어플인 '네톡'의 알림이 와 있었다.
[사진]
음.
누군지 알 것 같다. 앱을 실행하자 '지나'가 사진을 보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