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2. 레이아의 변화 (1) (14/162)



〈 14화 〉#2. 레이아의 변화 (1)

용사의 방은 가장 넓으면서도 햇볕이 잘 드는, 가장 좋은 방이었다. 언제든 들어오라고 하는 듯한,  명이 대자로 몸을 쭉 뻗을 있는 커다란 패밀리 사이즈 침대는 여자들이 작정하고 구입한 것이었다.  침대에서 방금 눈을 뜬 용사의 옆에는, 그가 편애하는 레이아가 몸을 바짝 붙이고 있었다. 둘  알몸이었는데, 간밤에 정사를 나눈게 아니라 둘의 잠버릇이 원래 그랬다.  집에 사는 여섯 명 중 용사와 레이아  두 명만이 다 벗고 자는 습관이 있다.

레이아는 원래부터 알몸으로 자는게 편하다고 했다. 용사의 경우 후천적으로 그런 습관이 든 것인데, 원래는 팬티만 입고 자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여자들이 하도 잠자리에 숨어들어와 팬티를 벗기고 페니스를 탐하는 탓에 아예 벗고 지내게 됐는데, 그게 생각보다 후련하고 편해서 지금은 아무 일 없어도 다 벗고 잔다.

참고로 다른 여자들의 경우, 미라는 잘  얇은 슬립을 입고 지나와 아리스는 파자마를 입는다. 파자마를 입는  명도 스타일이 달랐는데, 아리스의 경우 계절에 따라 긴팔 긴바지, 반팔 반바지로 맞춰 입지만, 지나는 항상 팔과 다리가 전부 드러날 정도로 짧은 파자마를 입는다. 델렌은 평범한 여자들처럼  늘어난 티와 널널한 반바지를 입는다. 여자들 중 가슴이 가장 큰 델렌은 그만큼 상의를 크게 입어야만 했는데, 옷이 너무 커서 어깨가 다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몸에 맞게 입으면 가슴이 불편하고, 가슴에 맞게 입으면 몸이 불편하다며 징징댔지만 돌아온 것은 여자들의 짜게 식은 시선이었다.


….


'슬슬 때가 온 건가.'

용사가 색색거리는 레이아를 보며 생각했다. 똑바로 누운 용사에게 안기다시피 몸을 겹치고 다리를 걸고 있는 레이아는, 용사의 허벅지 윗부분에 다리 사이를 부비적거리고 있었다. 끈적한 물기가 느껴졌다. 마치 깨어 있는 상태에서 유혹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쌓일만큼 쌓였나보다.

…슬슬 레이아의 '성욕'을 풀어줘야 할 것 같다.


….


편애.

레이아는 가장 마지막에 파티에 합류했지만, 용사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 현역 시절의 레이아는 안타까운 사연으로 인해 상당히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황이어서, 용사가 편애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여자들도 질투는 커녕 진심으로 레이아를 돌봐줬다. 마치 암탉이 알을 품듯이 용사 파티는 레이아를 따뜻하게 감싸주었고, 레이아는 그에 화답하듯 자신을 둘러싼 껍데기를 깨고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듯 파티 내에서도 제법 중요한 역할을 항상 잘 해내줬다.

그간의 관심과 애정에 보답하는 것처럼, 레이아는 다른 사람들에겐 철벽을 쳤으나 용사와 다른 여자들에겐 마음을 열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하니 무표정해 보이는 레이아가 사실은 미세한 표정 변화를 자주 보인다는 것을 알았고, 인간관계 자체는 좁지만 그만큼 깊게 사귄다는 것도 알았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걸 입증하기라도  것처럼 레이아와 가장 친한 사람은 제일 외향적인 지나였다. 물론 나머지 여자들을 전부 합쳐도 용사보다는 못하지만, 원래 우정은 사랑 앞에서 무릎꿇는 법이다. 그리고 그건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일테니 섭섭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좋은 관계를 굳힌 후 마왕을 물리치고, 지구로 귀환할 때까진 정말 좋았다. 그러나 다들 그렇듯, 레이아 역시 저주가 파고들며 큰 문제를 떠안게 됐다. 그리고  문제로 인해, 레이아는 다시금 용사의 편애를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는 여자들은 없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레이아의 [스킬]은 모든 감정에 앞서 동정을 불러올만큼 지독했기 때문이다. 용사가 맨날 레이아만 예뻐하고, 레이아의 몸을 가장 많이 사용했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

용사가 레이아의 보드라운 뺨을 매만지며 조심스럽게 그녀의 다리를 걷어냈다. 밀착했던 사타구니가 떨어지자 용사의 허벅지에서 투명한 실이 끈적하게 늘어났다. 지금 당장 음란하게 젖은 다리 사이를 육봉으로 쑤시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용사는 욕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었다.


'그'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은 제법 오랜만이었다.

[오늘 시간 됨?]

용사가 네톡으로 메세지를 보냈다. '그'는 남자치고는, 그리고 그의 느긋한 성격 치고는 톡을 재깍재깍 잘 받는 편이었다. 그래도 바로 답장이 오지는 않을테니, 그 전까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레이아의 피부를 만지며 부드러운 촉감을 즐겼다.  분 정도 지나자 답장이 왔다.


[ㄴㄴ 바쁨]

[?]

바쁘다고?

[뭐하는데]

[승급전하는 날임. 새벽부터 물떠놓고 우주의 기운을 모으는중]

저 겜돌이 새끼, 지금 얼마나 큰 기회가 왔는지도 모르고 태평한 소리나 하고 있다.


[게임이 그렇게 중요하냐?]

[예스, 게임 이즈 마이 라이프]

[그럼 다른 남자 찾아야겠네 ㅅㄱ]

용사가 그렇게 말하자, 몇 초의 텀을 두고 오던 문자가 갑자기 즉각 반응으로 바뀌어 1초 안에 답장이 왔다.

[ㄴ]

[ㄴ]

[ㄴ]

[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

얼마나 다급한지 자음으로 도배를 하고 있다.

[?]

[안바쁨]

[ㄴㄴ 승급전 열심히 하세요 듣고보니 오늘따라 우주의 기운이 충만하네 ㅅㄱ]

[ㅈㅅㅈㅅㅈㅅ]

용사가 튕기자 그가 애원을 하며 아부를 떨었다.


[죄송합니다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형님 킹갓제너럴엠페러마제스티지니어스……]

[좀 닥쳐봐]

사실 상황은 이랬으나 용사의 입은 웃고 있었다. 정 안된다면 몰라도, 딱히 다른 남자를 찾을 생각은 없었다.

[형님, 질문 하나 올려도 되겠습니까?]

[오냐]

그가 공손하게 물었다.


[혹시 지금 저의 여신님이신 레이아 짱에 대한 말씀을 꺼내신 건지요?]

[ㅇㅇ 요즘  하고 싶은 눈치더라]

[아, 제가 몰라뵙고 건방지게 날뛰었군요. 일단 제 무례에 대한 사과를 먼저 받아주실  있겠습니까? 헤헤헤….]

[ㅇㅇ 당연하지.  관대하니까. 사과를 받아주겠다. 그럼 승급전하러 가봐라 ㅅㄱ]

큭큭큭. 놀리는 맛이 있는 놈이라서, 왠지 짓궂어진다.

[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

[ㅠㅠ ㅠㅠㅠㅠㅠㅠ]

[형님 잘못했습니다]

[사실 레이아 짱을 만나지 못해 마음이 울적하고 공허하여 게임 같은 저급한 오락으로 잠시 그 공허함을 달래고 있었습니다요]

적당히 놀린 용사는 이쯤에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ㅇㅇ 봐드림]

[감사합니다 형님 가시는 길에 만복이 따르실 겁니다]

[사실  일찍 받아서 봐준거임. 담에도 이렇게 바로바로 받아라]

[네 형님. 언제 가면 되나요? 바로 달려갈까요?]

음.

[ㄴ 점심먹고 와라 애 아직 잔다]

[네 형님 몸 구석구석 깨끗이 씻고 가겠습니다요]

[그냥 와서 씻어 맨날 급하게 온다고 땀 내잖아]

[아 그래도 될까요?]

용사의 제안은 그의 입장에선 나쁠게 없었다. 용사의 집이 보통 좋은게 아니라서, 그의 감상에 의하면 화장실이 우리집 거실만하다고 하는데 그만큼 넓고 깨끗하고 좋았다. 와서 샤워해라. 용사는 다른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보고 싶은 플레이가 있었다.

아무튼.


[연락 따로 하지 말고 그냥 와라]

[네 형님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ㅅㄱ]

[만수무강하십쇼]

….

일단 남자는 섭외했다. 남은건….

용사가 슬슬 일어날 기색을 보이는 레이아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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