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2. 레이아의 변화 (2)
원인이 무엇일까?
지구로 귀환한 뒤 직면한 하나의 문제를 두고 떠올린 궁금증이었다.
'이게 그 평생세곈가 뭔가 하는 그건가?'
용사는 원래 지구의 주민으로, 신분도 있었고 인연도 있었다. 그러나 귀환한 지구는 마치 상상 속에서나 나오는 평행 세계처럼, 용사의 흔적이 없었다.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뭔가 싶어서 일단 자신이 살았던 지역으로 가보고, 이런저런 조사를 해봤다. 나머진 모두 그대로였고 용사 한 명만 없어진 세계라는 결론이 났다. 그의 친구도 있었고,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도 잘 살고 있다. 다만 용사와 사귄 적이 없었을 뿐.
조금 허탈하긴 했으나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어차피 과거 지구에서의 삶은 별볼일 없는 양아치 같은 삶이었기에 미련이 거의 없었다. 고아여서 부모님도 없고, 당연히 친척이나 다른 인연 없이 자랐다. 귀환한 지금은 다섯 명의 아름다운 여자가있으니 전 여자친구는 아예 생각조차 나지 않았고, 떠나간 친구도 넓고 얕게 사귄 지라 단 한 명의 베프를 제외하면 사실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한때는 원인이 정말 궁금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평생 세계든, 아니면 시공의 수호자가 부린 수작이건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었다. 별볼일 없는 과거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치우자, 자신만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여자들과 만들어나갈 미래만이 떠올랐다. 그렇게 귀환 후의 문제는 사소한 해프닝으로 넘어갔다.
그래도, 딱 하나의 미련은 있었다. 한 명의 친구였다. 잘 지냈던 베프와 남남으로 살자니 좀 찝찝했다. 그래서 다시 인연을 만들었다. 그 녀석, 김재현과의 인연을.
[오 굿굿 님 저랑 좀 맞는듯?]
[친추 ㄱ]
워낙 잘 아는 놈이다보니 인연 만들긴 쉬웠다. 팔자에도 없는 게임을 하는게 귀찮긴 했지만, 그렇게 시간을 투자하니 베프까진 아니어도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우연을 가장해 같은 피시방 옆자리에서 게임을 하고, 서로 알아보고, 동갑인 걸 알고 친구가 됐다. 그 후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꾸준히 만남을 가져, 지금은 친한 친구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된 것이다. 둘의 사이는 예전과 같아졌다.
한 가지 달라진게 있다면, 서로의 나이겠지. 과거엔 둘 다 젊은이였지만 지금은 어엿한 어른이 된 것이다. 서른 넷. 스물 넷도 아니고 서른 넷을 먹은 남자 둘이서 맨날 게임을 하는 모양새는 썩 좋진 않았지만, 둘 다 남의 걱정을 받을 만한 처지는 아니었다.
일단 외모부터가 서른 넷의 외모가 아니었다. 용사는 마나 유저이니 당연하지만, 김재현 역시 엄청난 동안이어서 겉보기론 이십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요즘 애들 얼굴이 삭은 걸 생각하면, 나이를 더 후려칠 수도 있을 것 같다.
게다가 경제사정 또한 좋았다. 용사 쪽은 여자들, 특히 레이아의 마법 능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남부럽지 않은 부를 쌓아올렸다. 마법에 의존하는 모양새가 좋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용사가 마음먹고 돈 벌겠다고 이종격투기나 육상 선수라도 한다면, 나름 정당하게 노력한 다른 선수들에게 미안하지 않을까 싶었다. 용사의 모토는 조용하게 살자, 평화롭게 살자였기 때문에 레이아가 수고를 좀 해줬다.
김재현은 좀 사정이 복잡했는데, 일단은 집안이 부유해 경제적으로 여유롭다. 그에게 금수저라고 하면 진짜 금수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며 손을 휘휘 젓는데, 아무튼 비싼 수저 물고 태어나서 돈 걱정하며 사는 애는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게임 하면서 백수짓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사실 그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좀 있었다. 평범한 일상에선 성격 좋고 괜찮은 애지만, 군대나 사회같이 강압적인 환경에선 극심한 압박감을 느껴 발작하고 게거품을 무는 등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군대도 훈련소에 갔다가 며칠만에 퇴소해서 재검 받고 면제됐고, 귀한 자식이 죽는 소리를 내자 놀란 재현의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평생 끼고 살아야겠다며 그냥 건강하게만 있어달라고,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살라고 했단다.
따지고 보면 팔자 좋은 놈이긴 하다. 본인도 마냥 노는걸 좋아하는 배짱이 스타일이어서 적성에 맞는 삶이었다. 아무튼 김재현도 용사와 알게 된 후, 이유는 서로 달랐지만 넉넉하고 여유롭게 사는 비슷한 환경의 친구에게 동질감을 느꼈는지 더 친하게 지냈다.
결과적으로 베프와의 관계는 예전과는 모양이 좀 다르긴 하지만 성공적으로 재구축했다.
그럼 그 김재현이 왜 레이아와 섹스를 하는 사이가 됐느냐?
한 가지 이유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 김재현 쪽을 먼저 보자면, 녀석은 여자와 인연이 없었다. 젊었을 때도 그랬지만 나이를 먹으니 더 심해졌다. 나이는 더 먹었는데 여전히 놀고 있으며, 성격 때문에 사람이 가벼워 보이고, 남자끼린 재밌게 노는데 여자한텐 잘 안 먹히는 스타일이었다. 얼굴은 평범하고, 몸도 보통의 체형이지만 모자란게 없는 만큼 뛰어난 구석도 없었고, 애가 외모에 신경을 안써서인지 생긴 것보다도 더 이성에게 매력이 없었다. 성격이 밝은건 좋은데 사회 생활을 못하니, 여자 입장에선 애를 하나 더 키우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이렇게 여자랑 인연이 없는데, 성욕은 이십대 청춘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아서 자기 입으론 최소 1일 1딸, 즉 매일 자위를 한단다. 좀 안쓰럽기도 하고, 안 그래도 네토남이 좀 필요했던 참이라 녀석을 끌어들인 것이다. 녀석이 주는 배덕감은 정말 기분이묘했다. 불알친구와, 가장 많은 사랑을 준 여자가 몸을 섞는 모습은 친숙하면서도 이질적이었다. 불쾌하다기보단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오묘한 기분이 나름 자극이 되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지속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으음…."
"일어났어?"
끄덕끄덕.
슬슬 일어날 때다 싶어서, 아까보단 좀 더 과감하게 레이아의 몸을 만졌다. 귀엽게 솟은 유두를 톡톡 건드려주니 반응한다. 하지만 레이아는 저혈압 증세가 좀 있어서, 일어난 후에도 항상 몇 분 정도 멍하니 있는다. 뽀얀 등을 일으켜세워 앉은 자세로 만들자, 다리를 쭉 뻗은 자세가 부담이 오는지 옆으로 접어 인어공주 자세를 했다. 왠지 큰 상심을 겪고 주저앉은 신파극 속 비련의 여주인공 같기도 했다.
알몸으로 보니까 얘도 참 비율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가 큰 아리스나 델렌도 황금 같은 비율을 갖고 있지만, 키가 평균보다 작아서 땅꼬마 라인이라고 부르는 레이아, 지나, 미라 세 명 모두 작은 키를 비율로 커버한다. 허리와 다리가 길고 라인이 늘씬하게 쭉 뻗어서 그런지 작다는 느낌을 받기 전에 몸 진짜 좋다는 생각이 먼저 드니, 여러모로 현명한 몸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만지는건 그만뒀다. 멍하니 앉아서 조는 것처럼 보여도, 무의식 중에 본능적으로 균형을 잡고 정신을 차리는 중이다. 정신 못 차리는 이 타이밍에 박는 것도 제법 별미지만, 오늘은 레이아의 날이니까 참도록 하자.
슬슬 레이아의 [저주]에 대해 말해야 할 것 같다. 굳이 김재현을 불러오는 이유, 엊그제 지나의 라이브를 보며 쑤셔줬음에도 성욕이 쌓인 이유, 내가 지금 박지 않는 이유 모두 레이아의 골치 아픈 저주 스킬 때문이다.
레아아의 저주 스킬은 [모순]. 이 스킬 하나로 레이아는 용사의 편애를 받으며, 다른 여자들의 동정까지 받는다. [모순]의 효과는 간단하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가장 못 느끼는 것이다. 즉 레이아는 용사와의 섹스에서 쾌감을 거의 받지 못한다. 물론 모든 성감이 원천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느끼는건 괜찮다. 예를 들면, 용사와 키스한다고 쳤을 때 레이아 본인이 키스하는 상황에 대해 흥분하고 젖어드는건 상관없다. 정신적 쾌감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용사에 의한 직접적인 자극, 이를테면 애무나 삽입 같은 것에대해서는 사실상 불감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아는 용사와 꾸준히 성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쾌감은 모자라지만, 정신적인 쾌감으로 최대한 스스로를 자극하면 완전히못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둔감해져도, 용사로 인해 젖어드는 것 정도는 가능한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또한, 다른 하나의 저주 스킬이 레이아에게 구명줄을 내려줬다.
다른 여자들처럼 레이아도 가지고 있는 [씨받이] 스킬은 용사의 [강인한 자] 스킬과 호환되어, 질내사정 받으면 쾌감을 느낀다. 안타깝게도 [모순] 스킬과 [씨받이] 스킬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쾌감은 반감되지만, 느끼는게 어디인가. 한 번 [씨받이] 스킬 효과를 터트려주면, 얕은 절정에 파르르 떨고 그 이후론 그럭저럭 느끼긴 한다. 즉 레이아와의 섹스는 2회전부터가 시작이었다. 1회전에선 쾌감은 적고 몸은 힘들어서 신음 대신 거친 호흡을 하긴 하지만… 본인이 그토록 원하기에 용사도 열심히 했다. 둘의 관계는 저주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아는 결국 지금처럼 몸에 성욕이 쌓이게 된다. 그리고 그 성욕은 용사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해소해야 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용사의 책임이 제법 있는데, 현역 시절에 목석 같았던 레이아를 잔뜩 개발해놓았기 때문이다. 외모도 그렇고 조용한 성격과 표정이 말 그대로 인형 같아서, 용사는 남자 특유의 묘한 도전 정신으로 레이아의 몸 구석구석을 훑고 조교하여 성감을 개발했다. 다른 여자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집요하게 만지니 레이아도 점차 잘 느끼기 시작했고, 그게 몇 년 동안 이어지자 용사의 마음에 쏙 드는 음란한 몸이 된 것이다.
막상 그렇게 잔뜩 개발당했는데, 지구로 돌아오니 [모순] 스킬이 반겨줬다. 아무리 덤덤한 레이아라고 해도, 그때만큼은아주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용사의 눈엔 레이아의 슬퍼하는 표정이 선명했고, 그래서 더 편애하기 시작했다. 다른 여자들도 반대는 커녕 오히려 편애를 종용했다. 레이아처럼 집요하진 않았어도 다들 용사에게 성감 개발을 당했고, [씨받이] 스킬이 터질 때마다 머릿속에서 벼락이 치는 것 같은 쾌감을 느끼며 가버렸기 때문에 그 엄청난 쾌감을 제대로 못 느끼는 레이아를 다들 동정했다.
….
"일어났어?"
끄덕끄덕.
용사가 레이아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댈 때마다 마치 강아지처럼 눈을 꼭 감는 것이 귀여웠다. 저주 때문에 편애하는걸 제외한다고 쳐도, 레이아는 용사에게 있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사랑하는사이임과 동시에, 정말 예쁜 여동생 같기도 했다. 마치 투명한 유리 같아서, 깨지지 않도록 항상 섬세하게 다뤘다. 김재현에게 레이아를 주는 이유도 그런 점에 있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타인보단, 잘 아는 놈에게 맡기는게 믿을만하고 안심이 된다.
그러니까, 레이아. 안심하고 즐겨. 귀여운 목소리로 음란하게 헐떡이렴.
"후…."
레이아 생각을 하자 좀 흥분해버린 용사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아도 표현을 많이 안 할 뿐이지 성감이 예민하고 욕구가 많았다. 직접 그런 몸으로 개발해줬기 때문에 잘 안다. 쓰다듬는 손길이 멎자 레이아가 용사를 멀뚱멀뚱 올려보다가 작고 귀여운 입을 열었다.
"마스터."
"응?"
마스터. 레이아에게 허락된 칭호.
흔히 마스터라고 한다면 주인님과 비슷한 뜻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레이아는 다른 뜻으로 사용한다. 흑마법사들은 백마법사들과 많이 다르지만 몇 가지 비슷한 점도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호칭이다. 마법사들이 쓰는 마스터(master)라는 호칭은, 일종의 상징적인 호칭이다. 나이 든 어르신을 과거의 벼슬인 영감이나 대감으로 부르는 것처럼, 마스터는 본래 특정 분야에서 절정의 경지에 이른 마법사에게 붙이는 호칭이었다. 예를 들면 파이어 마스터는 화염 마법의 대가, 서먼 마스터는 소환 마법의 대가를 뜻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스터는 일종의 존칭으로 겸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자신의 스승이나 소속 단체의 수장을 마스터라 부르는 일이 많았다.
레이아는 그런 의미에서 용사를 마스터라 부르는 것이다. 용사는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스승이기도 하고, 마왕을 물리친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파티의 수장이기도 하니까. 본인 말에 의하면, 주인님이라는 뜻이 있어서 오히려 더 좋다고 한다. 주인님이라는 직접적인 호칭은 델렌이 쓰고 있지만, 이렇게 돌려서 말하는 것도 나름 괜찮은 모양이다.
"…."
뭔가를 말하려다 머뭇거리던 레이아가 입을 열었다.
"아까, 문자."
"아. 그래, 맞아."
용사의 긍정에 그를 올려다보던 레이아가 눈을 살짝 아래로 깔았다.
"으음…."
"많이 쌓였지?"
"……응."
질문에 긍정하던 레이아의 시야에 일자로 발딱 선 용사의 물건이 보였다. 멍하니 그것을 보던 레이아가 입 안에 고인 침을 꿀꺽 삼켰다. 저도 모르게 혀를 내밀 뻔했다.
'안 돼!'
깜짝 놀란 레이아가 거리를 벌렸다. 오늘은 '그 날'이다. 용사가 좋아하는 그 날.
"레이아."
위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레이아가 고개를 들었다. 기분 탓일까? 용사의 표정은 평소처럼 무덤덤해 보였지만, 안색이 묘하게 상기된 것 같았다.
"이제 슬슬 '준비'하자."
….
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