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2. 레이아의 변화 (7) (20/162)



〈 20화 〉#2. 레이아의 변화 (7)

재현의 눈빛에서 갈망을 읽어낸 레이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수락했다.


자세가 바뀌었다. 재현은 뜨겁고 세게 조여주는 보지에서 나갈 생각이 없는지, 박은 채로 몸을 움직였다. 레이아는 그런 의도를 눈치채곤 매미처럼 재현을 끌어안았다. 정상위에서 서로 옆으로 누워 마주보는 자세로, 그리고 레이아가 올라탄 기승위 자세로 바뀌었다. 레이아의 섬세한 손이 자연스레 재현의 두 가슴을 짚었고, 상체를 45도로 기울여 재현을 내려다보았다. 자기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얼마나 꼴릿한지 알고는 있는 건가.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다. 마치 아무 것도 모르는 초식동물처럼 순수한 눈동자로 보는 레이아의 모습…. 심장이 아플 정도로 좋았다.



레이아는 그러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자세였으나, 밑에서 보는 재현은 레이아의 턱밑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었기에 잠자코 기다려줬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마치 꿀벌처럼 달콤한 타액을 모으는 모습을 마음껏 감상했다.

"…."

평소에도 말은 별로 없지만, 지금은 침을 모아놓아서 아예 말을 할  없는 상태. 레이아가 눈빛으로 말하자 재현은 아까 레이아가 했던 것처럼 입을 벌려 달콤한 꿀물을 받아먹을 한 마리 아기새가 되었다.



주륵.



레이아가 무덤덤하게 침을 흘려보냈다. 이런 순간마저 표정 없는 얼굴. 무표정은 언뜻 들으면 아무 감정도 띠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나타내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보면 마이너스에 가까운 느낌이다. 무표정하게 있으면 화났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하잖는가. 마찬가지로, 표정 없는 레이아의 얼굴은 그나마 계속 얼굴 도장을 찍고 익숙해져서 그렇지 사실  딱딱하고 어려운 느낌을 주었다.


'그게 매력이지만.'

물론 그건 평범한 인간관계일 때의 이야기였다. 서로의 알몸은 물론이고 가장 깊숙한 곳까지 잘 알고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재현은 오히려 레이아의 무표정에서 매력을 느꼈다. 꿀떡꿀떡, 레이아와는 다르게 침을 모아서 삼키지 않고 들어오는 족족 감로수처럼 받아마시며 재현은 생각했다. 파트너가 요구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의무적으로 하는 느낌은 있었지만, 어쨌든 이런 것까지 해주는 레이아에게 고마움과 꼴릿함을 느꼈다. 계속 받아마시며 레이아의 얼굴을 보니, 표정 없는 얼굴이 왠지 이런 것까지 시키냐며 매도하는 듯했다. 레이아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라면 매도를 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같다는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툭.

꿀물을 다 흘려보낸 레이아는 입술에서 이어진 투명한 실마저 끊긴 후에야 입을 다물었다. 끝났다는 듯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재현이 팔을 붙잡았다. 짓궂은 얼굴로 씨익 웃는다.



"조금만  줘."

누운 상태에서 수직으로 솟아있는 자지를 은근히 놀리며 요구한다. 몸이 결합된 레이아의 허리도 요염하게 흔들렸다. 레이아는 말없이 지긋이 재현을 보다가, 다시 침을 조금 모아서 흘렸다. 아까보다 적은 양이었지만, 재현은 만족하며 씨익 웃었다. 팔을 놓아주자, 레이아가 상체를 일으키면서 표정 없이 말했다.


"…변태."

두근!

"윽…."

심장이 아프다. 재현은 여전히 같은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레이아가, 왠지 자기를 흘겨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마조니 뭐니 하는 성벽은 없다. 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늦둥이 막내 동생 같은 레이아가 마치 앙탈을 부리는 것처럼 말하니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보니, 다 같은 무표정이 아니라… 묘하게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얼굴도  빨개졌고. 왠지 레이아를 더 깊게 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한 기쁨과 함께, 스위치가 켜진 재현은 거칠게 일어나서 레이아의 보지에 자지를 푹푹 박기 시작했다.






"후우…."

하얗게 불태웠다. 남자 나이 서른 넷에, 이렇게 단시간 내에 두 번이나 싸버리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슬픈 얘기지만, 모든 남자들에게 다가오는 운명이다. 이렇게 처량한듯 말하지만, 사실 좀만 쉬면 한  더 할 수 있다. 따지고보면 아직 젊은이 축에 속하기도 하고. 나이에 비해 힘과 정력이 좋은 재현은 잠시 간의 현자타임을 보내다가 옆으로 슥 고개를 돌렸다.



"…."

김재현이라는 손님으로 인해 가장자리로 밀려난  침대의 주인. 밀려났다기보단 스스로 배려한 것이었다. 레이아는 대자로 누운 재현의 팔을 자연스럽게 베고 등을 돌린 채로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는 모습이 지쳐 뻗어있는 재현과 대조되어, 마치 어린 신부에게 시달려 쩔쩔매는 늙은 신랑 같았다. 하지만 재현은 분명히 레이아를 오르가즘에 오르게 했고, 성취감을 가득 선사하는 앙앙거리는 귀여운 헐떡임도 제대로 들었다. 누가 더 에너지를 많이 썼느냐에서 남자인 재현이 상대적으로 불리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무튼 이런 구도도 제법 괜찮았다. 같이 잠자리를 가진 후에 자기 볼 일을 보는 모습은, 마치 부부처럼 섹스하는게 자연스러운 관계라는 증거였으니. 레이아가 흥분하며 발산한 페로몬과 여자 특유의 향기를 기분 좋게 들이마신다. 슬쩍 눈을 내려 옆으로 누운 자세를 유지하는 레이아의 하체를 보자, 잔뜩 사정당한 보지에서 흘러나오는 정액  줄기가 허벅지를 통해 침대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묘한 정복감이 그를 고양시켰다.



토도톡톡.



레이아는 몇 분째 같은 자세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남의 핸드폰을 막 보는건 예의가 아니긴 하지만, 마치 봐도 상관없다는 듯이 등을 보이고 무방비하게 있는 모습이 마치 유혹하는 것 같았다. 곁눈질로 슬쩍 보니 누군가와 톡을 주고받고 있다.



'흐음?'

재현은 무심한듯 다가가 레이아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뻗어 가슴을 만졌다. 예쁘게 오른 말랑말랑한 살을 주무르고, 마치 스쳐지나가듯 검지나 중지로 유두를 톡톡 건드렸다. 그러면서 레이아처럼 옆으로 누워, 축 늘어져 있다가 조금씩 힘을 되찾아가는 자지를 엉덩이에 슬쩍슬쩍 비비며 상체 역시 밀착해 머리카락의 향기를 맡았다. 머리색 때문인지 향기가 보라색으로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무슨 짓을 해도 레이아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재현은 암묵적 허락으로 받아들이고는 어깨 너머로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글자가 아니라 프로필 사진이었다. 마치 일렁이는 불꽃 같은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



…역시, 녀석이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궁금하여 내용을 보려던 찰나, 레이아가 버튼을 눌러 화면을 껐다. 까맣게 꺼진 액정으로 레이아와, 그 뒤에 있는 재현의 모습이 비쳤다.



"스으읍… 후…."

깊은 심연처럼 어두운 빛깔의 눈동자. 핸드폰이라는 반사판을 통해  눈과 마주쳤다. 움찔한 재현은 마약이라도 하듯 진보랏빛 머리카락을 깊게 들이마셨다.



"…."

"으음, 크흠, 큼, 큼….  일은 다 봤니?"

"……."

레이아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렇게 죄 지은 표정의 재현을 보던 그녀는 다시금 핸드폰을 켰다. 잠금화면이 나오자 네가 보든말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패턴을 그려 잠금을 푼 후, 뭔가를 실행시켰다.


"음?"

화면이 잠시 암전됐다가, 누워있는 둘의 모습을 출력했다. 마치 육안으로 보는 것처럼 모든 색깔이 그대로 드러난 화면. 셀카였다.



"레, 레이아?"

찰칵.



예고 없는 촬영. 보정은 커녕 각도조차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찍은 사진이 화면에 나왔다. 가까이서 찍은 탓에 얼굴부터 쇄골 부분까지만 찍혔다. 표정 없는 레이아와, 갑작스런 셀카에 당황하여 얼타는 재현의 얼굴. 섹스 직후 힘이 빠져 나른하게 풀린 재현의 눈동자가 그대로 보였다. 비록 쇄골까지만 찍혔지만, 둘 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임을 누구라도 눈치챌 수 있었고, 재현의 팔이 레이아의 몸을 건드리는 것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구도였다.  누가 봐도 둘이 섹스한 후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사진이었다.

"저, 저기요?"

다시 핸드폰을 끈 레이아가 상체를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동작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고, 재현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레이아다운 움직임이었다. 입술이 열리며 한 단어가 튀어나온다.

"데이트."

"응?"

레이아가 덤덤한 눈동자로 누워있는 재현에게 말했다.


"데이트 하자."

덤덤한 눈동자에 비해, 볼은 약간 빨개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