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3. 사랑의 증표 (1)
츄웁, 츄웁….
"우음, 츕…."
그 날 이후, 레이아는 완전히 바뀌었다. 일단 말수가 많아졌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과묵했던 이전과는 달리, 말을 걸면 잘 받아줬고 심지어 먼저 말을 꺼내기도 하는 등 대화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말투 역시 많이 개선해서, 대체로 단답형이었던 예전과는 달리 하나의 깔끔한 문장을 사용하는 빈도수가 많이 늘었다. 그리고 의외로 또렷한 목소리가 새로운 장점이 되어 또다른 매력을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아는 평균적으로 말수가 적은 편에 속했다. 수다를 떠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단점도 매력으로 만드는 외모 덕분에, 오히려 진중하고 속이 깊은 인상을 줬다. 말을 딱 떨어지도록 깔끔하게 해서 그런지 지적인 느낌 역시 들었다.
가장 의미가 있는 것은 그런 변화가 용사나 여자들에게만 국한된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김재현을 포함한 다른 남자들에게도 예전처럼 철벽을 치는게 아니라 말을 잘 들어주고 똑부러지는 말투와 청아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동안 의사소통을 몸짓으로 때우면서 경험치가 쌓였는지, 말할 때의 제스처나 표정이 자연스럽고 풍부했다.
이러한 변화의 폭은 너무나도 커서, 레이아를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용사조차 다른 사람처럼 느꼈을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레이아의 변화는 큰 의미가 있었다. 일단 변화 자체가 좋은 방향이었고, 변화의 폭도 상당해서 이미지가 확실히 달라졌다. 그동안 수많은 남자들을 튕겨냈던 레이아 특유의 철벽이 사라지고, 오히려 말을 잘 들어주는 상냥한 인상이 생겨서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려는 남자들이 생겼다. 활발하게 톡을 하며 핸드폰 타자를 치는 레이아의 모습은 마치 미라나 지나를 보는 것 같았다.
앞으로 레이아는 더 적극적으로 남자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기특한 녀석.'
무슨 깨달음이라도 있었는지. 결국 그런 변화는 용사의 즐거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용사 입장에선 고마울 따름이었다.
슥 슥.
용사는 자신의 물건을 빨아주는 레이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곁눈질로 바닥에 놓인 그녀의 핸드폰을 보았다. 꺼져서 까맣던 화면에 네톡의 메세지가 떴다. 그날 이후, 레이아는 단순한 섹스 파트너 관계였던 재현과도 톡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열심히 톡을 하는 모습을 보면 거의 사귀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딱히 핸드폰을 훔쳐보려던건 아니고, 레이아가 눈에 띄는 곳에서 보란 듯이 핸드폰을 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기분이 묘했다. 품에 꼭 안고 있던 아기새가 자라서 날아가는걸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아닌 남자와 톡을 주고받으며, 가끔씩은 새하얀 치아가 드러나도록 짙게 미소짓는다. 집순이처럼 굴던 예전과는 다르게 외출 횟수도 조금씩 늘어나서, 레이아가 집을 비울 때면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대체로 나갔다 온다고만 말하지 자세한 용건은 알려주지 않아서 그냥 바깥 구경만 하다가 오는 건지, 김재현이라도 만나는지, 아니면 또다른 남자인건지 알 방법이 없었다.
레이아가 돌아올 때면, 용사는 마치 주인 맞이하는 강아지처럼 다른 일을 하다가도 현관 쪽으로 불쑥 나가 레이아를 맞아들였다. 그때마다 레이아는 용사의 샅샅이 훑는 듯한 시선을 즐기며, 그저 배시시 웃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 웃음을 볼 때마다 용사는 그날처럼 따라 들어가서, 옷을 벗는 레이아의 몸에서 다른 남자의 흔적을 찾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웠고, 굳이 환상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레이아도 그런 용사의 마음을 잘 아는지, 옷을 다 벗고 나와 욕실로 샤워하러 가면서도 손에 들린 옷가지를 이용하여 교묘하게 가랑이 쪽을 가려서 상상력을 한껏 자극했다.
….
물론 레이아와 용사의 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둘 중 한명이라도 원한다면 언제든 섹스했고, 평소에도 지금처럼 레이아가 먼저 다가와 입으로 빨아주는 서비스를 하는 등 여전히 활발한 성관계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제법 달라졌다. 언제나 [모순]의 효과를 감수하고 용사가 좋으면 자기도 좋다면서 헌신적인 봉사를 하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짧게 말하자면 크게 미련이 없어 보였다. 마치 보험이라도 있는 것처럼, 어딘가에 성욕을 풀 구석이 있는 것처럼 군다. 지금 만족하지 않더라도 괜찮다는 듯한 분위기는 용사의 네토 성향과 상상력을 크게 자극했다.
채우지 못한 성욕을 다른 남자와 푸는 건가? 김재현? 아니면 또다른 누구? 그런 생각을 하며 용사는 레이아와의 관계에서 예전보다 더 큰 만족감을 느꼈다.
"크읏!"
펠라치오, 그리고 사정. 레이아는 귀두를 한껏 머금고, 경련하는 자지에서 나오는 하얀 즙을 받아마셨다. 예전엔 삼키지 않고 나중에 입을 벌려서 가득 모인 정액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최근엔 그냥 나오는대로 꿀꺽꿀꺽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마시는게 습관이 된 것처럼, 물이라도 마시는 것처럼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으음, 마스터."
레이아는 정액을 다 삼키고, 요도에 남은 정액까지 쪼옥 빨아서 뒷처리까지 한 후 입술을 혀로 스윽 핥았다. 맛있는걸 먹고 입맛을 다시는 듯한 모양새가 마음에 들어 자지가 다시 설 것 같았으나, 사정이 끝난지 십 초도 되지 않았기에 바로 서진 않았다. 침으로 번들거리는 예쁜 입술을 보던 용사가 대답했다.
"왜?"
"저번에 말했던 그거, 완성됐어."
"그거?"
"큐피드 프로젝트. 목표 수량이 다섯 개였잖아. 다 만들었어."
"…벌써?"
얼마전 용사는 레이아에게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이름하여 '큐피드 프로젝트'. 큐피드 프로젝트의 목적은 마법을 이용해 더욱 생동감있고 편리한 네토 플레이 생중계를 보는 것이었다. 기존의 중계 수단이었던 핸드폰 촬영은 화면이 너무 불안정하고, 카메라는 몰래 보는 듯한 느낌이 좋긴 한데 고정된 시점이 제법 불편했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부탁해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하긴 했지만, 가장 꼴릿한 화면을 찾기 위해 화면 전환을 자주 해야해서 중간에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여자들은 완벽한데 그걸 볼 수 있는 환경이 완벽하지 못해 아쉬웠던 적이 많았다.
그런 여러 생각들을 레이아에게 말했더니,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방에 틀어박혀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다. 그리고 다음날 제출한 청사진을 보니, 그것은 일종의 촬영 드론이었다. 레이아는 최고의 흑마법사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언가를 창조하는 연금술사의 재능도 최상급이었다. 지구로건너온 뒤에는 연금술사보단 공돌이가 더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튼 그녀의 창의력은 믿을만했다.
큐피드.
청사진을 보고 나서, 용사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레이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촬영 드론의 역할을 하는 '큐피드'는 레이아가 직접 시전한 여러 가지 반영구적 마법을 적용할 예정인데, 바람직한 효과가 아주 많았다.
레이아가 만든 큐피드는 이곳이 지구이고 촬영해서 영상으로 남긴다는 점 때문에 드론이라고 부르는것이지, 작동 원리 자체는 판타지 세계의 패밀리어에 가까웠다. 패밀리어는 마법사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작고 날쌘 짐승들과 그들에게 걸린 마법을 뜻하는 단어다. 일반적으로는 새나 쥐, 박쥐 등에게 마법을 걸어서 하수인으로 만들어 정찰을 보내고, 마법사는 마법으로 활성화된 제3의 눈으로 패밀리어의 시야를 보면서 직접 가지 않고도 시각적, 청각적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큐피드는 다르게 말하면 기계를 활용한 진화형 패밀리어다. 일단 마법의 대상이 동물이 아니라 레이아가 만든 비행 드론이다. 장점은 나열할 것도 없이 많다. 기계이기 때문에 내구성 등 장점도 많고 다루기도 편하며,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앵글로 촬영을 지속할 수가 있다. 동물이라는 단어에서 '동'은 움직일 동이다. 즉 동물은 움직이는 존재다. 패밀리어로 삼을 경우 마법으로 강제할 수야 있겠지만, 움직이는 존재를 완전히 멈추게 하면 패밀리어에게 무리가 갈 수밖에 없고 결국 오래 쓰기 힘들어진다. 기계는 다르다. 완전히 멈추는 것에 전혀 무리가 없다. 또한 기계이므로 중간중간 먹이를 섭취하게 만들 필요도 없었다. 은근히 신경써야 하는 천적에 대한 변수도 기계에겐 없다.
이런 장점에 레이아의 마법이 더해져 혁신이 된다. 이제는 패밀리어도 드론도 아니다. 일단 동력원이 마나로 바뀌어, 연료나 전기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효율로 운용할 수 있다. 한 번 마나를 주입하면 24시간 풀가동을 해도 반 년 이상을 작동할 수 있다. 마나는 일반인들에겐 기적을 부르는 힘이기에 이런 말도 안되는 일도 가능케 만든다. 마나를 딱히 많이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어서, 잊을 만하면 적당히 넣어주면 된다.
마나를 사용하는 기계. 판타지 세계에서조차 불가능한 일이고, 오직 최고의 흑마법사 레이아만이 만들 수 있는 기적이다. 마나를 동력원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었기에, 이 엄청난 녀석은 기체 내부에 각인된 마법진을 스스로 작동시킬 수도 있다. 각인된 마법은두 가지. '안정화'와 '은폐장'이다. 안정화는 말 그대로 기체를 여러 의미에서 안정화시키는 것이다. 비행체이기 때문에 바람이나 여러 변수로 기체가 흔들릴 수 있는데, 안정화 마법으로 그런 변수들을 차단할 수 있다. 은폐장은 비유하자면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는 것과 같다. '투명화' 마법보다는 하위에 속하지만, 적어도 사람이나 동물이나 카메라의 시각에 발각될 염려는 없다.
대단해, 레이아.
이게 끝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촬영 기능으로 가보면, 이 분야 역시 마법이 섞여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길게 말할 것 없이 간단하게, 큐피드는 자체적인 센서와 알고리즘으로 '중요한 장면'을 딱딱 집어준다. 즉 네토 플레이를 촬영할때 신호를 보낸다는 뜻이다. 섹스뿐만 아니라, 배덕감 넘치는 데이트라던지 그 외에 여러 상황을 정확히 인지한다.
그렇게 찍은 영상은 실시간으로 전송되어 레이아의 컴퓨터에 저장된다. 용사의 컴퓨터로 바로 가지 않는 이유는 마법 분야가 접목되어 있어서 그쪽은 문외한인 용사가 건드리지 않는게 좋다는 이유였다. 여자들 입장에서도 그러는 것이 좋았다. 섬세한 여자들 입장에선용사에게 모든 일상이 바로 전송되는게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미 볼꼴 못볼꼴 다 보여준 사이라고 해도,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이런 저런 모습을 숨기고 싶겠지.
참고로 레이아의 컴퓨터에도 마법이 걸려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소형화 마법이다. 외관상으론 일반적인 PC 사이즈이지만, 사실은 서버 컴퓨터 수준의 막대한 처리 기능과 저장 기능을 가지고 있는 컴퓨터였다. 레이아의 말로는, 다섯 명의 여자들의 영상을 24시간 내내 찍어도 1년치를 저장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용량이 모자라겠다 싶으면 저장 장치를 더 구비할 수도 있다고 하니, 용량 문제는 전혀 없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기능이 하나 더 있다. 아까 말했던 부분 중 큐피드가 하이라이트를 인식하는 기능이 있다고 했는데, 이쪽 컴퓨터에서 그런 하이라이트를 인식하면 영상 저장과 동시에 그것을 gif 이미지파일, 즉 소위 말하는 '움짤'로 만들어 전용 폴더에 저장한다. 풀영상과 동시에 꼴리는 움짤을 만들어준다니. 용사는 나만 알고 있기엔 너무나도 아름다운 기술이라며 감탄을 했다.
….
레이아가 들으면 섭섭해하겠지만, 쉽게 요약하자면 여자들이 제약 없이 네토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 이상 번거롭게 카메라나 핸드폰을 동원할 필요가 없고, 남자들에게 일일이 협조를 구할 필요도 없다. 용사는 이전에 비해 훨씬 좋아진 환경에서 네토 플레이를 감상하며 지극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됐다. 모두가 윈윈인 것이다.
"대단해, 레이아."
"으응."
입안에 정액 특유의 끈적한 기운이 남아서인지, 레이아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대답했다. 말이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단숨에 프로젝트를 완성하는걸 보면, 생각보다 의욕이 있었던 모양이다. 레이아는 최고의 흑마법사이면서 최상급 연금술사(공돌이)였기에, 사실은 큐피드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다만 평균보다도 아래를 밑도는 의욕이 강력한 억제기 역할을 해서 결국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할 땐 하는 여자, 레이아. 정말 기특하다.
"마스터가 기뻐해줄 것 같아서."
"큭, 레이아."
아래에 있는 레이아를 안아서 품 안에 쏙 들어오게 하고는, 고개를 돌려 입을 맞춘다. 레이아는 당연한 포상을 받는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호응했다. 자지만 넣으면 배면좌위인 야릇한 자세에서 끈적한 키스가 이어진다. 방금 전까지 정액을 삼켰던 입이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미 현역 시절부터 다섯 명의 여자와 사귀며 적응했기에 이제는 찝찝한 느낌마저 없었다. 남의 것도 아닌데. 지금은 다 삼킨 상태이기도 하고.
"하아,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좋고."
"그래, 모두가 좋지. 수고했어."
레이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들에게 이만큼 반가운 소식도 없을 것이다. 네토 플레이에 맞는 남자를 구하는건 생각보다 까다롭고 귀찮은 일이었다. 거의 항상 남자들을 납득시켜야만 했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엄청난 미녀가 섹스하자고 하면 보통은 의심이 들테니까. 결국 새로운 남자를 만들기가 어려우니 이제까지 잘 맞았던 남자들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극적이긴 하지만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받기가 어려웠다. 용사뿐만 아니라 여자들 입장에서도 별로 좋지 않은 현상이었다.
내색은 안하지만 다들 내심 고민하고 있을 텐데, 레이아가 멋지게 해결책을 꺼내온 것이다.
그럼,이 즐거운 발표를 언제쯤 할까….
….
"아."
"음?"
품 안에 안겨있던 레이아가 의문을 띄운다.
"레이아. 델렌이 언제쯤 온다고 했지?"
"아까 단톡으로 세 시간쯤 남았다고 했으니까, 두 시간 좀 안되게 남았어. 아직 전철에 있겠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안겨있던 레이아가 멀뚱히 쳐다본다.
"우리도 짐 싸자."
"응? 왜?"
용사가 핸드폰으로 단톡에 메세지를 보내며 말했다.
"모처럼 다 모이는 김에, 다 같이 온천 여행이나 가자."
"오."
"어서 준비해. 큐피드 까먹지 말고?"
용사의 말에 레이아가 피식 웃었다.
"큐피드는 이미 작동중인걸?"
"뭐?"
섬세하고 하얀 손이 공중에서 무언가를 집었다. 설마.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마나 운용을 통해 초감각을 활성화하자 레이아의 손에 들린 머리통만한 비행체를 감지할 수 있었다.
"다른 애들도 자기 주인 찾아 갔어. 각각의 고유 마나 신호를 식별할 수 있거든."
"…델렌은 엄청 멀리 있을텐데?"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거야. 문제 없어, 마스터."
오우.
"대단해, 레이아."
이것밖에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