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3. 사랑의 증표 (3)
"흐아, 후아, 흐으응…."
깊숙하게 질내사정당한 미라는 자궁 속 깊숙한 곳에 정액 줄기를 맞을 때마다 막힌 신음을 지르며 이를 악물었다. 한발 한발 맞을 때마다 눈을 부릅뜨고 몸을 뒤틀었다. [씨받이] 스킬이 터진 여자들의 평균적인 반응이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여자들이 아무 남자한테나 대줘도 전혀 불안하지 않은 이유였다. 각각의 스킬대로, 취향대로 섹스했기에 그나마 만족스러운 것이지, 그 어떤 것을 들이밀어도 [강인한 자]와 [씨받이] 스킬의 조합을 이길 순 없을 것이다.
"흐앙, 하앙, 자기, 나… 흐응…."
미라가 용사를 부르며 주저앉으려 한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이다. 용사는 가볍게 허리를 끌어안아 부축해줬다. 새침하고 도도하던 얼굴도 눈물을 줄줄 흘려대며 맛이 간 상태였고, 미미하게 잔류한 쾌감으로 인해 입가가 씰룩거리는 흐트러진 모습이 오히려 고혹적이었다. 꼴려서 한 번 더 박아주고 싶었지만, 몸에 힘을 못 줘서 중심부터 잡아줘야 했다. 용사는 잠깐 고민하다가 미라를 번쩍 들어올려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아들었다.
"앗! 으흣, 자기…."
번쩍 들어올려진 미라는 살짝 당황하면서도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약간 츤데레 같은 이미지가 있긴 해도 별로 튕기지 않고 감정 표현에 솔직한 것이 미라의 매력이었다. 레몬빛 금발 포니테일을 휘날리며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 얼굴도 매력적이지만, 남자를 기분 좋게 만드는 성격이 용사에겐 상당한 매력이었다. 새침한듯 하면서도 솔직하고, 까다로워 보이지만 털털하고, 헌신적이면서도 스스로를 깎아먹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여우 같은 매력이란게 바로 이런건가 싶었다. 남자들은 여우에게 잘 넘어간다지.
"우리 너무 오붓한거 아냐? 후후."
용사가 그대로 방을 나서려 하자 미라가 물었다. 다른 여자들 앞에서 너무 알콩달콩하면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런 거, 신경쓰지 않기로 한지 오래다. 하나하나 신경쓰다가 전부 놓치는 법. 설령 불만이 좀 있다고 해도 감수해야만 한다. 다행히도 여자들이 전부 마음이 넓고 생각이 깊어서 이제까지 별 마찰이 없었다. 용사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게부담을 주기 싫어하는 헌신적인 사랑과, 가족 같은 동료들에 대한 배려심 및 동료애가 안정적인 하렘 생활에 언제나 크게 기여를 하고 있다.
용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한다.
"지금을 즐겨. 나중에 억울하지 않도록. 다음엔 너도 구경하는 입장일 테니까."
"흐응…. 좋아."
미라가 싱긋 웃으며 더 깊게, 더 편하게 안겨들었다.
끼익.
문을 열고 나가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레이아였다. 어느새 거실에 자기 머리색과 비슷한 진보라색 캐리어를 놓은 레이아는 귀엽게도 그 위에 걸터앉아 무릎을 끌어안은 자세로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치마를 입었기에 당연하게도 팬티가 훤히 보였는데, 아까와는 다른 색이었다. 용사와 눈이 마주친 레이아는 태연하게 눈인사를 하고는 다시 핸드폰을 했다. 꼴릿꼴릿…. 마치 속옷이 보이는걸 인지 못하는 듯한 태도에 마음이 조금 동한다. 물론 순진한 처녀도 아니고, 똘똘한 레이아가 모를 리가 없다. 언제나 목석같았던 레이아가 이렇게 앙큼하게 구는 것을 보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우와, 주인니임~."
"아, 델렌."
저쪽에서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 일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로맨틱하게 안겨있던 미라가 약간 아쉬운 얼굴로 내려왔다. 하지만 델렌은 정말 얼굴 보기가 힘들었기에 큰 불만없이 물러났다.
출렁 출렁.
어째 얼굴보다 가슴이 먼저 보인다. 실제로 그런 소리가 난 건 아니었지만, 정말 출렁이라는 글자가 잘 어울리는 착한 가슴이었다. 여자들 중 가장 큰 가슴을 보고 있자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미라, 레이아, 지나….
'아….'
꼬맹이 삼인방의 짜게 식은 시선. 이모티콘으로 표현하자면 눈_눈 ('눈'이라는 글자 말고, 모양으로 보면 눈썹을 찌푸린 표정이 나온다) 이랄까. 저 셋이 작은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비슷한 키의 여자들 중에선 제법 큰 편이다. 다만 델렌이 모든 여자들 중에서도 반칙 사이즈인 왕가슴일 뿐이다. 그나마 두 번째로 가슴이 큰 아리는 자기도 이런 상황을 여럿 겪어봤는지 그저 민망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앗."
주물럭, 주물럭.
짓궂은 생각이 나서 품에 안겨드는 델렌의 몸을 돌리고, 보란 듯이 글래머러스한 가슴을 마구 만졌다. 델렌이 당황해서 팔을 휘적거리지만, 가슴을 주무르는 억센 손은 건드리지도 않는다. 얘도 만만찮게 앙큼한 계집애다.
"에휴."
꼬맹이 삼인방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란걸 깨달았는지 마치 타이밍을 맞춘듯 동시에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돌렸다. 이쯤 하기로 하고 델렌의 입술에 도장을 찍었다.
"헤헤…."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델렌 역시 사랑하는 여자이며 세상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반가움을 표할 겸 이마와 콧등, 양 볼, 입술, 턱에 뽀뽀를 해주며 손으로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꼭 안아줬다.
"주인님, 에헤헤…."
순수한 애정 행각에 델렌 역시 자신의 연인을 꼭 끌어안았다.
델렌에게 허락된 호칭은 '주인님'. 마치 연인이 아니라 종속관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참 신기하게도 다른 여자들이 종종 이 특이한 호칭을 부러워한다. 사랑하는 여자로서 소중하게 다뤄지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자기 남자에게 마치 노예처럼 강제로속박되어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아찔한 느낌도 맛보고 싶다나. 섹스라면 그런 거친 플레이도 얼마든지 해주는데, 호칭은 또다른 얘긴가보다. 하여튼, 델렌은 본인의 성향도 있어서인지 호칭에 대해 아주 만족하고 있다.
델렌.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금발 미녀 성기사. 눈꼬리가 살짝 내려가있고 표정도 대체로 나긋나긋해서 상당히 순하고 착한 인상을 준다. 용사를 제외한 다른 남자들은 그녀가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죽일 만큼 여릴 것이라고 자기 맘대로 생각한다. 주먹으로 고블린 머리통을 날리고 방패를 날카롭게 세워 가차없이 적을 찍어버리던 현역 시절의 모습을 보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아무튼, 최소한 '사람에게는' 더없이 선하고 부드러운 성격이다. 아니, 정정하자. '아군에게는' 그러하다.
미라가 눈부신 레몬빛 금발이라면, 델렌은 말 그대로 금색, 황금을 떠올리게 하는 진하고 약간 어두운 노란색 금발이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커서, 막상 둘을 붙여놓으면 다른 색으로 느껴질 정도다. 얼굴로 내려가면 순진무구한 밝은 갈색 눈동자가 보인다. 델렌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면 은근히 카리스마 있는 얼굴인데, 항상 순진하게 웃음을 띄우니 좋게 말하면 착해 보이고 나쁘게 말하면 호구 같아 보인다. 이게 정녕 파티 내 최고 연장자인건지. 막내인 레이아와 나이를 바꿔야 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순진무구해 보인다. 다행히 키가 168로 아리스 다음으로 길쭉하게 뻗어 있고 몸은 가장 글래머여서 성격이 약간 철이 없어 보이는게 오히려 매력으로 느껴진다. 금발 거유는 약간 모자라 보이는게 매력이다.
하지만 성격 치고는 걱정을 끼치지 않는 편이었다. 눈썰미가 좋고 멘탈도 튼튼하고 마냥 당하는 성격도 아니어서, 아닌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주 아주 가끔 보이는 단호한 모습에서 최고의 재능을 가진 성기사였던 현역 시절의 면모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역 시절에도 일상 속의 델렌은, 항상 파티의 선두에 서서아군에겐 든든함을, 적군에겐 공포감을 주던 무자비한 탱커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전투와 일상이 완전히 다른데, 본인은 일상 쪽이 자신의 진짜 성격이라고 주장하지만 용사를 포함한 다른 파티원들은 두 성격 다 진짜 성격이라고 확신한다.
아무튼, 어떤 성격이건 신뢰 가득한 동료 관계인 이들에겐 한없이 좋은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서, 그녀보다 나중에 합류한 지나, 아리스, 레이아가 가장 먼저 마음을 연 동료가 델렌이었다. 용사는 사랑의 대상이므로 논외다.
슥슥.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자 강아지처럼 얌전하게 있으면서 헤실거린다.
"저, 주인님…."
"아? 아…."
델렌이 포상을 달라는 듯이 얼굴을 내밀었다. 용사는 씨익 웃으며, 이제는 익숙한 동작으로.
짜아악!
팔을 휘둘렀다. 힘조절 따윈 없는 강한 손찌검에 델렌의 고개가 휙 돌아간 것은 물론, 몸까지 휘청거려 몇 걸음 뒷걸음질까지 쳤다.
"씨발년아, 얼굴 보기 존나 힘들다? 응?"
"죄송… 해요…."
살벌한 분위기의 용사가 델렌의 멱살을 확 잡아채고 말한다. 델렌이 대답하려하자 비어 있는 오른손을 뻗어 양 볼을 엄지와 검지로 확 부여잡았다.
"입만 살았어?"
"죄, 죄송…."
델렌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용사가 그녀의 목에 걸린 것을 보고는 뺨을 잡던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녀의 목 아래쪽에 걸린 것은 스파이크가 달린 검은색 가죽 재질의 개목걸이였다. 저번에 지나가 라이브 방송을 할 때 했던 그것과 비슷하지만, 이쪽이 좀 더 본격적이었다. 지나가 했던 그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초커의, 즉 액세서리의 범주 안에 들 수 있지만, 델렌이 한 것은 누가 봐도 개목걸이 그 자체였다.
"이건 뭐야? 암캐년이라 목줄을 채운 건가?"
"네, 네헤. 맞아요…. 저는 답도 없는 암캐년이라 목줄을 꼭 차야 한다고…."
용사는 '그 놈'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검은색 가죽띠는 딱 봐도 튼튼한 재질이어서 실제로 사용하는 개목걸이가 분명했다. 빙 둘러진 스파이크는 한 줄로 박혀있었지만, 그만큼 크기가 커서 눈에 잘 띈다. 버스나 기차 등등 여러 대중교통을 통해서 왔을텐데,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시선을 받았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어디서든 꼭 차고 다녀라. 온천에서도 절대 벗지 마. 알았냐?"
"네, 네! 반드시요."
뺨을 맞은 순간부터 살짝 풀린 눈동자가 색기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분명 아래도 젖었을 것이다.
"검사한다."
꽈악!
"흐윽, 네에…."
용사가 경고하며 옷 위로 가슴을 터질듯이 세게 부여잡아 델렌이 고통에 눈썹을 찡그리면서도 성실하게 대답했다. 눈썹은 찡그리는데 입은 살짝 미소짓고 있으니 참 답도 없는 마조년이다. 그래도 암캐로서 잘 지내는 것 같아 마음이 편했다. 남이야 어떻게 보든 자기만 만족하고 살면 그게 최고다.
"자, 슬슬 가요?"
지나의 재촉에, 재회의 순간을 잠시 누린 용사와 델렌은 서로에게 싱긋 미소지은 후 떨어졌다. 출발할 분위기가 되자 다들 들뜬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모두가 자신의 캐리어를 들었다. 모처럼의 여행이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