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3. 사랑의 증표 (7)
끼익.
용사 일행이 머물던 숙소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숙소 내부는 전체적으로 어두웠고, 침실의 천장에서 은은한 빛을 흘리는 취침등이 조명의 전부였다. 하지만 객실의 구조가 단순하고 보름달이 밝게 뜬 덕분에 남자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침실까지 갈 수 있었다.
"…."
유토, 오니상, 오지상, 파파. 네 명의 남자가 침을 꿀꺽 삼키며 섰다. 침실 내부엔 네 개의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고, 이불은 낮은 언덕처럼 봉긋하게 솟아있었다. 어스름한 취침등 아래로 그 언덕이 미세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보였다. 네 개의 이불에 모두 사람이 들어있음이 분명했다. 방 안을 그윽하게 맴도는 여자의 향기가 그 증거였다.
"후우…."
남자의 깊은 한숨. 속에서부터 깊게 타오르는 흥분이 끓어넘치는 듯한 숨소리였다. 남자들은 모두 아까 밖에서 봤던 여자들을 떠올렸다. 숙소에서 대여하는 유카타를 예쁘게 차려입고 사진을 찍던 모습을 되짚어보면, 다섯 여자 모두 하나하나가 억만금을 줘도 못 살 만큼 아름다웠고 각자의 매력 또한 확실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용사의 품에 안겼던 미라도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닿을 수 없는 환상처럼 느껴졌던, TV를 통해 화면 너머로만 볼 것 같은 여자들이 눈앞에 놓여있다는 생각을 하니 머리가 뜨거워질 정도였다.
"그럼 선택을 해야겠군요."
새까만 피부의 파파가 말했다. 표정은 잘 안보였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더 이상 참기 힘든 것이티가 났다.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였기에, 합의를 통해 각자 이불을 하나씩 고르기로 했다. 의외라면 의외로, 가장 먼저 선택권을 가진 건 유토였다. 여자들이 유토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된 계기였으므로 우선권을 받은 것이다. 갑에게 양보받은 을이었지만, 유토는 크게 망설이지 않고 가장 왼쪽을 골랐다.
"어차피 안에 어떤 아가씨가 계신지도 모르잖습니까."
주저하지 않고 고른 유토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듯이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이불 속에 누운 여자들은 사전에 합의한듯 조명도 어둡게 하고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써서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허허, 그것도 맞는 말이군."
다음 차례인 오지상이 말하면서 유토의 옆, 즉 왼쪽에서 두 번째 자리로 향했다. 오니상과 파파도 수긍하고는 각각 세 번째, 네 번째 자리로 향했다.
"흠? 허허, 뭐 다들 눈치를 보고 그러십니까. 이제 각자 즐깁시다."
마치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남자들이 이불 앞에서 멈추자 파파가 말하며 꼭 덮힌 이불에 손을 가져갔다. 마치 그것을 신호로 하듯, 남자들이 각자의 여자에게 손을 뻗었다.
….
스륵.
"흠…."
유토가 이불을 걷자, 취침등의 미약한 불빛마저 한껏 머금었다가 반짝반짝 반사하는 황금색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유토의 상대는 델렌이었다. 이불이 걷혔으나 델렌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던 유토가 팔을 잡고 살살 흔들었다.
"저, 실례합니다."
"…."
"저, 에에… D양?"
델렌의 임시 가명을 떠올린 유토가 이름을 불러가며 조금 더 세게 팔을 흔들었다. 그제서야 감겼던 눈이 뜨이며 그 안에 숨어있던 갈색 눈동자가 유토를 향했다.
"아, 아아? 헤에. 깜빡 졸았네요."
"하하, 그럴 수 있죠. 여기 이불이 많이 아늑해서 잠이 솔솔 오거든요."
유토가 민망하지 않도록 말하며 어둡게나마 보이는 델렌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뿌리까지 황금색인 멋진 금발이었다. 그 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길쭉한 키였다. 키가 173인 유토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게, 여자 중에선 상위권에 속하는 큰 키였다.
처음엔 금발 머리에 키가 크고 피부도 하얗고 콧대도 높아서 외국인이라는 생각을 했으나, 원어민 수준의 일본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보아 혼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본능을 따라 몸을 위아래로 훑으니, 자연스럽게 커다란 가슴에도 시선이 갔다.
"만져도 돼요, 유타 군."
"유토입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유토가 피식 웃으며 옷 위로도 당당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커다란 가슴을 만졌다. 유카타 위로 만지는데도 엄청나게 부드럽고 흡입력이 있었다. 살덩어리가 손을 잡아당기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대단한 가슴이네요."
"헤, 칭찬 고마워요."
쪽. 츕, 춥.
유토가 가슴을 만지며 자연스럽게 키스하기 시작했다.제법 능숙한 솜씨였다. 그는 학창시절의 연애 경험도 여럿 있었고, 접대를 하면서 자기도 여자를 옆에 끼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원나잇 관계가 익숙했다.
델렌의 입 안은 예상대로 말캉말캉 하면서도 생각보다 더 뜨거웠다. 가슴도 난로를 지핀 것처럼 점차 뜨거워져서 손바닥에 땀이 맺힐 지경이었다. 그냥 체질이 뜨거운 건지, 아니면 가벼운 자극에도 뜨거워지는 화끈한 여자인지. 아무튼 즐기기로 마음먹은 유토는 내심 후자 쪽을 생각하며 혀와 타액을 마음껏 섞고는 입술을 떼고 아래로 내려갔다. 턱을 핥고 목덜미로 내려가자 아래쪽에 무언가가 걸렸다.
"음? 이건?"
"헤헤."
델렌은 그저 웃었다. 귀여운 웃음소리네. 유토가 생각했다. 그녀의 무방비한 표정과 해맑은 미소는 제법 백치미가 있었다. 속으로 흐뭇하게 웃은 그가 혀에 걸렸던 물건을 희미한 불빛으로 살펴보니, 그것은 가죽 재질의 목걸이였다.
"호오…."
액새서리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단순한 초커가 아니라… '개목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물건이었다. 빛을 빨아들이는 새카만 색의 가죽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금색 스파이크가 한 줄로 박혀있었다. 말은 스파이크지만 끝이 뭉툭해서 닿는다고 다치는 종류는 아니었다. 그래도 액세서리 치고는 제법 하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나 과감한 액세서리군요. 이런 걸 하고 다니시는걸 보니…. 외국 생활을 오래 하셨나요?"
유토가 물었다. 개목걸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 액세서리는 일본에선 너무 튀기 때문에 여자들이 꺼리는 디자인이었다. 이걸 태연하게 쓰고 있는걸 보니 미국처럼 자유분방한 나라에서 오래 살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아뇨. 이건 제가 한게아니라…."
델렌이 부드럽게 유토의 목을 끌어당기며 귓가에 속삭였다.
"제 '주인님'이 해주신 목걸이에요."
"주, 주인님?"
유토가 그 말에 바보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D양, 혹시… 그 주인님이란게… 제가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뜻인가요?"
델렌은 또다시 헤헤, 하고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제 몸의 주인님이시죠."
"…."
잠시 침묵이 있었다. 델렌은 유토가 상황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듯하자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허락 받았으니까."
"허락… 이요?"
"네. 허락이요. 그러니…."
이번엔 말없이 씨익 미소를 짓는다.
"저를 엉망진창으로 범해주세요."
….
델렌의 백치미 가득한 멍한 갈색 눈동자가, 언제나 그래왔듯이, 자기 위에 올라탄 남자, 유토의 이성을 빨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