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1화 〉#4-1. 아리스, 한 아리 (2) (41/162)



〈 41화 〉#4-1. 아리스, 한 아리 (2)

-과거-

철그럭, 철그럭.

"후욱, 후욱…."

철퍽, 철퍽, 철퍽….


어두운 암실을 채우는 것은 흔들리는 쇠사슬 소리와 철퍽거리는 물기 어린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전부였다. 글자조차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조명임에도 불구하고 빛을 반사하는 새하얀 피부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체액과 땀으로 번들거렸다. 두 남녀는 이제까지 진득하게 붙어 있었는지, 머지 않아 끈적한 정액이 하얀  위로 뿌려졌다. 피부에 들러붙은 정액은 농도가 제법 묽은 것이, 이미 수차례 사정한 것이 분명했다. 누워 있는 여자의 배꼽으로 정액이 스멀스멀 흘러가 자그마한 정액 웅덩이를 만들었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색정적인 장면에  쌍의 눈동자가 잠시 머무른다.

"후우, 청소해."

구릿빛 피부를 가진  같은 덩치의 남성이 거듭된 파정으로 인해 수그러든 페니스를 여자의 입에 들이밀었다. 여자는 지친건지 무덤덤한건지 모를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혀와 입을 사용해 귀두와 육봉을 청소하고, 마무리로 요도의 정액까지 쪼옥 빨아들여 능숙하게 뒷처리를 했다. 여자가 청소하는 동안 남자는 편한 자세로 늘어진 채 손을 뻗어 자기가 수천번을 쑤셔댄 구멍을 손가락으로 쑤셨다. 애무라기보단 심심풀이, 여자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장난질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여자는 호흡조차 흐트러지지 않는 완벽한 무반응을 보였다.

"재미없는 년."

쯧, 하고 혀를   찬 남자가 새하얀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이제 됐다는 뜻이다. 기계적인 봉사에서 해방된 여자는 여전히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휴식을 취했다.


….

"어이."

잠시 뒤, 남자가 심심했는지 여자를 불렀다. 처음 몇 번은 무시당했으나 계속해서 부르자 흑요석처럼 은은한 퇴폐미를 머금은 검은 눈동자 한 쌍이 남자에게 향했다. 계속 무시해봐야 계속 귀찮게 굴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이 반응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너, 이름이 뭐랬지?"

"…."

말해줘도 까먹냐, 병신아. 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에 남자가 어깨를 으쓱인다. 남자가 한 번 더 묻자, 정액이 말라붙어 희끄무레한 얼룩이 남아있는 분홍빛 입술이 움직였다.


"아리스."

"성은?"

"…."

"없어? 평민이라도 성은 있잖아."

"…."

"진짜 없냐? 어이. 야, 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리스 연. 연(蓮) 가문 가주의 여섯 번째 자식이자 셋째 딸, 정실의 막내.

그녀는 여러모로 유명인사였다. 가주가 가장 아끼는 자식으로 소문이 자자했고, 이제 막 초경을 한 어린 나이임에도 미색이 범상치 않아 수많은 귀족 자제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가(武家) 중에서도 으뜸인 연 가문의 가전 검술인 외날검(=도,刀)법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것 역시 만인에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아리스는 그 천재적인 재능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 열정 역시 가지고 있었다. 선녀처럼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로 험난한 검사의 길을 걷는 것에 주변 사람들이 난색을 표했으나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


그리고, 정식으로 도법을 배운지 5년만에 가주에게 검투를 신청하여, 승리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켰다. 연 가문 가주의 자리는 혈통만으로 오를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연 가문은 혈통보다는 실력이 우선이어서, 적자 중에 마땅한 이가 없으면 서자를 가주로 추대한다. 서자조차 무능하다면 재능 있는 외부인을 양자로 맞이한다. 그 말인 즉 가주는  가문 내에서 가장 뛰어난 검사라는 뜻이다. 그런 가주를  자라지도 않은 어린 소녀가, 고작 5년을 배우고선 꺾어버렸다. 손속을 봐줄 수 있는 대련이 아니라 진검을사용하는 검투였기에, 인명 사고 없이 가주를 제압한 아리스의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물론 반발이 있었다. 가주를 제외하면 가장 뛰어난 검사였던 장남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자기 몸처럼 아끼는 딸과의 결투였기에, 무의식적인 양보가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그의 주장은 연 가문 가주에 대한 모욕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았으나, 모두가 내심 아리스의 압승이라는 이변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인지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가주는 수치심으로 벌개진 얼굴로 장남과 아리스의 검투를 허가했다.

검투는 애들 장난이 아니다. 진검을 쓰기 때문에, 둘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결투는 아닐 지언정 '사고'로 손가락이나 팔이 잘리는 일도 은근히 있었고 아주 드물지만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가주가 자기 몸처럼 아끼는 두 자식 사이의 검투를 수락한 것에는 나름의 합당한 근거가 있었다.

….

검투 시작.

하나, 둘, 셋.


차앙!

….


장남이 허망한 표정으로 자신의 부러진외날검 반쪽을 보았다. 믿을  없다는 눈빛이었으나, 주변을 감도는 적막과 가주의 차가운 시선이 현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단 두 합. 한 차례 맞부딪친 후, 사선으로 올려베는 아리스의 깔끔한 검격을 장남은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마치 번개가 스쳐간  같았다.  박자 늦게 몰려오는 검의 풍압과 저릿한 팔의 감각이 아찔했다. 결투였다면 부러져서 바닥에 깊게 박힌 칼날 반쪽이 자기 머리가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한 박자 쉬고, 가주에게서 시작된 박수 갈채.

그것은 더 이상 재능 넘치는 소녀에게 보내는 감탄이나 응원 따위가 아니었다. 가주와 정식 후계자였던 장남을 압도한 소녀, 아니 새로운 가주에 대한 경의였다. 하지만  주인공은 화답하는 대신 무릎 꿇은 채 굳어있던 장남에게 손을 건넸다.

으드득.

장남이 이를 갈았다. 그녀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 행동은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패배자의 조용하고 처량한 퇴장조차 불허하고, 스포트라이트로 끌어당겨 추한 모습을 선명히 비추는 잔인한 모욕이었다. 그는 자기 여동생이 고의로 그러지 않은 것이라 확신했다. 보라, 저 눈을. 패배의 굴욕을 겪어본 적 없는, 승리밖에 모르는 순진무구한 얼굴을. 빠드득. 악다문 치아가 부서질 듯한 소리를 낸다.

장남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에겐 이제 뭐가 남았지?

다른 부모들이 으레 그렇듯 가주 역시 첫 자식에 대한, 장남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다. 그래서 혹독하기로 소문한 연 가문의 후계자 교육을 더더욱 혹독하게 시켰고, 어린 나이에 웃음기 한  머금을 여유도 없이 배우고  배우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낮에는 물집 잡힌 손으로 죽어라 검을 수련하고, 밤에는 글자로 빽빽한 책을 탐독하여 문무를 겸비한 연 가문의 장남으로, 어엿한 후계자로 거듭났다. 가족이자 경쟁자인 동생들은 재능과 열정이 한참 부족했기에 그 기대는 더더욱 장남에게 집중됐고, 잠도 부족할 정도로힘든 성장기를 보냈으나 자신을 향한 가주의 흐뭇한 시선이 모든 노고를 보상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그걸 한순간에 전부 잃었다. 연 가문은 능력만 된다면 서자는 물론이고 핏줄이 닿지 않는 외부인까지 끌어들였기에 여자도 역시 가주가 될 수 있다. 하필이면 그 사람이, 유일하게 질투했던 막내 동생이라니. 너는 내가 평생 동안 얻지 못했던 아버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독차지한 것으로도 모자라, 내게 남은 유일한 것까지 빼앗가 가는구나.

장남의 눈이 증오로 물들었고, 눈동자가 순식간에 탁해지면서 어둡고 섬뜩한 기운을 머금었다.





연 가문 가주조차 압살한 천재 검객은, 허무할만큼 쉽게 쓰러졌다.


아리스는 가주조차 압살하는 희대의 실력자였으나, 그와 동시에 바깥 세상에 처음 나와보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녀였다. 뛰어난 실력자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비겁한 술수에 당해 악당의 손에 떨어진다.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진부한 전개는 현실이 되어, 한순간에 한 소녀의 인생을 시궁창으로 떨어트렸다. 그녀가 의도치 않게 자기 오빠에게 그랬던 것처럼.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고, 대륙 최고의 검객으로 이름을 떨칠 수도 있었던 아리스는 한 명의 노예로 추락했다. 물론 그 배후에는 장남이 있었다. 장남이 원흉이긴 하지만, 자신을 향한 수많은 악의에 무방비했던 아리스의 불찰 역시 커다란 요인임은 분명했다. 만약 아리스가 연 가문의 가주였다면, 그녀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문 전체가 몰락할 수도 있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냉혹한 현실 속에서 아리스는 자신이 힘만  어린 아이임을 깨달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힘줄이 잘린 후 붕대가 감긴 자신의 손목과 발목을 허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검을 들기는 커녕 제대로 된 운동조차 못하는 자신의 몸상태를 자각한 아리스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타락하여 음지의 세력과 결탁한 장남은 복수를 잊지 않았다. 아리스를 찾아와 조소를 날린 그는 하수인들을 시켜 아리스를 구타했다. 온몸에 시퍼렇게 멍을 두른 아리스를 보고 유쾌하다는 듯이 마구 웃은 장남은 조롱하는 의미로 그녀가 다루던 검을 던져줬다. 나를 죽이던가, 스스로 죽던가 해보라면서. 아리스에겐 어느 것도 불가능했고,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후들거리는 자신의 검을 보며 그녀는 배신감과 더불어 끝없는 무력감을 느껴야만 했다.

장남은 지극한 쾌감을, 속 시원한 감정을 느꼈지만 아직도 모자라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생을 알기엔 아직 어린 동생에게 검밖에 모르고 살아왔으니 여자에 대해서 배우라는 말을 건네며 떠났고, 아리스는 수많은 남자들에게 둘러싸이면서, 떠나가는 큰오빠의 뒷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몇 주 동안 모르는 남자들에게 성노예로서 범해지며 원치 않는 성감이 개발되고, '여자'로서 거듭난 아리스는 결국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고통은 점차 희미해져 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자각하니 더없이 고통스러웠다. 생전 느껴본적 없는 남자의 두툼한 손이 허벅지 안쪽을 잡아도, 다리를 활짝 벌려도, 입을 맞춰와도, 가슴을 만지고 빨아대도, 엉덩이 안쪽을 벌려 항문까지 희롱해도, 모든 것이 무덤덤해졌다. 마치 숨을 쉬거나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자각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를 범하던 남자들이 재미없어졌다며 투덜거렸다.


오랜만에 장남이 찾아왔다. 망가진 인형처럼  늘어져, 자신에게 시선조차 돌리지 않는 그녀를 보며 장남은 복수의 끝을 선언했고, 그녀는 값비싼 노예로서 서쪽 대륙으로 팔려갔다. 쾌속선을 타도   가까이 걸리는 머나먼 대륙으로 팔려가는 것이었기에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영원한 이별을 고한 장남은 마지막까지 조롱하기 위해 아직 팔지 않고 보관하고 있던 검을, 정액으로 허옇게 물든 아리스의 젖가슴에 안겨주었다. 의외로 아리스는 그걸 순순히 받아들고선 꼬옥 안은  놓지 않았고, 깨끗했던 검집도 머지않아 그녀의 몸처럼 희뿌연 액체로 더럽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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