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4-2. 개입 (19)
"…흐윽, 아아…."
똑바로 눕혀진 그녀는 멍한 눈동자를 돌려 창가를 보았다. 어둑했던 세상에 다시 빛이 찾아왔고, 서서히 밝아지며 세상에 아침을 알리고 있었다.
오르가즘 지옥.
이번에 아리가 깨달은 사실은, 쾌감이 그 어떤 고문보다 강력하다는 것이었다.
현역 시절 최고의 검객이었던 그녀는 최전선에서 싸워왔기에 빠른 공격과 회피에 통달했으며, 고통에도 내성이 강한 편이었다. 그래서어지간한 고통은 그녀에게 타격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쾌감에는 내성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 느끼면 더 느꼈지. 여자의 오르가즘이 남자에 비해 강하다지만, 구멍에 대충 박아도 쉽게 절정에 오르는 남자와는 달리 여자의 쾌감은 조건이 좀 더 까다로웠다. 성감대도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었고, 분위기나 전희 등 예열도 필요했다. 하지만 마나 유저의 예민하게 단련된 감각은 쾌감 역시 예민하게 느꼈고, 거기에 쾌락을 증폭시키는 [씨받이] 스킬까지 더해지면서 아리를 포함한 용사의 여자들은 남자보다 더 심할 정도로 음란한 몸이 됐다.
그 결과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복상사를 할 정도의 오르가즘 지옥. 지구에 온 이후, 처음으로 섹스가 싫다고 생각하며 목구멍이 자지로 틀어막힌 채로 절규했었다. 제발, 제발 그만! 진짜 죽을 것 같아! 제발 부탁이에요!
…그것도, 몇 시간 전의 얘기였다.
"흐억, 쿡, 콜록!"
숨을 몰아쉬다 기침을 하자, 목구멍에 걸려 있던 정액이 역류하여 입으로 올라왔다. 누구 건진 몰라도, 적어도 세 번 이상은 차례가 돌아갔는데도 이렇게나 찐득한 정액이라니….
'미친 놈들….'
다들 정력제를 한 사발 들이킨 건지, 체력과 정력과 정액 모두 장난이 아니었다. 설령 진짜 약을 먹었다 해도, 이 정도면 그냥 대단한 것이었다.
아무튼, 아리는 기침한 탓에 입 안이 역류한 정액으로 가득했다. 누운 자세여서 다시 목구멍으로 넘어가려 했으나, 그걸 퉤 뱉어낼 여력도 없었다. 차마 그렇게 있을 순 없었던 아리는 어쩔 수 없이 마나를 조금 순환시키며 몸에 힘을 부여했다.
'힘이… 잘 안 들어가.'
아무리 극소량의 마나만 사용했다지만, 몸이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진짜 몸만 딱 움직일 정도로만 힘이 들어갔다. 단순히 체력이 빠진게 아니라 섹스 하면서 온몸의 진이 다 빠진 것이었고, 뇌까지 쾌락으로 절여졌는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느낌이었다.
마왕과의최후의 전투 이후, 이런 몸 상태는 처음이었다.
'마왕이라….'
….
'정인….'
의식의 흐름 도중, 뜬금없이 용사가 떠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왕과의 전투는 지금 생각해보면 눈물이 줄줄 흘러나올 정도로 아찔한 기억이었다. 수많은 생명들이 불꽃처럼 화르륵 타오르고 사라지던 치열한 전투. 그것은 곧 생명의 위기의 연속이었고, 여자들은 물론이고 가장 실력이 뛰어났던 용사 역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로웠다.
가장 사랑하는…. 다소 차가운 말이지만, 다른 네 명의 여자들보다 훨씬 소중한 용사가 몇 번이고 죽을 뻔했던 그 기억은.
"그만, 그만…."
아리는 힘 없는 손으로 스스로를 타박하며 생각을 그만뒀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을, 심지어 해피 엔딩으로 끝난 일을 떠올리며 질질 짜는건 싫었다. 무엇보다도, 용사가 옆에 없는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하면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정인."
네토 플레이. 오늘 밤만 해도 연인이 아닌 수십 명의 다른 남자들에게 수백 번을 사정당했다. 경험한 남자의 수는 진작에 세 자리 수를 넘었다. 어지간한 걸레들도 이 정도는 아니겠지. 음탕한 걸레처럼 지내고 있지만, 그런 문란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마음 속의 연인은 오직 한 명 뿐이었다.
'누가 뭐래도. 저에겐, 당신 뿐이에요.'
어느새 누운 몸을 상체만 일으켜서 두 다리를옆으로 모아, 흔히 말하는 인어 공주 자세로 앉아 있던 아리는 한 남자를 생각하며 마음을 조금씩 진정하려 했다. 그러나 여전히 오르가즘 지옥의 후유증이 남아 있어 손이 덜덜 떨렸고 호흡도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으며, 가슴도 쉬지 않고 콩닥거렸다. 단순히 몸이 진정되지 않은 거라 생각했던 아리는, 시간이 지나고 충분히 휴식했음에도 가라앉지 않는 몸 상태를 자각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서, 설마…."
이제는 그럭저럭 움직일 만한 손을 뻗어서, 아리는 자기 다리 사이를, 보지 구멍을 얕게 긁어냈다.
찔꺽… 주르륵.
앞보지와 뒷보지 모두 정액으로 가득 차서 질퍽거렸지만, 그녀의 손에 묻어난 것은 분명 맑은 애액이었다. 새로 분비된 따뜻한….
'아직도….'
밤새 오르가즘 지옥을 겪었으니 한동안은 쾌감이 싫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음란했고, 마나로 힘을 보충하고 조금 휴식하자마자 다시 느낄 수 있는 몸이 됐다. 자기 몸을 과소평가한 아리는 어이가 없어서 정신 나간 것처럼 웃었다.
"하하, 하하하… 미친…."
그녀는 자기 몸을 내려다 보았다. 뽀얗던 피부는 정액이 허옇게 말라 붙은 자국으로, 그리고 말라 붙지 않고 끈적하게 붙어있는 정액으로 가득했다. 몸 곳곳에 검은 매직으로 낙서도 되어 있었다. 음란한 말과 그림, 그리고 정(正)자로 표시한 어떤 횟수들. 아마 사정한 숫자일 테고, 아니면 자신의 오르가즘 숫자일 수도 있겠다. 둘 중 뭐든 간에 엄청난 것이었다. 몸에 새겨진 정(正)자는 딱 봐도 수십 개는 넘어 보였다. 어쩌면 세 자릿수일지도 모른다. 엉덩이와 아랫배, 허벅지에 새겨진 횟수들은 단순했지만 다른 낙서들보다 훨씬 음란하게 느껴졌고, 걸레 중에서도 상걸레라고 비난 받아도 할 말이 없을 문란함이 가득했다.
만약.
만약에….
'이걸… 정인에게 보인다면….'
두근!
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아리의 머리가 상상을 하자 검은 눈동자가 순식간에 탁해졌다. 한때 올곧은 검사로서 날카롭게 반짝거리던 흑요석 같은 눈동자는, 현재 성욕과 망상으로 검게 타락한 상태였다.
두근두근….
네토라레? 용사든 여자든 처음엔 다들 저항했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를초월하며,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스킬'의 엄청난 위력으로. 거기에 더해진 마왕의 힘으로 인해, 다들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깊숙히 침몰했다. 타락했다.
그리고, 다른 남자들과 섹스하게 된 여자들.
그걸 즐기는 것은 용사 뿐만이 아니었다. 여자들 역시 즐겼다. 빠져들었다. 처음엔 단순히 남녀의 교접에서 비롯된 성적 쾌락만을 느꼈지만, 가면 갈수록 네토 플레이에 심취했다. 다른 남자에게 구멍을 대주는 더럽고 음란한 자신의 모습을 즐겼고, 그걸 용사가 목격하는 순간, 음습한 쾌감을 느끼고는 순식간에 가버렸다.
그것은 배덕감이었다. 상식과 도덕을, 인륜을 저버리는 강력한 일탈. 연인이 아닌 남자와 섹스하며 느끼는 더러운 배덕 행위! 금기를 범하는 것에 여자들은 중독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덕의 쾌감에 너무 깊게 심취했다는 것을 자각했으나, 이미 늦었다. 오히려 안 된다는걸 알면서도 하니까 더 큰 쾌감이 찾아왔다. 답이 없었다. 그들에게 빠져나갈 출구는 없었다. 그러나 진작에 타락한 여자들은 오히려 기뻐하며, 용사만이 사용해야 할 소중한 아기집에 외간 남자의 정액을 받은 채로 용사에게 안겨들며 검은 사랑을 속삭였다.
"하아, 하아…."
숨결이 거칠어진다. 아리는 저도 모르게 다리를 비비적거렸고, 순식간에 가랑이가 미끌미끌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얀 손가락이 아래로 내려가 꼭꼭 숨어있던 음핵을 재주 좋게 찾아내어 마구 비볐다. 보지가 울컥울컥 애액을 토하며, 안에 있던 정액과 함께 딸려 나왔다.
"흐읏, 흐응! 으으응…."
끼이익.
"으읏!"
문이 열리는 소리. 음침한 눈동자로 저도 모르게 자위하던 아리는 제정신이 들었는지 화들짝 놀랐다. 두 개의 튼실한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한 남자가 그녀 앞에 성큼성큼 다가왔다. 힘이 빠져서 멍하니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아리는 남자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했다. 애초에 봐도 모르는 남자일 테니까,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끝난 줄 알았는데….'
또 시작인 거야?
그런, 다소 지친 생각.
그러나 몸은 솔직하게 반응했고, 클리에서 손을 뗐음에도 불구하고 보지에서 애액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녀는 온갖 체액으로 더럽혀진 매트에 앉아 있었고, 힘이 빠져 구부정하게 앉은 그녀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남자의 허리께 까지였다. 좆을 빨아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옷을 입고 있는 남자의 바지를 내려주는 것도 귀찮았다. 스스로 내린다면 해줄 생각은 있었다. 이제와서 고작 펠라치오 따위에 저항감이 있을 리가 없었다.
'왜 가만히 있는 거지.'
턱.
스윽, 스윽.
"…으응?"
갑작스레 정수리에 꽂히는 손바닥. 뜬금없이 머리를 쓰다듬어진 아리는 뭔가 싶었으나 그냥 받아들일 뿐이었다. 하기야, 그녀의 몸에서 만질 만한 데가 그나마 머리 정도였다. 등으로내려가는 긴 머릿결을 포함해서, 모든 피부가 정액과 온갖 체액이 말라붙은 자국과 낙서로 온통 지저분했으므로. 아리가 조금만 더 상식적인 상태였다면 부끄러웠겠지만, 반쯤 자포자기한 지금은 모든 것에 덤덤했다.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앉아있던 아리는,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몇 분이나 이어지자 슬슬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안 건드려주니 쉬는 셈 치고 가만히 있기로 했는데, 도대체 뭐길래 이 남자는 머리만 쓰다듬는 걸까. 궁금증이 치밀어 오르자 가라앉았던 두뇌가 슬슬 돌아가기 시작했다. 생각을 하고 감각을 인식한다.
그의 몸과 옷에 배인 남자의 향기가 후각을 자극하여, 그녀는 슬슬 달아오르고 있었다. 후각적 쾌감을 느끼자, 눈앞에 있는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자지를 입 안에 머금어서 그 진한 수컷의 냄새를 콧 속 가득히 들이쉬고 싶다는 충동마저 들었다. 숨결이 조금씩 거칠어진다.
슥, 슥….
남자의 행동이 변하지 않자, 침묵 끝에 마침내 아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만지실 거죠?"
"음."
무덤덤한 반응. 그냥 바지를 내려버릴까 생각을 하던 그녀의 머리 위로 남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꽂혔다.
"그럼, 키스할까?"
"키스요? 죄송한데, 제 입 안엔 제 침보다 정액이 더 많을 텐데요. 다른 남자 정액이 취향이시라면 저야 상관은 없는데…… 어, 잠깐…. 잠깐만."
왠지 익숙한 목소리. 머리로 인식하지 못했으나, 몸이 먼저 반응했다. 목소리를 듣자 몸이 마치 피어나는 꽃처럼 활짝 펴졌다. 기쁨으로 활짝 피어난다. 그저 짤막한 말 한 마디였으나, 익숙한 목소리를 인식하자 온몸에 따듯한 쾌감 물질이 분비됐다. 성욕에 앞서, 순수한 정신적 기쁨을 느꼈다. 오직 목소리로만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남자. 아리에게 그런 남자는 하나 뿐이었다. 뒤늦게 신체 반응의 의미를 깨달은 아리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동공이 마치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서, 설마…."
앉아있던 아리가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탄탄하게 단련된 몸, 그리고 너무 멋져 보여서 같은 색으로 염색해볼까 생각했었던 빨간 머리. 아리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였다. 귀여운 아이처럼 눈과 입을 땡그랗게 만들어 마치 이모티콘(OoO)처럼 된 아리에게, 용사가 한 번 더 물었다.
"키스할까?"
아리의 몸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 차례 부르르 떨렸다.
….
방 안의 카메라 렌즈는, 지금도 여전히 반짝이며 아리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 아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정열적이고 매혹적으로 흔들리며, 마치 미친 것처럼 남자에게 사랑한다고 외쳐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