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4-2. 개입 (21)
그렇게 둘은 누가 봐도 명백한 연인처럼 서로를 탐했다.
'역시 생각대로야.'
어리고 새침한 여자애의 모습을 배우보다도 능숙하게 연기하면서 레이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쉽게 얻은 건 쉽게 탕진하기 마련이다. 복권 당첨자 중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 사람이 은근히 많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한아리와 남성민은, 딱 그 정도의 인연이었다. 너무나도 높은 곳에 있는 한아리를 생각보다 쉽게 얻은 성민의 결말은 당연히 결별이었다. 사건이 이리저리 꼬여서 과정이 굉장히 괴상해졌지만, 아무튼 결과는 같았다. 애초에 소년은 한아리를 평생 사귈 연인, 와이프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섹스 파트너 정도겠거니 하며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섹스는 며칠 내내 했지만, 정작 섹스에 빠져 마음의 교류가 별로 없었다. 그러니 몸이 멀어지니 관계 역시 멀어져 버렸다. 뭇 사람들이 몸에 앞서 마음을 얻는 이유였다.
레이아는 성민의 순정을 다소 무시하는 생각을 했으나, 그 생각이 궤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의리도 지키려고 했고, 뜬금없이 영상으로 자위하라는 불합리한 명령에도 순응했으나 아리의 변절을 보곤 단숨에 태도가 바뀌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은근히 냉정한 레이아는 그렇게 냉소적으로 성민의 마음을 치부하면서 계획을 진행시켰다. 가벼운 관계가 끊어지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치맛자락만 봐도 들뜨는 한창 때의 소년을 유혹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나이대에 비해 성숙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였다.
물론 정신 마법을 걸어서 반칙을 하긴 했지만, 마법은 그저 무의미한 시간을 단축시켰을뿐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제한 시간만 없었다면 자신 역시 정정당당하게 나갔을 테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한아리에게 넘어갔던 소년의 마음을 빼앗았을 것이다.
'이대로만 가면 되겠어.'
머릿속은 차가웠으나, 한편으론 진지했다. 한아리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계획'을 세웠고, 박민우를 역으로이용해남성민에게 비집고 들어가 그를 홀렸다. '계획'이 끝나면, 녀석과는 이제 끝이겠지. 기억을 지워버릴 거고, 앞으로 절대 인연을 맺을 일이 없을 것이다.
아쉽기도 했다. 좀 무시하긴 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단 의리도 좀 있고, 성격도 나름 괜찮고, 그와 동시에 욕망이 가득한 순수한 모습. 게다가 우람한 자지와 뛰어난 정력까지. 아직 어린 데도 불구하고 수컷으로서의 매력이 있었다. 더 성숙해지고 노련함까지 갖추면 꽤나 볼만할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볼 순 없겠지만.
'아깝네.'
그러니까, 그만큼 불태워야겠어.
생각할 시간은 끝났다. 이젠 행동만이 남았다.
"사랑해, 레이아. 진심이야."
"그럼, 마지막으로. 증명해."
"증명? 어떻게?"
레이아는 쐐기를 박기 위해 냉정하게 말했다.
"핸드폰, 줘 봐."
"응? 어. 여기."
"비밀번호 뭐야?"
성민은 핸드폰 잠금을 풀어주며, 레이아에게 비밀번호도 알려줬다. 레이아는 바로 네톡으로 들어가, 친구 목록에서 한아리를 터치했다. 여러 설정 목록이 나타났고, 그 중에서 그녀는 차단 항목을 눌렀다.
"말했지? 한아리의 대용품은 하기 싫다고. 진짜 나랑 사귈 거야? 그럼 한아리를 차단해. 번호도 다 지우고. 내가 불시에 검사할 거야. 이래도 좋아?"
레이아가 핸드폰을내밀며 말하자, 성민은 잠시 멈칫거렸다. 설마 이렇게까지 단호할 줄이야. 그러나 한아리에 대한 마음은 오열하며 흘린 눈물과 함께 씻겨져 내려갔다. 희석되고, 연해지고, 희미해졌다. 눈앞의 매력 넘치는 보라색 미소녀를 보고도 섹스를 참을 정도로 노력했지만, 막상 배신은 그녀가먼저 했다.
'누나, 미안해.'
그리고 사랑했어,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제는 진짜로 사랑한 건지, 아니면 그녀의 몸만 사랑한 건지도 헷갈렸다. 배신의 충격은 그만큼 강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레이아 만큼은 몸과 마음을 모두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멀리 있는 아리 누나가 아니라, 가까이 있는 레이아가 우선이다.
"왜? 싫어?"
"헤. 그럴 리가."
핸드폰을 받아든 성민은, 레이아가 보는 앞에서 한아리를 차단했다. 앞으로 그녀의 영상과 사진이 전송되어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거기에 더불어, 네톡 뿐만 아니라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까지 모두 삭제했다. 비밀번호도 알려줬으니, 레이아는 언제든 핸드폰을 열어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지금, 성민의 속에서 한 여자가 사라지고, 다른 여자가 마음 속에 가득찼다.
…
짹, 짹짹.
지저귀는 새소리. 눈가를 찌르는 아침 햇살. 밤새 숙면하며 가라앉았던 몸을 점점 떠올리는 시간. 몸이 점점 깨어나며 기운이 솟아나야 하지만….
"후으, 흐우…."
레이아는 완전히 뻗은 채로, 축 늘어져 있었다. 그녀의 옆에 있는 성민 역시 지친 기색으로 숨을 헐떡였다.
"지, 짐승… 아니, 괴물…."
"후우, 후우, 헤헤, 어때? 나, 좀 쓸만하지?"
"…미쳤어."
레이아가 질린 표정을 지으며 몸을 움직여 등을 돌리고 눕자, 성민이 뒤에 바싹 달라 붙어 옆으로 누운 그녀를 뒤에서 백허그로 끌어안았다. 자지가 엉덩이에 닿자 레이아가 움찔했고, 그 반응을 본 성민이 음흉하게 웃었다.
"내가 말했잖아."
"…뭘."
분명 어젯밤 사귀기로 했을 때만 해도 레이아의 우위였으나, 간밤 사이에 침대에서 다시 서열을 정립한 건지 둘의 분위기는 누가 봐도 성민에게 주도권이 있어 보였다. 여자를 굴복시키는 강력한 고기 막대기로 레이아를 밤새 혼내준 것이 분명했다.
"진짜 존나 사랑한다고. 보여준다고."
"넌 진짜…."
"뭐야, 아직도 내 사랑이 부족한 거야? 좋아. 아직더 할 수 있으니까…."
"저리 가! 알았어, 알았다고…."
레이아가 기겁하며 성민의 품 안에서 몸을 꼬물거렸다. 성민은 남자로서의 프라이드가 가득한 얼굴로 씨익 웃으며 당당하게 그녀의 가슴을 주물거렸다. 망설임 없는 손길. 잠자리에서 여자를 만족시키다 못해 다운시켰기에 성민은 자신감이 가득해 보였다. 반대로 밤새 시달린 레이아는 조금 위축된 듯한 태도를 보였다. 신체 능력이, 정력이 좋은 수컷 앞에서 암컷은 연약할 뿐이었다. 물론 기분은 하늘을 나는 것처럼 좋았다.
"…저기, 그만 만지고 자면 안 될까."
"음. 뽀뽀해주면."
성민이 고개를 들이밀었기에, 레이아는 고개만 돌려서 입을 맞췄다. 당연히 뽀뽀로 끝나지 않고, 꽤나 긴 키스가 이어졌다.
츕츕 혀가 질척거리는 소리. 성민의 손이 아래로 내려가자, 미끌미끌한 액을 분비하는 조개가 만져졌다.
"야, 남성민. 너, 혹시…."
설마 하고 눈을 크게 뜨는 레이아에게.
"흐흐, 미안. 꼴려서 못 참겠다. 한 번만. 진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하자."
성민은 허락도 듣지 않고 그대로 페니스를 꽂았다. 자지 박힌 레이아는, 꼼짝 못했다.
….
….
….
수 시간 전, 지난 밤.
척, 척, 척, 척….
규칙적인 살소리. 서로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위가 맞부딪치며, 애액과 함께 물기 가득한 살소리가 철퍽철퍽 났다. 마냥 헤벌쭉할 줄만 알았던 성민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왜 울어?"
다소 차분한 템포였기에, 호흡이 여유로운 레이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몸을 섞고 있는 레이아의 얼굴에는 새로 사귄 남자친구를 위하는 애정과 이타심만이 떠올라 있었다. 성민은 편한 마음으로 솔직하게 말했다.
"흐… 흐흐흐, 좋아서…. 존나게 좋아서…."
우는 건지 웃는 건지 헷갈리는 말투. 레이아는 성민에게 단 한 번도 내어주지 않았던 보지를 활짝 벌렸고, 성민은 레이아의 보지 속을 거닐며 황홀경에 빠졌다. 둘 다 섹스를 잘 했기에, 서로 능숙하게 높은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좋으면 웃어야지, 자기. 오해할 뻔했잖아."
"자기… 헤헤."
새로운 호칭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성민은 물기 가득한 눈으로 짙은 눈웃음을 지으면서 레이아의 얼굴에 마구 입술 도장을 찍었다.
"하, 시발, 이걸…."
"왜, 또. 말해 봐. 욕은 하지 말고."
"아, 미안. 그냥…. 이 좋은걸 왜 이제까지 안 했을까 싶어서."
"음, 아까까진 한아리가 남아있었으니까?"
레이아는 더 이상 한아리를 언급하는 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이 먼저 얘기하고 있었다. 성민이 완전히 레이아에게 빠져들어 한아리를 차단하고 번호도 지운 만큼, 이젠 연적이 아니었기에 신경쓸 필요조차 없어진 것이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아마…."
"아마?"
"지금 이 기분을 알았다면, 너랑 사귀고 섹스하는게 이렇게 좋을 줄 알았다면, 아리 누나고 뭐고 바로 달려들었을 거야."
"흐음."
레이아는 콧소리를 내며 살짝 미소를 띄웠다. 그녀의 기분이 좋아보이자 눈치를 보던 성민이 말을 꺼냈다.
"아, 근데 레이아."
"응?"
"너, 저번에 그거 먹었잖아."
"그거?"
성민은 레이아의 협박을 떠올렸다. 피임약을 가지고 협박하고, 이후에 직접 삼켜 보였다. 성민의 말에 레이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콘돔은 필요 없지 않아?"
"…."
'벌써….'
섹스하기 전에, 레이아는 가방에서 콘돔을 꺼내왔다. 러브젤도 있었으니 콘돔이 없을 리가 없었다. 성능이 좋은 건지 꽤나 얇아서 생으로 하는 것과 그렇게 큰 차이도 없었다. 그런데도 성민은 벌써부터 노콘을 요구하고 있었다. 사실은 콘돔으로 하다가 생삽입을 허락해주면서 점점 큰 쾌락을 느끼도록 유도하려고 했는데….
잠시 생각하던 레이아는 별로 중요한건 아니었기에, 성민의 요구를 들어줬다. 소년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즉시 콘돔을 벗겨내고 귀두로 음순을 문질렀다. 그리고, 쑤욱! 둘의 속살이 진정으로 맞닿았다.
쯔걱!
"우읏. 헤헤."
"으음, 흐응, 좋아?"
"응. 아, 맞다. 안에 싸도 되는 거지?"
"…그래."
그렇게, 둘의 섹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레이아는 알고 있었다. 성민의 섹스 능력은 상당히 뛰어나며, 정력 역시 엄청나서 아리스도 뻗어버릴 정도라는 것을.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깨닫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몇 시간 후, 레이아는 더 이상 느끼면 위험하다는 공포마저 느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