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4-2. 개입 (24)
철렁….
수면이 일렁였다. 레이아가 만들어낸 욕조라는 이름의 작은 호수는, 호수 만큼이나 커다란 두 거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츕, 쪼옥, 쫍….
"으으응…."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로 샤워한 둘은 물줄기를 맞으면서 이미 한 차례의 섹스를 했고, 지금은 깨끗해진 몸을 욕조에 담그며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중이었다.
'마약 같은 년.'
사실상 감탄사에 가까운 욕. 민성은 속으로 레이아를 그렇게 생각했다.
둘은 그동안 서로와의 섹스가 익숙할 만큼 충분히 많이 몸을 섞었다. 성민에 비하면 귀여운 횟수긴 해도, 레이아가 성민의 눈을 피해 짬짬이 떡을 친 것이 쌓여서 익숙해질 정도가 됐다.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민성은 레이아를 마약으로 분류했다.
시작은 레이아의 반 협박이긴 했다. 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섹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거절할 수 없었고, 거절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에 이르러선 레이아가 협박해줘서 고맙기까지 했다. 협박당해서 거절할 수 없으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니까. 의리와 육욕 사이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 말로나마 저항했었던 민성은 악마 같은 쾌감을 주는 레이아의 몸에 단번에 매혹됐다. 정력과 성욕이 가장 왕성하며 가장 유혹에 약한 나이였기에, 민성 역시 성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년이 지쳐있었던 것 역시 유혹에넘어간 큰 원인 중 하나였다. 이 일련의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죄책감, 자책감.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를 배신했다는 배덕감. 아무리 성민을 위해서라지만 한아리의 인생을 망쳤다는 끔찍한 죄의식. 이를 아주 악물고 참으면서 성민에게 최대한 티내지 않았지만, 성민의 집에 있었던 며칠 동안 민성은 지옥에 온 기분이었다. 성민은 답답하고 지루했겠지만, 민성은 마치 약불에 천천히 구워지는 쥐포처럼 온몸의 근육이 바싹 오그라드는 듯한 환상통마저 겪었다. 성민 만큼이나 민성의 정신 역시 많이 피폐해져 있었고, 레이아는 그걸 알아챈 뒤 민성에게도 검은 손을 뻗었다.
악마로부터의 구원. 민성의 심정을 표현하자면 이러했다. 마치 마약을 흡입한 것처럼, 레이아와의 섹스는 너무 기분 좋았으며 모든 고통을 잊게 해줬다. 민성이 레이아에게 느끼는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착잡했다. 그러나 고작 몇 번의 섹스만으로 떡정이 든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수단이 어찌 됐든 레이아는 민성을 지옥에서 구원해줬다.
그리고, 고작 며칠 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제는 민성이 레이아를 강렬하게 갈구하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겉으로는 조금이라도 튕기려 드는 귀여운 모습이 오히려 레이아의 흥미를 이끌었다. 레이아는 예쁜 말이라곤 한 마디도 안 하는 민성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좋아하면서도 아닌척 툴툴대고 괴롭히려는 초등학생 같았다.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할짝, 스윽, 츄우웁.
욕조에 등을 대고 앉은 민성은 자기 품 안에 안겨있는 레이아를 끌어안으며 뒤에서 그녀의 목덜미를 핥고 빨아댔다. 모든 피부가 너무 달콤했고, 배와 맞닿은 그녀의 등도 너무 부드러워서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녀의 몸 모든 부분이 다 위험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이미 민성은 레이아의 포로였다. 꿀벌이 꽃을 탐하는 것처럼, 소년은 본능적으로 레이아를 탐했다.
이미 진작에 부활한 민성의 페니스는 우뚝 서서 레이아의 뒷부분, 엉덩이나 꼬리뼈나 등 부분을 쿡쿡 찔러댔다. 방금 전에 사정했음에도 지치지 않고동굴 탐험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찰랑, 물소리와 함께 물 속에서 젖은 손이 튀어나와 레이아의 여러 부위를 더듬고 주물렀다. 며칠 내내 쑤셔져서 빨갛게 오른 채로 살짝 벌어져 있는 보지를 이리저리 자극하던 민성의 손은 수면 위로 올라가 가슴과 유두를 애무하고 입술을 매만졌다. 마치 자기 애액을 먹는 듯한 기분이라 레이아가 으응거리며 앙탈을 부렸지만 결국 축축한 손가락이 입안을 탐험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하얗고 예쁘게 난 치아들을 스윽 훑고, 요리조리 피하려던 혀를 잡았다. 얌전히 있던 레이아가 민성의 검지를 펠라치오 하듯이 혀로 빙글빙글 돌리고 입술로 쪼옥쪼옥 빨았다. 수돗물로 축축했었던 민성의 손가락은 레이아의 타액으로 끈적하게 젖었다.
그렇게 연인의 장난처럼 수위는 높지만 거칠지 않은 손장난이 오간 뒤, 레이아가 말을 꺼냈다.
"내가 저번에 했던 말 기억나요?"
"뭐가?"
레이아의 목덜미를 탐하는데 맛들렸는지, 야들야들한 목덜미가 분홍빛으로 발갛게 올라올 정도로 계속 세게 빨던 민성이 늦게 대답했다. 레이아는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신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저번에, 목 졸렸을 때 했던 얘기요."
"…츄웁. 어, 생생하게 기억나지."
"그럼, 으으음, 마지막에 했던 말도 기억나죠?"
한부분만 지긋이 핥아지고 빨리자 레이아도 신경이 몰려 슬슬 쾌감을 느끼는지 몸을 움찔거리고 콧소리를 흘렸다. 민성은 달콤한 꿀을 탐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향긋한 레이아의 피부 내음을 느끼며 그녀의 말에도 신경을 썼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으나, 성실하게 떠올린다.
"음…. 이런 일을 좋아해서 하는 것 같냐고 했었나?"
"잘 기억하시네요."
둘은 저번에 그런 대화를 나눴다. 그때 레이아는 성민에게 목이 졸렸었고, 그녀는 자기 목에 난 멍자국을 가리키며 이런 일을 좋아하는 걸로 보이냐고 물었다. 그 말에 민성은 사과했다. 무슨 밑밥을 까는 건지 민성이 궁금해하던 찰나, 뜸을 들인 레이아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민성과 눈을 마주친 채로 입을 열었다.
"그럼 어때요?"
"뭐가?"
레이아가 민성의 손목을 잡아끌어 자기 보지 쪽으로 이끌었다. 손가락까지 세심하게 인도하여 손가락을 구멍에 얕게 삽입한다. 체온과 비슷한 뜨뜻미지근한 물 속에서도 끈적끈적 미끌미끌한 액체가 손가락을 통해 선명하게 느껴졌다. 목덜미나 몸의 곳곳을 애무당한 탓에 다시금 달아오른 것이다. 민성의 자지가 크게 한 번 꿈틀거렸다.
"어때요? 저, 이런 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요망하게 눈웃음 치는 레이아의 얼굴.
악마 같은 유혹에, 민성은 기쁜 마음으로 넘어갔다. 소년의 마음 속에 멍울졌던 여러 상처와 자책감은 레이아의 달콤한 몸과 말에 의해 빠른 속도로 치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