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0화 〉#4-2. 개입 (25) (90/162)



〈 90화 〉#4-2. 개입 (25)

끝이 다가온다.

별장에서 시달리는 아리스가, 옆에서 관망하는 용사가, 그리고 휴교 마지막 날임을 자각한 성민과 민성이, 녀석들의 친구들을 데리고 있는 박민우 까지도 전부 느꼈다. 서로 아는 바는 많이 달랐지만, 이제 이 난잡하고 더러운 시간이 끝나감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을 실현하는 자는 레이아였다.


….

'…이제, 시작.'

때가 왔다.


엉망진창이 되어 위태로웠던 남성민의 정신은 많이 회복되어 기억을 조작하는 정신계 마법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젠 기억을 지우거나 왜곡해도 부작용이 크게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레이아는 행동력이 좋은 여자였다.

"성민아."

레이아는 며칠 내내 그랬던 것처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보지에 싸질러진 정액이 자신의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있다가 문득 말을 꺼냈다.

살짝 지친 기색의 성민은 말없이 그녀에게 시선을 뒀다. 소년은 오늘 따라 다운된 분위기였다. 어지간한 운동보다도 더 힘든 격렬한 섹스를 며칠 내내 했으니 피로가 누적된 것도 있겠지만, 내일이면 다시 학교를 가야 하기 때문에 레이아와 하루 종일 붙어있을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진 것이다. 마치 엄마에게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살배기 어린애처럼, 잠깐 떨어져도 별  없겠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고 싶어하는 애정과 집착을 소년은 품고있었다.

"힘든 시간이었지?"

"……응."

한동안 대답이 없었던 성민은 짧게 긍정했다. 한아리에게 찝쩍댄 것부터시작해서 레이아와 맺어지기까지 겪었던 온갖 사건과 마음 고생이 소년의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마치 몇년처럼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아마 레이아와 맺어지지 않았더라면… 자살했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힘들고 우울했었다. 마음이 갑자기  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그러나 모처럼 진지한 얘기를 하는 것에 마음이 동했는지 성민은 레이아에게 시선을 집중하며 대답했다. 성민의 대답에 레이아가 말을 이었다.

"그럼, 이 모든걸 잊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거야?"

"무슨… 소리야?"

성민은 갑자기 보라색으로 요염하게 빛나는 레이아의 눈동자를 보며 흠칫했다. 저번에도 성민은 마나의 흐름을 미세하게나마 감지했었다. 레이아는 그런 성민을 보고는 판타지 세계에서 태어났으면 꽤 자질이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물어보는 거야. 궁금해서. 만약에, 이번 일들을 다 잊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할거냐고."

레이아의 물음에 성민은 잠시 진지한 얼굴로 생각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만 있다면, 그럴 것 같아."

"왜?"

레이아가 자비 없이 되묻자 성민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난…. 난, 이기적이니까."

아픔이 담긴 목소리. 많은 것이 함축된 말이었다. 그 뜻을 바로 이해한 레이아는 빙긋 웃었다.


"좋아. 최고의 대답이야."

"엉?"

뜬금없는 말에 성민이 바보 같은 소리를 냈으나, 레이아는 대답 없이 성민에게 다가갔다. 둘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레이아는 성민의 동공과 홍채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밀착한 후에야 말을 했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게 끝나 있을 거야.  모든 걸 잊을 테고, 평소의 남성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레, 레이아?"

"힘들었던 기억, 아직 남아있는 죄책감,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의 아픔. 모두 잊게 해줄게. 즐거웠던 추억도 없어지겠지만, 사람은 고통에 더 예민하니까…. 너에겐 남는 장사일 거야."

"레이아, 너 계속 무슨 말을 하는…."

쪽.


당황한 성민에게 레이아가 입을 맞췄다. 혀를 한 차례 섞는 가벼운 키스. 꿀을 바른 것처럼 달콤한 혀가 소년을 멍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애정이나 황홀함 등이 가득해야 할 소년의 눈동자는 동공이 풀린 채 멍할 뿐이었다. 의식을 잃은 사람의 모습과 같았다.

"불쌍한 아이."

레이아는 씁쓸한 표정으로 소년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내 손을 움직여 소년을 침대에 눕도록 인도한 후, 그의 위에 올라탄다. 며칠 내내 했던 것처럼 자지를 넣지는 않았다. 자세가 묘해서 섹스 생각이 떠오른 레이아는 피식, 가볍게 한 차례 웃으며 본격적으로 일을 진행시켰다.

….

….


….


잊고 싶니?

잊고 싶어.

레이아의 질문에 소년이 대답했다. 레이아는 소년이 답했던대로, 그의 기억을 지우고 수정했다. 왜곡했다.

소년의 머릿속에  이상 레이아는 존재하지 않게 됐다. 설령 나중에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모르는 사이이기 때문에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엄청 예쁘게 생겼으니 흘끔거리긴 하겠지. 어쩌면 찝쩍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둘이 다시 대화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한아리는 기억하긴 하되, 작은 파편으로만 남을 것이다. 예쁜 누나이긴 했지만  많은 박민우에게 홀라당 붙어먹은 여자 정도로.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게 만들었으니, 마찬가지로 나중에 설령 마주친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한아리는 박민우 사건의 핵심인물이었기에 완전히 지우는 대신 교묘하게 왜곡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렇게 남성민은-

한아리와 레이아를 잊었으니 민성이나 친구들의 배신 또한 잊게될 것이며.

박민우 역시 이름만 들어서 아는 정도의,  모르는 애로 인식할 것이다.

한아리와 박민우를 만나기 전의 남성민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박살났던 그의 일상은 다시 정상 궤도를 되찾는다.


"하아…."

수십분 후, 레이아가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 이마를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간단한 작업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계산, 인내가 들어갔는지.


물론 실제로 간단한 작업은 절대 아니었다. 정신계 마법은 마치 의사가 수술을 하는 것과 같다. 엄청난 사전 지식과 환자의 상태에 대한 이해도, 인내와 침착함, 변수 대처 능력, 능숙한 경험  레이아라는천재 흑마법사의 정수가 녹아있는 작업이었다. 절대 쉽게 볼 일이 아니었기에 긴장해야만 하지만, 실수하지 않기 위해 너무 긴장해서도 안 된다. 사람의 정신은 육체 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려워서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한 사람의 인생이 박살날 수 있다.

레이아가 감정 없는 냉혈인이었으면 모를까, 그녀는 차분하고 냉정할 뿐이지 성격은 착했다. 그리고 착한 만큼 성민에게 손을 쓰는게 부담스러웠다. 그녀가 느끼는 심적 부담은 꽤나심대했고, 혼자 짊어지기엔 막중한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결국은 모두 극복해냈다.


그러나,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외로운 싸움. 레이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으나, 딱히 알아주길 바란 적은 없었다. 어차피 모두 똑같다. 다른 동료들은 흑마법의 심오함과 부담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신 역시 매섭게 들이닥치는 적의 칼날에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델렌과 아리스의 기분을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또한 이렇게 평화로운 세상에서 태어났으나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판타지 세계에 뚝 떨어져버린 용사의 마음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 레이아는 감히 이해한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건 기만이고 오만이다.


…다만, 위로는 할 수 있겠지.


'마스터….'

간만에 만만찮은 일을 해낸 레이아는 용사가 아주 많이 보고싶어졌다. 냉정했던 얼굴에 분홍빛 기류가 살짝 돈다. 다른 여자들처럼, 그녀 역시 용사를 생각하며 뜬금없이 마음 속에 하트를 그리는 경향이 있었다.

'…잠깐. 아직 일 끝나지 않았어.'

잠시 느슨해진 정신을 가다듬은 레이아는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사건 자체는 아주 심플했다.


아리스가 예상치 못한 사고에 휘말렸고, 자력구제가 사실상 불가능해 보여서 용사와 자신이 개입했다.


처음엔 모두의 기억을 바로 조작하려 했으나, 마음의 상처를 입은 남성민의 정신이 너무 약해져서 큰 부작용을 겪을 가능성이 높았기에 직접 멘탈을 관리해줬다. 며칠 동안 애인 행세를 하며 몸과 마음을 달래줬다.

그리고 방금 전. 남성민의 정신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기에, 기억을 지우고 조작했다.


'이젠….'

끼이익.

"무슨 일로…."

한민성. 두 번째 목표.


레이아의 톡을 받고 방문을 열고 들어온 소년의 표정은, 멍청해 보일 정도로 순진했다.

"잠시 이리로…."

쥐죽은듯 잠들어있는 남성민을 뒤로 하고, 고개를 돌린 레이아가 손짓한다.

그녀의 눈이 다시금 보라색으로 빛났다.


홀린듯이 다가가는 민성의 발소리, 그리고.

"으윽! 아아…."

….


….


….

성민의 집. 한아리부터 시작해 여러 사람이 들락날락한 소년의 집에는 이제 남성민과 한민성,  소년만이 남게 됐다.


그나마 남아 있었던 레이아의 향기조차 얼마 가지 않아 전부 사라지고, 한아리와 레이아가 수십 번을 떡쳤던 소년의 집에는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별장 뿐이었다.




"왔다."

여러 사람의 땀과 체온으로 인해 후덥지근한 방 안.  안에는 수많은 남자들이 딱 한 여자, 한아리만을 범하며 열기와 습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용사는 박민우의 친구라는 가짜 지위를 이용하여광기마저 느껴지는 갱뱅에서 가장 먼저 아리를 따먹었다. 그 후, 구석에서 쉬는 척하며 연인의 예쁘고 소중한 구멍들이 이름도 잘 모르는 남자들의 남근을 격렬하게 오물거리는 모습을 라이브로 관음하고 있었다.

아리는 용사가 자신을 구해내주긴 커녕 같이 따먹고 네토라세를 즐기는 모습을 오히려 좋아했다. 연인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예전보다도 더 애액을 줄줄 흘렸고, 남자들이 격렬하게 박아줄 때마다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와 교성이 흘러나오는목을 통제하지 못했다. 신음이나 표정, 허리놀림  그녀의 호응이 눈에 띄게 좋아지자 남자들은 여자를 쾌락으로 굴복시킨 것으로 착각하고는 저들끼리 낄낄거렸다.


용사의 자의와 남자들의 타의로 인해, 용사와 아리스의섹스는 최초 1회가 끝이었다.  이후론 SNS로 유명세를  맛집마냥 줄이 끊이지 않아서 끼어들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녀는 보지는 물론이고 애널이나 목구멍, 손이나 가슴 등 온몸을 하루 종일 남자들의 성욕 풀이용으로 사용당해야 했다.

원래도 그랬지만, 그녀의 인기는 가면 갈수록 더더욱 높아졌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첫째는 외모였고 둘째는 그녀의 구멍이었다. 진흙으로 뒤덮어도 더럽혀지지 않고 오히려 더 반짝이는 진주 같은 외모는 섹스하면 할수록 남자들의 뇌리에 굳게 자리잡아 그녀의 얼굴이나 몸매를 계속 떠올리게 만들었고, 쓰면 쓸수록 오히려 더  조여주는 듯한 기분 좋은 구멍은 생각만 해도 죽었던 좆이 다시 벌떡 설 정도로 엄청난 쾌감을 선사했다.

아리를 따먹은  자기 차례까지 한참 남은 남자들은 그동안다른 여자들을 안았는데, 확연히 비교되는 차이에 오히려 아리가 더 생각날 뿐이었다. 그나마 좀 예뻐서 외모로 압도당할 정도는 아니고 섹스도 괜찮게 하는 애가 유란이었는데, 그녀는 지금 박민우가 독점하고 있었다. 그 결과, 순번이 돌면 돌수록 아리를 따먹으려는 남자는 늘어만 갔다. 심지어 다른 여자들과 노는데 쓰는 에너지도 아까워하며 줄을 서는 동안 기운을 충전하는데 전념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박민우 역시 유란과 놀면서도 한아리가 생각났는지  번 찾아왔다가, 점점 과열되어가는 별장의 꼴을 보곤 살짝 굳은 표정으로 돌아갔었다.

그렇게 정점을 찍었던 광기의 축제에, 아리스가 마침표를 찍었다.


"음? 뭐라고?"

갑작스러운 한아리의 독백에 남자들이 반응했다. 이제껏 들었던, 신음에 가까운 달뜬 목소리가 아닌 평소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남자들은 한여름의 서리와도 같은 때아닌 냉기에 놀랐다. 떠들석하던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한아리가 끝을 모르고 과열되가던 방 안에 차가운 냉각수를 뿌렸다. 아리스보다  박자 빠르게 마법의 기운을 눈치챈 용사는 어느새 일어서서 방 밖으로 나갔다. 따로 뭘 할 생각은 없었고, 그저 연인이 입을 옷을 찾아 나간 것이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 둘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진지해진 그들은 사랑의 온기 대신, 현역 시절을 연상케 하는 냉정한 눈빛만을 교류했다. 혹시나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지 확인하는 그들만의 절차였다. 서로 같은 생각을 하는걸 확인한 후, 마치 남남처럼 시선을 거둔다.

끼익, 쿵.


용사가 나간 후, 방문이 굳게 닫혔다. 남자들이 문소리에 반응했으나, 수십 쌍의 눈동자는 이내 방 안의 주인공인 한아리에게로 돌아왔다.


"방금, 뭐라고…."

"휴지 좀."

차갑기까지 한 그녀의 목소리. 남자들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화가 난 것 같다고 소근소근 의견을 교류했다. 정작 아리스는  감정은 없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뿐이지만, 그녀의 높고 새된 신음에 익숙한 그들에겐 깜짝 놀랄 정도로 낯선 냉기였다.

사람을 압도하는 기백마저 느껴지는, 단단하게 다져진 그녀의 내면이 목소리에도 담겨 있었다. 놀란 남자들은 뭐라 말할 생각도 못하고 그녀의 요구대로 휴지를 건네줬다.


주르륵.


아리스가 휴지에 침을 흘려보냈다. 평소였다면 꿀물처럼 투명하고 달콤했을 그녀의 타액에는 희뿌연 것이 반쯤 섞여 있어서 삼키지 않고 뱉을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정액과 타액이 섞인 액체를 입 밖으로 내보낸 그녀는  안과 입가에 달라붙은 남자들의 음모 두어 가닥을 손가락으로 집어낸 후, 남자들에게 물을 건네받아 한 모금 머금고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저, 저기…."

한 남자가 순진하게 아리스에게 손을 건넸다. 그녀의 몸에 예사롭지 않은 기색이 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는 무지한 용기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퍼억!

"유감이야. 악감정은 없어. 근데 별로 미안하진 않네."

손을 건넨 남자를 시작으로, 그녀의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도미노처럼 퍼버벅 쓰러졌다. 십수명에 달하는 남자들 중, 그녀의 움직임을 제대로 감지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일반인과 초인의 차이는 그만큼 컸다.

남자들을 휩쓴  차례의 돌풍. 하지만 모든 동작을 끝내고 제자리로 돌아온 것은 혈색 하나 바뀌지 않은 평소의 차분한 아리스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그녀의 눈이 이질적으로 빛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평상시라면 흑요석처럼 예쁜 검은색이었을 그녀의 눈동자는 지금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안광마저 뿜는 듯한 밝고도 강렬한 황금빛의 기운이 눈에서 뿜어져 나온다. 일반인들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조이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겠지만, 지금 당장은 주변에 정신 멀쩡한 일반인들이 없었다. 기절한 남자들을 비켜가거나 사뿐히 즈려밟으면서 방 밖으로 나온 아리스는, 그대로 별장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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