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2화 〉#4-2. 개입 (27) (92/162)



〈 92화 〉#4-2. 개입 (27)

박민우가 있을 VIP 룸이 아리의 손에 의해 순순히 열렸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고, 아리의 손동작에 의해 손가락 한 뼘 정도로 약간 열렸다. 뭔가 석연찮은 기색이 있었지만 아리는 초감각을 활성화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 자연스레 여유가 생길 테고, 여유가 생긴다면 박민우는 경계를 할테니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악의 씨앗, 소악마 박민우의 거짓 없는 진심이다.


그게 현재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설령 조금 수모를 당한다 할지라도 감내할만한 가치가 있다. 일반인에게 손을 쓰느냐 마느냐가 달려 있으니까.

'무아지경' 스킬은 유지하되, '기'는 잠시 억눌러둔다. 눈에서 뿜어져 나오던 금빛 안광이 사라지고 평소의 검은 눈동자로 돌아왔다. 사람을 압도하는 기백 역시 순식간에 사라져, 그녀를 경계할만한 모든 요소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몸의 기운 역시 억지로 내리눌러서 평범한 여자 이상의 힘을 낼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중요한 순간엔,  그대로  깜빡할 사이에 힘을 활성화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후우…."

준비를 끝마치고 숨을 내쉰 그녀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설령 린치를 당한다거나 윤간당한다거나 해도…. 자랑은 아니지만, 그거엔 내성이 좀 있어서 딱히  걱정은 들지 않았다.


….

약한 조명으로 인해 어슴푸레한  안. 박민우는 그의 자리인, 소위 말하는 사장님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그 외의 사람이라곤, 항상 곁을 지키는 여비서 하나가 전부였다. 초감각도 거두었고, 검사의 예리한 감각도 억제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 별장에 일어난 일을 알아챘는지 아니면 모르는지, 범인이 아리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리가 범인인걸 안다면 그녀를 대비해 전투를 준비했는지.

마치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새카맣다.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아리는 침착하게 서있었다. 그러자 박민우가 먼저 말을 건넸다.

"여긴 무슨 일로? 쓸데없이 옷까지 다 차려입고선."

소악마의 시선이 아리를 위아래로 훑는다. 아리는 현재 용사가 갖다준 얇은 옷가지를 걸치고 있었다. 용케도 사이즈가 맞는 흰색 얇은 나시티와, 상의가 속이 비쳐서 은근히 잘 보이는 하늘색 브래지어, 검은색 돌핀 팬츠. 팬티 역시 입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달라붙어서 조금 야한 느낌을 주지만, 별장에서 여자들이 입었던 옷들을 생각해보면 이건 상당히 건전한 차림이었다.

아리는 옷걸이가 좋아서, 이렇게 가볍게 입은 모습도 은근히 꼴릿하다. 박민우의 눈에 음심이 살짝 돌았다. 다 벗은 것보단 아슬아슬하거나 은근한 섹스 어필이 더 다가오는 모양이다.


분위기가  끈적해지기 전에 아리가 입을 열었다.

"슬슬 그만하고 싶어서."

"뭐?"

"이제 그만 날 풀어줘."

별 개소리를 다 듣는다는 듯한 표정. 아리는 한쪽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으나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애들도 풀어줘.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풀어줘? 하! ……."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던 박민우가 갑자기 정색했다. 심상치 않은 기색. 아리는 여전히 겉과 속 모두 침착한 상태로 녀석의 말을 기다렸다.

"그 전에 하나만 묻자."

"…뭘?"

"너, 정체가 뭐냐?"

스륵.

박민우의 질문과 동시에, 옆에 있던 비서가 박민우의 앞으로 나오며 조용히 날붙이를 꺼내들었다. 잭나이프였다. 칼을 꺼내고 드는 자세나 분위기. 감각을 모두 억누른 아리였지만 눈으로만 봐도 칼 잡는 실력이 좋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항상 박민우의 곁에 있음에도 섹스는 커녕 간단한 놀이에도 어울리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여비서의 정체 쯤이야 처음부터 짐작하고 확신했기에 딱히 놀라진 않았다.


"CCTV를 어떻게 다 부숴먹고, 아래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재웠지? 수면제인가? 몸수색은 이미  했었는데 말이지. 어떻게 들여왔어?"

"…."

'알고는 있었지만, 전부알진 못하네.'

질문하는 꼴을 보아하니 딱 아리의 소행인 것만 아는 듯했다. 아리가 맨손으로 죄다 때려눕히는 모습을 봤으면 그녀를 이렇게 여유로운 태도로 무방비하게 방 안으로 들이지 않았을 테니까. 아리에겐 다행히도 녀석은 정보도 거의 없을 뿐더러 상당히 방심하고 있었다.

"하, 표정 봐. 칼을 보고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네. 좀 소름 돋는다, 너? 어이, 뭐 하냐?  들어와!"

"…."

벌컥, 하고 반쯤 열려 있던 문이 완전히 젖혀진다. 아리가 들어왔던 문을 통해 여러 남자들이 들어와 빠르게 그녀의 뒤를 둘러쌌다. 가까이 접근하진 않았고, 각자 무기를 꺼내든 채  발자국의 거리를 두고 반원형으로 포위한다. 그녀는 초감각도 없었기에 밖에 남자들이 대기하는 줄도 몰랐으나, 딱히 놀랄 이유는 없어서 처음엔 별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박민우의 말을 듣고 너무 덤덤했나 싶어서, 아리는 살짝 긴장한 연기를 했다. 어차피 평범한 여자 연기는 진작에 물 건너갔으니 심상치 않은 여자 정도로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요했던 아리의 눈에 파문이 일었다. 침착한  하려 했지만, 무기를 든 여러 명의 떡대들에게 포위당했기에 긴장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다.정면만을 향했던 당당한 시선이 어느새 흐트러져 이리저리 움직인다. 주변을 경계하면서 꼿꼿하게 서있던 몸을 살짝 낮춘다.

"어때, 이제  긴장이 되지?"

박민우는 아리의 반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다른 떡대들 역시 당장이라도 전투를 치를 흉흉한기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녀의 손과 몸에서 아무 흉기도 발견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그럼…. 이제 좀 '예의'를 갖추고 대화를 재개해볼까? 네 태도가 좀 거슬렸거든."

녀석의 턱짓에 떡대 중 하나가 움직였다. 서늘한 날붙이가 아리의 등에 살짝 닿았다.

"무릎 꿇고 손 머리 위로."

"…."

아리는 대답 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 남자는 그녀의 뒤에서 예의라곤 찾아볼  없는 손놀림으로 거칠게 몸수색을 했다. 꾹꾹 누르듯이 온몸을 뒤적이고, 속옷 속의 예민한 곳에도 마구 손을 넣어 헤집는다. 혹시 무기가 있을 수도 있었기에 몸을 음란하게 주무르거나 하진 않았지만, 수색이 끝난 이후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한 욕망으로 아리의 몸을 만지고 주물러댔다.


"감히 옷을 입고 있는 것도 건방진데?"

박민우의 말에 이번엔 옷이 찢겨지고 벗겨져 나갔다. 아리는 무릎 꿇고 손머리 자세를 유지해야 했으므로 자세 때문에 벗기기가 어려워서 남자는 옷을 칼로 자르는 것을 선택했다. 나시티가 칼날에 의해 잘라져 나갔다. 브래지어는 후크만 풀면 되기 때문에 쉽게 벗겨졌고, 앉은 자세였기에 돌핀 팬츠와 팬티는 무자비하게 조각나 그녀의 몸에서 떨어졌다.

다시금 익숙한 알몸이 되자 스산하던 방 안에 조금씩 뜨끈하고 끈적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남자들의 음심은 너무나도 익숙해서 굳이 감지할 필요도 없이 피부를 통해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아리는 주제를 벗어나  길을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대화를 시도했다.

"이제 대화할 수 있을까?"

"음? 뭐, 들어는 보지."

남자들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알몸을 보고 성욕이 확 점화되었고, 순식간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리는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곤 바로 핵심부터 꺼냈다.


"이제 그만 다들 풀어줘."

"다들?"

"남성민이나 이곳에 있는 남자애들. 그리고 나까지."

"왜?"

"범죄니까."

하하하.


비웃는 듯한 낮은 웃음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범죄가 너무나도 익숙한 자들. 아마 어떤게 범죄고 어떤게 범죄가 아닌지도 헷갈릴 것이다.  정도로 악에 물든 자들이었다. 구제할 길이 없는 심판 대상들…. 그리고 박민우는 그들보다 결코 덜 악한 녀석은 아니었다. 아직 어려서 나쁜 짓을 더 많이 하지 못했을 뿐.


마음이 한쪽으로 기우는 느낌을 받으며, 아리는 박민우의 대답을 기다렸다. 녀석 역시 남자들처럼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조용히 웃은 뒤 말을 했다.


"나쁜 짓을 하면 안 돼.  이런 얘기야? 한아리, 너 좀 귀엽다? 처음엔 무슨 닌자나 암살자 같은 앤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악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셨구만! 하하하!"

"…더 이상 돌이킬  없게  거야. 지금이라도 그만 둬."

"싫으면?"

"심판을 받겠지."

심판? 심판! 하하하!

마치 그렇게 말하듯, 박민우가 낄낄거렸다. 이제까진 그래도 좀 진중하던 남자들 역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점점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너 재밌다? 그래. 더 말해 봐. 더 웃겨 봐."

"아니, 할 말은 다 했어."

"그래? 그럼  말은, 사람들을 풀어줘라. 안 그러면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 뭐 이런 거야?"

아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박민우는 남자들과 함께 어깨를 들썩이면서 낄낄 웃다가 아리의 뒤를 잡고 있는 남자에게 턱짓을 했다. 남자는 박민우의 신호를 받고는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일어서."

아리는 머리채가 휘어잡힌채 억지로 일으켜졌다.


철컥, 끼리릭, 툭. 스르륵.

벨트가 풀리고, 남자의 바지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아리는 등을 누르는 힘에 의해 상체를 숙여 ㄱ자 자세를 취하게 됐다. 딱딱한 자지가 엉덩이살을 이리저리 찌르다가 사용되고 사용되고 또 사용되어 살짝 벌어져 있는 보지를 가르며 깊숙히 밀고 들어갔다. 불과  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금 자지를 받아들이는 아리의 속마음은 겉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아  수가 없었다.

퍽, 퍽, 퍽….

애액이 말라서 좀 뻑뻑했지만, 조금 움직이니 안에 조금 잔류해 있던 정액이 질벽에 펴발라지며 미끌미끌하게 코팅되어 피스톤 운동을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녀의 두 손목은 남자의  손에 각각 붙잡혀서 뒤로 당겨지며 남자의 옆구리를 이따금씩 스쳤고, 다리는 남자의 발에 툭툭 밀려서 어깨 넓이 정도로 벌어졌다.


뒤를 둘러싼 남자들은 어느새 무기마저 집어넣고 순번을 기다리며 아리가 따먹히는 모습을 음흉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흐으, 흐으…."

금세 분비되는 쾌감 물질에 의해 아리 역시 호흡이 거칠어졌다. 신음을 억누르고 앓듯이 작게 작게 내쉬는 호흡이 오히려 남자들을 더 꼴리게 했다. 광란의 난교를 질릴 정도로 많이 해왔기에 이런 반응이 새로운 듯했다. 이러는 와중에도 아리는 박민우와의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런 짓, 이제… 그만해…."

"흠.  고집 있네. 어때, 또 박히니까 좋지?"

"후회하기, 전에, 그만…."

퍽퍽퍽, 처억. 척, 척, 척. 살 때리는 소리에 조금씩 물기가 섞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나 금방 흥분하는 아리의 몸에 박민우는 씨익 웃었다.

"왜 그만둬야 하지? 이렇게 사는게 얼마나 재밌는데. 너처럼 존나게 예쁜 년도 종종 따먹고, 좆같이 구는 새끼들 잡아다 족치고. 사람들 모아다가 신나게 놀고. 이보다 재밌는 일이 어딨다고?"

"…."

아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나 박민우는 따먹히는 아리의 얼굴을 마주보면서도 그녀의 제안을 계속해서 비웃었다.

"넌 역시 따먹히는 모습이 제일 예뻐. 앞으로도 존나게 예뻐해줄게. 망가지지만 않으면 적어도  년은 데리고 놀아 줄테니 외로움은 걱정하지 마."

무슨 말을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 녀석의 태도. 게다가 녀석은 범죄에 대한 문제 의식조차 없었다. 소악마의 가슴 속에 자리잡은 악의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단단했고, 녀석은 악행을 즐기기까지 하는 듯했다.

대화. 완료.

결정. 완료.


판결. 실행.


마치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처럼, 검객 아리스의 간결하고 깔끔한 사고 회로가 이후의 행동을 결정했다.

'결국 이렇게까지 하게 만들다니….'

아리는 살짝 짜증이 났다. 대화를 시도한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 법이다. 그녀는 눈앞의 소악마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어때? 한아리, 너도…."

"됐어."

"응?"

박민우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

아리스는 평소의 목소리로말해도 가끔씩 화났냐는 말을 듣곤 하는데, 지금은 누가 들어도 명백하게 짜증과 화가 담겨 있는 냉랭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시간이 아까워."

몸을 기역(ㄱ)자로 숙인  따먹히던 아리가 오른쪽 다리를 들었다. 가슴살이 무릎에 짓눌릴 정도로 바짝 들어올린 다리를, 힘차게 뒤로 쭉 뻗는다.

퍼어엉!

아리의 뒷차기. 살가죽 때리는 소리. 한 박자 늦게 공기 터지는 파공음이 났다. 아리의 뒤에서 박고 있던 남자는 뒷차기를 맞고 그대로 벽까지 날아가 쿠웅! 세게 충돌한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비명도 없었고, 반응조차  박자 늦었다.


"무, 무슨…."

"뭐야, 씨발!"

….

….

아리의 심판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최대한 대화로 풀려 했던 아리였으나 심판을 결정한 후 실행하면서부턴  어떤 대화도 없었고, 살가죽 터지는 소리만이 유일했다.




"아리스."

"아, 레이아."

잠시 후 레이아가 도착했다. 둘은 은근히 오랜만에 만나는 느낌에 반가워서  팔 벌려 서로 꼬옥 포옹했다. 아리스는 그새 용사에게서 비슷한 옷을 건네받아 얇게나마 제대로 입고 있었다. 윗도리가 배꼽이 아슬아슬하게 드러나는 탱크탑에다가 아래론 핫팬츠여서 초겨울 날씨엔 어울리지 않는 맨살 많은 복장이었지만 둘  개의치 않는 듯했다.

"마스터는?"

"먼저 갔어."

"마스터, 하아…."

레이아가 한숨을 쉬자 아리스가 손을 내저었다.


"아냐. 내가 돌려보낸 거야."

"응? 아, 그래?"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괜히 벌 받고 있으시길래…. 그리고 내가 레이아한테 개인적으로 부탁할 것도 좀 있고."

"뭔데?"

대화가 이어지면서 레이아의 눈이 이채가 떠올랐다. 아리스의 말이 끝나자 레이아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둘의 시선은 쓰러져있는 박민우에게로 향했다.


….

….

….

모든 것이 지워졌다.


한아리는 별장에도, 성민에 집에도 없었던 것이 됐고, 그녀를 격렬히 탐했던 수많은 남자들에게도 잊혀졌다. 그녀의 행적을 담은 cctv나 촬영된 동영상 따위도 모두 사라졌다.


한아리로 인해 벌어진 모든 해프닝들은 모두 없었던 일이 됐다.

….

하지만.


사실, 진실을 아는 자는 용사 일행 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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