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4-2. 개입 - 에필로그 (1) (93/162)



〈 93화 〉#4-2. 개입 - 에필로그 (1)

에필로그



--남성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휴업. 지나고 보니 너무나도 짧았던 가을 방학 이후 다시 등교하는 소년의 심정은 뻔했다. 가기 싫은 학교를 제 발로 직접 걸어서 가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울 뿐….

'…섹스하고 싶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년을 방해하는 상념은 더 있었다. 오늘따라 발정이라도 났는지 성욕이 계속해서 끓어올랐다. 아침부터 팽팽하게 서서 껄떡거리는 똘똘이가 자꾸만  달라고 징징거린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성욕이 강해서 솔로일땐 혼자서, 여자친구가 있을땐 여친이랑 쿵떡쿵떡 하면서 적어도 하루에  번은 똘똘이를 달래줬는데 오늘따라 유독 엄살이 심했다.

소년은 기억 못하겠지만, 몸이 반응하는 이유는 아리와 레이아 때문이었다. 처음엔 아리와, 그 다음엔 레이아와 2주일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십 번을 떡치다가 하루 아침에 뚝 끊어 버리니 똘똘이가 성이  것이었다. 마나 유저의 신체는 일반인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였고, 피부 탄력부터 시작해서 구멍의 조임까지 전부 특급이었기에 섹스 역시 항상 황홀경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상류층조차 경험해보지 못한 최고의 섹스를 2주 내내 했기에 소년은 후유증 아닌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이었다.

'갑자기 그 누나 생각나네.'

성민의 머릿속에 레이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가 장담했던대로, 이제는 길가에서 마주쳐도 상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기억이 지워졌다. 하지만 아리의 경우엔 완전히 지워버리기엔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과 얽히고 얽혔기에, 레이아는 소년의 기억을 변질시키는 쪽을 선택했다.

소년이 기억하는 한아리는 이러했다.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쳤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용기를 내 말을 걸었다. 그 누나도 마침 갈 데도 없고 심심했는지 얘기할 수 있게 됐고, 은근히 스타일이 맞아서 집에 끌어들이는 것 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은근히 철벽이라 섹스하는덴 실패했고, 그냥 빈 방을 내주고 며칠 같이 지내면서 몰래몰래 눈요기나 좀 한게 전부였다.


"하아…. 사랑했다, 씨발년아…."

소년은 미련이 남았으나, 결국 그녀를 마음에서 떠나보냈다.  들 시간도 없이 짧게 끝난 인연이었다. 불과 며칠 전인데 벌써부터 얼굴도 흐릿흐릿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생전 봤던 것 중 가장 크고 예쁜 가슴이랑 골반은 선명하게 기억났다. 최소 상위 1퍼센트 안에 들만한 엄청난 몸매는 아직도 눈에 선했다.


꿈틀, 꿈틀.


여자의 몸을 생각하니, 다시금 고추가 징징대며 응석을 부린다.


'…걔라도 만나야 하나.'

워낙 안좋게 헤어졌기에 지금도 생각하면 욕부터 나오는  여친. 성민은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그나마 속궁합은 썩 좋은 편이었다. 사귈때 하도 지랄발광을 해서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찼고, 걔도 얌전히 반성하면서 후회하고 있었지. 기다릴 거라고 했던가. 처음 들었을 땐 병신년이라고 욕했는데….


자존심은 좀 상하지만, 남자가 성욕 때문에 여자를 만나는건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특히나 어린 나이일수록 더.

새로운 여자를 떠올리며 들뜬 표정으로 걸어나가는 소년의 머릿속엔 그 어떤 상처도, 추억도 없었다.





--박민우--

퍽, 퍽, 퍽, 퍽, 퍽, 퍽….

밀실 안은 떡치는 소리로 요란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거친 좆질에 여자는 쾌락의 신음을 내지 못하고 악악대고 끙끙댔다.

유란. 별장의 여자들 중 일인자. '파티'가 끝났기에 별장에 머물렀던 출장녀들은 대부분 집이나 원래 일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유란은 그 후에도 박민우의 컨택을 받아 앞으로도 한동안 녀석의 곁에 머물게 됐다.



예쁘고 몸매 좋고 매력적인 성격까지 가진 유란은 일반인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잘 버는 여자였고, 어지간한 돈으론 꼬시기 어려웠다. 그러나 박민우가 제시한 금액은 그런 그녀조차 거절을 상상할  없을 정도의 거금이었다. 유란은 제안을 수락하며 쉽게  돈을 만질 것을 기대했다. 박민우가 비록 성격은 차갑지만 자신에겐 좀 잘해주는 편이어서 몇  대주기만 하면 되고, 하루 종일 옆에 붙어서 알랑거리는 정신 노동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돈도 돈이지만 고용주 스타일도 마음에 들어서 제안을 선뜻 수락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녀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파티' 땐 여유 있게 굴었던 박민우는 갑자기 돌변해서 유란을 하루 종일 범했다. 마치 성욕으로 몸이 끓어오르는 중학생마냥 떡치고 돌아서면 또 서고, 또 떡치고 돌아서면 또 서서 떡치고…. 한 시간에도 몇 번이나 섹스하며 하루 종일 유란을 괴롭혔다.


퍽퍽퍽퍽….

"그하악, 그으으…."

체력의 한계에 다다른 유란은 교성을 낼 여유도 없이 목에서 쇳소리에 가까운 신음을 흘렸다. 목은 이미 반쯤 나가서 한참 전부터 예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섹스, 섹스, 섹스, 그리고  섹스.


연장 계약은  달이었고, 오늘은 고작 이틀 째였다.


…이렇게 미친 듯이 섹스만 해대니, 언젠간 시들시들하겠지…?

그런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탈진한 유란은 손가락도 까딱하지 못하며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빌어먹을 몸뚱이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쾌감을 느꼈다. 이제는 고통이나 다름 없는 쾌감 때문에 그녀는 눈앞이 새하얘질 지경이었다.

수없이 마찰된 가랑이와 오랜 시간 억세게 붙잡혔던 허리가 쓰라렸다. 아프다, 힘들다, 기분 좋다. 이 감각들의 공통점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힘…들어….'

퍽퍽퍽퍽, 처억! 처억! 처어억!

어느새 다가온 마지막. 유란은 뱃속으로 느긋하게 흘려보내진 액체를 느꼈다. 사정된 정액은 고작 한 줄기밖에 되지 않았다. 하도 많이 싸대서 그런지 이제는 정액도 줄기 줄기 싸지르는게 아니라 늙은이처럼 방울 방울 흘러 나오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몇  지나지 않아다시 박힐 것이다. 학습된 감각은 그녀를 편히 쉬게 안심시키기는 커녕 긴장감을 유도했다.

'제발….'

 분이라도 쉬고 싶어…. 유란은 간절한 마음으로 휴식을 희망했다. 이제는 시야도 흐릿했고, 소리도   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집중력은 커녕 최소한의 인지능력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지친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진 건지, 몇 분이 지나도 유란은 질 속을 파고드는 자지를 느끼지 못했다.

'드, 드디어….'

묘하게 차오르는 소소한 행복감. 드디어  수 있다는 생각에 유란은 살짝 미소지으려 했으나 안면 근육을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그대로 눈을 감으며, 그녀는 꿀처럼 달콤한 꿈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마침내 안식을취하는 유란의 옆에는, 진작에 쓰러져 잠든 박민우가 엎어져 있었다.

….


….

박민우. 사건의 원흉인 소악마. 타고난 거대악.

아리스는 살면서 악한 성정을 타고난 이들을 많이 봐왔기에 그들의 악행이 끝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단순한 유흥만을 즐기는 수준임에도 이 정도니 어른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더러운 짓을 시작하면 얼마나 큰 악(惡)을 꽃피울지…. 그녀는 도저히 악의 씨앗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가 없었고, 레이아에게 부탁해 '조치'를 취했다.


죽이거나 반신불수로 만들진 않았다. 아무리 싹이 시커멓다 해도 당장 살인이나 패륜 같은 선을 넘는 짓은 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피를 보지 않겠다는 다짐이 모든 것에 앞서는 가장 큰 이유였다.

아리스가 선택한 방법은, 하나의 커다란 물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성욕이라는 이름의 거센 폭포. 비록 그의 성정을 선하게 정화하진 못할 테지만, 섹스에 빠져 다른 악행을 행하지도 못할 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물길로 하여금 다른 작은 물길들을 전부 삼켜버리는 것이다. 박민우는 이제 성욕에 지배되어, 헤어나오지 못하고 오로지 색을 탐할 것이다. 인생이 섹스고, 섹스가 인생이 되어버린다.


아리스의 제안과 레이아의 조치.


어떻게 보면 죽이는  만큼이나 잔인한 일이었다. 섹스 외의 행동에는 재미나 성취를 거의 느끼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지식을 쌓거나, 몸을 단련하거나 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을 것이다. 식사도 제대로  하고 계속해서 강도 높은 신체활동을 할테니 몸은 갈수록 허약해질 것이 분명하다. 수명에도 영향이 있겠지만, 신체의 노화도 급속도로 진행되어 설령 오래 산다 해도 삶의 질은 바닥을 기겠지.


'미안.'

아리스는 레이아가 박민우에게 조치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딱 한  사과했다. 그녀가 생각하기엔 죽이는 것보다도 더 잔인한 일이었기에, 잔혹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사과를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심정은 마치 나무에게 가지치기를 하는 것처럼 덤덤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희생당하는 입장에선 개같겠지만, 어쩔 수 있나. 심지어 모두 자초한 일인데.  검고 또렷한 눈동자에 후회나 죄책감이 떠오를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아리스는 유란이 박민우에게 당하고 있는 사실은 몰랐다. 그러나 설령 알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죄책감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한때 수많은 악당들을 냉혹하게 단죄했던 검사 아리스. 마음씨가 따듯하고 생각이 깊은 여자였으나, 한 번 검을 뽑으면 절대 망설이지 않고 가차없이 휘두르는 그녀의 스타일이 간만에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