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4-2. 개입 - 에필로그 (5)
"음…."
레이아가 고민하며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분해된 자신의 큐피드에게 몇 시간째 집중되어 있었다. 큐피드는 엉키고 엉킨 실타래 중 마지막 매듭이었다.
다행히 없어진 기억은 점차 되돌아왔다. 처음엔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정신을 집중하였고, 해 떠있는 동안에는 마나를 회복하는데 전념했다. 레이아는 마나 고갈 상태였던 자신이 본능적으로 움직인 거라고 결론내렸다.
그리고 그 이후엔… 도대체 뭔 생각이었는지, 아무 남자하고 만나서 잠을 잤다. 아니, 정확히는 몸을 판 것이었다. 그 생각을 하자 레이아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으으…."
나는 창녀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저 마나 고갈 상태에서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성욕이 솟아올랐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떡칠 생각을 한 걸 보면, 확실히 많이 변했단 것을 레이아는 스스로 느꼈다. 욕구도 전보다 확실히 강해졌고, 내면도 욕망에 더 충실해졌다. 솔직해졌다. 섹스 쪽에 있어선 확실히 개방적이고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저주가 강화된 것 역시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변화는그 전에 있었다.
'아무렴 어때.'
이런 모습을 마스터는 오히려 좋아해 주는걸.
레이아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자신의 어깨를 덮는 손길을 느꼈다.
"마스터."
"레이아."
크고 단단한 손길. 아주 살짝 누르는 듯한 묵직함이 느껴졌다. 레이아는 용사가 엄지 손가락만 움직여 어깨에 걸쳐진 브라끈을 툭툭 건드리는 것을 느꼈다. 파자마 위로 느껴지는 손길에 레이아의 얼굴이 살짝 상기된다.
"벗을까?"
"아니. 잠깐…."
용사가 레이아의 고개를 돌려 키스했다. 끈적하게 수십 차례 혀가 뒤섞인 후 용사의 타액을 꼴깍 받아마시는 레이아의 젖은 눈동자가 남자의 마음을 자극했다. 서로 마음이 끌린 후에 할 행동은 하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질컥 질컥, 물소리가 묵직했다. 좆이 살을 가르는 건지 물을 가르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모처럼의 오붓한 섹스에 레이아는 꽤나 흥분한 모양이다.
"으응, 응, 흐응…."
평소처럼 가볍게 다물어진 레이아의 입술이 이따금씩 열리면서 여자의 귀엽고 색스러운 신음을 내보냈다. 그때마다 살짝 살짝 보이는 순백의 치아는 잘 보이지 않아서 오히려 더 돋보였다.
"마스터…."
"응?"
위에서 요분질치는 레이아가 말을 걸었다. 밑에서 열심히 들썩이는 사랑스러운 연인을 흐뭇하게 보다가도 중간중간 가슴을 만져주거나 허리를 잡고 밑에서부터 쳐올리던 용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
"무슨 생각?"
"저주가 강해진게… 으음…."
레이아는 이런 말을 해도 되나 라고 생각하는 듯 싶었다. 용사는 말 꺼내놓고 중간에 자르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강해진게?"
"나한테는, 그….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아."
"어떤 의미에서?"
"스킬. '씨받이' 스킬이 강해지면서, 어떻게든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어. 예전엔 마스터한테 거의 못 느꼈는데, 요즘엔 은근히 느껴서 기분 좋아. 나한텐 정말 엄청난 거야."
"호오."
그 말에 용사가 퍽퍽퍽, 거칠게 허리를 쳐올렸다. 앙앙앙울며 레이아가 위에서 흔들렸다.부드러운 가슴과 그 정점에 있는 젖꼭지가 위아래로 흔들리는게 야했다.
"기분 좋아?"
"흐응, 읏, 응! 기분 좋아! 흐으읏…."
서로 맺어진지 십 년을 훌쩍 넘었고, 마나 유저여서 육체가 항상 전성기 청춘인 그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섹스했다. 서로의 몸을 더 이상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잘 알았다. 레이아의 예민한 부분을 귀두가 묵직하게 비비고 지나가자 레이아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자지러졌다.
용사가 한참을 힘차게 쳐올렸고, 레이아는 버티지 못했다. 꼿꼿하게 서서 버티던 그녀의 가녀린 상체가 용사의 탄탄한 가슴팍으로 떨어졌다. 서로의 유두가 비벼졌고, 손가락 하나에도 이리저리 모양을 바꾸는 부드러운 젖가슴이 손가락으로 쿡 찔러도 오히려 튕겨져 나올 것처럼 탄탄한 남자의 가슴팍에 이리저리 비벼졌다. 상체도 정신 없었지만, 하체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격렬한 움직임과 함께 결합부에선 아주 물난리가 나 주변이 온통 질척거렸다.
"앙, 아앙, 마스터…."
오늘따라 좀 귀엽게 울어대는 레이아는 교태를 부리며 꼭 안겨들었다. 남자 중에서도 체격이 큰 편인 용사와 여자 중에서도 덩치가 작은 레이아가 붙으니 마치 어른이 아이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둘이 느끼는 감정은 배덕 따위가 아닌 순수한 사랑이었다. 모처럼의 사랑 가득한 섹스에 레이아가 특히 좋아하며 평소보다 잘 느끼고 보기 드물게 애교도 부렸다. 으응 하면서 품 안에 머리를 묻는 모습에 용사가 이를 드러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
"…마스터."
한 차례의 사정, 그리고 두 차례의 절정. 레이아는 충분히 만족했는지, 정액을 사정하고도 여전히 빳빳이 서서 삽입되어 있는 용사의 자지를 더 이상 자극하지 않았다. 그저 용사의 위에 올라타 꼭 껴안은 채로 대화했다.
"기억 났어."
"그래?"
잘 들어주는 듯한 용사의 말투에 레이아가 말을 이었다.
"난 마나 고갈상태에서 의식을 잃은 것 같아. 그리고 몽유병처럼, 무의식적으로 조용한 곳을 찾아서 한동안 마나를 갈무리했던 것 같아. 확실하지 않은 추측이긴 하지만…."
물론 마왕 카이사에 의해 조작된 기억이었다. 그녀는 그 당시 카이사와 함께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레이아가 알 리 없었다.
"음, 그렇구나."
"나도 처음 겪은 일이야."
"지구는 마나가 적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 완전히 다른 세계잖아."
용사의 말을 끝으로 한동안 침묵이 있었다. 잠시 후, 이번엔 용사가 먼저 물었다.
"레이아."
"응, 마스터."
"그 다음엔?"
"어, 으응?"
조금 당황한 듯한 말투. 눈치 빠른 용사는 바로 캐물었다.
"기억 났다며. 한동안 마나를 회복하고, 그 다음엔 뭘 했을까?"
"그, 그게…."
레이아는 얼버무리다가 문득 생각했다. 생각해보니까, 숨길 필요가 없잖아?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한 일인 데다가, 용사는 오히려 항상 권장해오지 않았던가. 그녀는 솔직히 말했다. 당당하고 덤덤한 목소리로.
"남자랑 잤어."
불끈!
레이아가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감촉을 느끼곤 피식 실소했다. 아무리 용사라 할지라도, 남자는 남자인 건지 단순하고 알기 쉬운 반응이었다.
"좀 더 자세히."
"흐응, 말해줄까?"
다시금 가슴에 불을 지핀 둘은 느긋한 휴식 시간을 끝내고 다시 키스했다. 두세차례 혀를 섞고 나서 레이아가 용사의 귓볼을 빨며 조용히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 앱으로, 매칭으로 만났어. 마스터보다 나이는 조금 어려 보이는 샐러리맨 같은 젊은 아저씨였어. 샌님 같아서 별 기대 안했는데, 생각보다 잘 하는 남자였어. 당연히 기분 좋았고, 몇 번이나 갔어. 콘돔도 안 썼는데 그 아저씬 당연하다는 듯이 몇 번이고 보지에 싸버렸어."
"으음…."
신음을 그다지 많이 내지 않는 용사가 앓는 소리를 냈다. 레이아는 내심 기뻤는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돈 받는 거였어. 마스터, 내가 몸을 팔았어. 아저씨한테 몸 팔았어. 그것도 꽤 많이."
"돈을 받았다고?"
레이아의 성향을 잘 아는 용사는 의외였는지 흥분된 와중에도 물었다. 레이아는 마법으로 자신의 핸드백에서 화대로 받은 지폐 뭉치를 꺼내 자신 쪽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곤 상체를 일으켜 자기 가슴골에 돈뭉치를 끼우며 말했다.
"응. 돈 받고 몸 대줬어. 보지를 벌려줬어. 레이아는 창녀야. 돈만 주면 언제든 박을 수 있는 창녀야. 하루 24시간 365일, 돈만 내면 보지에 마구 질싸해도 되는 쉬운 여자야."
"후우, 후…."
"으응, 마스터? 흥분 되는 거야? 안 참아도 되는데에?"
"…레이아."
계속해서 자극과 도발을 이어가자 결국 용사가 벌떡 일어나 전세를 뒤집었다. 레이아가 순식간에 밑에 깔렸고, 용사는 거칠게 위에 올라탔다. 강한 흥분으로 숨이 거칠어진 용사는 낮은 목소리로 통보했다.
"후회하지마."
그리고,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나게 격렬한 섹스가 이어졌다.
결국 마지막 즈음에는 레이아가 혀마저 풀린 채로 용사에게 '자모, 자모해써요….' 하고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쾌락으로 점철되어 망가진 그녀의 얼굴은, 용사가 보기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
결국 레이아는 큐피드에서 그 어떤 외부 요인도 찾지 못했다. 설계 상의 문제였는지 뭔지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부족함으로 큐피드가 고장났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으나 아무 것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게 오히려 더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었다.
다른 여자들의 큐피드는 멀쩡했고, 오로지 레이아의 것만 고장났다. 혹시나 싶어서 옆에 있던 아리스의 큐피드를 점검했으나, 몇십 년은 쓸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다는 사실만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큐피드를 하나 만들려던 레이아의 생각이 바뀐 것은 용사의 반응이었다.
"으응, 마스터."
레이아가 원래 편애를 좀 받긴 했지만, 유독 레이아에게 엉겨붙는 용사의 태도는 확실히 평소와 달랐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던 레이아는 큐피드로 찍은 영상으로 자위하는 용사를 입으로 도와주던 와중에 문득 깨달았다.
'아!'
용사가 유독 자신에게 신경쓴 이유. 그것은 큐피드가 없어서였다. 언제든 상황을, 은밀한 사생활을 알 수 있는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레이아는 이제 시야에 없으면 뭘 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런 불안감과 스릴이 용사의 관심과 흥분을 이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아는 확신을 얻기 위해 사랑하는 연인을 시험했다.
픽.
TV 화면을 끄자 용사가 밑에서 빨아주던 레이아를 물끄러미 보았다. 화나지도 당황하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 이랬겠지, 생각하며 설명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레이아는 소녀처럼 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마스터, 안 궁금해?"
"뭐가?"
"나, 그날 몸 팔았던 얘기. 그거… 아주 자세하게 말해줄까? 마스터는 그걸 못 봤잖아."
불끈!
자지가 한 차례 껄떡였다. 귀두를 한 차례 스윽 핥은 레이아는 확신을 얻고는 피식 웃었다.
"마스터, 나…. 한동안 큐피드 없이 생활해 볼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레이아는 용사의 조용한 허락을 받고는, 새로 만들던 큐피드를 다시 해체했다.
먼 미래에도, 레이아의 큐피드가 다시 만들어지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