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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화 〉#5. 델렌과 흑백 (5) (103/162)



〈 103화 〉#5. 델렌과 흑백 (5)

"힝, 좀 있고 싶었는데…."

"빨리 가."

아쉬워하는 델렌을 용사가 떠밀었다.  그래도 주어진 시간이 짧았는데, 용사와 밖에서 장난까지 치다보니 사실상 짐만 풀고 나가는 수준이었다. 집에 있던 아리스와 레이아가 도와줬기에 그나마 짐이라도  것이었다.

….


용사는 집에 도착했음에도 델렌을 계속 괴롭혔다. 마치 다리 사이에 커다란 무언가가 박힌 것처럼 어색하게 걷는 그녀를 툭툭 건들거나 '어이쿠' 하면서 누가 봐도 고의로 가랑이 부분을 발등으로  눌렀다. 그럴 때마다 델렌은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면서 히익, 하고 숨을집어삼켰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양아치가 여자를 괴롭히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짓궂은 장면이었다.

집에 있던 아리스와 레이아는 괴롭힘 당하는 델렌을 보고도 별 반응이 없었다. 델렌과 용사는 항상 그렇게 놀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알콩달콩(?)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보였다. 그 증거로 델렌이 걸어온 자리엔 투둑투둑 떨어진 끈적한 물자국이 점선처럼 길게 이어져 있었다.


델렌의 방은 2층 가장 안쪽의 작은 방이었다. 비록 깔끔하게 청소는 되어 있었으나,  쓰지 않다보니 확실히 사람 사는 냄새가 덜했다. 각각 다른 향기가 묻어나는 다른 여자들의 방과 달리 델렌의 방에는 섬유 유연제 향기가 전부였다. 용사의 여자들은 레이아를 제외하곤 다들 외박을 자주 하는 편이긴 한데, 델렌은 그중에서도 압도적이었다. 그녀는 아예 밖에서 살고 있었고, 밖에 머문 날이 집에 머문 날보다 훨씬 많았다.

'슬슬….'

익숙하지 않은 집안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델렌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이 집을 최대한 눈에 담았다. 머지 않아 자주 보게 될테니. 그녀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택은 자신의 몫이 아니었다. 항상 그래왔고, 항상 그러기를 스스로 바랐기 때문이다.


"안녕~."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은 델렌은 자기 방에게 재회를 약속하며 짧은 이별을 고했다.




-델렌, 과거.-

금발이 색이 선명해서 예쁘니 남자들이 좋아할 것이다.


벌써부터 미색이 피어나니 엄청난 미인이  것 같다.

마나의 재능이 뛰어나니 기사가 될 수도 있겠다.


여기사는  나라의 높으신 분들이 좋아하니 잘 된 일이다.

'다 무슨 의미야.'

어렸을 때부터 델렌은 타고난 여기사였다. 한창 이갈이를 할 때 즈음에도 이미 온갖 남자들이 눈독을 들일 정도로 아름다웠고, 성장기도 오지 않았는데 성인 남자들을 이길 정도로 마나와 무술이 뛰어났다. 모두 타고난 것이었다. 그녀의 타고난 재능을 주변 사람들은 부러워했고, 델렌 역시 자신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퍽, 퍽, 퍽, 퍽.

일정한 리듬으로 들려오는 소리. 델렌의 엉덩이와 남자의 치골이 부딪쳐 야한 살소리를 마구 만들었다. 몇 시간 동안 조깅을 해도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던 뛰어난 수습 기사는 현재 자신의 보지를 찔러오는 육봉에 의해 입을 벌리고 헐떡이고 있었다. 비록 표정은 거부감을 품고 있었으나, 흐트러진 숨결에는 분명 여자의 달콤한 신음이 섞여 있었다.

쭉 뻗은 다리와 남자들이 항상 탐내던 큰 가슴, 우월하게 발달된 골반과 상상 속에서 수도 없이 범해진 보지. 이 비밀스러운 장소에  때마다, 델렌은 자신의 모든 것을 개방해야 했다. 이곳에서 그녀의 몸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아직 어린 앳된 남자,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 나이 먹은 노련한 남자…. 어떤 남자든 간에 델렌에게 자제력을 발휘하는 자는 없었다. 모두가 그녀의 딱 좋은 나이와 딱 좋은 몸매를 열렬히 탐했다.


"으음…."

열심히 박던 남자가 스퍼트를 내며 퍽퍽퍽퍽 박더니, 마지막엔 델렌의 가장 깊은 곳을 꾸욱 하고 지긋이 눌렀다. 뜨거운 것이 뱃속을 또다시 채웠다. 몇 번을 느껴도 이상한 그 야릇한 감각에 델렌은 절제하지 못한 깊은 숨을 흘렸다. 분명 싫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싫지만은 않은, 그런 이상한 기분. 델렌은 갑자기 짜증이 났다.


몇 번째인지 모를 질내사정. 델렌은자기 뱃속에 뒤섞인 십수 가지의 씨앗이 마구 뒤섞이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임신하면 어떡하지?' 와 같은 현실적인 걱정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델렌조차도. 남자들은 십수 명이 전부 씨앗을 싸질렀기에 여자에게서 아무런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고, 델렌은 차라리 임신한다면  개같은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씁쓸한 망상을 하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마나 유저 특유의 불임이나 다름없는 생식 능력을 잘 알고 있어서 별다른 불안감을 품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그런 남자들도 있었다. 혹시 애 배면, 나한테 시집 오라고 말하는…. 델렌은 모두가 선망하는 미녀였고, 모두가 탐내는 미래의 여기사였고, 모두가 흡족해 할만한 결혼 적령기였다. 순결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그녀는 여러모로 결혼하기에 최고의 조건을 가진 여자였다.


판타지 세계에서 여자의 결혼 적령기는 지구, 정확히는 용사의 고향에 비하면 확실히 어렸다. 저쪽 세계였다면 교복도 벗지 못할 만큼 어린 나이에, 이쪽 세계의 여자들은 벌써 결혼해 애를 낳고 육아와 살림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여자 쪽의 가정 환경이  좋으면,  더 살림이 괜찮은 집에 초경도 오지 않은 어린 애를 팔아치우듯 시집보내기도 했다. 용사의 세계에선 교복을 입고 한창 밝게 피어날 나이에, 판타지 세계에선 적당히 시집 가서 둥지를 틀 나이에, 델렌은 마치 공중 변소처럼 남자들의 성욕의 배설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나가고 싶어….'

뛰어난 여기사를 꿈꿨던 소녀가 지금 가장 강렬히 갈망하는 것은, 침대에 편하게 누워 쉬는 것이었다.



무엇이 잘못 됐을까.

하필이면 썩어빠진 곳에다가 수습 기사를 지원한 것?

아니면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하던 델렌은 다 무의미하다고 결론내렸다. 이 거지 같은 세상에 썩어빠지지 않은 곳은 없었고, 예쁜 데다가 힘도 없어서 딱 먹기 좋은 여자를 가만 내버려두는 남자는 없었다. 델렌에게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그들을 감히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비좁은 독방의 침대 위로 새파란 달빛이 내리쬔다. 보름달이라 그런지 밤인데도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근데 너무 쓸데없이 잘 보여서, 보기 싫은 늙은이까지 봐야 한다는게 문제였다.


"델렌, 후욱, 후욱, 그륵, 델렌. 대답하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델렌의 위에서 움직이는 노인. 델렌은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었지만, 상상은 상상으로 끝날 뿐이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뭣도 모르고 실제로 행동에 옮긴 적도 있었다. 고양이처럼 앙칼진 소녀의 반항. 그 결과는, 지금도 두려워서 몸이 바르르 떨리는 '반성실' 행이었다. 그곳에서 소녀는, 자기 몸이 한 번에 일곱 종류의 체액을 내뿜을 수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 세상은 소녀가 알던 것보다 수십, 수백 배는 무서웠다. 여러 의미에서….

그녀의 몸 위에서 추레하게 꼬물대는 늙은이는 그 무서운 반성실 처벌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력자였다. 숨을 헐떡이느라 치아가 절반 이상 빠진 그의 입이 드러났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도 닳고 닳아 상아질이 누렇게 드러나서 오래 쓸 수 없어 보였다. 정상적인 식사가 불가능해 대부분을 스프 같은 멀건 음식으로 때우는 데도 손녀 뻘인 여자에게 성욕을 불태우는 모습이 델렌에겐 신기하고 역겨울 따름이었다. 코를 찌르는 염증 섞인 구취에 델렌이 눈썹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꽤나 불경한 그녀의 표정은 다행히 노인의 그림자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다.


"네, 추기경 님."

"델렌. 우리끼리 있을 땐…."

"……예. 아, 버, 님."

그제서야 노인이 만족하며 클클 웃었다. 델렌은 존경하는 친부가 떠올라 그저 짜증날 뿐이었다. 세상에  어떤 아버지가 딸을 범하고, 다른 남자들이 마음껏 따먹을 수 있도록 만든단 말인가. 마나를 실어 주먹을 힘차게 뻗으면  날이 얼마 안 남은 이 노인을 더 빨리 저승으로 보낼 수 있겠지. 하지만 델렌은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렸다. 냅두면 알아서 뒈질 놈에게 남은 인생을  수는 없었다. 의지가 강한 그녀는 아직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엔 네가 올라오렴."

"예."

이번엔 델렌이 위에서 움직였다. 뼈가 삭은 노인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히 움직였으나, 노인이 위에서 하던 것에 비하면 훨씬 역동적이었다. 오래 가지 않아 누런 정액이 그녀의 뱃속을 침범했다. 델렌은 다른 때에 비해 유독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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