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5화 〉#5. 델렌과 흑백 (17) (115/162)



〈 115화 〉#5. 델렌과 흑백 (17)

"지, 지금 뭐라고…."

"그 여자, 안다고요. 아는 사람이에요. 저와 함께 주인님을 사랑하는… '동료'예요."

"……너."

놀라서 눈을 크게 뜬 서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델렌은 계속 덤덤한 무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름은 미라. 한미라. 보셨다시피 혼혈 느낌 나는 미인인데 외국인은 아니고요. 키는 평균보다 약간 작지만 가슴은 평균보다 큰데다가 허리도 개미허리에 골반도 좋고. 아무튼 몸의 비율이 환상적이어서 옷을 입은 것보다 벗은게 훨씬 볼륨있고 섹시해요. 반대로 말하면 입으면 은근히 말라 보이는 타입? 그리고 몸에선 약간 상큼한 과일향 같은게 나고요, 이건 비밀인데 애액도 은근히 향긋해요. 모르는 사람한테 뭔지 안 알려주고 먹여보면 과즙에 물탄 줄 알걸요? 그리고 말투나 분위기가 좀 도도한데 그게 딱 좋은 정도여서 여자가 봐도 매력적인 성격이에요. 자신감과 자존감이 과하지 않는 선에서 높으니까 여자들이라면 다들 닮고 싶어할걸요?"

전남친 앞에서 야한 말도 서슴없이 하는 델렌을 서준은 그저 넋 나간듯 멍하니 보고 있었다. 마치 격투 게임에서 콤보를 넣듯, 델렌은 쉼없이 서준이 모르는 사실을 얘기하며 정신적 타격을 주어 그에게 정신 차릴 틈을 주지 않았다.

"일대일로 독점하기보단 미라랑 저랑 둘이 같이 주인님을 모실 때가 많아요. 한 명이 입에다 키스하면, 다른 한 명은 주인님의… 아주 멋지고 늠름한 '자지'에 정성스럽게 딥키스를 해요. 우리 둘 다 주인님의 '자지'를 너무 좋아해서, '자지'를 차지할 기회가 생기면 기쁜 마음으로 열렬하게 봉사하죠."

자지라는 단어를 유독 또렷하고 선명하게 발음한다. 뜨끈한 매실차를 마셔서 그런 건지, 아니면 어떤 야한 생각이라도 했는지 델렌의 볼이 약간 발그레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것은 하나가 될 때죠. 음양의 조화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그저 사람의 신체 부위 중 볼록 튀어나온 것과 오목 들어간 것이 합쳐질 뿐인데, 그게 저를 미칠듯이 기분 좋게 해줄 줄은… 주인님을 만나기 전까진 몰랐어요. 그리고…."

"…그만."

서준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목이라도 졸렸던 것처럼, 가까스로 호흡을 토해내며 부탁에 가까운 어조로 말했다. 신나서 떠들던 델렌이 입을  다물고 빙긋 웃는 얼굴로 서준의 말을 기다린다.

'넌 누구냐….'

마른 침이 꿀꺽 넘어간다.

서준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련 곰탱이처럼 보였던 델렌이 지금은 좀 무섭게 보였다. 연애하던 시절의 순수하고 해맑던 델렌…. 심지어 창녀가 된 후에도 그는 델렌에게서 예전의 순진무구한 모습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넘지 말아야  선을 넘었기에 이제는 마냥 예뻐할  없었지만, 그래도 한때 사랑했던 그녀의 장점까지 싫어하게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의 악(惡)을, 시커면 면을 끔찍히 싫어하게 됐을 뿐.

하지만 이제는…. 아니, 이제서야 느껴진다. 눈앞의 델렌은  이상 자신이 알던 델렌이 아니었다.


침묵이 길어지자 델렌이 고개를 좌우로 살짝살짝 기울이고, 바닥을 손가락으로 탁탁탁 두들기고, 순진한 얼굴로 눈을 멀뚱멀뚱 뜬다. 서준이 마치 현기증이라도 느끼는 것처럼 안 좋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그를 배려하듯 침묵했던 그녀의 입술이 열린다.

"아무튼, 이것 하나는 알아주세요."

"……뭘?"

"사랑의 형태는 여러 가지라는 걸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게 일반적인 사랑의 형태지만, 너무나도 멋진 한 남자를 여러 여자가 사랑할 수도 있어요.  그런 특이한 사랑을 하는  뿐이에요."

"너…."

부글부글.


서준은 마치 가슴에 피 대신 끓는 물이 혈관을 타고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방금 전까지 놀라서 위축됐던 마음이 부글거리며 끓어올랐다. 심박수가 순식간에 빨라지고 몸과 머리에 열기가 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랑했던 사람 앞에서 이딴 헛소리나 지껄이는게 너무나도 마음에 안 들었고 화가 났다.


한 마디로, 욱했다.


부잣집 도련님이 거의 평생을 지적받아 왔던 단점, 욱하는 성격이 다시금 튀어나온다.

타악!

서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반대편에 앉은 델렌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를 덮쳤다. 어깨를 세게 짓눌러서 그녀의 상체가 바닥에 눕도록 만든다. 델렌은 저항 없이 그대로 밀려 바닥에 누웠고, 서준은 그녀의 위에 올라타 꼼짝 못하게 제압했다. 그의 억센 손이 델렌의 턱을 가차없이 붙잡았다.

"한 남자를 여러 여자가 사랑할 수도 있다고? 그게 그냥 특이한 사랑의 형태라고?"

 여자도 아니고, 여러 여자. 빨간 머리에게 미라라는 금발 여자와 델렌이 있는걸 알텐데 굳이 '둘'이 아닌 '여럿'이라고 한 이유는 뻔했다. 둘 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도 있다는 얘기였다.

'두 여자인 것도 모자라, 더 있다고?'

서준은 이쯤 되면 누구한테 화를 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앞에 있는 델렌에게 물었다.

"하! 그럼,  여자를 여러 남자가 사랑할 수도 있겠지? 그것도 사랑이라고 해봐."

남자가 여자를 짓누른다. 손을 뻗어서 누워 있음에도 볼록 솟아 있는 풍만한 젖가슴을 옷 위로 세게 주무른다.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가지인 분위기와 섬세함을 모두 집어치우고, 마치 고통을 주려는 것처럼 거칠게 행동한다. 하지만 델렌은 뭐가 좋은지 말없이 실실 웃으며 계속해서 서준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말해 봐. 해도 되겠냐고? 내가 너 사랑하니까, 나도 너랑 해도 되겠냐고? 그저 사랑의 특이한 형태일 뿐이잖아? 응?"

"후후후…."

마치 놀리듯이, 짙은 눈웃음 이외에는 어떤 리액션도 없는 델렌. 최소한의 저항도 없었고  한 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남자에게 모든 결정을 떠넘기듯 힘을 빼고 얌전히 누워 있을 뿐이었다. 반항 없는 얌전한 모습에, 오로지 분노로 뜨거웠던 서준의 눈빛이 조금씩 탁한 욕망으로 물들어갔다.

델렌은 자기에게 화를 내는 유일한 남자인 서준이, 여느 남자들처럼 '수컷'의 눈빛으로 변해가는게 재밌는 건지 이까지 드러내며 환히 웃었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남자조차 홀리는 마성의 매력. 델렌은 그런 자신의 매력을 잘 알고 있어서 그저 여유로웠고, 서준은 이게 아닌데 생각하면서도 결국 그녀에게 넘어갔다. 두 손을 모두 뻗어 양가슴을 옷 위로 마구 주무르고, 입을 맞추기 위해 상체를 아래로숙인다. 각자 내뱉는 숨결이 서로의 얼굴을 간질일 정도로 바짝 가까워진다.


또각. 또각. 또각.


그 순간, 밖에서 여자의 것이 분명한 발소리가 났다. 이곳은 식당이고, 아무리 조용하고 오붓한 곳이라고 해도 당연히 사람이 오가기 때문에 은밀한 일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장소였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놀라서 상체를 벌떡 일으킨 서준은 발소리가 멀어지자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흥이 식은 건지, 아니면 제정신이 든 건지 다시 이성을 되찾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나."

서준이 안 일어나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델렌을  잡아 일으켰다. 델렌이 순순히 이끌려 일어선다. 그녀의 태도는 일어나기 싫다기보단, 아무 것도 안 시켰기에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흠.'

순순한 태도. 어느 순간부터 무언과 무저항으로 일관하는 델렌은 목적지를 말해주지 않는 탁한 눈빛의 서준에게 얌전히 이끌려갔다.

….

둘이 도착한 곳은, 수없이 많은 남녀가 수없이 몸을 섞어온 장소.


모텔이었다.





철썩, 철썩, 철썩, 철썩!

마치 때리는 것처럼 격렬하게 살 부딪치는 소리. 살소리에 물기가 섞여 있지 않았다면 진짜 때리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소리가 크고 강렬했다.

'죄다 싸구려 같군.'

마치 싸구려 매춘 업소처럼 어슴푸레한 조명, 그리고 악취를 없애기 위해 무작정 뿌린 진한 섬유탈취제 냄새. 숙박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하지도 않는 숙박비.

유복함을 넘어서 부유하게 살아왔던 서준에게 있어, 싸구려라고 광고하는 듯한 이 모텔은 분명 수준에 맞지 않았다. 그가 비위가 좋은 성격이라 다행이지, 유난 떠는 성격이었다면 당장 문을 박차고 나가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서준이 이런 환경에도 개의치 않는 가장 큰 심리적 이유는 따로 있었다.


"후욱, 씨발년, 이 걸레년이, 후우…."

"으읍, 읍, 으으응…."

델렌을 밑에 깔고 정상위로 거칠게 박는 서준은 한손으로 델렌의 입을 틀어막고 욕을 하며 거세게 허릿짓을 하고 있었다. 말을 못 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도 호흡과 신음이 막히는게 힘들었는지 델렌은 중간중간 입을 틀어막는 서준의 손과 손목을 탁탁 두들겼다. 그러나 서준은 그 억센 팔에 힘을 바짝 주고는 절대 풀어주지 않았다.


모든게 싸구려, 저질품.


"읍, 으브으응…."

그러나 이 공간 안에서, 델렌보다 값싸고 하찮은 싸구려는 없었다.


그 좋은 얼굴과 몸뚱이를 가지고 그렇게 살기도 어렵겠다는 생각마저  정도로 싸구려 같은 년.

서준은 마치 벌주듯 격렬하게 자지를 박으며 머릿속으론 계속 델렌을 비하하고 깎아내렸다.


척척척척척!

라스트 스퍼트에 돌입하며 박는 속도가 마치 빨리감기를 한 것처럼 엄청나게 빨라진다. 방금 전까지는 남녀의 하반신의 접합부가 서로 부딪쳤다 떨어지면서  사이로 끈적한 액체가 물풀처럼 찐득하게 늘어졌는데, 속도를  내니 물이 아예 사방으로 튀었다. 주변으로 파바박 튀는 물이 어디서 나온 건지는 불보듯 뻔했다.


"천박한 걸레년."

 빨간 머리를 주인님이라 말하며 떠받들고 사는 주제에, 모텔에 끌려와 다른 남자에게 박히면서 애액을 흘리다 못해 아주 분사를 하는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영락없는 '암캐'였다.

"크윽, 이년이…. 허억, 허억…."

문제는  암캐의 보지가, 세상에서 가장 기분이 좋다는 것이었다.


처어억!

꿀럭꿀럭꿀럭….

"크으으, 흐으으…. 흐억, 허억…."

연애하던 시절에도 서준은 델렌과 섹스할 때마다 마치 혼이 빨려나가는 듯한 아찔한 쾌감을 받았다. 조임은 이루 말할 것도 없이 힘좋고, 사정할 때마다 무슨 빨판이라도 달린 것마냥 보지가 좆물을 쭈우욱 빨아당기니, 다 싸고 나면 다른 여자들에 비해 몇배는 기분 좋지만 그만큼 더 지친다. 불알이 텅텅 빈 느낌이 들 정도로 엄청나게 힘과 정력이 빨려나간다.


안 그래도 보지가 엄청난데, 심지어 둘은 속궁합마저 좋았다. 델렌도 인정한 점이다.

털썩!

섹스하는 내내 무겁고 강압적이던 서준이 멍한 얼굴로 델렌의 옆에 드러누웠다.

명기라는 말을 이런 보지에 쓰지 않으면 어디에 쓰겠는가. 남자의 혼까지 빨아먹는 보지에 겁도 없이 자지를 들이밀었으니, 다 빨아먹히고 나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정하면서 몸에 가득한 열기마저 싸질렀는지, 드러누운 서준은 더 이상 화내거나 인상을 쓰지 않았고, 그저 조금 허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드디어 입의 자유를 되찾은 델렌은 그 사이 얕은 오르가즘을 느꼈는지 서준처럼 멍하니 누워서 가쁜 호흡을 하며 쾌락의 잔재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존나 기분 좋다….'

오랜만에 겪는 생각이라는 것을 지워버리는 듯한 엄청난 섹스에 서준은 널부러져서 멍하니 있었고, 델렌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아무튼 둘의 속궁합은 상당히 좋았으니까.

둘은 그렇게 한동안 녹다운  채로 조용히 있었다.


스으윽.

잠시 시간이 지나고 이불 소리에 서준이 눈을 돌리니, 정신 차린 델렌이 슬그머니 몸을 움직여 상체를 서준의 하체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온갖 체액으로 더러워진 서준의 말랑말랑해진 자지를 입에 머금고 혀로 청소하기 시작했다.

"크으음…."

사이 좋았던 연인 시절에도 델렌은 자지를 빨아주는 것을, 서준은 자지를 빨리는 것을 좋아했다. 몸이 기억하는 그 황홀한 감각에 서준은 머리론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얌전히 델렌에게 뒤처리 펠라를 받았다.


벌떡.

뒤처리라는 말이 무색하게 다시금 힘을 되찾는 서준.


"아아…."

왠지 기뻐 보이는 델렌의 나직한 감탄.

다시금 욕망에 젖어드는 여자의, 암컷의 탁한 눈빛. 그리고, 음습한 기대감에 힘좋게 껄떡이는 자지.


욕망과 욕망의 만남.

섹스의 성립 조건은, 그것으로 더없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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