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5. 델렌과 흑백 (25)
철썩, 철썩, 철썩!
후배위로 살가죽 때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서준의 치골과 델렌의 엉덩이가 마구 부딪쳤다. 새하얀 엉덩이살이 빠른 템포로 부딪치는 수컷의 하반신에 의해 파도치듯 흔들렸고, 마치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에 파문이 일었다. 살가죽 부딪치는 소리와 동시에 애액으로 흠뻑 젖은 귀두가 자궁구에 쮸웁 쮸웁 키스하는 소리가 엄청나게 음란해서,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듯 격렬하게 헐떡이는 두 남녀 역시 청각적 자극을 받고 더더욱 흥분했다.
"아흐윽, 아… 아아! 흐아앙!"
"크훅, 후우, 훅! 흐으!"
모텔로 올 이성이 남아있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둘은 말 그대로 짐승처럼 이성을 잃고 붙어먹었다.
로맨틱한 분위기 따윈 없었으나 가식 역시 없었다. 둘은 느끼는대로 짐승처럼 신음하며 각자의 엄청난 쾌감에 몰두했고, 이따금씩 상대편의 흐리멍텅하게 풀린 눈동자를 마주칠 때면 말없이 묘한 눈빛을 교환했다. 서준의 눈빛에는 흥분과 미련, 간절함 등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델렌의 눈빛엔 쾌감과 재미 등 대체로 단순한 감정 뿐이었다. 그러나 델렌의 일차원적인 반응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아서 서준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처억! 처억! 처억!
마치 굳게 닫힌 성문을 때리듯 서준이 세차게 허리짓을 했다.그에 따라 델렌이 입을 벌리고 고개를 쳐들며 자지러졌다. 누가 봐도 아득한 쾌감을 느끼는게 눈에 보였다. 서준은 여전히 굳건한 그녀의 벽을 쾌감으로 녹여버리겠다고 다짐하며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움직였다.
질컥 질컥….
거친 몸짓이 있을 때마다 둘의 결합부에서 새하얀 액체가 흘러내리거나 방울방울 튀었다. 델렌의 애액은 투명한 색이었고, 하얀 액체의 정체는 한 시간도 더 전부터 몇 번이고 델렌의 아기집 깊숙한 곳에 싸질러 놓은 서준의 정액이었다.
정력이 끓어넘치는 십대 중후반도 아니고, 젊음의 끝자락 혹은 내리막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삼십대인 서준에게 있어 긴 섹스와 연속 사정은 분명 몸에 무리가 가는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너무나도 원했고, 반드시 해내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힘들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일종의 각성 상태인 것이다.
서준이 손을 뻗어 델렌을 움직이게 만들어 정상위 자세로 돌아왔다. 겉보기엔 둘이 합을 맞추는 것처럼 보여도, 보이지 않는 나름의 실랑이가 두어번 쯤 있었다. 후배위를 계속 하고 싶어하는 델렌을 서준이 살살 건드리며 몇번이고 요구했기에, 계속 거절하긴 어려운 델렌이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들어준 것이었다.
남녀 선호 체위를 조사해보면 보통 남자는 여자에 비해 후배위를, 여자는 남자에 비해 정상위를 더 좋아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델렌과 서준은 반대였다. 서준이 정상위를, 델렌이 후배위를 좋아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후배위는 서로 눈을 마주칠 일 없이 짐승처럼 쾌감만을 추구하며 헐떡일 수 있지만, 정상위는 아이 컨택 뿐만 아니라 키스도 할 수 있고 여러모로 감정 교류가 원활하다. 그래서 델렌과 감정 교류를 하고 싶은 서준은 꾸준히 정상위를 요구하는 것이고, 서준에게서 육봉의 쾌감만을 바라는 델렌은 후배위를 고집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상위가 되어 자신의 턴이 오자 서준은 곧바로 키스부터 했다. 델렌은 딱히 거부하지 않고 혀를 내밀어 호응해줬다. 섹스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기 때문에, 서로 어떤걸 좋아하든 간에 체위에 어울리는 동작과 행위에는 마땅히 호응해줘야 한다. 서준도 후배위를 할 때는 델렌이 원하는 대로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열심히 움직였다. 이젠 델렌이 서준에게 보답할 차례였다.
처억, 처억, 처억….
후배위 때보단 조금 느린 템포로. 하지만 적당한 빠르기와 깊이는 유지하고. 중간중간 키스도 하고, 젖가슴도 주무르고, 귀두로 스팟을 긁어주듯 문지르며 손으로는 클리를 괴롭힌다. 정상위라고 무조건 사랑이나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일단 정상위만의 쾌감을 한껏 선사한다.
서준은 무리하느라 몸도 힘들었고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긴 했지만, 델렌과 섹스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좋아서인지 욕심내지 않고 봉사하는 마인드로 임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마치 배고픈 아이부터 먹이는 것처럼 일단 쾌감을 선불로 지불한다. 자신 역시 말로 표현도 못할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쾌락을 받고 있었으므로 누가손해 보는 일은 없었다.
찔꺽찔꺽찔꺽찔꺽!
"아, 아아아! 흐아아아아!"
그리고, 델렌을 새하얀 오르가즘의 세계로 또다시 보내버린다. 스퍼트를 올려 최대 속도로 척척척척 박아주고, 엄지로 클리를 불나도록 비빈다. 전력질주를 하듯 빠르고 격렬한 움직임에 델렌이 십 초도 버티지 못하고 오르가즘을 맞이했다.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는 그 상투적인 표현이 딱 들어맞는 자세였다. 델렌이 고개를 위로 꺾으며 입을 떡 벌리고 움찔움찔 몸을 경련한다. 안쪽에선 보지가 미친듯이 수축하며 서준의 자지를 쥐어짰다. 서준 역시 델렌과 비슷한 타이밍에 절정에 이르며 다시금 델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씨앗물을 뿌렸다.
꿀럭꿀럭….
수 차례의 섹스로 서준의 몸은 이미 한계에 가까웠기에, 정액은 세차게 한 줄기 내뿜어진 후 몇 방울이 더 흘러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델렌 역시 반복되는 오르가즘으로 인해 바람마저 야릇하게 느낄 정도로 예민한 상태였기에 사정당하는 쾌감을 충분히 느꼈다.
"하아, 하아…."
간신히 호흡을 정돈하는 델렌과 서준. 점점 쪼그라드는 페니스를 뽑았으나 서준은 델렌의 위에서 나오지 않았다. 쾌감으로 푹 젖은 갈색 눈동자가 멍하니자신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델렌처럼 밝히는 여자조차 뻗을 정도로 길고도 진득한 섹스였고, 서준은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우며 정신력으로 한계를 극복하고 또 극복했다. 마법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일반인의 몸으로는 더 이상 섹스가 불가능했다.
델렌은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다. 쾌감으로 인해 이성이, 생각이 증발해버린 상태. 조금 있으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겠지만, 지금만큼은 정신이 없을 것이다.
서준은 지금밖에 기회가 없음을 직감했다.
이대로 끝나면 연락조차 할지 안할지 모른다. 지금 델렌은,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 빨간 머리에게서 모종의 섭섭함을 느끼고 술에 취해서 일탈을 저지른 상황이었다. 오늘이 지나면 오히려 더 의식적으로 자신을 피할 가능성도 염두해야 한다.
'미치겠군.'
하지만 정신이 없는건 서준도 마찬가지였다. 몸도 쓰러질 것처럼 지쳤고, 머리도 마약 같은 쾌감에 푹 절여져서 말할 때 혀나 안 꼬이면 다행일 정도였다. 좀 더 생각하고 준비해서 조금이라도 괜찮은 말과 목소리로 꼬셔야 하는데…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꿀꺽.
단 한 번의 기회.
"델렌."
서준이 고개를 낮추며 델렌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나직이 뭐라 속삭이는 소리는 오직 델렌만이 들을 수 있었다.
…
"크아아…."
독한 술이 서준의 목구멍을 넘어간다. 식도를 불태우는 듯한 독한 술에 절로 목소리가 나왔다. 술을 잘 먹는 편이긴 해도 마냥 즐기진 않는 서준이 이렇게 독한 술을 마시는 이유는 딱 하나. 델렌 때문이었다.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적막과 씁쓸함이 함께할 뿐….
하지만 서준은, 적어도 지금만큼은 델렌이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하고 싶었다. 그 이유는….
'흐음…. 근데 그거 알아요?'
그녀가 술이 아니고선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깊은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쁘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심지어 웃으면서 자길 좋아하는 남자의 가슴을 마구 후벼팠다. 순수악도 뭣도 아닌, 진짜 악의를 서준은 느꼈다.
'으음, 비교하자면 이런 거예요.'
서준의 절실한 고백. 술김에 다시 사귀자거나 하는 막나가는 고백도 아니고, 그저 다음에 시간이 되면 또 만나자는…. 조심스럽고 소심한 말. 그러나 그 심심한 말 속에는 엄청난 고뇌와 간절함이 들어있었고, 델렌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천재 달팽이와 게으른 독수리 같은 느낌?'
하지만 델렌은… 방금 전까지 오르가즘에 뒤집어지던 짐승 같은 모습이 상상도 가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평소의 모습을 되찾았다. 분명 풀린 눈과 풀린 표정으로 여운을 즐기고 있었는데,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니 얼굴이 싹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는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노력도 엄청나게 해도, 태생적 한계 때문에 절대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빠른 달팽이와 가장 느린 독수리가 속도 싸움을 한다고 생각해봐요. 애초에 비교 대상조차 안 되겠죠?'
서준은 마치 거미줄에 꽁꽁 묶인 채 거미에게 야금야금 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시큰시큰 아팠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서준은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동안 함부로 대했던 델렌이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고, 정신 차리고 보니 관계가 완전히 역전됐다. 사람을, 특히 남자를 좋아해서 항상 헤실거리며 흘리고 다니던 그녀에게서 언제부턴가 벽이 느껴졌다. 어쩌면 처음부터 델렌이라는 사람을 잘 몰랐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독수리가 게으르지도 않고, 재능과 노력 모두 천부적이어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독수리라면 어떨까요? 제일 느리고 게으른 독수리조차 못 이기는 달팽이가, 감히 최고의 독수리를 넘볼 수 있을까요?'
그가 자신의 입술을 엄지로 스윽 훑었다. 술냄새 이외의 냄새는 전혀 맡을 수 없었지만, 서준은 마치 아까 전 자신에게 입맞춤을 했던 델렌의 향기를 맡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쪽…. 후후, 사실 당신은 남자로서 괜찮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제겐 세계 최고의 독수리가 있는 걸요? 아, 그리고.'
마지막처럼 느껴지는 아련한 입맞춤에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하던 서준이 움찔하며 어느새 멀어지기 시작한 델렌을 홀린 듯이 보았다.
'저번에 저한테 그런 말 했었죠? 좆에 맛든 년은 답이 없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제가 잘못한 입장이었지만 그래도 굉장히 섭섭했어요. 수치심과 모멸감도 느꼈죠. 근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상의를 입고, 치마를 입고, 마지막으로 다소 구겨진 팬티에 다리를 집어넣고 쑥 올리는 델렌. 그녀가 서준에게 등을 보이는 자세로 한차례 다리를 비비적거리고 몸을 꼬며 말했다.
'사실 우리가 한 섹스도 되게 좋았지만, 압도적으로 뛰어난 사람과 지내다보니 아무래도 비교가 되네요. 충분히 만족했는데도 자꾸 주인님이… 주인님이랑 그 황홀한 자지가 떠올라요. 이제 전 그분 없인 살 수가 없어요. 그 누구도 그분을 대체할 수 없고요.'
사실 델렌은 처음부터 서준에게 답을 알려줬다. 처음부터 '주인님'이 최고고, 처음부터 그를 대체할 남자는 없다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이미 그녀의 옆자리는 차고도 넘칠 정도로 꽉 채워져 있었고, 엉덩이 한쪽도 못 들이밀 것이 뻔한데도 서준이 미련하게 옆자리를 노린 것이다.
'그럼 안녕~. 즐거웠어요.'
하지만 서준을 욕하긴 좀 그랬다. 포식자에게 사냥당하는 피식자를 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당하는 사람은 어쨌든 보기엔 불쌍한 법이다.
그는 그저 델렌이라는 예쁜 거미에게 잡아먹힌 희생양에 불과했다.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표적이 됐다.
문제는… 거미줄에 꽁꽁 묶여서 몸이 갉아먹히고 있는 이 와중에도 그는 자기가 먹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후루룩.
"크…. 아직, 아직이야…. 아직이라고, 델렌…."
잔에 남은 술을 한번에 들이킨 서준은 취기와 온갖 감정으로 흐리멍텅해진 눈빛에 끈기를 품었다.
"그렇게 잘난 계집애가, 여자가 썩어 넘치는 그놈에게서 얼마나 버티겠어."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완패 선언을 할만큼 압도적으로 밀렸으나 그는 승복하지 않았다. 분명 미련한 일이지만, 애초에 서준은 미친 듯이 미련한 남자였다.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진 싸움인데도 패배할걸 알고도 뛰어들었잖는가.
나름의 근거도 있었다. 델렌의 말을 들어보니, 빨간 머리 놈은 델렌과 경쟁이 될 정도로 괜찮은 여자들을 여럿 끼고 산다고 했다. 그 말인 즉 델렌이 온전히 만족할만한 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이었다.
예전에 연애하던 시절부터, 그녀는 확실히 욕심이 많았다. 그때는 완벽한 외모부터 둥글둥글한 성격에 속살까지 끝내주니, 얼굴값 한다 치고 원하는 걸 다 해줬다. 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사줬고, 언제나 신경써서 사랑을 표현해줬고, 종종 성질을 죽여가면서까지 온갖 배려를 다 해줬다.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처럼, 외모도 꽤 준수한 서준은 뭇 여자들이 꿈꿀만한 잘나고 헌신적인 남자였다.
그렇게 좋은 연애를 하면서도 욕심이 남은 건지 감히 양다리를 걸쳤다. 델렌은 최고의 여자인 만큼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인게 분명하다.
예전엔 이쪽이 당했지만, 이제는 입장이 바뀌었다. 골든 비치도 그만둔 델렌은 이제 자신의 온전한 나날을 빨간 머리 놈과 함께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가지 부족함이 발생할 것이고, 결핍과 갈망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쌓여가는 불만이 참지 못하고 터질 날이, 언젠가는 반드시 올 것이다.
생각보다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년이고 기다릴 수있다. 차라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게 나을 지도 모른다. 나이가 차면 찰수록 여자는 급해질 테고, 마음에 완전히 안 차는 남자도 점차 고려 대상이될 테니까.
'난 포기하지 않아.'
그가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델렌에게 보낸 톡을 열어봤다. 답장은 없었지만 읽었다는 표시가 남아 있었다. 아직 차단당하지 않은 것이다.
생각한 대로다. 분명 앞으로도 차단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괜히 톡을 보내는 대신 인내와 인내, 그리고 인내를 선택했다. 연락이 여전히 닿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됐다. 그러면 언젠간 지금처럼 그녀가 먼저 연락을 할 때가 올 것이다.
서준은 왠지 델렌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문득 피식 웃는다.
"미쳤어. 아주."
누굴 지칭하는 건지, 서준은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