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6. 미라의 여행 (6)
그 이후로는 단순했다. 섹스하고, 사정하고, 회복하는 동안 운전하고. 남자는 힘 자체는 좋았으나 나이가 있어서인지 바로바로 벌떡 서는 회복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미라에겐 딱 알맞았다.섹스도 적당히 함과 동시에 목적지까지 제 속도로 원활하게 갈 수 있었다. 남자는 처음엔 오래도록 즐기고 싶었는지 천천히 차를 몰았지만, 정력의 한계라는 슬픈 현실이 그에게 찾아왔고, 시간 끄는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정상적인 속도로 미라를 데려다줬다.
다행히 질척거리는 사람도 아니었다. 미라에게 미련이 남았는지 번호를 한두번 물어봤지만 거절당하자 더 이상 들러붙지 않았다. 미라는 깔끔하게 즐겨준 남자에게 감사의 의미로 뺨과 성기에 찐하게 키스해주며 반나절 간의 짧은 인연을 마무리지었다.
한껏 서비스를 받은 남자는 웃는 얼굴로 그녀를 목적지 코앞까지 바래다줬다. 차에서 내린 미라는 쌀쌀한 바람에 코트를 여미면서 다른 곳에 비해 유독 따뜻한 자신의 아랫배를 살짝 쓰다듬었다.
'역시, [씨받이] 스킬 덕분인가….'
그녀의 표정은 꽤 좋았다. 얼굴엔 살짝 피로감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그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오르가즘 이후의 나른함이었다. 미라는 정말 큰 만족감을 느꼈다. 원래는 까다로운 저주의 조건 때문에 다른 여자들에 비해 느끼기가 까다로웠는데, [씨받이] 스킬이 강화된 이후로는 느끼고 절정하는게 훨씬 쉬워졌다. 비좁은 차 안에서 헐떡이며 느꼈던 오르가즘은 그녀에게 기분좋았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즐기면서 [씨받이] 스킬에 대한 확신도 얻었겠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뿐. 강화된 [씨받이] 스킬과 [바람기] 저주의 조화였다.
"음…."
아직도 여운이 남아서인지 피부가 살짝 예민했다. 하지만 미라는 더 큰 목적을 위해 히치하이킹의 소소한 기쁨을 뒤로 하고 고개를 들어 목적지를 응시했다.
카페 앞.
미라가 향한 곳은 비록 지방이긴 하지만 지방 중에서도 나름 도시권에 있는 번화가여서 그런지 시골 느낌은 거의 없었다. 비록 고층 빌딩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시골 깡촌처럼 사방이 논밭으로 가득하지도 않았다.
"여긴가."
한지우. 아티스트.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알 것도 같았다. 지나와 어울려 놀았던 남자인 데다가, 심지어 지나가 드물게 직업을 강조할 정도면… 평범하게 예술을 하는 사람은 분명 아니겠지.
미라가 입술을 스윽 핥았다. 묘한 긴장감과 기대감이 섞여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어느 5층짜리 빌딩의 2층에 위치한 목적지, 카페는 반은 개방됐고 반은 룸으로 된 카페였다. 이미 사전에 연락을 했고 메세지톡을 통해 그가 어디있는지 알았기에, 미라는 서두르지 않고 일단 카페의 여자화장실로 향했다.
"흐음."
미라가 조용히 거울을 응시한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뭇 여자들이라면 반드시 가다듬었을 흐트러진 몰골이었다. 비좁은 공간에서 이뤄진 카섹스는 그녀의 차림새를 흐트러지게 만들었다. 평소처럼 빈틈없이 깔끔하게 묶었었던 포니테일은 현재 금색 실 같은 머리카락이 가닥가닥 빠져나와 있었고, 화장 역시 조금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미라는 머리를 만지지 않았다. 대신 흐트러진 화장을 조금씩 지우며 거의 민낯에 가까운 수준으로 만들었다. 얼굴 톤만 좀 정리하고, 입술만 살짝 발라 생기를 만든다. 놀랍게도 그녀의 얼굴은 오히려 더 괜찮아졌다. 흐트러진 화장을 정리만 했음에도 선녀 같은 모습이 된 것은 분명 타고난 원판의 축복이겠지.
살짝 흐트러진 머리, 얼굴은 단정하지만 옷은 살짝 주름져 있었다. 옷 입고 섹스했으면 더 흐트러져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으려나 생각하면서, 미라는 그녀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도도한 얼굴로 화장실을 나섰다. 살짝 흐트러진 차림새가 오히려 색기와 퇴폐미를 조성했다.
또각또각 부츠 소리가 이어졌고, 어느 문 앞에서 멈춰선다.
똑똑똑.
끼익.
"한지우씨?"
"아, 네. 안녕하세요."
룸 안에 있던 남자, 한지우. 그가 일어서서 미라를 맞이한다. 서로의 눈동자가 서로를 스캔했다.
한지우의 모습은 지나에게 들었던 그대로였다. 평균보다 살짝 큰 키. 살짝 마른 체형.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 평범한 외모. 36세의,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 하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한 외모에 비해 그의 눈빛은 분명 살아있었다. 내면의 뒤틀린 무언가로 인해 탁하면서도 욕망 어린 눈빛. 미라가 만족한듯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호의적인 미소를 보였다.
"흠. 괜찮네. 특히 눈빛이 마음에 들어."
"네? 눈이요? 주변에선 썩은 동태눈깔이라고 하던데."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흐음. 근데도 맘에 든다라…. 뭐, 칭찬으로 듣지요."
서로에 대한 탐색전.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무례하다고 느낄 정도로 노골적으로 상대방을 훑었다. 하지만 둘 다 거부감은 커녕 흥미진진한 분위기였다. 모처럼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인지 표정 역시 살짝 웃고 있었다.
….
"어때?"
서로에 대한 탐색이 끝나자 미라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고, 한지우는 웃는건지 뭔지 모를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앉으시죠."
…
"일단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로 아시는지를 봐야겠습니다. 기껏 계약해놓고 깨지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어서요."
한지우는 다소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고, 미라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한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녀는 면접관 같이 구는 지우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더 효율적인 얘기를 꺼냈다.
"저기, 지나랑도 그 일을 했어?"
"네? 음…."
지우는 지나 얘기를 할까말까 고민하는 듯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둘 사이의 접점은 지나였고, 지나의 추천으로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입이 무거워서 지나의 얘기를 아무데나 하고 다닐 생각은 없었지만, 지나의 소개를 받고 온 그녀의 절친에게까지 숨길 생각은 없었다.
"사실 계약 관계는 아니고, 그녀가 가끔씩 재미로 저와 어울려주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나와 찍은 '작품'들은 하나같이 제 명작 반열에 올라 있죠. 평가가 아주아주 좋습니다."
"으음, 잘 팔렸다고? 구매자들 취향이 좀 하드한가? 지나는 참 찐하게 노는 앤데 말이지."
"아. 그것까지 알고 계셨군요. 그럼 얘기가 편하겠네요. 그럼 직설적으로 물어보죠."
지우는 지나와 미라가 엄청나게 가까운 사이이며 친구 이상의 관계인 것은 알고 있었다. 겉보기완 달리 은근히 인간관계에 냉정한 지나가 미라의 얘기를 할 땐 목소리 톤부터가 달라졌으니까. 지레짐작할 순 없지만, 지우는 적어도 의자매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나와 상당히 가깝다는 것은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남자들이랑 얼마나 섹스하고 다녀요?"
어떤 면에선, 편하게 대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지우의 짐작대로, 미라는 불쾌할 법한 질문에도 전혀 동요가 없었다. 오히려 이제야 얘기가 좀 통한다고 말하는 듯한 후련한 얼굴이었다.
"지나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 뭐.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상대도 안 돼.걔에 비하면 난 그냥 숫처녀나 다름없을걸."
"뭐, 그렇죠. 지나를 이길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런지…."
둘이 눈을 마주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나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 탕녀였다. 그 귀여운 얼굴로, 남자들조차 기겁할 정도로 성욕에 불타는 모습…. 단순히 경험 횟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쾌감을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문란한 섹스가 늪에 빠지는 것이라면, 지나는 자기가 늪 그 자체가 되려고 한다. 일반적인 사람은 커녕, 어지간한 섹스 중독자들도 이해 못할 경지(?)에 올라 있는 것이다. 밥을 많이 먹으면 배불러서 식욕이 억제되는 것처럼, 섹스도 많이 하면 만족할 법도 하건만…. 지나는 아무리 기분 좋게 오르가즘에 도달해도 금세 또다시 쾌감을 탐하는 무서운 성욕과 회복력을 갖고 있었다.
"아무튼, 이건 평범한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기분 좋아지고 싶다면 다른 일을 찾아보시고…."
"저기, 지나 얘기를 내가 왜 했겠어. 다 알고 왔다고요, 아저씨."
"음."
"사실 그쪽이 찍은 '작품'도 좀 알아보고 왔는데. 생각보다 괜찮더라고."
미라가 싱긋 웃으며 말한다.
"물론 난 지나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걔한테 추천받을 정도로… 튼튼한 여자야."
"흐. 튼튼하다…."
지우는 그 단어가 재밌는건지 만족스러운 건지 피식 웃었다. 미라는 룸 안에 들어온 이후로 계속해서 싱긋 웃어보였다. 이제는 턱을 괴고, 마치 끼를 부리는 것처럼 지우를 살짝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는다. 지우도 몸 건강한 남자였기에 그 모습에 혹했으나, 이 자리는 데이트 자리가 아니었기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목을 한 차례 가다듬었다. 그가 바로 넘어가지 않자 미라는 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나도 처음부터 준비하고 온 거야. 이력서도 있어."
"응? 이력서?"
지우가 처음으로 궁금증을 내비쳤다.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반응한 것이다. 지우가 몸담고 있는 분야는 분명 이력서 따위로 증명할만한게 없었다. 흥미가 생긴 그가 묻는다.
"이력서요? 이력서라…. 으음. 어디 한 번 보여주세요."
"그럼, 준비할 테니까 눈 감고 3초만 세봐. 실눈 뜨면 안 돼?"
"눈을… 감으라고요?"
미라가 자신만만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뭘 준비했길래…. 지우의 머릿속이 궁금증과 흥미로 가득찼다. 요즘은 일이 별로 없어서 몇 주째 일상이 지루하고 무미건조했는데, 모처럼 관심 가는 일이 생기니 그도 달가운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기꺼이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셋."
스르륵, 스륵.
사라락!
익숙한 섬유 소리. 옷을 만지는 소리였다.
옷을 입는 건가? 아니면, 벗는…? 뭐지?
두근두근.
'하, 두근거려? 내가? 거 참….'
지우는 자신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자각하고는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물론, 미라는 외모만 봐도 대단한 여자다. 방금 전 룸카페를 열고 들어오는 순간, 분명 땅거미가 지는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햇빛이 환하게 내리쬐는 느낌을 받았다. 그 밝고 예쁜 색의 금발부터 시작해서 그녀는 모든게 빛이 났다. 예술적인 이목구비와 순백의 피부, 그리고 도도해 보일 정도로 자신감 가득한 태도.
사실 지우는 그런 미녀 특유의 자신감에 익숙했다. 얼굴값 하는 반반한 계집애는 충분히 많이 겪었다. 하지만 미라는 그런 잘난 여자들 중에서도 지나와 함께 투톱으로 망설임 없이 뽑을 만큼 대단한 외모를 가진 여자였다. '작업'을 하면서 숱한 미녀를 겪었고, 그만큼 면역이 생긴 지우의 심장을 마구 흔들어 놓을 정도로 말이다.
"자! 눈 떠도 좋아."
"…."
눈을 떴을 때,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을 본 지우는 결국….
"허."
미소지을 수밖에 없었다. 감탄으로 가득한 미소를.
….
고작 3초 사이에 옷을 다 벗고 부츠와 검은색 밴드스타킹만 신고 서있는 미라는, 자신의 흐트러진 알몸을 지우에게 한껏 과시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당연히 다리 사이였다. 그곳에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예쁘고 깨끗한 무모(無毛)의 둔덕이 있었고, 그 아래에 살짝 벌어진 분홍빛 꽃잎 속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남자의 허여멀건 정액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큼지막한 허연색 방울 한 줄기가 허벅지 안쪽을 타고 스물스물 천천히 내려간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온몸에는 불긋불긋한 꽃이 잔뜩 피어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전신이 키스마크로 가득했다. 어깨, 젖가슴, 배, 허리, 허벅지… 온몸을 잔뜩 장식한 발간 색의 꽃잎들.
지우의 눈에는 참으로….
황홀한 광경이었다.
"……."
모처럼의 절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지우에게 미라가 묻는다.
"내 이력서, 어때?"
잠시 말을 잊었던 지우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에게 통보한다.
"합격."
"예에~."
쪼옥.
"합격 기념 키스. 할거지? 응?"
"물론이지."
나신으로 서있던 미라가 사뿐사뿐 다가와 허리를 숙여, 앉아 있던 지우에게 키스한다. 지우는 감사히 그 성스러운 키스를 받는다. 둘은 음란하게 딥키스를 하며 중간중간 대화를 나눴다.
"으음, 담배 냄새가 살짝 나는데?"
지우의 질문에 미라가 혀를 몇 번 더 섞어준 후 대답한다.
"우음, 쪽. 그래? 난 담배 안 피는데."
담배를 안 피는데 입에서 희미한 담배 냄새가 난다는 것은…. 그 말뜻을 이해한 지우는 더 깊은 만족감을 보이며 거칠게 표현한다.
"으음, 하, 씨발…. 너 진짜 존나게 맘에 든다. 날 꼴리게 할 줄 알아. 너 진짜 존나게 야해. 발랑 까진 년. 음탕한 년. 하아, 사랑스러운 년…."
"흐응. 쪼옥…."
미라는 대답 대신 눈웃음치며 키스에 한동안 열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