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6. 미라의 여행 (7)
"후우, 후…."
순식간에 후끈해진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특히 지우는 여전히 흥분이 가시질 않는지 얼굴이 빨갛게 올라와 있었다. 그나마 좀 차분한 미라는 위아래로 속옷을 챙겨 입고 코트를 어깨에만 살짝 걸친 상태였다. 팔도 안 넣었고 제대로 여미지도 않았기에 코트 사이로 보이는 깨끗한 순백의 피부와 가슴골의 절경, 눈을 아래로 내리면 보이는 쫙 빠진 다리가 지우의 눈을 즐겁게 했다. 그녀는 마력이 있는 여자였다. 그 어떤 남자라도 소유욕을 갖도록 만드는 마성을 가진 여자….
지우는 미라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그는 자기 품에 제 발로 안겨든 이 여자를 확실히 손에 넣고자 당장의 충동을 참으며 계약을 마저 진행했다.
"보자. 계약은 다 됐고…."
"으응? 계약서 없어? 구두 계약이야?"
"어. 면접만 통과하면 끝이야."
"심플하고 프리하네."
둘은 몸을 섞으면서 금세 친해진 건지 벌써부터 말투에서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익숙한 연인 사이나 동거하는 남녀 사이 같았다. 실제로는 만난지 한 시간도 안 됐음에도.
"내 일이 뭔지 안다면서. 그래놓고 무슨 계약서 같은 소리야."
"그게, 사실 아주 정확히는 몰라. 그냥 그 작품들만 좀 봤던 것 뿐이야."
"허, 아깐 나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굴어놓고…? 설마 면접 전략이었던 거야? 흐으, 당했군…."
"히힛."
지우가 속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불쾌함 따위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그는 껄껄 웃다가 이내 '일'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한지우, 36세, 아티스트.
그가 정확히 하는 일은… '업로더'였다. 아는 여자부터 시작해서 섭외한 여자 모델, 배우 등을 통해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서 이곳저곳에 업로드를 하는 것이었다. 일반 업로더와 다른 점은 취미가 아니라 엄연히 수익을 창출한다는 점이었다. 온갖 음지의 사이트, 음지의 SNS 등에 짤막한 홍보 영상과 짤방을 올리고, 자신이 운영하는 개인 블로그로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그리고 유료 후원자들에게 맛보기용이 아닌 진짜 '작품'을 공개하는 방식이었다.
분명 제대로 된 직업은 아니었고, 그래서 계약서 역시 존재할 수가 없었다.
미라는 지나에게 분명 성공한 아티스트라 들었기에 그의 얘기를 듣고서 조금 당황했다. 아무리 들어봐도 성공했다고 말하기엔 좀 모자란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 후, 그의 큰 수익과 인지도를 듣고는 납득했다. 그를 고정적으로 후원하는 '큰 손'도 여럿 있었고… xx닷컴, oo넷 등 여러 성인사이트에서 상당히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 제의를 해왔단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소속 없이 자유로운 상태여야 작품이 잘 뽑힌다며 스스로 이런 불안정한 위치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것은 말하자면작품에 대한 신념 같은 것이었다. 미라는 어떤 분야던 신념을 가졌다는 점에서 지우가 다시금 마음에 들었다.
그의 경쟁력은 품질과 실력이라고 한다. 그는 신기할만큼 수준 높은 여자를 잘 구해왔고, 촬영 기술 역시 좋았다. 전문가의 화려한 테크닉이라기보다는 사람을 꼴리게 할 줄 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결을 물어보니, 좋아하는 일을 하니 그만큼 잘 된 것 같다고 한다. 옛날부터 성인물 촬영에 흥미가 많았고, 일을 즐기면서 해서 그런지 실력에 비해서 작품이 더 잘 뽑히는게 아닐까 싶단다.
"흐음."
대강 이야기를 들은 미라는 납득하면서도 한편으론 왠지 익숙한 느낌에 피식 웃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어쨌든 그는….
다른 남자의 흔적에 환장을 하며, 여자의 음란한 모습을 촬영하여 기록물로 남기고 싶어한다.
그 특이한 두 개의 취향은, 분명 그 남자도 갖고 있었다. 사랑하는 그 남자도.
"헤."
미라가 순간적으로 어떤 남자를 떠올렸고, 저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뭐야 그 웃음은."
"그냥, 재밌어서."
"기분 좋아보이니 다행이네. 일은 즐기면서 해야 잘 되는 거니까."
이야기는 어느 정도 진행됐고, 둘의 분위기는 다소 침착해졌다. 잠시 간의 침묵 후, 지우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아, 맞다. 이제 슬슬 똑바로 할 때가 됐지?"
"응? 뭐가?"
"상하관계 말이야."
지우가테이블 위에 있던 미라의 손을 가져가 손등을 슥슥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진지한… 다소 느끼한 눈빛으로 미라를 응시했다. 미라는 처음에 봤던 그 무미건조했던 얼굴에 이렇게나 감정이 드러나는게 생각보다 보기 좋다고 생각하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이제 나는 네 고용주고, 넌 내 지시를 받는 고용인이잖아. 엄연히 상하관계인 거지. 그럼 위치에 맞게 말투를 좀 바꿔볼까?"
"음……. 그럼, 그럴까요?"
미라가 별 고민 없이 지우에게 존대를 했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미라가 지우에게 반말을 했고 지우는 미라에게 존대를 했다. 그때와는 말투가 반대가 됐다. 하지만 둘의 분위기는 여전히 어색함이 없었다.
"호칭도 정할까. 사장님이나 오빠나 뭐 아무거나. 너 편한대로 해."
"으음…."
잠시 고민하던 미라는, 사실 처음부터 정했던 호칭을 그에게 꺼냈다.
"그럼… 자기. 자기라고 부를게요."
"오…. 생각도 못한 호칭이지만, 느낌이 괜찮은데."
"다행이네요. 그럼 자기, 우리 키스나 한 번 더 할래요?"
"좋지."
둘의 입술이 다시금 맞닿았다. 전 남자의 흔적이었던 희미한 담배 냄새는 이미 사라져 있었지만, 그만큼 미라의 속살 냄새가 진하게 느껴졌다. 지우는 이것도 이것대로 좋다고 생각하며 키스에 열중했다.
….
'자기'라는 호칭. 그것은 미라가 용사에게 쓰는 호칭이었다.
…미라는 다른 여자들과 확실히 달랐다. 다른여자들이었다면 용사에게 쓰는 호칭을 절대 다른 남자에게 허락하지 않았겠지만, 미라는 예외였다. 비록 저주 때문이지만 어쨌든 마음도 주기 때문에, 바람기 대상을 호칭으로 차별하지 않는다. 똑같은 호칭으로 불러주며 진심으로 대한다.
이번 여행에서 미라가 원하는 목적은 바람기 저주를 빠르게 발동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최대한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호칭은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미라는 벌써 그 다음을 준비해 놓았다.
"만난지 얼마 안됐는데 이런 말 해도 될진 모르겠지만…."
미라가 운을 띄우자 키스하던 지우가 잠시 입을 떼고 미라와 눈을 마주쳤다. 말하라는 눈빛에 미라가 하던 말을 이어서, 달콤하게 속삭인다. 그의 눈을 똑바로 보고, 진심을 담아….
"사랑해요."
"하… 미치겠군. 나도 존나게 사랑해."
둘의 입술이, 자석처럼 다시금 딱 달라붙었다.
…
카페에서 나온 둘은 지우의 승용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오늘만 세 번째로 조수석에 앉는 미라는 현재 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우우웅….
오늘 그녀는 똑같이 조수석 자리에 앉았지만, 세 번 다 각자 다른 것을 경험했다. 첫 번째 조수석에선 회장과 대화조차 없이 입 닫고 가만히 있었다. 두 번째 조수석에선 정반대로 트럭을 모는 아저씨에게 마구 교태를 부리고 유혹하며 결국 몇 번이고 따먹혔다. 세 번째 조수석인 지우의 조수석에선….
위이잉, 위이잉….
"아음… 흐읏! 하으…."
"최대한 참아봐. 안쪽에서 찌릿하게 퍼지는 쾌감을 꾹꾹 억누르며 열심히 참지만, 어쩔 수 없이 중간중간 조금씩 새어나오는 신음. 그리고 중간중간 살짝살짝 무너지는 표정. 탁한 눈동자와 한껏 찡그려진 눈썹…. 그 얼굴이 남자들한테 얼마나 꼴리는지 모를걸."
미라는 현재 다리를 살짝 벌린 채, 보지 속에 진동하는 딜도를 넣고 있었다.
영상 촬영 기술도 엄연히 예술의 분야였다. 그리고 한지우는 예술가로서의 자질이 있었다. 그 좋은 재능을 전부 포르노에 쏟아붓는게 누군가에겐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작품 얘기를 할 때 반짝이는 그의 눈빛은 미라의 마음을 움직였다. 섹스의 즐거움을 아주 잘 아는 그녀에게 있어 한지우는 능력자였으니까.
축구 좋아하는 애들이 축구 선수를 동경하고, 게임 좋아하는 애들이 프로게이머를 동경하는 것과 같았다. 섹스를 아주 좋아하며, 자신의 음란한 모습을 사랑하는 용사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미라에게 있어 한지우의 능력은 분명 큰 매력이었다.
운전석에서 운전 중인 그는 멘트부터가 달랐다. 마치 지도를 해주는 것처럼, 미라가 어떤 자세인지 또 어떻게 해야 더 꼴릿한지를 낮은 목소리로 코치하고 있었다.
"흐으읏!"
야릇한 분위기. 잠깐 방심한 사이에 얕은 절정을 느낀 미라가 몸을 팍 움츠린 후, 이내 파르르 떨었다. 누가 보면 소변이라도 지린 줄 알겠지만, 그녀의 보지 안에 뭐가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지우는 이거 물건이다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어우, 생각보다 훨씬 잘 느끼네. 확실히 넌 평범한 여자는 아닌 것 같아. 그래서 마음에 들어…. 좋아, 이제 빼도 돼."
"응, 으응…."
미라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작은 파도에 휩쓸려서 멍한 얼굴이었다. 자기도 왜 이렇게 잘 느끼는지 모르겠다는 듯….
"우리가 함께할 시간은 2주 안팎으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야. 적어도 그 기간 만큼은 한 명의 배우로서 노력하도록 해. 물론 넌 프로는 커녕 경험 있는 아마추어조차도 아니니까 너무 큰 것을 바라지도 않아. 초짜 특유의 풋풋함과 열심히 하려고 애쓰는 기특한 모습을 담는게 이번 작품의 목표니까, 열심히 임하는 자세가 제일 중요해. 알겠지?"
지우는 다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으나, 손으로는 미라의 머리부터 뺨을 쓸어내리고 턱을 간질이다가 입술을 엄지로 슬슬 만져댔다. 분위기가 달달하고 간질간질한 것이 꼭 연인처럼 구는 꼴이라 다른 여자였으면 싫은 기색을 보일 법도 한데, 미라는 이런 분위기가 취향이었기에 다소 몽롱해진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이 입술 안쪽으로 들어오자 그녀의 입 안에 침이 돌았다. 멍하니 있던 미라가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핥고 빨았다. 지우는 한동안 그녀의 입 안에 머물다가 손을 빼고 다시 한 번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지우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은 분홍빛 기류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