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6. 미라의 여행 (9)
"으음…."
감긴 눈이 뜨이며 눈꺼풀 사이로 햇살이 밀려들어온다. 어제 밤을 불태운 몸은 더 자자고 유혹했고, 머리는 노곤노곤한 감각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몸의 주인인 미라는 다시 이불을 끌어올리는 대신 똑바로 누워있던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아, 일어났니?"
진작에 일어났던 지우는 화장실에서 나오며 미라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이미 씻은건지 머리카락이 촉촉했고 입에는 칫솔을 물고 있었다.
"오늘 일정이 있긴 한데 일은 아니니까 지금 안 일어나도 돼. 더 잘래?"
"…."
도리도리.
미라는 누가 봐도 더 자고 싶어 보였으나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난 마저 씻을 테니까 5분 이따가 일어나."
"응…."
지우가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미라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로 몸이 노곤노곤하다니. 신기해. 이런 느낌, 도대체 얼마만인지….'
물론 어제 하루 종일 차를 탔고 밤에는 섹스하면서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쌓인 것은 맞지만, 마나 유저가 다음날까지 회복을 못하는건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약간이나마 노곤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이런 현상에는 이유가 있었다. 저번에 아리스가 피곤한 일에 휘말렸을 때의 얘기를 듣고 한 번 따라해본 것이다. 아리스의 얘기라는 것은 당시에 마나의 흐름을 조율해서 수면제를 몸 속 깊숙히 받아들이니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잠들었고, 또 그 기운을 배출하지 않고 잔류시키니 한동안은 일반인들과 비슷한 길이로 숙면을 취했다는 것이었다.
마나 유저는 원래 서너시간만 자도 몸이 충분히 만족할만큼 숙면을 취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을 할 땐 좋은 점이 많았다. 하지만 이쪽 세계는 결국 사람들과 함께하는 세계였다. 남들이 잘 때 자고, 움직일 때 움직이는게 여러모로 편했다. 또, 마나 유저의 몸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처음부터 초인이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루에 여섯 시간에서 많게는 아홉, 열 시간을 푹 자는 것의 기분 좋은 나태함은 용사와 여자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일종의 쾌감이었다.
아리스의 얘기를 듣고 미라와 다른 여자들은 여러 가지 연구를 했고, 굳이 수면제 없이도 마나를 통제하여 긴 시간을 잠드는 법을 찾아냈다. 그 결과 여자들은 집에 있을땐 굳이 억지로 오래 자진 않았지만, 밖에서 일반인들과 함께할 땐 이 방법을 사용했다. 아무래도 함께 하는 파트너와 활동 시간을 맞추는게 좋으니 말이다. 아무튼 미라는 이번이 처음이었고, 오랜 시간을 잠자는 것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푹 자고 일어났을 때의 노곤노곤한 기분을 느꼈다. 신기한 감정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런 기분을 느꼈던 시절은 지금보다 한참이나 어렸을 적이었으니까.
"우우웅…."
아무튼 기분은 좋았다. 어젯밤 열락의 잔재가 특히 아랫배와 다리 사이에 집중적으로 남아 있었고, 아마 만지면 다시 예민해져서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올 것이다. 적당한 탈력감은 마치 욕조에 몸을 담고 있는 것처럼 좋은 느낌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노곤하다….
기분 좋다….
….
"미라?"
"어? 어, 으응."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노곤함이 반가워 이불 속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에 지우가 화장실에서 나와 미라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일부러 게으름을 피웠다지만 지우가 오는 줄도 몰랐던 미라는 겉으론 티내지 않았지만 내심 놀란 상태였다.
"씻는다며."
"응."
미라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아무리 잠결이었다지만 언제나 여유로운 분위기로 생글생글 웃음기를 머금던 미라가 이런 표정을짓는건 드문 일이었다. 용사나 다른 여자들이 봤으면 신기해 하며 사진이라도 찍었겠지. 하지만 일반인인 지우에겐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고, 그는 별 반응 없이 자기 할 일을 했다.
화장실에 들어선 미라는 일단 손을 씻으며 거울을 봤다. 전날 밤을 불태워서인지 조금 피곤해 보이던 지우와는 달리 미라는 전혀 달라진게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남녀의 차이도 있겠지만….
"흠."
화장실은 원룸답게 별로 넓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좁지도 않았다. 지우와 둘이서 샤워해도 충분할 정도였다. 화장실의 크기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드르륵.
거울이 달린 미닫이 벽장을 여니 여러 가지가 눈에 띄었다. 린스, 에센스, 트리트먼트, 고데기, 클렌징 크림….
벽장 밖에있는 것은 평범한 남자들의 화장실처럼 비누와 샴푸, 샤워타월이 전부였다. 하지만 벽장 안에는 수건과 면도기 뿐만 아니라 여자들만 쓰는 화장품이나 세면용품들이 있었다. 그 말인 즉, 이 집에 온 여자는 자기가 처음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한지우의 야릇한 직업과 겪을 것 다 겪은 나이를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지만….
"……."
미라는 말없이 그것들을 보다가 어깨를 한 차례 으쓱거렸다. 지우가 '바람기' 스킬의 대상이기 때문에 그의 옆자리를 노리고는 있지만 지금 당장 사귀는건 아니니까 예전 일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귀찮게 구는 여자로 찍혀서 악영향만 끼치겠지. 그리고 항상 용사라는 정실(?)을 두고 양다리를 걸치는 미라가 남자의 여성 편력에 잔소리를 할 입장은 아니었다.고작 미용 용품 나온 것 가지고 문란하다고 확신하기도 좀 그렇고.
'차라리 잘됐네. 이렇게 된거, 잘 쓸게.'
미라는 물로만 씻어도 어지간한 관리 받은 여자들보다 더 상태가 좋았지만, 그렇다고 미용에 무심한건 아니었다.
쏴아아….
….
….
딸깍. 딸깍.
끼이익.
모니터를 보고 마우스를 클릭하던 지우가 문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라는 20분 정도만에 샤워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는 중이었다. 화장실은 부엌 겸 출입구 쪽에 있었기에 방 안쪽에 있는 지우에겐 시야의 사각지대였고, 그의 눈에는 벽 뒤에서 맨다리 하나가 쑥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뒤이어 반대쪽 다리와 함께 나오는 미라의 전신이 완전히 그의 눈에 다 들어왔다.
"크음…."
"응?"
표현 그대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미라의 잘 빠진 자태에 지우가 헛기침을 했다. 미라는 그를 쳐다보며 천진난만하게 웃음기를 머금었다.
"뭐야. 얼굴이 빨개. 설마 어제 그렇게 끈적하게 뒹굴어놓고 이제와서 부끄러워 하는 거야? 막 구석구석가지 핥고 빨아놓고?"
"…하."
미라가 다리를 움직여 지우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제 딴에는 볼 거 다 봐놓고 순진한 척하냐고 물어보는 거겠지만….
'가식인가?'
지우는 혼란스러웠다. 진짜로 순진한 건지 아니면 그런 척하는 건지. 그는 일단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말했다.
"넌 네가 남자한테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니…."
"으음?"
"흐… 끼부리는건진 모르겠는데, 너 무방비하게 그러고 있으면… 존나게 꼴린다고."
"그래에?"
미라가 말꼬리를 길게 늘이면서 똑바로 마주보던 눈동자를 아래로 내렸다. 츄리닝 바지를 뚫고 나올듯이 불끈 힘을 받은 지우의 물건이 그녀의 눈에 아주 잘 보였다. 그는 살짝 마른 체형과는 정반대로 꽤나 튼실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어젯밤 그와 몇번이고 연속해서 몸을 섞었던 미라는 아직도 그 감촉이 선명했다. 마치 맛있는 것을 눈앞에 둔 것처럼 입술을 스윽 핥으며 입맛을 다신다.
"그러면…."
미라가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지우에게 손을 뻗는다. 지우의 손목을 잡은 미라는 그대로 그 손목을 자기 쪽으로 당긴다. 지우는 마치 홀린 듯이 미라의 손에 순순히 이끌렸고, 그렇게 그의 손은….
몰캉.
마치 지우의 물건처럼, 생각했던 것보다 더 탐스러운 크기의 젖가슴에 도착했다. 절대 작지 않은 그의 손이 미라의 가슴에 얕게 파묻혔다. 옷 위로 본 것보다 더 큰 그녀의 가슴…. 어젯밤에는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정신없이 탐했다. 그 황홀한 감촉이 다시금 찾아오자 지우가 감탄의 숨결을 내뱉는다.
"후후, 즐겨도 돼."
"하."
미라의 허락. 어젯밤의 정사로 지쳐 있던 그의 몸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안 그래도 불끈 서있던 자지가 거의 최대치로 흥분을 받고 아플 정도로 팽팽하게 발기한다. 지우가 벌떡 일어서서 미라에게 다가가 그녀를 침대 쪽으로 밀었다.
"…미치겠다."
이른 아침. 침대 위에서 다시금 어젯밤의 열락이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