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6. 미라의 여행 (26)
뚜벅 뚜벅, 걸어오는 발소리.
한 마리 시정마가 되어 미라를 열심히 흥분시키던 지우. 그리고 암말을 자처하며 발정이 나기 시작한 미라. 흥분하던 둘의 귀에 점차 그 발소리가 선명해진다.
둘 다 막상 떡치기 시작하니 시정마고 나발이고, 언제 올지 모를 남자를 기다리느니 그냥 한 번 질펀하게 뒹굴고 싶었다. 하지만 원했던 것보다도 한 박자 빠르게 사람이 오자 둘은 약속한 것처럼 동시에 동작을 멈췄다.
이미 늦었을 수도 있다. 둘은 그동안 퍽퍽퍽 열심히 떡을 치고 있었고, 정체 모를 누군가가 문을 연 후에야 멈췄기에 낯선 누군가가 소리를 충분히 들을 만했다. 둘은 각오했으면서도 묘하게 긴장이 되는 건지 서서 뒤치기하던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고, 귀를 쫑긋 세워 발소리에 집중했다.
똑. 똑.
운동화를 신은 건지 발을 내딛는 소리가 가볍고 깔끔하다. 신발 소리도 그렇고 발걸음의 느낌도 그렇고 왠지 꽤 어린 남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둘의 머릿속을 동시에 스쳐지나갔다.
….
소변기에 소변을 보는 건지, 발소리가 한동안 멈췄고 환풍기 돌아가는 낮은 소리만 우우웅, 조용히 들렸다.
침묵 후, 다시….
똑, 똑.
솨아아.
세면대를 사용하는 소리. 손을 씻는 모양이다. 손을 씻고 나가려는 것이다.
'잠깐…. 왜 숨으려는 거야.'
미라는 저도 모르게 들키지 않고자 숨을 죽인 것을 자각했다. 미라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서 넣은 채로 숨죽이고 있던 지우도 똑같은 것을 깨달았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다.
피식.
눈이 마주치고, 동시에 실소한다. 그리고….
츠걱.
아주 심플한 한 번의 살소리. 섹스해본 사람은 누구라도 한 번에 알아듣는, 보지를 깊숙히 쑤시는 소리. 살과 살이 부딪치고, 자지가 보지 속살과 보짓물을 가르면서 자궁구에 입맞출 때 나는 그 음탕한 키스 소리. 미라는 물이 많았기에, 그 음탕한 소리를 내는게 너무나도 쉬웠다.
….
침묵.
세면대 물소리는 진작에 멈췄다. 그러나 나가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미라가 미소를 짓는다. 아까 지우를 흥분시킬 때 말했던 것처럼 알몸으로 뛰쳐나가서 막무가내로 박아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걸 진짜로 할 리가 없잖아. 대신 다소 노골적인 유혹 정도는 할 수 있다. 우리가 저쪽의 발소리에 집중했다면, 저쪽은 이쪽의 섹스 소리에 집중하겠지.
'쉬잇.'
미라가 고개를 돌려 지우를 보며 입술에 대고 검지를 세워보인다. 조용히 하라는 뜻과 가만히 있으라는 두 가지 뜻이 담긴 신호였다. 지우가 눈치껏 알아먹고 고개를 끄덕이자 미라가 뱀처럼 느리고 유연하게 허리를 놀렸다.
…찌걱.
"하아…."
추운 겨울에 차가워진 손을 녹이려 입김을 부는 듯한, 그런 깊은 숨소리. 워낙 소리가 작기 때문에 평소라면 어지간한 다른 소음에 묻혀갔겠지만, 화장실 내부는 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상당히 조용한 상태였다. 여자의 숨소리가 분명한 미라의 작은 날숨이 바깥의 누군가에게 확신을 준 모양이다.
똑, 똑, 똑.
발소리가 빠르게 멀어진다.
도망치는 건가?
허탕인가?
둘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른 전개가 벌어졌다.
끼익.
화장실의 문이 열렸다. 두꺼운 유리문이 열리면서 바깥의 소음이 적막하던 화장실 내부를 채우기 시작했다. 은근히 중독성 있는 쇼핑몰의 테마곡과 더불어 호객하는 직원들의 목소리, 그 외 이런저런 수십 가지 소리가 귓속으로 들어왔다.
원래라면 문이 닫히면서 몇 초 안에 끝나야 할 그 소음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문을 활짝 열여젖혀서 열린 상태로 고정한 것이었다.
스윽… 스윽… 스윽.
'아!'
머리 좀 쓰는데?
미라가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 뒤쪽의 지우에게 입모양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했다.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한 지우가 뭐? 라고 입모양으로 말하자 미라가 한 글자씩 또박또박 전달했다.
'천, 천, 히, 박, 아, 요.'
입술을 움직이면서 한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반대쪽 검지로 그 안을 쑤시는, 섹스를 뜻하는 수화(?)까지 동원하자 지우가 제대로 알아들었다.
쯔윽, 쯔윽, 쯔윽….
지우가 느린 템포로 피스톤 운동을 한다. 3초에 한 번 박을까 말까한 나무늘보 같은 속도로 쑤시자 깊숙한 곳에서 보짓물이 늘어지는 찐득한 소리가 제대로 들렸다. 천천히 박아달라는 주문은 처음인데, 한편으론 이것도 의외로 무드 있고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의외로 기분이 좋아서 딴 생각을 하던 미라가 다시 청각에 집중했다.
'온다.'
지우는 갑작스레 닥친 소음 때문에 제대로 못 들었지만, 하프엘프인 미라는 귀를 쫑긋거리며 시끄러운 소음들 사이로 도둑고양이처럼 사뿐사뿐 움직이는 미세한 발소리를 감지했다. 소리를 최대한 죽이려는 의도가 노골적인 걸음걸이였다.
상황을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밖의 누군가는 우연히 이곳으로 소변을 보러 왔다가 여자 목소리와 떡치는 소리를 들었다. 1번 칸에서 남녀가 떡친다고 확신하고는 화장실 출입문을 열어 바깥의 소음으로 이곳을 시끄럽게 만든 뒤, 최대한 조용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아마 훔쳐보거나 하려는 깜찍한 계획이겠지.
솔직히 확신은 할 수 없었다. 그냥 훔쳐보거나 도촬만 하고 도망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음으로자신을 숨기는 그 영악한 행동에서 어떤 집념과 음심 같은게 느껴졌다. 적어도 도망치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미라는 자신의 직감을 믿고 과감하게 그를 유혹하기로 했다.
일단 지우에게 다시 입모양과 수화로 소통하여 수신호를 한 가지 정했다. 계속 뒤치기 자세로 떡치다가, 미라가 손목이든 다른 부위든 지우의 몸을 꼭 붙잡으면 마구 처박아 달라고. 들켜도 상관 없으니, 아니 무조건 들키도록. 이미 시정마 얘기로 미라에게 껌뻑 넘어간 지우는 미라가 알아서 잘 하겠지 생각하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쯔걱… 쯔걱….
계속 느린 템포로 섹스한다. 밖의 누군가는 떠날 기색이 없었다.
틱.
느릿느릿 박히는 야릇한 쾌감을 즐기면서 청각에 집중하던 미라가 어떤 소리를 감지했다. 플라스틱 재질로 추정되는 가볍고 딱딱한 것이 바닥에 아주 가볍게 닿는 소리였다. 사르륵 거리는 옷 소리와 종합하여 추측해보면, 아마 바닥에 엎드려서 칸막이가 못 가리는 발 부분을 보는 것 같았다. 정말 두 사람이 있는지, 그리고 여자 신발이 있는지 보는 거겠지. 플라스틱 소리는 아마 소지품 중 하나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바닥에 닿은 모양이다.
다시 스르륵 섬유 소리가 났다.
'일어섰다.'
지우의 뒤쪽, 칸막이 뒤에 있던 그가 미라 기준으로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며 6시에서 7시, 8시, 9시 방향으로 바로 옆까지 왔다. 서로 손을 뻗으면 붙잡을 수 있을 정도로 거리 자체는 아주 가까웠다. 그 중간을 막고 있는 칸막이가 유일한 장애물이자 그의 엄폐물이었다.
드륵.
오직 미라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 변기를 딛고 선 것이 분명하다. 정면을 보며 뒤치기로 박히던 미라가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려 위쪽을 보았다.
마침내.
미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린다.
'안녕?'
그녀의 눈에, 떨리는 눈동자로 미라와 눈을 마주친 남자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