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6. 미라의 여행 (30)
쪽, 쪽.
수 차례의 버드키스.
"어우…."
정우의 얼굴이 새빨갛다. 미라의 입술이 떨어져 나갔음에도 머리를 맞은것처럼 한동안 멍하니 있는다.
천천히 걸으며 사소한 얘기를 몇 마디 나누다가, 갑자기 미라가 하고 싶은거 해도 된다는 허락을 했다. 정우는 내심 기뻐하며 간을 보듯이 미라의 볼에다 입을 맞췄다. 그러자 미라가 보답하듯 정우에게 입술이 지긋이 맞닿는 진한 뽀뽀를 했다. 한 번의 입맞춤을 끝내고 떨어지려는 미라의 얼굴을 정우가 붙잡아서 몇 번이고 쪽쪽거린다. 미라의 호응이 용기를 불어넣었는지 정우의 태도가 순식간에 적극적으로 변했다.
'마음에 드네.'
미라가정우를 보고 싱긋 웃으며 생각했다. 비록 저주의 강화로 과감해져서 익숙지 않은 남자들과 뒹굴고는 있지만, 미라의 취향은 여전히 소프트한 편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 뭘 해도 잘 받아주긴 하지만 SM 같은 가학, 피학적인 하드한 취향은 없는 것이다.
또한 남자들도 평범한, 그리고 착한 남자를 좋아한다. 계속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대하는 눈앞의 김정우 같은 순둥이.
미라는 용사의 여자들 중에서도 순둥이를 가장 좋아했다. 아리스도 순둥이 쪽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녀는 저주의 특성상 순둥이를 만나기가 어렵고 반대로 막무가내인 남자들에게 시달리는 편이다.
쪽.
정우는 처음부터 미라가 아주 마음에 들었고, 미라 역시 정우가 마음에 들었다. 몇 마디 대화도 안 해본 두 남녀가 순식간에 커플처럼 붙어서 애정행각을나눈다.
쪽, 쪽 쪽 쪽.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고 서로가 예뻐서 몇 번이고 뽀뽀하는 미라와 정우. 누가 봐도 한창 좋을 때를 보내는 한 쌍의 커플이었다. 처음이라 어색했던 둘의 분위기는 불과 몇 분만에 완전히 풀어졌고, 어느새 두 남녀의 얼굴은 웃음기로 가득했다.
"앉을래?"
미라가 손가락으로 벤치를 가리켰다. 마치 여기서 밀회를 즐기라는 듯이 으슥한 사각지대에 설치된 벤치는 그 어떤 사람이 와도 비슷한 목적으로 사용할 것이 뻔했다. 정우가 헤벌쭉 웃으며 순순히 미라에게 이끌려간다.
둘이 앉는다.
그리고, 다시 입맞춤.
쪼옥, 츄릅.
이제까지 수십번을 나눴던 뽀뽀보다 훨씬 진하고 훨씬 야한 소리. 미라가 앉아서 싱긋 웃고만 있자 묘하게 자극을 받은 정우가 곧바로 그녀를 덮쳤다. 이제껏 다소 조심스러웠던 정우의 키스는 의외로 와일드한 스타일이었고, 미라는 마치 입술과 혀가 잡아먹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공수교대를 한 것처럼 순식간에 둘의 역할이 바뀌었다. 이제껏 청순함과요망함을 오가며 지긋이 유혹을 해오던 미라는 얌전히 정우에게 입술과 그 안쪽의 속살을 내주며 뜨거운 타액을 받아마셨고, 여지껏 이끌려가던 정우는 확신을 얻고서 미라에게 들이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정우가 들이밀자 미라의 몸이 점점 뒤로 넘어갔다.
"후아, 하아…."
미라의 거친 호흡. 둘이 뿜어내는 입김이 위쪽을 향해 허옇게 떠오른다. 날씨는 추웠으나 몸은 뜨거워졌고, 거친 비바람이 아니라 햇빛에 의해 코트를 벗는 여행자처럼, 정우가 점점 달아오르는 몸의 열기에 의해 외투를 벗으려 했다.
자기 겉옷의 지퍼를 내린 정우가 시원한 느낌을 받으며 다시금 미라의 입술과 혀를 탐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손으로 그녀의 지퍼를 내리려 한다. 지이익, 하고 가슴골 즈음까지 지퍼가 내려가자 미라가 손목을 잡고 제지했다. 마치 물음표를 머리 위로 띄우는 듯한 정우의 표정.
"후응, 정우야, 재밌는거, 보여줄게."
쪽 소리를 내며 입을 뗀 미라가 달뜬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는 배시시 웃으며 벤치에서 일어나 살짝, 반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다. 정우의 눈동자에 미라의 전신이 비친다.
지이이익….
그대로 지퍼를 주우욱 내리는 미라. 롱패딩이어서 지퍼를 끝까지 내리려면 허리를 숙여야 했고, 덕분에 정우는 가로등 없이 어둑어둑한 와중에도 보름달의 푸른 달빛을 통해 미라의 가슴골을 그대로 보았다. 패딩 안쪽은 빛이 전혀 들지 않았기에, 정우는 미라의 놀라운 비밀을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다.
"짠."
다시 허리를 편 미라가 주먹 하나 정도 들어갈만한 롱패딩의 가운데 틈새를 두 손으로 활짝 벌렸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미라의 알몸이 마침내 드러났다. 앙가슴부터 시작해서 배꼽, 유두와 유방, 겨드랑이와 옆구리 부분까지.
정우가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쇄골, 가슴, 명치, 배꼽, 아랫배, 둔덕, 가랑이…. 녀석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난다.
"이, 이게 무슨…."
"정우야. 그거 알아? 사실 나, 하루 종일 이러고 다녔어."
"으에엑?"
"물론 너랑 두 번째로 만났을 때도. 다 벗은 채 롱패딩 하나만 입고 매장을 가로질러서 널 만나러 갔어. 사실 나도 처음 해본 건데, 은근히 시원하고 해방감도 있고 짜릿하더라.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진실에 정우가 입을 떡 벌리자 미라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나만 벗으면 되니까, 으슥한 곳에서 섹스하기 딱 좋아."
그녀가 검지를 세워 정우쪽으로 천천히 내밀었다. 그 손가락에 가슴을 콕 찔릴 때까지 정우는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마구 흔들리는 동공과 거칠어지는 호흡 그리고 불룩해진 아랫도리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정우야, 어때? 이런 변태 같은 여자는."
한 박자의 침묵. 그리고 대답.
"…너무."
"응?"
"너무 좋아…."
이제까지는 꽤나 선량하고 순둥이 같아 보였던 정우의 눈빛이, 순식간에 탁하게 번들거렸다. 녀석도 결국은 수컷이니까.
"흐응."
미라 역시 눈을 가늘게 뜨며 음흉하게 미소지었다.
…
철썩철썩철썩!
무대가 바뀌었다. 아무리 달아올랐다고 해도 아직 변태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정우는 야외섹스라는 상급자 코스가 부담스러웠다. 둘이 선택한 장소는 처음 만났던 그 느낌을 살린 공중화장실. 지어진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디자인도 깔끔했다. 백화점의 화장실처럼, 공원 화장실 역시 관리를 잘 한 데다가 인적이 드물어서 냄새 하나 없이 깨끗했다.
"흐읏, 흣…."
"쉬잇."
정우가 뒤치기 자세로 열심히 허리를 놀리며 미라에게 신음 소리를 줄일 것을 요구했다. 떡치는 소리만으로도 이미 게임 오버지만, 여자의 달콤한 신음은 결정적인 증거인 데다가 살소리보다 더 잘 들릴 테니 신경 쓰일 법도 했다. 남자 화장실이라 설령 들켜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정우는 아까 백화점에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불청객을 걱정하는 듯했다. 일부러 들키고자 했던 한지우와는 달리 김정우는 네토 취향이 있기는 커녕 그게 뭔지도 잘 몰랐으니 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쯔걱쯔걱쯔걱.
반 템포 늦춰서 살짝 천천히 박자 물소리가 더 진하고 선명해졌다. 정우가 속도를 조절하며 허리를 숙여 미라의 등 뒤에서 가슴을 만졌다. 손에 가득 들어오는게 하루 종일 만질 수 있을 만큼 감촉이 좋았다. 또, 미라의 몸에서 난 땀인지 정우의 손에서 난 땀인지는 몰라도 적당히 미끌미끌한 감촉 역시 좋았다.
'향기….'
미라의 몸내음이, 흔히 말하는 여자 냄새가 올라온다. 미라의 그것은 순수한 향기 같지만, 사실 남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암컷의 강력한 페로몬이기도 해서 정우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있었다. 눈, 코, 귀, 입 모두 즐거워지는 여러 종류의 자극. 정우가 아득한 쾌감에 숨을 헐떡였다.
"후욱, 후욱. 어우…."
하지만 가장 강력한 자극은 역시 성기에서 오는 쾌감. 즉 조임이었다. 미라의 구멍은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 데다가 누구와도 속궁합이 잘 맞는 최고의 명기였다.
츠벅, 츠벅, 츠벅….
정우는 넋 나간 사람처럼 허리만 흔들다가, 사정감이 몰려오자 심각한 표정으로 인내하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며 미라의 명기를 한껏 느끼고 있었다. 미라가 알았다면 그 재밌는 얼굴을 보고자 고개를 돌렸겠지만, 지금은 그녀 역시 튼실한 정우의힘을 느끼는 중이었다. 젖은 숨을 내뱉으며 쾌감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였다.
우직한 힘.
한지우와 가장 대비되는 김정우의 특징이었다. 한지우는 여자를 잘 다룰 줄 알고 힘을 효율적으로 써서 노련하게 미라를 보내버린다. 김정우는 그런 유연함과 융통성은 좀 모자라지만 대신 더 강직하고 묵직했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테크닉과 힘의 대결 같았지만, 사실 정우가 섹스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비교하자면 대충 그런 점이 있다 정도였다. 미라는 그저 기분 좋게 그 힘찬 자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흐응, 으헉, 으응…."
마치 물줄기로 바위를 뚫는 것처럼융통성없는 지긋한 자극. 가끔씩 버거운 신음이 나왔지만 이게 전부 다 쾌감이었다. 끈기 있게 성감을 이끌어내는 정우의 움직임에 미라도 여유를 잃고 허덕이기 시작했다.
처억, 척, 척, 척.
정우가 다시금 힘을 내면서 미라의 허리를 안고 상체를 끌어올렸다. 변기 뚜껑에 손을 짚고 있던 미라가 정우에게 붙잡힌 채로 박혔다. 마치 인사를 하는 것처럼 45도 각도로 상체를 숙인 미라는 계속 허공만 보는게 싫었던 건지 고개를 돌려 입을 벌려 보이며 정우에게 키스를 요구했다. 마치 연한 물풀처럼 끈적하게 늘어지는 미라의 타액이 탐스럽다.
정우는 곧바로 상체를 숙여 그녀의 등에 바짝 붙으며 손으로는 가슴을, 입으로는미라의 입술을 탐했다. 혀를 얽고 입안을 한껏 휘저어주자 미라가 코로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좋아한다. 많이 느껴서인지 그녀의 눈시울이 연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울먹이는 것 같은 그 모습이 귀여워서 정우가 더 격렬하게 미라를 탐했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뜨거웠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
"크윽…."
쌀 것 같다.
위기감에 또다시 본능적으로 속도를 늦추자 미라가 헐떡이며 젖은 눈으로 정우에게 애원했다.
"흐응, 읏, 흑, 정우, 야…."
키스를 하고 있었기에 둘의 얼굴은 더없이 가까웠고, 그녀의 거친 숨결과 애원이 정우의 얼굴에 쏟아졌다. 거친 숨결로 고작 이름만 불렀을 뿐이지만 그 이상의 소통은 필요없었다. 미라의 한껏 달아오른 표정에 정우가 더 이상 참지 않고 스퍼트를 내며 미라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자지를 한껏 들이밀었다.
"흐아앗!"
미라가 마치 단말마를 내지르듯 짧고 굵은 신음을 내며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절정을 맞이한 미라의 보지가 자지를 짓눌러 뭉개버릴 듯이 엄청난 압박을 가했고, 결국 정우도 참지 못하고 깊숙한 곳에 사정했다.
….
….
….
뜨거운 절정 이후, 둘은 다시 아까 그 벤치로 돌아왔다. 미라는 롱패딩 지퍼를 채우는 대신 바바리맨처럼 옷을 손으로 붙잡아 자기 몸을 꽁꽁 싸맸다. 계속 그러고 있기는 불편하겠지만, 한 옷을 두 겹으로 입는 효과도 있었기에당장은 이러는 편이 좀 더 따뜻했다.
…물론 추위를 안 타는 미라는 따뜻해서가 아니라 정우의 에로스를 자극하고자 이러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항상 '유혹'이라는 단어가 떠다니고 있었으니.
"…."
미라의 의도대로, 정우는 미라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가녀린 손목을 잡아끌기만 하면 또다시 알몸을, 그 예쁜 속살을 볼 수 있었기에 눈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혈기왕성한 정우는 진작에 아랫도리가 부활한 상태였고, 지금은 단지 그녀가 추워할까봐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호로록.
"후우."
방금 자판기에서 뽑아온 따뜻한 캔커피를 미라가 홀짝였다. 커피 특유의 씁쓸함보단 음료수 같은 달달함이 훨씬 더 강했다. 애들 입맛인 미라는 맛있게 캔커피를 마시면서 남은 한 손으로만 옷을 붙잡은 채 다리를 이리 꼬았다 저리 꼬았다 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앉은 자세여서 그런지 꼬는 다리를 반대로 바꿀 때마다 허벅지 대부분이드러났고, 특히 허벅지 안쪽 깊숙한 곳이 보일 때마다 정우는 아슬아슬한 자극을 느꼈다.
대놓고 보여주는 것보다는 아닌척 은근히 노출하는게 더 효과적이고, 또 무작정 다 벗는 것보다는 특정 부위를 강조해서 보여주거나 아슬아슬하게 보여주지 않는게 더 반응이 좋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정우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눈이 벌개져서 말도 없이 허벅지 쪽을 보고 있는 정우. 그리고 그런 정우를 곁눈으로 보는 미라.
"흐음."
미라가 정신이 팔린 정우 모르게 낮게 웃었다.
이쪽도 마음 같아선 더 하고 싶지만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배분을 해야 한다. 보아하니 저녁도 아직 안 먹은 것 같고, 처음부터 너무 빠르게 달리면 이 긴 밤을 못 버틸 테니까. 생각보다 힘도 좋고, 벌써 눈에 욕망이 가득한게 정력도 좋은 것 같으니 잘 이끌어주면 아주 좋은 밤이 되겠지. 녀석은 아직 몸만 큰 애니까 어른이 올바른 길(?)로 이끌어줘야 한다.
결론을 내린 미라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가자."
"응?"
넋이 반쯤 나가 있던 정우가 미라의 행동과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반응했다. 미라는 멍청해 보이는 이런 모습도 은근히 귀엽다고 생각하며 정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밥 먹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