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20화 (20/74)



〈 20화 〉20화

멀지 않은 곳에 건물들이 늘어선 곳이 보인다.


내가 사는 세상처럼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천막보다 좀  나은 수준의 건물들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중세풍.
저곳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재빨리 달려간 나는 초입에 들어가자마자 이곳이 시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과일이며, 채소며, 짐승의 고기까지.

신기했지만,물론 지금은 시장 구경이나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곳 시장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여자였다.


그녀들은 내가 등장하자마자 깜짝 놀랐다.

여자들이 많았지만 불쾌한 느낌은 전혀 없다.


그녀들도 세린과 세라처럼 내게 해롭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길은 한 방향으로 나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안쪽에서 소란이라고 해도 좋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속에 남자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나는 한달음에 현장까지 달려갔다.


여자 한 둘을 제치고 나타난 장면은 이러했다.

갑옷을 입은 남자 한놈이 삿대질을 하며 소리치고 있던 것.


그리고 놈의 손가락질을 받는 대상은 바로 세린과 세라였다.


그 옆에는 수레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안에탑처럼 웨어울프의 사체들이 쌓여있었다.


“네가 저 많은 웨어울프를 사냥했다는  말이 돼?!”


남자 놈-아마도 이놈이 게토이리라.-가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염려한 것처럼 세린과 세라에게 신체적 상해가 없다는 것이 일단 안심이었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앞으로 나갔다.


“무슨 일입니까?”

우르르,
내게 시선이 쏠렸다.


삿대질을 하며 소리치는 놈을 제외하고는 이곳에 있는 모두가 여자였다.


“용사님!”
“오빠!”

오, 나의 세린, 세라.


역시 소환카드로보았을 때보다 진짜를 보는 것이 더 좋았다.

그녀들의 표정은 마치 구세주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정황상 그것은 단순히 비유에 그칠  같지 않았다.


“응?”

내 등장에 놀란 것은 여자들뿐만이 아니었다.

게토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나를 보았다.


“당신은 누구요?”

왠지 손가락질하며 세린과 세라를 윽박질렀던 것과는 전혀 달라진 태도이다.


한눈에 보아도 조심스러워하는 것을  수 있었다.

“저는 조범일이라는 사람입니다.”
“조범일?”

게토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

내가 입고 있는 의상이나 머리 색깔, 피부색 같은 것들은 이곳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거기다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이라니.

그렇게 수상하게 여기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무슨 일입니까?”


내 물음에 게토가 목을 벅벅 긁었다.


“이 몹쓸년들이 거짓말을 해서 혼내주려던 참이오.”
“몹쓸년?”


내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게토가 슬쩍 당황했다.


“이 여자들과 아는 사이입니까?”
“네, 잘 아는 사이입니다. 그나저나 거짓말이라니요?”
“저년이 수레에 있는 마물들을 자기가 죽였다고 합디다. 말이 됩니까? 여자 주제에 웨어울프를 사냥했다는 게?”

게토는 자기가 말을 뱉어놓고도 어이가 없다는 듯 껄껄, 웃었다.


그 말로 모든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세린과 세라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웨어울프 사체를 수레에싣고 왔고, 그 장면을 눈앞에 있는 이 인상 더러운 배불뚝이 게토가 보게 되었다.


신분을 놓고 유추하자면 아마도 순찰 목적으로 시장을 돌고 있던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여자들은 남자만큼 강하지 않으니, 놈은 세린이 웨어울프들을직접 사냥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실제 웨어울프들은 세린이 사냥한 게 아니었지만.

이 마물들을 사냥한 것은 바로,

“나요.”
“네?”
“저 웨어울프들을 사냥한 것이 바로 나라는 말이오. 내가 비밀로 해달라고 해서 말을 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진실은 그렇게  것이오.”
왠지 게토랑 대화하자니 저절로 말투가 바뀌었다.

적응력이 좋은 것은 아마도 평소 게임을 많이 해서 그런 거겠지.


물론 업적 효과도 있을 것이고.

“흠......”


게토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당신은 이곳 사람 같지 않은데, 어디에서 왔소?”
“......먼 곳에서 왔소.”

차원을 통과해서 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비록 이곳은 검과 마법이 난무하는 세상 같지만, 아무리 그래도 쉽게 믿지는 않겠지.

그리고 그런 말을 함부로 뱉었다가는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릴  같았다.


내가 본 판타지 소설들은 대부분 그랬다.

“그래 보이는군요.”

게토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외지인이 이 영지로 들어왔을 때는 먼저 신고를 해야 합니다. 보아하니 당신은 아직 신고를 하지않은 모양이군.”
“......안 그래도 하러 가려고 했습니다.”
“음......”


게토라는 놈은 뭔가 미련이 남아 보였다.

세린과 세라를 보는 짐승 같은 눈빛을 보자니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알았소. 신고는 가급적 빨리 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일단 오늘있었던 일을 토머스 님에게 보고하겠소.”


하지 마, 새끼야.
보고하지 마.



왠지 그 보고라는 것이 내 다음 임무 내지는 귀찮은 일과 연결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고하시오.”


게토는 내게 고개를 숙인 뒤 떠나갔다.


마지막에 다시 한번세린과 세라를 곁눈질하는것을 잊지 않는다.

내게는 익숙지 않은 감정이지만,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 눈빛에 담긴 사악한 감정은 바로 욕정.

[임무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여자 복종 포인트 2’를 얻었습니다.]

두 번째 이세계로 와서 치른 첫 임무는 아주 쉽게 해결되었다.

사실 메시지에 ‘위기에 처했다’는 표현이 들어있어서 엄청 걱정했는데, 속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내가 재빨리 오지 않았다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를 일이다.

특히 게토라는 놈이 세린과 세라를 보면서 지은 음흉한 표정을 떠올리면 소름이돋았다.


적은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 남자  명이었지만, 여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상대해서 나서 줄 사람은 한 명도 없어 보였다.

순찰병은 말단직이 분명하지만,  말단직조차도 어쨌거나조직에 속한 몸이다.


그를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거겠지.

더구나 그 조직이라는 것에는 주로 남자들이 몸담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곳에 신분이 낮고 무력이 부족한 여자들만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터였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처음에 왔을 때는 그저 오두막을 배경으로 웨어울프들을 상대했으니 괜찮았지만  번째 왔을 때는 스케일이 갑자기 커져 버렸다.


더구나 이게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왠지 이런  생각을 드래곤 슬레이어가 안다면 포부가 그것밖에 안 되냐며 혼을 낼 것 같지만.


“용사님!”
“오빠!”

세린과 세라가 나를 보고 엄청 기뻐했다.


“다시 오셨군요!”
“약속을 지키셨어요!”


희한한 구멍으로 폼을 잡고 사라졌던 것을 생각하면 너무 빨리 돌아온 감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들의 반응으로 보건대 역시나 소화카드로 불러내는 것은 그녀들의 본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있었다.

소환돼서 나눈 대화나 상황을 그녀들은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말했잖아. 돌아온다고.”


나는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전같았다면 이렇게 수십 명의 여자가 모여있는 상황은 죽자고 피했겠지만, 이제는 전혀 부담이 없었다.

이세계의 여자들은 내게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알고 있으니까.

세린과 세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다시 뵙게 되어 행복합니다.”
“정말 기뻐요......”


흠흠, 그나저나 나는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일이야?”

대충 짐작은 가지만 그녀들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다.

“용사님이......”
“오빠라고 불러.”
“오빠가 떠나신 뒤에 저희들은 웨어울프의 사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당연히 그런 걸 순찰병들이 보면 문제가 될 게 틀림없으니까요. 그리고 웨어울프쯤 되는 마물의 사체는 이곳에서 비싸게 거래된답니다. 그냥 버릴 수도 없고, 저희는 순찰병이 나타나지 않는 시간대를 택해 사체들을 수레에 싣고 시장에 오게 됐어요.”

그러게 내가 걱정했잖아.


여자애 둘이서 그 많은 사체들을 어떻게 처리할 거냐고.


물론 내가 걱정한 방향과는 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세린이 내게 보였던 밝은 태도가 나를 걱정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재수 없는 저 게토 놈이 여기 나타난 거구나.”
“네...... 응? 그런데 저자의 이름이 게토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뭐?”


그러고 보니 나는 순찰병 놈과 통성명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아...... 그, 뭐냐. 나한테는 상대를 꿰뚫어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
“와, 대단해요.”
“역시 오빠.”
‘꿰뚫어 본다’는 말에 세린과 세라가 자기 몸을 감싸면서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 것이 좀 신경 쓰였다.

튜토리얼 메시지를 통해 알았고, 이 튜토리얼 메시지는 나에게만 보이는 것이니 넓게 말해  능력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일단 이걸 팔아야겠네.”


순찰병도 갔으니 하기로 한 일을 계속해야 할 터였다.


내가 사는 세상처럼 결정석을 캐서 팔면 편할 텐데 사체를 전부 운반해야 하다니, 이 중세풍의 세상은번거로운 점이 많았다.


“네, 하지만......”


세린이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는 풍경을보자니 금방 이해가 되었다.


몰려있던 여자 상인들이 저마다 시선을 회피하며 난처해 하고 있는 것.

‘그렇군.’


순찰병이 나타나 직접 문제 삼은 마물의 사체를 함부로 구입했다가는 뒷일을 감당할 수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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