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1,009)

“저희 아우둠라 길드의 주 업무는 유적의 발견과 탐색이에요. 그건 알고 계시죠?”

“네. 몬스터 사냥도 받지만 유적 탐색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것이야말로 내가 아우둠라 길드를 선택한 이유였다.

학자로서 내 업무를 병행하기 위해서는 유적 탐사가 메인인 길드로 가는 편이 형편 상 좋다. 오랫동안 성과를 내지 못하면 내 석사 학위도 위험하니까.

학위를 박탈 당지는 않겠지만, 현장직 유지 신청을 반려당하거나 연구비가 말도 안 되게 축소당할 수도 있다.

“혹시 다른 길드나 아우둠라 길드의 다른 지부에서 등록한 경력은 있으신가요?”

“아뇨. 아예 여기가 처음입니다.”

“알겠습니다. 길드에 가입하는 비용은 50쿠퍼예요. 앞으로 승급하실 때마다 추가로 돈을 내셔야 하구요.”

가입비는 미리 알아봤던 내용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접수원은 느릿하게 서랍에서 꺼낸 서류를 내쪽으로 내밀었다.

“동의하신다면 이쪽에 서명, 혹은 도장을 찍어주세요.”

“알겠습니다. 펜은 이걸 쓰면 되나요?”

“네. 아, 글자를 모르시거나 가지고 계신 도장이 없으신 경우에는 손가락 끝에 잉크를 찍어서 눌러주세요.”

지장(指掌)인가? 이쪽에도 지문은 있으니까.

나는 고민한 끝에 일부러 개발새발인 글씨로 서명을 했다.

“으음. 브리타니아 어는 어디까지 아시나요?”

내 글씨를 본 접수원이 물었다. 자기 이름만 쓸 줄 아는 사람도 많으니 미리 물어보는 것이라고 짐작이 갔다.

“읽고 쓰기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말 중에서는 모르는 단어도 있지만요.”

당근빠다로 거짓말이었다.

모르는 단어 따위는 없다. 글자만 봐도 무슨 뜻인지 전부 이해가 가기 때문이다.

그치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내가 카르미네 대학에서 연구원생을 할 정도의 엘리트이며, 석사 학위를 가진 남자라는 사실을 들키는 수가 있다.

그것만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나는 존나 개 유능한 석사님이라서 누구나가 날 고용하지 않고는 못 배기기 때문이다.

‘자의식 과잉이나 나르시즘이 아니라, 100% 사실이지.’

이쪽 세상에서 고고학과 언어학은 수준 높은 학문이고 실용성도 많다.

내가 고대 언어를 쓸 줄 아는 카르미네 출신 석사라는 것을 눈치채는 순간, 길드의 상층부는 나를 모험가로 굴리기보단 지들 조합원으로 삼아서 번역 일을 시키려 들 것이었다.

‘쟤네들 입장에서는 그게 현명한 건 사실이지만.’

머리 좋은 놈을 모험가 짓이나 시키다 뒤지게 놔두느니 던전에서 얻은 고문서나 유물의 용도를 해석하게 만드는 편이 나으니까.

하지만 그건 길드 놈들 입장이다. 나는 모험가가 되려고 사르디가스에 온 것이지, 중소기업에서 번역 노예 노릇을 하려고 온 게 아니다.

“네. 그러면 이 글을 읽어 주세요. 이게 가능하시면 ‘일반적인 읽고 쓰기는 가능’이라고 기록해 놓을게요.”

접수원이 가리킨 것은 접수처 안쪽의 4줄 짜리 짧은 글이었다. 나는 아예 못 박아 놓은 글을 보고 그대로 읽었다.

“…‘아침 해가 밝았을 때, 우리는 고블린의 흔적이 남쪽으로 이동한 것을 알았다. 파티의 일원인 사냥꾼이 모닥불을 피워 식은 몸을 덥히고 이동하기를 제안했다.’ …이게 뭔가요?”

“글을 읽을 줄 아시는지 확인할 때 쓰는 시험 같은 거예요. 내용은 매주 바뀌죠. 이번에는 어느 모험가 님의 수기에서 발췌했답니다.”

“아하.”

저런 짧은 글로 증명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중소기업답게 주먹구구식이로군.

아무튼 간에 이토록 문맹률 높은 세상이다. 나처럼 7개 국어를 할 줄 아는 멀티 링걸 엘리트가 어떤 취급을 받을지는 눈 감고 봐도 자명했다.

길드 입장에서는 다른 모험가들한테 유적에 기록된 고대 언어를 받아적어 오게 해서, 그걸 나한테 번역시키기만 해도 개이득이다.

모험가 길드의 운영진들은 이윤과 성과를 나눠먹기 싫어서 고고학계에 번역 외주를 넣는 것조차 싫어하는 놈들이다. 나 같은 인재를 놓칠 리가 없다.

내가 모험가로서 일거리를 찾으러 올 때마다 우리 조합원 안 하싈? 거리면서 질척대는 미래는 결단코 사양이었다.

‘중소기업에 목덜미 잡혀서 들어갈 바에야 그냥 대학에서 노예질이나 마저 하고 말지.’

스펙도 쌓을 만큼 쌓아 놓고 이런 촌구석 모험가 길드 지부에서 무료 번역기 신세를 질 이유가 없었다.

어디 좆소기업에서 인재를 잘 취급해 주던가? 내가 혼자 열 사람 만큼의 일을 해낸다고 해도 나한테 월급을 10배로 주진 않을 것이다.

기껏 해야 사장이 골프치다 남은 돈으로 고기나 사 주고 땡 칠 게 뻔하디 뻔하다.

‘게다가 장래성도 없고.’

내가 뭔가 성과를 내도 그건 나 개인의 캐리어가 아니라 아우둠라 길드 사르디가스 지부의 업적이 된다. 학계에 내 이름이 퍼지지도 않을 것이며 나한테 돌아오는 이득이 없다.

사람들에게 유명해지는 것은 앞에 나서서 PPR을 하는 스티브 잡스지, 뒤에서 아이폰을 개발한 엔지니어가 아니다.

이상의 이유로 나는 모험가 길드에서 내 신분을 밝힐 생각이 없었다. 일부러 브리타니아 어도 완벽하게는 못 하는 것처럼 연기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당분간은 힘순찐 ON인 것이다.

“노르드 씨? 마지막으로 여기 이 돌을 한 번 꽉 쥐어 보시겠어요?”

그리고 모험가 등록도 마지막 단계였다.

나는 접수원으로부터 받은 까만색의 돌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떤 의미로 앞의 모든 질문보다도 중요한 것이 이 돌멩이였다.

“꽉 쥐셔야 해요? 알겠죠?”

거듭 당부하는 접수원의 침착한 목소리. 나는 그것을 흘려 들으면서 온 힘을 담아 돌을 든 손을 꽉 쥐었다. 이게 예르나, 그 도둑깐프년의 죽빵을 갈겨버리기 직전에 주먹을 쥐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전력을 다했다.

“흡!”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가만히 지켜보던 접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충분해요. 힘 빼셔도 된답니다.”

“─푸하아.”

존나 주먹에 온 힘을 쥐는 것도 만만치가 않은 일이구나. 진이 빠진 손을 서서히 펼치자 손바닥 위의 까만 돌멩이가 남색으로 변해 있는 것이 보였다.

“남색이군요.”

“그러게요.”

오 시발, 다행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돌멩이는 통칭 압력석이라고 해서, 강한 압력을 받으면 무지개색 순으로 겉의 색이 변모하는 특수한 돌이다.

많은 모험가 길드에서 이 돌은 해당 인물의 대략적인 완력을 판별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남색이라니 대단하시네요. 대부분 분들은 처음에는 보라색이거든요.”

내가 쥐었던 돌멩이를 돌려받으며 칭찬하듯이 말해주는 접수원이었다. 근데 존나 계속해서 남색남색 거리니까 내가 무슨 게이 같은 느낌이라서 약간 기분이 나빴다.

아무튼 여기서 말하는 남색은 게이짓을 하는 것을 한자로 표현한 남색(男色)이 아니라,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7색 중 뒤에서 2번째 색인 남색(藍色)을 말한다.

하지만 제일 낮은 등급인 보라색의 바로 위라니.

다시 말해서 내 평균 전투력은 밑에서 2번째란 거다. 존나 낮은 거 맞다.

그런데도 나는 아까 보라색이 뜨지 않은 것만으로도 안심하고 말았다. 나 자신부터가 스스로를 개병신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였다.

“흑흑.”

나는 매우 슬펐다. 내가 아직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참 모자라다는 것이 증명되었기에.

접수원 말마따나 이 정도만 되도 일반인보다는 높은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디 내가 일반인인가. 브람마톤 교수님 밑에서 3년 넘게 쇠질을 했는데 설마 남색이었다니!

대학에서는 감별석을 만져 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그래도 파란색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제가 듣기로는 남색에서 파란색이 브론즈 클래스의 평균이라고 하던데, 맞나요?”

나는 하얘진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물었다. 브람마톤 교수님의 책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네. 모험가 플레이트에는 감별등급이랑 같은 색으로 염료칠을 할 돌을 박아넣어요. 브론즈의 평균은 파랑 이하구요.”

“승급에는 등급색 자체는 별 상관 없는 거구요?”

“그럼요. 승급심사는 실적과 품행으로 결정해요. 등급색이 모험가의 실력과 직결되진 않으니까요.”

접수원은 생각보다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이세계 티어충 놈들이었다면 슬슬 빡친 얼굴로 틱틱거리고도 남았을 텐데. 나는 괜스레 더 질문을 해서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게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지갑에서 동전을 와르르 꺼내서 세고 접수원에게 내민다.

“여기, 50쿠퍼입니다.”

“가입비, 확실히 받았습니다. 이걸로 등록은 완료예요. 이건 임시 플레이트입니다. 5일 쯤 뒤에 이름과 등급색이 달린 플레이트가 나올 테니 그때 받으러 오세요.”

나는 접수원으로부터 얇은 철 된 플레이트와 끈을 받았다. 이걸 엮어서 팔찌로 삼든가, 목걸이로 삼으면 된다.

밋밋한 플레이트를 빤히 쳐다보는 내게 접수원은 피곤한 얼굴을 한 채로 밝게 미소지었다.

“아우둠라 길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새 모험가님.”

그리하여 나는 모험가 길드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드디어 모험가가 될 수 있었던 나지만, 본격적으로 일에 착수하기까지는 앞으로 3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

제대로 된 플레이트는 신분증을 겸한다. 그리고 모험가로서 의뢰를 중개받을 자격증도 된다. 신참 모험가는 그걸 받기 전까지는 50쿠퍼를 길드에 내주고도 밥값도 못 버는 처지인 것이다.

그래서 50쿠퍼 모았다고 아싸 모험가 데뷔다! 하고 도시로 달려온 시골 촌놈은 3일 동안 배를 곪으며 잡일을 하는 경우도 많댄다.

출처는 브람마톤 교수님의 책. 우리 지도교수님이 주신 책은 한 줄 한 줄이 다 재미있고 실용적이다. 셰히르로 가는 배에서도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였다.

예르나? 모르는 씨발년이군.

“흠흠흠.”

아무튼 5일 동안 할 일도 없어서 나는 당분간 묵을 여관을 구하기 위해 이동했다.

괜찮은 여관이 어디인지는 접수원 분한테 딱 한 번만 더 물어봤다. 일이 다 끝난 줄 알고 한숨을 돌리던 그녀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는 모습에는 내 양심이 다 찔렸다.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지.’

교수님 책에도 브론즈 클래스 이하는 어차피 좋은 여관에 못 묵으니까 동업자가 많거나 아예 없는 곳으로 가라고만 적혀 있었던 것이다.

내가 뭣도 모르고 혼자 찾았다가 나중에 후회할 바에야 좀 눈치가 보여도 그냥 물어보는 편이 낫다.

밥이나 보안이 막장인 곳에서는 마음 편히 쉬기도 힘든 것이 자연의 이치니까.

“도둑이야!! 이 씹새끼 너 거기 안 서?!”

“지랄하네! 생긴 건 니가 더 도둑이구만!”

“고장~ 난~ 한손검~ 방패~ 녹슨 철~ 삽니다~.”

“야이 좆 같은 새끼들아!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여기도 참 오지게 정겨운 마을이로군. 나는 지나가는 사회 밑바닥층의 일원들에게 짠한 시선을 보냈다. 내가 추천받은 숙소가 이쪽에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저열함이다.

혹시 접수원 아가씨가 자길 귀찮게 구는 새삥이 모험가 새끼를 엿 먹이려고 한 게 아니었을까?

고민을 거듭하면서도 어찌저찌 여관 앞에 도착했다. 여관 ‘샘의 쉼터’. 그럭저럭 커다랗고 깨끗해 보이는 것이, 예르나를 따라서 유적을 탐험하던 시절 묵어본 여관 못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환영해 준 것은 짐을 들어주는 벨 보이도 무뚝뚝한 여관 주인도 아니었다.

─부웅!

여관문 밖으로 짐짝처럼 던져지는 커다란 덩치. 나를 향해 날아오는 그 모습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으악 시발! 플라잉 브리타니아인이다!”

짐 때문에 무거운 몸으로 날아드는 덩치를 피해냈다.

쿵!

“커어억!!”

정수리까지 취기로 빨개진 대머리 남자는 내가 서 있던 자리에 곤두박칠쳤다.

시발 이게 먼 일이고? 어안이 벙벙한 나는 자연스레 덩치가 날아들어온 여관 문 쪽으로 눈길을 향했다. 거기서는 제 2, 제 3의 플라잉 브리타니아인들이 날아들고 있었다.

─부웅! 부웅! 부웅!

─쿵! 쿵! 쿵!

“어억!!”

“으헉!!”

“끄윽!!”

추락하는 것에게는 날개가 있다는 말은 전부 거짓이었다. 플라잉 브리타니아 피플들은 날개 없이 날았고, 날개가 없기에 떨어졌다.

그들의 비행은 한 사람의 완력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었다. 여관의 문 앞에 서 있는 남자는 포스트 브람마톤 교수와 같은 울끈불끈함을 자랑하며 추락한 취객들에게 일갈했다.

“당장 내 가게에서 꺼져! 다시 내 눈앞에 띄는 날에는 팔다리를 분질러서 다시는 모험가 일 따윈 못 하게 해 주마!”

이미 지가 던져서 가게 밖으로 쫓아내놓고 꺼지라고 하는 것은 대체 무슨 심보일까. 얼굴에 난 커다란 상처도 그렇고, 씨발 어딜 어떻게 봐도 깡패 그 자체였다.

“끄으으….”

“으윽. 형님, 일어나십시다….”

술에 취한 대머리와 아이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옹기종기 모여 떠나갔다. 얼굴이 불어터진 것이, 술에 떡이 됐다가 저 깡패한테 떡이 될 때까지 두들겨맞은 것이 분명했다.

‘튀자 시발.’

나는 그 기세를 몰아 지나가는 행인 A를 가장하려 했으나, 깡패의 눈은 이미 다음 먹이를 포착하고 있었다.

“거기 댁은 손님이신가?”

“아닌데요.”

“아니긴. 짐을 한가득 메고 여관 앞에 와 있는데.”

염병, 조졌네. 이제껏 나 자신이 미니멀리스트가 아닌 것이 이리도 후회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접수원한테 여관 추천 같은 거 부탁하지 말 걸 그랬다. 이건 틀림없이 치졸한 보복을 당한 것이었다.

“뭐야? 내가 착각했나?”

흉터 난 남자는 눈앞에서 사람 서넛을 떡이 되도록 패서 내던진 주제에 내가 왜 이러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저것은 폭력에 익숙한 소시오패스적 사고방식이 없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시발을 10번 정도 외치고 말했다.

“…손님 맞습니다. 제가 잠시 착각했군요.”

내가 지구에 살 때부터 알던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손이 쉽게 나오는 사람 앞에서 가오 잡아봤자 득 볼 것 없다는 점이다.

깡패나 양아치는 폭력을 쉽게 휘두르기 때문에 괜히 가오 잡다간 좆 되는 경우가 생긴다. 미국 뒷골목에서 허름한 메이커 옷을 입은 새끼들이 돈 내놓으라고 하면 총 맞기 전에 얌전히 내놓는 것이 나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쇼? 들어오시게.”

뚜벅뚜벅.

형장에 끌려가는 사형수처럼 안으로 들어가는 나였다.

여기서 모험가 길드 접수원한테 추천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3류 여행객의 행동이다.

그게 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묻어버려도 되는 새끼’라는 암호일지도 모르잖는가. 추천 운운하는 순간 진실의 방으로 끌려가서 알몸이 되어 땅에 묻히거나 쫓겨날 수도 있다.

나는 닷지각을 노리며 주변을 살폈다. 이쪽 세상 여관이 다 그렇듯이 식당+술집으로 경영하다가 남는 방을 여관으로 쓰는 곳이었다. 의외로 안은 왁자지껄했고, 평범한 인상의 사람들도 꽤 많았다.

“도르카! 정말 고맙네!”

그때 왠 노인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아마 나를 데리고 온 남자의 이름이 도르카인 모양이었다.

“신경 쓰지 마십쇼. 제 가게에서 소란 피우는 놈을 쫓아내는 것도 제 일입니다.”

“흐흐. 그러지 마시게. 내 다음에 친구들 데리고 한 번 더 오지.”

“매출에 보탬을 주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군요.”

“자네답군. 아, 뒤엣분은 손님이신가? 내가 주책맞았구만. 일 보시게.”

아니 계속 주책맞아도 되는데. 가능하면 이대로 나를 쫓아내주면 고마웠을 텐데, 노인은 그대로 자리를 피해버렸다.

“…방금 전의 사람들은 어쩌다 쫓겨난 겁니까?”

나는 도르카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노인과 대화하는 것을 보니 의외로 말이 통할 것 같아서였다.

“가게에서 소란을 피웠수다. 단골에게 시비를 걸고, 놈들을 말리려는 내 아내에게도 손을 대려 했지. 그래서 두들겨 패고 쫓아낸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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