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1,009)

우리는 하수도의 막다른길에서 벽면에 붙어 있는 ‘그 생물들’을 발견했다. 그것은 6개의 꺾인 다리와 2개의 더듬이를 가진 커다란 외골격의 생물, 곤충이었다.

하수도에 사는 게 크게 기이한 생물도 아니었다.

그 크기가 존나 개씨발 크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파삭파삭.

──파삭.

수십 마리의 초거대 벌레들은 랜턴의 빛 앞에 더듬이와 움직임을 일제히 멈추더니─

파사사사사사사삭!!

─제각각 날뛰면서 바닥에 착지해 우리를 향해 덤벼왔다.

“으아아악!!!!! 씨이이이이이이이이발!!! 저게 뭐야!!!!!”

나는 어둑어둑한 지하수로의 구석에서 목청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한때, 인터넷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인간과 비슷한 사이즈의 거미가 존재한다면 그 거미는 곤충 특유의 신체능력과 사냥기술을 통해 육상 최강의 육식동물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그 글은 곤충이 인간 크기가 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곤충 특유의 외골격은 인간 사이즈로 커진 스스로의 몸무게를 버티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나는 그 결론을 보며 지구의 중력에 존나게 감사했던 기억이 났다.

“근데 애미 씹, 몸무게를 버티지 못하기는 염병이!!!”

우리들의 랜턴 빛을 반사하며 빛나는 검은 빛, 빛, 빛!!

그것들은 모두가 한 종류의 커다란 벌레였다!!

“으아아아아악!!! 개 씨발 그레이트 빅 여치다아아악!!!”

“끄아아악!!! 존나 많다네!! 저 새끼들 존나게 많다네!!!”

“꺄아아아아아악!!! 소리!! 저 날개소리 너무 싫어요!!!”

시발! 방심했다!

여기는 존나 막 거인도 있고 공룡도 있고 그러는 세상이었다. 사람 무릎까지 오는 크기의 벌레가 없을 리가 없었다.

여치와 바퀴벌레 혼종 같은 와꾸의 곤충!

어쩌면 이 세상에도 신은 없는 게 아닐까?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그들이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창조하거나 하진 않았겠지.

씨발 그게 아니라면 저딴 생물을 좋다고 만드는 신이 있다는 뜻인데, 그딴 곤충성애자 신의 존재를 긍정할 바에야 신앙을 버리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듯 했다.

파사사삭!!

“으꺄아아악악아악!!! 저 새끼들 난다!!! 플라잉 여치다!!!”

“튀어요 얼르으으은!!!!!!!”

“도망치세!! 도도도도망치세에에에에엑!!!!!”

“꺄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우리는 한 몸의 비명(scream) 스피커가 되어 지하수로의 길을 역주행으로 질주했다.

용맹한 4인의 모험가들이 죽어라 다리를 놀리면서 비명과 욕설을 뿜어내는 욕설 방역차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씨발!! 씨이이이이발!! 뭐 저딴 벌레가 다 있답니까악!!!”

“자이언트 로치일세!! 육식성이지!!”

“존나 알뜰살뜰한 정보 뒤지게 감사하네요!!!!!”

도시 아래의 하수로에 벌레와 인간의 때 아닌 데드 레이스가 펼쳐졌다.

불행 중 다행이게도 저 새끼들은 곤충 특유의 신체능력은 없어 보였다. 내가 아는 여치가 저 정도 크기였으면 존나 원 점프로 붕 날아서 우리 앞쪽에 착지했어도 하등 이상할 것 없었으니까.

스킬 트리랑 스탯을 불어난 체중을 유지하는데 올빵해서 점프력이 떡락해버린 걸까?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번식력이랑 생명력 쩌는 놈들이 스펙까지 높았으면 내가 이세계에 온 순간 하늘과 땅이 몽땅 다 바퀴벌레 알 투성이었을 것이다.

지금만 해도 저 여치벌레들은 우릴 못 따라잡고 있다.

우리가 영혼까지 쥐어짜며 토끼는 중이긴 한데, 아무튼 각력 자체는 우리와 비슷하거나 우리 쪽이 높다는 증거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을 굳게 먹고 한 판 붙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기는애애애애미씨이이이이이이이발!

저 새끼들 눈깔 겹눈이야!!! 존나 무서워!!!!!

“어아아아아아아아아악!! 티르시!! 티르시 씨!! 마법이라도 쏴 봐요 좀!!!!!!!!”

“저더러 이런 정신 없는 상황에서 마법에 집중하라고요?! 아니 그보다 저 이제 숨이 차서 못 뛰겠어요!!!! 노르드 씨가 저 좀 업어주시면 안 돼요?!!!!!!!!!”

“아 지랄 마십쇼 진짜!!!!!!!!!!!”

“지랄이라뇨!! 지랄이라뇨!! 근데 지랄 맞긴 하네요!! 미안해요!!!!!!!!!”

시발 저딴 놈들 상대로 무게중심 개작살 난 40키로짜리 쌀포대를 들고 뛰었다간 인생 좆망까지 10초짜리 카운트다운을 세야 할 판이다.

딱 봐도 20마리는 넘어 보이는데 저것들 상대로 포위당해서 온몸을 뜯어먹힌다?

존나 그건 헤라클레스도 뒤진다. 벌레한테 씹고 뜯고 맛 보고 즐겨진 시체는 개 씹창이 나버려서 제우스도 별자리에 못 올려줄 것이었다.

“저, 저저저저저젖!!!”

그때 프란체스카가 덜덜 떨면서 뭔가를 외쳤다. 뭐지? 존나 뛰느라 젖이 흔들려서 뜯겨져 나갈 것 같다는 뜻인가?

“저저저, 저기!! 저기 하수도 통로로 도망쳐요 우리!!”

프란체스카가 가리킨 것은 벽에 난 동그란 쇠창살이었다. 주변이 죽도록 어두워서 한눈에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나와 같은 것을 발견한 겐트릭이 비명을 질렀다.

“멍청한 소리! 아까 비상탈추구는 잠겨 있다지 않았는가! 쇠창살 앞에서 죽고 싶은가?!”

“10초!! 아니 5초만 주시면 제가 열 수 있어요!!”

애미. 돌아버리겠다. 슬슬 숨이 차오르는 마당에 팀원끼리 의견 다툼을 해 봤자 좆도 쓸모가 없는 일이었다.

뒤를 돌아봤지만 바글거리는 여치벌레 새끼들과의 거리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우리랑 놈들이 비슷한 속도로 달려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초반에는 무난하게 거리를 벌릴 정도였다. 그러나 좆밥 파티 4인방의 체력이 바닥나자 기껏 벌려놓은 거리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가면 따라잡힌다! 그것도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티르시 씨!!”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어 외쳤다.

“공격이든 방어든 좋으니까 뭐든지 마법!! 부탁합니닷!!! 이러다 우리 다 같이 벌레 물려서 뒤져욧!!!”

내 괴성에 티르시는 기겁을 하더니 완드를 붙잡고 주문을 읊었다. 그것은 존나 시발 과장 하나도 안 하고 좀비떼 앞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리는 수녀와도 같은 경건함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다.

1초라도 더 시간을 벌어야 했다. 시발거 저 사람이 마법을 실패했다가는 바로 천국으로의 카운트다운이니까.

그래서 나는 두 번째 대책을 펼쳤다.

“프란체스카님!!”

“넷!!”

“던질게요!! 이 악물고 낙법 취하세여!!!”

“넷?!!”

대답은 들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옆을 달리는 프란체스카를 짐짝 들듯이 어깨 위로 들어올렸다.

번쩍!

작은 체구와 상반되는 폭력적인 가슴 탓에 생각보다 무게가 많이 나갔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히 던질 수 있다!

“끄오오오오오오오옷!!!”

나는 3년 동안 이세계 판타지에 과잉적응해버린 내 판타스틱 머슬에 힘을 쏟아부으며 몸을 한껏 뒤로 당겼다. 이대로 던져서 1초라도 자물쇠를 딸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파사사삭!

덥썩!

“───뎃?”

허리춤에 위화감.

존나 뭐라고 해야 할까. 플라스틱으로 된 굵직한 버블티용 빨대가 한 6개쯤 동시에 허리를 붙든 것 같은 느낌.

그럴 만도 했다.

사람 한 명을 드느라 내 발도 느려졌을 거고, 몸을 뒤로 당겼으니 ‘운 좋은 놈’이 한 마리 쯤 달라붙어도 하등 이상할 일이 없었다.

사사사삭!

─근데 시발 이 새끼 존나 움직이는데요.

“─오.”

나는 대갈빡에서 핏기가 싹 가시는 것을 자각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오오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히끄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두려움!

우리는 두려움에 완전히 마음을 지배당했다!

나랑 프란체스카는 나란히 지랄발광을 했다. 원초적인 공포 앞에 인간의 이성이란 이리도 덧없는 것이었다.

“투!!!! 척!!!!!”

그러나 우리는 그러는 와중에도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프란체스카를 쇠창살 앞까지 훅 던져버렸고, 프란체스카는 판초에서 온갖 잡동사니를 쏟아내면서도 쇠창살 앞까지 날아갔다.

“뺘앗!!”

프란체스카는 풍만한 가슴을 쿠션으로 풀 활용하며 바닥에 온몸으로 착지했다. 그러고는 반자동적인 움직임으로 품에서 연장을 꺼내 쇠창살 뚜따를 시도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녀의 행동을 구경할 수 없었다.

“씨바라아아아아아아아악!!!”

올라온다! 이 새끼 내 대갈통으로 올라온다!!

갑옷 때문에 허리나 어깨를 파먹지 못하니까 훤히 드러난 대갈통을 물려고 드는 것이었다.

존나 역사적으로 병사들이 갑옷이 없어도 투구는 끼고 다니던 이유를 알겠다. 나도 뒤지게 투구를 사고 싶어졌다.

올해 연구지원금 다 뒤졌다. 반드시 살아나가서 대갈통 방어력부터 업글하고 말 거다.

“내 동료를 놔라, 이 미물 놈아아아!!!!”

온 몸을 꼬아가며 날뛰는 나를 겐트릭이 도왔다. 그의 튼튼한 나무 방패가 내 등허리에 붙은 벌레를 후려쳤다.

퍼억!!

풍덩!!

약간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여치벌레가 내 허리에서 떨어져 하수도에 빠졌다. 나는 허리춤의 묵직한 느낌이 싹 가지자 존나 울먹이면서 광희난무했다.

“쓰벌 방패 좋아요!! 방패 멋있어요!! 사랑해요 겐트릭!!”

“사내놈한테 들어도 하나도 안 기쁘네!!”

역시 남자는 투구 따위 쓸 필요 없다. 대신 존나 믿음직한 방패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래서 파티에 탱커 한 사람은 꼭 있어야 한다. 인간 방패 겐트릭이다.

그때 타이밍 좋게 티르시가 뒤쪽에 완드를 겨눴다.

“북방에흐르는얼음의마나여무뢰한엄니를물리칠찰나의방패를!! !!"

영창 빠른 것 봐라. 아웃사이더의 망령이 씌여도 저것보다는 느릴 것이다. 사람은 위기상황에서 능력이 고조된다는 학설을 티르시는 자신의 혓놀림으로 증명했다.

저쯤 되면 거의 무영창이다. 저 긴 주문을 다 외우는데 1초도 안 걸렸다. 티르시는 존나 이력서 란에 주문영창 1초컷이라고 써 놔도 될 여자였다.

쩌저적─ 파칭!!

얼음이 얼어붙는 소리가 시리도록 짜릿했다.

커다란 빙벽은 이 넓은 하수도 통로와 배수로까지 포함해 통로 한 면을 완전히 봉쇄했다. 아무튼 존나 큰 실드였다.

“으아싸! 막았다!!”

나도 너무 기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외쳐버렸다.

“해치웠나!!”

─텅! 텅! 텅!

당연히 못 해치웠다.

벽에 살덩이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의 먹이에 겹눈으로 된 눈깔이 돌아가버린 여치떼가 얼음 벽에 몸통박치기를 해 대고 있는 것이었다.

“개새끼들아! 집착 많은 남자는 인기 없어!!”

“개새끼가 아니라 벌레새끼일세!”

겐트릭이 존나 정확무비한 지적을 했다. 와! 시발 내가 석사를 달았는데도 그걸 몰랐내! 여치가 개과가 아니라 메뚜기목 여치과였다니! 그것은 존나 연륜의 지혜였다!

“오, 오래는 못 버텨요!!”

뻐킹 현자 겐트릭 할배한테 뭐라고 한 마디 해 주려고 입을 열었더니만, 갑자기 티르시 쪽이 겐트릭보다 훨씬 더 말 같지도 않은 망언을 내뱉었다.

“넷?! 아니 제발 힘 좀 써 보십셔!!!! 저거 뚫리면 우리 다 벌레 물려서 뒤져욧!!!!!”

나는 하수도가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존나 브론즈 티어씩이나 되서 아이언 티어급 몬스터들도 제대로 못 막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근데 사실 말이 됐다. 나도 내가 브론즈 찍었다고 아이언 티어 깡패 20명을 상대로 맞다이로 이길 자신은 없었다.

“미안해요!!!!! 강도가 문제가 아니고 시간제한이에요!!!!”

티르시가 완드를 붙잡고 꺅꺅거렸다. 씨발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이 넓은 통로를 완전히 봉쇄할 기세로 범위를 늘렸으니 그만큼 유지시간이 깎였나 보다.

철컹!!

차라리 이러지 말고 실드가 유지되는 동안 뛰어서 거리를 벌리는 게 낫지 않나 싶었을 때, 프란체스카가 두 팔을 벌리며 펄쩍 뛰었다.

“열었다!! 열었어요 여러분!!”

“오오! 잘 했구려!! 아주 훌륭해!!!!”

프란체스카의 말에 겐트릭이 뒤도 안 보고 뛰어들었다.

나는 이 늙은이가 동료도 버리고 혼자 살려고 저러나 싶어 식겁했으나, 겐트릭은 키가 작은 프란체스카 대신 묵직한 쇠창살 뚜껑을 붙잡고 위로 들어올렸다. 그는 가장 먼저 달려가 동료가 도망칠 틈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어서들 들어오게!!”

“겐트릭 씨 왤케 일 잘해요!!”

나는 허리가 빠져서 엎어져 있는 티르시를 짐짝처렴 옆구리에 들춰메고 그쪽으로 달렸다.

…쩌적!

그리고 쇠창살까지 얼마 안 남았을 때, 뒤에서 존나게 무서운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와장창! 쨍그랑!!

“으어어어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28년의 삶에서 가장 빠르게 하수도를 질주했다. 나와 티르시는 필사적으로 하수도 통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끼이익!

철컹!

우리가 뛰어들고 1초도 안 되서 겐트릭이 쇠창살 뚜껑을 닫았다. 덩치가 큰 여치벌레들은 달려든 기세를 줄이지 못하고 다닥다닥 쇠창살에 들러붙었다.

두두두두두두!!

큼지막한 겹눈과 곤충 특유의 배떼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쇠창살 앞을 가득 메꿨다. 뭔 염병 곤충새끼들 무빙에서 기관총 같은 소리가 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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