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아악!! 개징그러 시발!!”
존나게 막 소름이 돋아서 등이 간지럽다. 아까 내 등에 붙은 새끼 앞다리가 아직 남아있고 그러는 거 아냐?
아니, 그딴 것보다 저것들이 틈을 벌리고 안으로 들어오면 어쩌지? 이 쇠창살은 개폐식 구조였다. 문을 열 지능이 없는 놈들이라도 이리저리 비비다가 보면 틈새가 열려버릴 수도 있었다.
“이익!! !!”
나랑 같은 생각을 했는지, 거칠게 숨을 내쉬던 티르시가 화풀이라도 하는 것처럼 주문도 생략하고 마법을 발사했다.
파바바박!!
얼음으로 된 화살이 거진 미사일 같은 기세로 쇠창살 곳곳에 박혔다.
화살은 물리력을 동반하지 않는 순수한 냉기의 덩어리였다. 쇠창살에 박힌 화살은 철창을 밀어내지 않고, 거기에 달라붙어 있던 여치벌레 몇 마리를 말려들게 하면서 쇠창살을 얼음으로 굳혀버렸다.
─움찔움찔.
창살 밖으로 빠져나와 꿈틀거리던 곤충 다리가 얼어붙어서 멈췄다. 이걸로 완전히 이 입구는 봉쇄된 것이었다.
아, 이러면 인정이지. 여치벌레들의 움직임이 멎자 침묵이 돌아왔다.
똑…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아주 커다랗게 들렸다.
우리들은 한참을 그렇게 잠자는 사자 옆의 얼룩말처럼 아가리를 하고 있다가, 이제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어깨에 힘을 빼고 안도할 수 있었다.
“사, 살았다…. 죽는 줄 알았어요….”
“진짜 완전 개 진심으로 동감입니다.”
프란체스카의 울먹거림에 나 역시 절절한 감상을 담아 대답했다. 진짜로 뒤지는 줄 알았다. 세상에 하수도에서 에이션트 곱등이랑 스펙터클 마라톤을 벌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공감능력을 풀로 발휘해서 대답해자 프란체스카가 물기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와 가슴 개크당.
“시, 실은 저는 쪼끔 지렸어요….”
“그건 안 동감.”
누굴 오줌싸개 동지로 만들려고.
“힝….”
“허허. 괜찮네. 나도 처음에는 퀘스트 중에 자주 지리고 그랬어.”
겐트릭이 허허 웃었다. 딱히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으나 오늘은 캐리를 많이 하셨으니 그냥 넘어가 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서로 속옷 상태에 대한 보고를 마친 우리는 마치 지당히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티르시에게 눈길을 모았다.
“…뭘 쳐다봐요.”
우리의 브론즈 클래스 파티장님께서는 빨간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매력 넘치는 두 다리는 안짱다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희대의 불가사의를 파헤친 직후의 고고학자처럼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코가 막혀서 아무런 냄새도 안 나요.”
“돌아갑시다!! 길드에 보고해야죠!!”
완드를 끌어안은 티르시가 빼액 거리며 소리쳤다. 우리는 더 이상 괜한 추궁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딴 엄마아빠 없는 살인벌레가 창궐하는 곳에서는 더 이상 정찰 따위 불가능했다. 이건 길드랑 경비소에 보고를 때려서 본격적으로 방역을 거쳐야 할 것이었다.
“그렇게 합시다. 왜 저런 괴물 벌레들이 가득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저건 원래 하수도에 서식하는 벌레들이에요…. 보통은 저렇게 많진 않지만요….”
프란체스카가 급속냉동된 여치들을 쳐다보며 말했지만 나는 솔직히 좆도 관심 없었다. 존나 우리가 그딴 걸 알아서 뭘 하겠는가. 정 궁금하면 길드에서 따로 이세계 파블로라도 불러서 분석하라고 하든가.
겐트릭은 한숨을 쉬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후우. 아무튼, 어서 가십시다. 여길 타고 가면 지상으로 나갈 수 있을 거요.”
“예. 저도 빨리 여관에 돌아가서 쉬고 싶네요.”
“가는 길에 속옷도 사구요.”
“…왜 저를 쳐다보면서 말하시죠? 전 완전 괜찮거든요?”
우리는 투덜거리면서 지상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존나 무지개 다리가 코앞까지 내려왔다가 돌아간 하루였다.
이게 어딜 봐서 아이언 티어 퀘스트야. 뒤질 뻔 했자너.
우리는 비상탈출구를 통해 지상까지 기어나왔다.
탈출구의 문은 안쪽에서만 열리는 구조였다. 안쪽에 있던 우리는 별 문제 없이 문밖으로 나왔고, 푸른 하늘 아래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다들 여기 모여서 서 보세요.”
랜턴이랑 지도를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티르시가 말했다. 우리는 의아해 하면서도 그녀가 시키는대로 움직였다.
우리가 한 곳에 모이자 티르시는 완드를 뽑아들고 주문을 외웠다.
“떠나라. 몸을 더럽히는 부정의 잔흔. 이는 해독의 바람, 남방의 경풍(輕風). .”
주문이 전부 외워지자 차가운 바람이 위아래로 한 번 씩 불었다.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지만 바람은 금방 멈췄다.
“뭐, 뭔가요? 지금 건.”
“바람 계통의 소독 마법이에요. 악취를 제거하고 가벼운 먼지 같은 걸 없애는데 쓰죠.”
얼떨떨해 하는 프란체스카에게 티르시가 설명했다.
“시판되는 악취 제거제보다 효과가 좋아요. 이게 없었으면 솔직히 저는 저기 안에 못 들어갔을 거에요.”
“오오! 정말이군! 갑옷에서 냄새가 하나도 안 나는구려!”
자기 갑옷의 냄새를 맡은 겐트릭이 기쁘게 말했다. 그 반응에 나도 팔에 찬 아대를 코에 가져갔다가, 철이라서 어차피 아무 냄새도 안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옷에서는 하수구에서 나던 악취가 하나도 안 났다. 마스크에서도 말이다.
시발 마법 개쩌네. 존나 나도 룬어 할 줄 아는데 마법이나 배워 볼까.
“저는 랜턴이랑 지도를 돌려주고 길드에 보고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먼저 들어가셔도 됩니다. 의뢰를 중간에 그만둔 셈이니 보수는 사태 파악이 끝난 뒤에나 줄 테니까요.”
티르시가 피곤한 얼굴로 물건을 챙기며 말했다. 그러자 겐트릭이 한 걸음 나섰다.
“경비병한테 반납하실 겐가? 그렇담 나한테 맡기시게. 내 대신 갖다 드리지.”
“아뇨. 여기까지가 파티장의 일인걸요. 다들 피곤하실 텐데 먼저 들어가세요.”
“으음… 그렇다면야 배려 고맙게 받겠네.”
“네. 먼저 가 보겠습니다.”
차분한 거절에 겐트릭은 뒤로 물러났다. 티르시는 이번엔 우리들을 향해서 목례했다.
“노르드 씨랑 프란체스카 씨도, 오늘은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들 안녕히 계세요.”
“네! 티르시 씨도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고생하셨습니다.”
인사를 마친 티르시는 돌아서서 떠났다. 지쳤을 텐데도 꼿꼿하게 선 허리가 인상 깊은 뒷모습이었다.
프란체스카는 한참을 서 있다가 내게 조그맣게 속삭였다.
“…새 속옷을 사러 가시는 걸지도 몰라요.”
“…저 분의 속옷이 골드 클래스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눈앞은 슬슬 노래지기 시작했습니다.”
피곤해서 머리가 띵하다는 느낌이 뭔지 이제 알겠다.
어쩌면 혼절할 정도로 어두운 하수도에 몇 시간이나 있다가 햇빛 아래로 내려와서 눈앞이 아찔한 걸 수도 있고.
“아참. 여기 마스크 돌려드리겠습니다.”
나는 지상에 나오자마자 풀었던 마스크를 프란체스카에게 주었다.
“빨아서 돌려드리려 했는데, 티르시 씨 덕분에 냄새 하나 안 나네요. 아니면 다음에 제대로 세탁해서 드릴까요?”
“아뇨. 그냥 지금 주셔두 되요.”
헤헤 웃으며 프란체스카는 검은 마스크를 품 속에 넣었다. 겐트릭도 자기 마스크를 풀고 우리를 향해 인사했다.
“그럼 나도 가 보겠네. 또 보세, 젊은 친구들.”
“예. 들어가십쇼. 프란체스카 씨도 안녕히 계시고요.”
“두 분 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함께 사선을 넘은 덕에 이미 초면의 어색함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겐트릭 할배는 쿨하게 떠나갔고, 프란체스카도 밝은 미소를 지으며 달려갔다. 나도 여관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발을 움직였다.
“씨발 뒤지겠네.”
존나 피곤했다. 당장 집에 가서 자야지.
돈 내고 묵는 남의 집이지만 말이다.
여관으로 돌아온 나는 다음날 아침까지 골아 떨어졌다.
거의 대학원생 시절 철야한 날에 버금가는 피로였지만 신기할 것도 없었다. 반쯤 뒤질 뻔 했다가 살아난 것이다. 몸이 쉬고 싶어하는 것은 한여름에 불알이 늘어지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일어난 나는 이를 닦고 세수를 한 뒤에 방으로 돌아왔다.
“쓰읍, 운동해야지 참.”
브람마톤 교수님이 알려주신 기초 근력 운동을 조지는 것이 내 아침의 시작이었다.
운동의 상세한 코스는 생략한다. 존나 무거운 돌과 근성만 있으면 된다고 말해두겠다.
“후우우우….”
적절한 근육의 혹사는 삶의 활력에 보탬이 된다. 근육통? 그딴거 운동하면 낫는다.
‘운동장처럼 마음 놓고 달릴 장소가 없는 게 아쉽네.’
조깅이 힘든 것이 유일한 흠이었다. 새벽부터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은 사르가디스다. 길거리를 뛰기에는 여러모로 장애가 많았다.
공원처럼 넓직한 부지를 찾고는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스페이스는 발견되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터벅터벅.
나는 오늘치 운동을 끝내고 1층으로 내려갔다. 갑옷은 입지 않았다. 밥을 먹고 나서 씻으러 목욕탕에 갈 생각이었다.
“오. 일어나셨군.”
1층으로 내려갔더니 테이블을 닦던 도르카가 날 보고 인사를 해 왔다.
“좋은 아침. 푹 잤더니 개운하네.”
“아침은 무슨. 해가 뜬지 한참 됐다. 이미 점심이야.”
도르카가 킬킬대며 말했다.
우리는 요 며칠 사이에 서로 말을 놨다. 가만 보면 도르카 쪽이 존댓말을 쓰기 귀찮아서 먼저 제의한 느낌인데, 거부하기에는 너무 무서운 얼굴이라 걍 알겠슴다 하고 말았다.
“나는 아침이 빨라서 이미 하루 일과의 절반이 끝났거든. 아침 인사나 하면서 은근슬쩍 아침밥 공짜로 먹을 생각이었으면 포기하시지. 이제 돈 받을 시간대야.”
“망할.”
시발 타임 오버로 공짜밥 캔슬하기 있냐? 호텔 조식도 아니고 정책 한 번 무자비하다. 혀를 차면서 지갑에서 꺼낸 1쿠퍼를 손가락으로 튕겨 날렸다.
“아침부터 돈 더럽게 깨지네. 나 오늘 목욕하면 욕탕비도 또 내야 된다고.”
“크크크. 별 수 있나. 아, 그런데 아침식사용 요리는 진작에 다 나갔어.”
“뭐야 내 1쿠퍼 돌려줘요.”
이 야발련은 요리가 다 나갔는데 돈을 왜 받는 것이지.
“스프랑 빵은 있어. 1쿠퍼나 받았으니 빵을 큰 걸로다가 줄게. 방에다가 놓고 두고두고 드셔.”
“나 방에 그릇 없는데.”
“그럼 사야지.”
“아니 뭔 돈 나갈 일이 10초에 한 번씩 생겨.”
시발 망할 셋집살이 같으니. 돈 나갈 곳이 너무 많다. 무슨 빈 독에 물 붓기냐고. 저금해 둔 돈이 없었으면 진짜로 좆 될 뻔 했다.
“근데 오늘따라 유독 한산하네.”
나는 테이블에 앉아 1층을 둘러봤다. 사람이라고는 나 밖에 없었다.
“뭐지? 드디어 이 망할 여관보다 서비스 좋고 착한 미인이 운영하는 여관이 생겼나? 나도 거기로 갈 걸.”
“곰팡이 핀 빵 땡처리해 버리기 전에 아가리 싸물어.”
스프를 가져온 도르카가 말했다. 테이블에 놓인 스프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다.
이 여관은 아침부터 끓인 고기 스프를 밤에 스튜로 만들어서 판댄다. 그야말로 이세계판 곰탕집이었다.
“암튼 왜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 보통은 그래도 아재들 몇 명 정도는 낮술 마시면서 인생 허비하고 그랬잖아.”
“그 손님들이 다 모험가들인데 지금은 일을 나갔으니까 그렇지. 댁이야말로 모험가 씩이나 되서 소식 못 들었나?”
“뭔 소식?”
어디에 뭐 노다지라도 터졌나 했는데, 실제로 도르카의 입에서 나온 사실은 그것에 가까웠다.
“어제 저녁부터 던전이랑 유적이 계속 발견되는 중이랜다. 모험가 길드들이 각각 하나씩, 다 합쳐서 3개.”
“던전이 3개? 히든 던전 바겐 세일이네.”
참으로 위험천만한 혜자 이벤트였다.
사르가디스는 유적은 많지만 던전은 드물었다. 사실 발토되는 유적들도 그다지 대단하지는 않다. 만약 여기가 개쩌는 아티팩트가 나오는 여기가 고고학계의 핫 플레이스였다면 고고학계 지부 쯤은 있었겠지.
그리고 나는 그 사람들한테 밀려서 제대로 된 논문거리도 못 주웠을 것이다.
유적에 먼저 들어가도 크림슨 발록에 밟혀 뒤지는 7레벨 초보자처럼 금방 세상을 하직하지 않았을까.
내가 모험가로 활동할 도시를 고른 기준 중 하나가 그거였다. 적당히 안전하고 논문 거리도 있는 곳. 사르가디스는 내가 엄선한 입지 좋은 촌동네였다.
대충 21세기 식으로는 ‘신도시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재개발이 진행되다 말아서 8, 90년대 가정집이 가득한 경기도 지방 도시’ 같은 장소다.
“바겐… 뭐라고?”
“아. 그냥 우리 나라 말이니까 신경 안 써도 돼.”
“그래?”
도르카는 별 관심 없는 태도로 넘어가고서는 여관의 문 밖을 쳐다보았다.
“아무튼 유적은 별 것 없다는데 던전 쪽이 위험해. 둘 다 몬스터가 많고 한쪽은 밖으로 나오려고까지 한다더라. 그래서 모험가들이 다 일하러 나갔지.”
“그래? 대체 무슨 던전이길래 일이 그렇게 커졌대?”
이쪽 세상에서 던전은 몬스터가 나오는 곳의 통칭이다.
유적은 던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게, 최소 몇십 년에서 최대 몇백 년 씩이나 방치된 유적에서는 안에 있는 몬스터들도 다 뒤진다. 걔들도 밥은 먹어야 살지.
던전이라 불리는 공간의 주된 패턴은 2개였다.
몬스터가 모여서 만든 소굴과, 눈 돌아간 또라이들이 만든 비밀기지. 전자는 고블린 소굴이 대표적이고 후자는 흑마법사의 은신처가 업계 아이콘이다.
“던전? 고블린 소굴이랑 흑마법사의 은신처라던데.”
“완전 맛집 정식이잖아.”
반찬 라인업 끝내주네. 내 아침밥보다 낫다.
“…근데 그러면 사르가디스가 위험하진 않나?”
“모험가들이 알아서 잘 처리해 주겠지. 도시 근처로 와도 영주님네 군대가 있잖아.”
촌동네 병사들한테 바라는 것도 많다. 여기 병사들한테 기대를 거는 건 후방지역 지원부대한테 북한을 조져주길 바라는 거랑 마찬가지라고 보는데.
“그러는 댁이야말로 늦잠 자고 일어나서 목욕이나 하러 가지 말고, 기회 됐을 때 뭐라도 주으러 가 보면 어때? 내가 살면서 던전이 발견됐는데 점심에 일어나서 아침밥 먹는 모험가는 처음 본다.”
“흐흐. 내가 원래 유니크한 놈이라서. 그리고 주인공은 나중에 등장하는 법이잖아.”
“도입부에 나와야 주인공이지.”
개씹팩트였다. 여기 사람들이 은근히 팩폭을 잘 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