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인내심이 없어 쑥과 마늘의 세례를 견디지 못하고 산으로 도망간 비열한 자일 뿐이다. 거기다 그 뒤로도 자신 대신 선택받은 웅녀의 후예들을 괴롭히는 호환마마가 되기를 자처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전부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야수의 힘을 얻는 주술을 사용함으로써, 곰과 같은 힘을 지니게 된 것은 말이다.
“이 씨발 고블린 새끼들아!! 일로 와서 한 줄로 딱 서!!”
쿠와아악!!
전신을 번쩍이는 녹색의 마나로 코팅한 내가 외쳤다. 사대강의 녹조랑 똑같은 추접한 녹색의 고블린들은 나와의 격차를 느꼈는지 몸을 떨어댔다.
“크캭? (위험해?)”
“크캭 쿠! (위험해 아니다!)”
하지만 그 점에 있어서는 역시 그린 잼민이. 실로 원시적인 회화라고 할 수 있는 상담 끝에 놈들은 우리 일행에게 우랴 돌격을 감행했다.
우르르르!
진형도 절도도 없이 달려드는 고블린들! 그러나 저 19마리 잼민이들은 저 무자비하고 무질서한 살의 끝에서 목적을 달성하는 야만스러운 생물이었다.
나는 그 초라한 돌격에 조금의 공포도 느끼지 못했다.
저 놈들이 잼민이가 아니라 보디빌더여도 지구용사가 된 나를 이기는 것은 결단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심으로는 힘을 얻자마자 가오를 잡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으나, 이미 나 노르드는 이세계 마초이즘 전사로서 살아가기로 결심한 몸.
적과 자신의 전력 차이를 가늠하고 그에 따라서 대처를 바꾸는 것은 생물로서 당연한 소양이었다.
그리고─ 저 그린 잼민이들에게는 그 능력이 결정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
“크큭. 무리다.”
가장 먼저 달려드는 고블린에게 검을 휘둘렀다. 강화된 근력은 속도도 방금 전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부웅!!!
서걱!!!
“갹!!”
선풍을 일으키며 휘두른 검이 고블린의 몸통을 반으로 갈라 죽였다. 시발 진짜 이게 내가 벌인 짓이 맞나? 순간 얼떨떨한 나머지 입이 떡 벌어졌다.
“켁! 크캭!! (큰일났다! 위험해!!)”
같은 결과물을 두 번이나 봤으니 멍청한 고블린들도 이젠 현실을 깨달아버렸다. 나는 그린 잼민이들의 발이 멈춘 것을 노려 검을 마구 휘둘렀다.
서걱! 쓰걱!
손에 남는 감촉은 생물을 베는 느낌이 아니었다. 짐승의 힘이 깃든 덕분일까? 고블린의 살을 베는 감촉은 삽으로 어린 아이들이 만든 눈사람을 개박살 내는 것에 가까웠다.
“내가 너희의 구몬 선생이다!”
내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고블린이 한 마리씩 뻗었다. 거의 파죽지세로 적을 참살하자 그린 잼민이들도 전투력의 차이에 눈치를 깠다.
그린 잼민이들이 점차 모랄빵이 난 표정을 지었다. 공격의 기세도 확연히 줄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좋은 잼민이는 죽은 잼민이 뿐.”
나는 기세를 타서 한손으로 쥔 검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엄청난 근력 덕분에 굳이 두 손으로 검을 쥘 필요도 없었다.
퍽!
그런데 너무 마구잡이로 휘두른 탓이었을까. 지방투성이가 된 검이 고블린의 몸통에 박혀버렸다.
“어 애1미.”
내가 검을 잡아 뽑으려 한 즉시 고블린 한 놈이 나에게 돌도끼를 휘둘렀다. 시발! 여기에 골든 타임을 노려 나를 구해줄 인간방패 겐트릭 할배는 없었다!
“파라곤 씨! 당신 힐만 믿습니다!”
날아드는 돌도끼를 나는 왼쪽 손을 내밀어 막았다.
그것은 몹시 비이성적인 행동이었다. 손이란 인체에서 손꼽히게 약한 뼈와 관절을 가진 부위다. 돌도끼를 막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여기서는 팔에 찬 금속 아대로 막아야 했다! 존나 힐 받을 생각만 하느라 대처방식을 잘 못 골랐던 것이다!
─턱!
그런데 이게 막히네.
“갹?”
솔직히 손을 들어 막은 직후에는 나 스스로도 후회했다. 도끼에 맞아서 내 손뼈 갯수가 1.5배로 늘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고블린의 돌도끼는 내 손을 코팅한 녹색 마나 앞에 허무하게 막혀버렸다.
공격을 막은 손에는 일절의 고통도 데미지도 없었다.
“…아, 과연. 이거 방어력도 올려주는구나.”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쓴 당나귀’라는 이솝우화가 있다.
그 이야기에서 주인공인 당나귀는 우연히 얻은 사자 가죽으로 사자 행세를 했다. 사자의 흉내를 내서 상대를 기만하고 정신적인 우위에 섰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감추지 못해서 히히힝 소리를 내다가 정체를 들켰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 당나귀의 실질적 상위호환 같은 것이었다. 흉내가 아니라 실제로도 곰의 가죽을 웃도는 방어력과 공격력을 얻었으니까.
곰은 가죽과 근육으로 인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방어력을 지닌다. 외국에서는 어느 무술의 달인이 곰에게 정권을 날렸는데도 곰은 그 사람이 자기랑 놀아주는 줄 알았다고 한다.
같은 이치로 잼민이가 만든 간석기 따위는 나의 마나 가죽을 뚫지 못하는 것이었다.
“갸악!!”
그때 내 손에 무기를 저당 잡힌 고블린이 나에게 발차기를 날려댔다. 이번에도 데미지는 전혀 없었지만 이 놈이 발차기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감탄스러웠다.
“놀랍군. 고블린 주제에 발차기를 할 줄 알 줄이야.”
그래서인지 라임이 오지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발차기라는 것은 인류의 독문절기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들도 발차기는 하지 않는다. 원숭이나 고릴라는 2족 보행이 ‘가능한’ 거지, 평소에는 4족 보행으로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4족보행이 패시브인 놈들은 발차기를 하는 의미가 없다. ‘손’과 ‘발’의 근력이 거의 동등하기에 그렇다.
그러므로 참된 발차기란 평생을 2족보행으로 살아온 생물의 전유물이다.
인류가 ‘앞발’이 아닌 ‘손’을 사용하기 시작한 대가로 얻은 힘!
자신의 체중을 견디며 강해져야만 했던 ‘두 다리’로 발하는 기술의 정수야말로 발차기다.
하지만─ 이 고블린에게는 그 ‘기술’이 없었다.
나약한 발길질이 계속해서 내 마나 가죽 위를 두들겼다.
고블린의 발차기는 정말이지 잼민이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 남아라면 누구나 어릴 적 한 번 쯤 다녀 본다는 태권도장─ 그 잼민이 전용 유치원에 맡겨진 하얀띠 꼬맹이처럼 말이다.
“하찮구나.”
나는 인간의 발차기를 따라하는 고블린의 졸렬한 흉내가 실로 불쾌했다. 이 옹졸맞은 발차기가 내 안에 흐르는 태권소년의 피를 비등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이 놈들이 정말 인간족 잼민이였다면 나도 포스트 벡터맨으로서 이들을 잘 타일러야겠지만, 고블린은 결국 몬스터에 불과한 생물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말했다.
“그린 잼민이여. 참된 발차기란 그런 것이 아니다.”
─휙!
나는 그 놈을 집어던져 공중에 띄우고, 검을 쥔 채로 하이킥의 폼을 취했다.
“내가 견본을 보여주마.”
우러러 보아라.
“이것이─.”
진정한.
“─‘발차기’다.”
─절기의 작렬.
우두두둑!!!!
“갸아아악!!”
원심력을 살린 상단 돌려차기가 작렬했다. 고블린은 척추가 옆으로 꺾였고, 그 꼴로 몇 미터를 날아갔다.
가죽이 붙어 있어 몸통이 두 동강 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척추가 반으로 접혔다. 화타가 시간을 멈추고 집도해도 되살릴 가망이 없는 치명상이었다.
“지구용사를 자처하기에는 너무 끔찍한 광경이군.”
CG처리 따윈 없는 날것 그대로의 스플래터!
가슴이 아파오는 잔인한 광경이었지만 나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는 않았다. 이 잼민이들을 내버려뒀다간 우리들이 되려 스너프 필름의 출연자가 됐을 것이었다.
내 정의의 마음에 조금의 죄책감도 없다!
“싹 다 뒤져라! 이것은 자연의 법칙, 약육강식의 이치다!!”
“정말이지 훌륭한 의견이시오!”
내 옆에서 파라곤이 스태프를 몽둥이처럼 휘둘렀다.
빠각!!
돌로 된 스태프의 위력은 살인적이었다. 고블린들이 석장에 맞은 부위를 붙잡고 바닥을 굴렀다.
더없이 구슬픈 비명! 회초리로 맞아도 뒤지게 아픈 법인데 돌덩이로 뼈를 맞았으니 온몸이 남아나질 않았을 것이다.
“크하하하! 파라곤 당신 무지 잘 싸우네! 사실 수렵신이나 투쟁신의 사제 아냐?!”
에스트도 에스트대로 광소를 터트리며 방패를 들어 달려드는 고블린의 공격을 막았다.
─텅!
푸욱!
방패로 무기를 막아서 시야를 가리고 단창으로 찌른다. 존나 심플하면서도 막기 힘든 콤보였다. 방패를 때려 부수던가 하지 않고서는 어찌 하지도 못할 전투방식이었다.
“크캭!! (위험해!!) 크캭!! (위험해!!)”
“얍!!”
“크─ 갸악?!”
한편 내 옆에서는 닷지각을 노리던 고블린이 프란체스카의 망치에 맞아 절명했다.
그녀의 무기는 효자손 길이의 막대에 추처럼 생긴 망치 머리가 붙은 망치였다.
겉보기에는 거의 뭐 장도리나 다름없는 비쥬얼이었는데, 생김새랑은 달리 살상력은 차고도 넘쳤다. 정말이지 주인인 프란체스카와 쏙 빼닮은 무기였다.
퍼걱!
드워프의 피를 잇는 그녀의 파워를 더하자 고블린의 머리통이 두부라도 된 것처럼 박살나서 살점을 튀겼다. 오우 쒯. 프란체스카의 공격이 제일로 아파 보였다.
“봤지? 나한테 죽는 편이 제일 덜 아프고 좋다니까?”
“캬, 캬아아악….”
도망치는 고블린. 나의 대활약과 파티원들의 서포트 덕에 그린 잼민이들과 우리의 숫자 차이는 진작에 역전되었다.
이제 남은 잼민이 친구들은 고작 셋이었다. 지금 그 셋 중 하나도 프란체스카의 장도리 웨펀에 맞아 뒤졌다.
“갸학….”
머리에 고속도로 터널이 뚫려서 뇌수 댐이 방류되는 중인 그린 잼민이!
털썩!
나와 대치한 고블린은 다리가 풀려 넘어졌다.
“갸흑! 갹! 갹! 갹! 갹!”
푹푹푹푹푹!!
놈이 그러는 사이에 남은 친구도 에스트의 니가 가라 하와이 연타에 배를 쑤셔져 삶을 하직했다. 에스트 싸우는 거 존나 무섭다. 쟤한테는 까불지 말아야겠다.
─덜덜덜덜.
그렇게 마지막 고블린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다. 나를 향해 오지 말라는 듯이 비명을 질러댄다.
“갸아아아아아악! 갸아아아아아악!!”
지들이 먼저 선빵도 치고 먹이로 삼으려고도 했던 주제에 참으로 말 같지도 않은 꼬라지였다. 나는 멜론색 기름으로 범벅이 된 검을 들고 놈의 앞에 섰다.
“갸, 갹, 갹…!”
“─꼴사납구나.”
무기조차 떨군 그 모습에 나는 경멸하는 시선을 보내면서 작게 읊조렸다.
“크캬쿠 캬아아! (너 안 싸운다!) 크르큭! (추하다!)”
“…크캬! 크캬륵 캬르르륵? (너! 우리 말 한다?)”
내가 고블린 말로 더빙을 해 주자 놈은 입을 떡 벌렸다.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세상에 어떤 미친 놈이 고블린들 언어를 연구해서 놈들이랑 대화를 해 주겠는가. 이것은 거진 나만이 가능한 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잼민이의 명예를 위하여 일부러 그를 도발했다. 이것은 내가 그들에게 보내는 자비였다.
비록 이종족이이지만 그들도 잼민이의 일원인 이상, 어린이들의 영웅인 내가 손절을 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뭘 하고 있는 거요? 설마 고블린이랑 대화하는 것이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나는 파티원의 말에 존나 단호박으로 시치미를 뗐다. 몬스터랑 쌰바쌰바했다가는 이세계판 빨갱이인 흑마법사로 오해를 받는 수가 있었다.
“그냥 아무 소리나 내뱉어 보는 겁니다. 흐흐. 저 놈들이 무슨 뜻으로 알아듣든 제가 알게 뭐랍니까?”
“저들을 놀리는 것이로군. 잔혹한 짓이외다.”
“석장에 묻은 퍼런 피부터 닦으시고 말씀하시죠.”
“어흠흠.”
아무튼 자기가 먼저 덤벼놓고 지들 좋을대로 서렌 치는 꼴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을 담아 나는 저 놈에게 이런 의미의 말을 던진 것이었다.
“─엎드려 살지 마라. 일어나 죽는 거다.”
고블린의 언어체계 상 세련된 표현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분명히 마음은 통했을 것이다.
“캬르르르륵….”
그때 고블린이 낮게 뇌까렸다. 그가 흘린 신음소리는 언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굴욕과 분노를 담은 읊조림이었다. 우리를 향한 분노와 승리를 향한 집착이 그의 목소리에 담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너라. 호드의 명예를 아는 고블린이여.”
“──캬아아아아악!!”
명예를 자각하여 분노에 각성한 고블린의 영웅은 용맹하게 내게 달려들었고──
“잼민이 컷.”
“갸흑.”
골통이 파-킨 하고 박살나서 뒤졌다.
“인권도 없는 하등생물 주제에 으딜 인간님한테 까불어.”
쥬르륵….
내 곰돌이 펀치 앞에 즉사하여 나자빠지는 고블린. 나는 손끝에 남은 짜릿한 승리의 감각에 취하며 동굴 천장에서 비추는 태양빛을 내리쬐었다.
“빅토리.”
참으로 명예로운 전투였다.
“아무튼 이겨서 다행입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