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1,009)

“어련하시겠니.”

한숨을 쉬면서 증류주 압카디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프랑이 내가 들고 온 술병을 보고 흠칫 했다.

“그, 그 술 설마…?”

“네가 먹고 뻗었다는 술 맞아. 소독용으로 받아 왔으니까 손 이리 줘 봐.”

아까도 쓴 천에 술을 살짝 붓고 가져갔다. 프랑은 이번에는 순순하게 손을 내놓았다. 나는 젖은 천으로 상처를 부드럽게 덮어 씌웠다.

상처에 술 묻은 천이 닿지 프랑이 화들짝 놀랐다.

“끄아앙!”

“아파? 그래도 조금만 참아.”

“으그으으…!!”

프랑이 발을 동동 굴렀다. 나무 바닥에서 콩콩 소리가 났다. 그보다 시발 이 개쩌는 가슴은 쉴새없이 남자의 눈길을 빼앗는군. 제발 그만 좀 흔들려라. 쥬지 아나콘다가 일어나는 감각이 너무 소름돋는단 말이다.

‘지구용사 벡터맨 님들. 제게 힘을 빌려주세요!’

나는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하여 흔들리는 풍만한 계곡에 빠져들지 않고 버텼다. 그리고 프랑의 손가락에서 천을 뗐다.

“자, 소독 끝.”

“후, 후, 후…!”

눈물이 찔끔 난 프랑이 파르르 떨었다. 냄새만 맡아도 장난 아닌 증류주를 상처에 발랐으니까 아플 만도 하다. 거의 뭐 이세계 알보칠 원액이다.

“이리 대. 마지막으로 물로 헹구자.”

“또, 또 하게?”

“떽. 빼지 마. 이것만 하면 끝이니까.”

물로 헹궈서 혹시 모를 술의 잔류물도 닦아냈다. 끝으로 천 끝을 조금 찢어서 환부를 묶고 끝냈다. 이제 안심이다.

“으으. 노르는 잔걱정이 너무 많아. 언제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라더니.”

손가락을 붙들고서 프랑이 말했다. 피식 웃은 나는 방에 딱 하나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러니까 몸 간수를 더 잘 해야지.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몸부터 건강해야 할 거 아냐.”

“하여간 말은 잘 해.”

프랑은 삐졌나 보다. 나는 그런 그녀를 웃으면서 지켜보는 한편, 알코올 묻은 천으로 바늘을 닦으며 다른 생각을 했다.

‘야수회귀 말고 다른 마법도 배워 둘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새삼 깨닫는다. 기술력의 발전을 마법 하나로 퉁쳐버린 이세계에서 마법을 쓸 수 있고 없고는 큰 차이를 낳는다는 것을.

내가 불속성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사전에 바늘을 약간 지져서 소독을 해뒀을 것이다. 시발 그 망할 유적에서도 마법으로 모닥불을 피워서 추위에 벌벌 떨지 않았을 거고 말이다.

꼴꼴꼴꼴─.

그때였다. 내가 바늘을 닦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어디서 컵을 꺼낸 프랑이 증류주를 잔에 따랐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

“야! 너 그걸 왜 따라?!”

“어? 마시려고 가져온 것 아니었어?”

“마실 생각이었으면 잔도 받아 왔겠지! 그건 소독용으로 받아 온 거랬잖아!”

시발 내가 미쳤다고 공업용 알코올에 합성착향료를 부은 것 같은 술을 마시려 들겠냐고. 증류주가 저것밖에 없대서 다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증류주가 저것 뿐이라는 소리는 딱 봐도 개구라 같기는 했는데, 말씨름해서 이길 상대가 아니니까─주인장이 안 판다는데 내가 어쩌겠는가?─ 포기하고 가져왔을 뿐이다.

“관두고 이리 내. 너 그거 한 잔도 못 버텼다며.”

나는 프랑에게 다가가며 말리려 했으나, 순간 말실수를 했음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프랑은 내 말에 욱 한 표정을 짓더니만 잔을 들고 뒤로 후퇴했다.

“마실 수 있어! 처음 마셨을 때는 그… 여행하느라 지쳐서 그랬던 거야! 자, 봐봐!”

그리 호기롭게 외친 프랑은 머그컵 크기의 나무 잔에 가득 담긴 술을 원샷을 때려버렸다.

오 시발 세상에. 존나 예전에 뉴튜브에서 스피리타스 10잔을 내리 원샷 때린 뉴튜버가 실신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영상이 오버랩되는 모습이었다.

꿀꺽꿀꺽!

──탁!

“푸흐아!”

단내나는 숨을 뱉으며 입가를 훔치는 프랑.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는 모습에 정말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부들부들.

파르르르.

“야, 너 다리! 다리!”

“에으?”

테이블을 짚은 프랑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작고 청순해 보이는 얼굴이 끓는 물에 넣은 냉동 꽃게처럼 시간차를 두고 점차 빨갛게 익어갓다.

어 시발. 혹시 급성 알코올 중독 같은 건 아니겠지? 다시 걱정이 된 내가 그녀의 옆으로 달려가자, 프랑은 자기 손으로 허벅지를 후려갈겼다.

짜악!!

그렇게 큰 소리가 나도록 자기 다리를 후려쳐 떨림을 멎게 하고서, 프랑은 가슴 아래로 팔짱을 끼며 당당하게 섰다.

“괸찬아!”

“아니 존나 하나도 안 괸찬아 보여.”

혀가 꼬여서 발음도 제대로 안 되는 주제에 뭔 허세래. 난 압카디 한 잔에 머리가 훼까닥 해 버린 그녀의 모습에 어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프랑이 그 사이에 압카디를 또 집어들었다. 손까지 떠는 주제에 수전증 할배가 야동 사이트를 찾는 듯한 집념으로 끝끝내 2잔째 잔을 가득 채우고야 말았다.

“너 또 마시게?”

“아냐아아앙….”

존나 발정기 고양이냐고. 깜빡이 없이 훅 들어오는 깜찍함에 내가 스턴에 걸렸을 때, 술을 다 따른 프랑이 술잔을 쑥 내밀었다.

“자!”

‘자’는 무슨 의미의 ‘자’지.

쳐 마시고 자라는 뜻인가.

나는 쑥 하고 들이밀어진 압카디의 화끈한 향기에 질색을 했다. 시발 뇌까지 알코올 냄새가 들어오는 느낌이다! 그만 손등으로 코를 가리고 뒤로 3보 후퇴하고 말았다

“야! 냄새 장난 아니니까 이쪽에 내밀지 마!”

“어? 프랑 냄새나…?”

“아니 너 말고 술이요, 술.”

자기 팔에 코를 박고 냄새를 킁킁 맡는 프랑. 나는 이틈에 얼른 압카디 병을 챙겨 마개를 막아버렸다.

“이건 이제 끝. 더는 마시지 마라. 암만 생각해도 얘는 술이 아냐. 미생물 들어 있는 플라스크에 이거 넣고 몇 번 흔들면 마셔도 병 안 걸릴 수준임.”

“않 마셔어어…? 그쿠나….”

시무룩해진 프랑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더니 손에 든 술잔을 자기 입에 가져갔─ 아니 그걸 또 왜 니가 마시니 시발.

“에헤이, 스탑! 그거 지지야 지지. 이리 내.”

프랑이 든 술잔을 빼앗았다. 그러자 그녀는 뭔가 기대하는 것처럼 나를 쳐다봤다. 마실 거지? 그치? 같은 느낌으로다가 말이다.

“…쓰읍.”

취객을 상대로 논리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그걸 잘 아는 바 있었기에 나는 딱 한 입만 마셔 보기로 했다.

──꿀꺽.

“─오웨에에에.”

혀가 타들어가는 것 같다! 한 입 삼키자마자 나는 그것에서 입을 떼 버렸다.

이걸 원샷 때렸다고? 위장은 괜찮나? 시발 다 마셨다가는 그 자리에서 오늘 아침까지 게워내게 생겼는데?

“…노루, 슐 묫 먀셔?”

프랑이 안타깝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 표정이 약간 인생 절반 손해보고 산다는 듯한 느낌이라 나는 울컥했다. 자기도 술 한 잔에 퓨즈가 나가서 척추반사 오토모드로 버티고 있는 주제에 뭐라는 것이지?

“마실 줄 알아. 그리고 누가 노루야. 내가 고라니여?”

“몰랴…. 안 먀실 그면 냐 조.”

그렇게 말하고 술잔에 손을 뻗길래 얼른 높이 들었다. 어딜 키 160도 안 되는 녀석이 신장 180cm 오버인 노르드 님에게 높이높이 승부를 걸어.

“씁. 이 이상 마시지 마. 너 그러다 내일 일 못 나간다?”

“시러어. 먀실래…. 쥬인 아쥼먀가 냐한텐 그거 안 좃서. 마시지 말례서 나 묫 마셧셔….”

“주인 아주머니가 잘하셨네 그건.”

프랑이 이 술을 마시고 저러는 꼴을 되는 것을 봐서 팔지 않기로 한 걸까.

여관 주인 아줌마는 생각보다 착한 사람이었다. 이세계인 장사치들 중에는 농약 먹고 죽으려는 사람한테도 기왕 가는 길이니 남은 돈은 나 주고 가라며 바가지를 씌우는 놈들도 흔히 보이는 마당에 말이다.

“노루가 안 먀시면 내가 먀실래….”

“안 돼. 안 줘. 저리 가.”

취한 사람답게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나는 프랑이 다가오는 만큼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기보다 먼저 내 등이 벽에 부딪혔다.

“노루우….”

취기로 정신이 나간 프랑이 내 몸에 밀착했다. 그러고는 까치발을 서서 내가 높이 든 술잔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당연히 고작 그 정도로 극복될 신장 차이는 아니었지만─ 그녀에게는 30cm의 키 차이 따위는 극복해버릴 무기가 딱 하나 있었다.

아니, 2개 있었다.

─부비적 부비적.

─2개의 커다란 질량이 내 하반신에 밀착했다.

가죽 갑옷과 내의로 한국 과자처럼 빽빽히 포장되어 있던 저번과는 감촉이 완전히 달랐다. 이 시발, 지금까지는 과대포장은 커녕 거의 뭐 진공포장이었나 보다!

“끄악!”

나는 식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의 신장 차이는 대략 30cm. 그리고 내 품에 안기듯이 서 있는 프랑의 정수리는 지금 내 명치 근처에 있었다.

정수리가 명치에 있다 함은 어깨는 배꼽 주변에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즉─ 프랑의 대책 없이 커다란 가슴이 내 쥬지를 부드럽게 덮어버렸음을 의미했다!

좆 됐다! 이대로 가다간 내 가랑이의 협곡에서 잠자던 쥬지-아나콘다가 깨어난다!

“시, 시발!”

몸을 파르르 떤 나는 머리를 비우고 손에 든 술을 원샷 때려버렸다. 이 잔에서 술이 사라져야만 프랑이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꿀꺽꿀꺽! 꿀…… 꺽!!!

존나 두 모금 째부터 분출할 뻔 했다. 그에 나는 대학원생 시절 배웠던 식도 개방식 음주법을 최대한 활용해 술잔을 싹 비웠다!!

시발 그러고 나서야 나는 비명을 지를 수 있었다!!

“갸아아아아아악!!! 갸학!! (아프다!!) 갸학!! (아프다!!)”

나는 한 마리의 에이션트 잼민이가 되어서 절규했다!

아프다!! 이건 취하고 지랄이고 이전에 목이 그냥 씨발맞게 아프다!!

─현대 화학에서 이르길, 알코올 분자에 존재하는 하이드록시기는 물과 결합하기 쉬운 성질을 가진다.

도수가 높은 술이 식도를 지나가면서 타는 것처럼 뜨거운 것은 이 작용기가 체내의 수분과 수소결합을 하며 열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인간은 존나 병신 같은 생물이다. 대학에서 그 비싼 학비를 내서 배워 놓고는 몸으로 겪기 전까지는 전혀 실감을 하지 못했으니까!

“퉤퉤퉤 엠창씹창!!”

그 염병할 화학작용공식을 몸으로 체험한 나는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존나 끓는 물을 속에 부은 것처럼 목 안이 가렵다!! 위액이 염산을 뒤집어 쓴 장수풍뎅이처럼 꼬부라지는 것이 그야말로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헤헤. 마셧네.”

그때 프랑이 내게 밀착해서 얼굴을 비볐다. 말랑말랑해 보이는 볼따구는 아주 매력적인데, 나는 아파 뒤지려고 하는 식도와 좋아 뒤지려고 하는 쥬지에 시달리느라 자기 몸을 겨누는 것조차 어려웠다.

기우뚱─.

한계에 봉착한 몸이 기울어졌다! 시발! 암만 그래도 여기서 여기서 프랑 위에 나자빠지는 건 너무 진부한 전개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서 몸을 비틀었다.

“끼요오오오옷!!”

쿵!!

“그엑.”

“꺄♥”

밟힌 개구리 같은 목소리를 낸 나와, 즐거워 하는 프랑. 이곳 여관방에는 인간이 알코올로 얻을 수 있는 혼돈 파괴 망각이 모조리 존재했다.

“으그그극…. 크하악….”

나는 뒤통수의 통증을 참으며 숨을 거칠게 골랐다. 바닥에 넘어졌던 탓에 진짜 개빡칠 정도로 아프다.

하지만 누우니까 머리에도 아주 조금 여유가 생겼다.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머리 안에서 번개가 친 느낌이었다.

마나를 다루는 인간이 강해지는 것은 체내의 마나가 신체기관의 기능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력처럼 단련으로 강해지기 어려운 능력까지 단련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간은 어떨까?

마나를 어떻게 잘 써 보면 간의 알코올 효소 생성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발상으로 나는 눈을 감고 전신의 마나 카테터를 일으켰다. 몸에 흐르는 마나를 간에 집중해 보려 했던 것이다.

─물컹.

근데 시발 이상한 감촉이 느껴지네.

나는 눈을 살짝 뜨고 위화감의 출처를 찾았다. 프랑이 내 몸 위에 올라타서 나를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노르.”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나는 존나 미인계에 낚이는 남자들의 기분을 백 번 이해했다. 여자 스파이나 서큐버스에게 홀리는 이유를 100% 알았다.

그냥 피부가 맞닿아서가 아닌 것이다. 풍겨오는 냄새와 달뜬 숨소리, 두근거리는 심장은 사람의 이성을 휘발시키에 충분한 것이었다.

인간은 존나 태생부터가 호르몬 작용의 생물이다. 여자와 몸을 맞추고도 아무렇지 않은 것은 고자나 게이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나는 당연히 고자도 게이도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쥬지가 풀발해 버리고 마는, 건전한 성인 남자지.

“…하아, 진짜.”

스륵.

나는 손을 뻗어서 프랑의 뺨을 만졌다. 그녀는 간지러운 것처럼 굴면서도 내 손에 뺨을 비볐다.

사실 나도 눈치는 챘었다.

목욕 중에 창문을 열어서 얼굴을 내민다든가, 젖은 머리로 방에 부른다든가, 둘밖에 없는 밀실에서 술을 마신다든가, 하여튼 모르는 편이 병신새끼일 정도로 정황증거는 많았으니까.

그런데도 끝까지 모르는 척 했던 것은─ 시발 이 좆 같은 아나콘다 쥬지 때문이지 뭘 물어봐 개빡치게.

야수회귀의 영향을 받은 내 자지는 솔직히 커도 너무 컸다. 어떤 이유로 +18 레전더리 자지가 되어버렸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노릇이기도 했다. 이런 영문도 모를 상태로 거사를 치뤄 버리자니 영 망설여졌던 것이다.

“노르…. 좋은 냄새 난다….”

하지만 여기서 핑계를 대며 튀는 새끼는 마초는 고사하고 사내놈도 아니다. 그런 새끼는 좆 떼고 혀를 깨무는 편이 나았다.

나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던 프랑과 눈이 맞았다.

더 이상 무드 없는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데 엉켜서 입을 맞췄다.

첫 감상은 ‘따뜻하다’였다.

“츄읍. 쪽….”

프랑은 내 위에 달라붙듯이 밀착하며 키스를 이어갔다. 숨결과 숨결이 서로의 입 안으로 퍼지자 증류주의 향기와 프랑의 체취가 풀씬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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