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1,009)

마지막 기세를 모아서 뿜어낸 애액이 내 손을 흠뻑 적셨다. 나는 내 턱선에 키스하듯이 달라붙었던 프랑과 눈이 마주쳤다.

쪽. 쮸릅. 츄으읍.

우리는 입술을 곂치고 혀를 섞었다. 애정교류 같은 풋풋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음란한 타액의 교환이었다.

“하웁. 햐으아….”

몸을 돌려 키스하던 프랑과 입술을 뗐다. 타액이 우리의 입술 사이를 실처럼 늘어졌다가 끊겼다. 침으로 된 실이 내 목에 착 달라붙자 프랑이 손으로 닦아주었다.

“…노르. 힘들지 않아?”

프랑이 내 자지를 만지며 물었다. 내 쥬지는 솔직히 이미 폭발 직전이었다. 나는 깊게 심호흡을 하고서 대답했다.

“프랑? 딱 한 번만 하자.”

“…미안해 노르.”

프랑은 그렇게 말하면서 일어나 내쪽에 엉덩이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왼손으로 한쪽 엉덩이를 당겨서 벌렸다.

“실은 나도 중간부터… 기대해 버렸어.“

──아, 시발. 이건 못 참지.

나는 한 마리 짐승이 되어서 그녀의 질에 삽입했다.

“햐으으응!!”

짧고 굵은 섹스를 마치고 우리는 욕조에 함께 잠겼다.

“후아…. 몸이 녹는다….”

내 양반다리 위에 앉은 프랑이 뜨거운 물을 손에 퍼올리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을 지었다.

“평소에도 목욕탕에는 자주 온다더니, 반응이 왜 그리 처음 온 사람 같냐?”

“…흥. 노르 너한테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한테 욕탕은 너무 깊단 말야.”

“……? 욕탕의 깊이가 무슨 상관── 아아.”

나는 말하다 말고 눈치를 깠다.

프랑의 몸은 160cm 미만의 키에 성인 여성의 훌륭한 비율을 담은 기적적인 신체다. 당연히 앉은 키는 80cm 이하다. 성인을 기준으로 만든 대중목욕탕에서는 바닥에 앉았다간 꼬르르륵 해 버리고 말 것이었다.

“여기서 몸은 곧잘 씻었지만 온탕에는 못 들어갔어. 서 있자니 탕에 들어가는 의미가 없고, 앉아 있자니 꼭 무슨 잠수부 같아지더라. 내가 낑낑대는 걸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부끄럽기도 하구.”

“과연. 그래서 오늘은 내 품에 들어온 거군.”

“헤헤. 노르한테 안긴 건 그냥 이러고 싶어서였지만.”

웃으면서 말하지 마라. 내 쥬지가 발기탱천하겠다.

“너 자꾸 꼴리게 할래? 처신 잘 하라고, 변태 드워프야.”

“헤으으….”

풍만한 지체를 한껏 끌어안으면서 말하자 프랑이 내 팔 안에서 부르르 떨었다.

아무튼 그렇게 서로 끌어안고 꽁냥꽁냥 대고 있느라고 내 쥬지는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허리에 슥슥 비벼지는 감촉에 프랑이 자신의 등에 시선을 던졌다.

“계속 서 있네. 남자는 그래도 안 아파? 나는 어제 몇 번 하고 나니까 아침에 약간 아팠어.”

“그건 아마도 내가 어제 지나치게 절제없이 덮쳐서 그런 걸 걸. 남자도 발기를 오래 하거나 사정을 많이 하면 아파져.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었고.”

“얼마 전까지는?”

프랑이 내 말에서 위화감을 잡아냈다. 나는 프랑이 느낀 위화감을 긍정했다.

내가 오늘 이 탕을 빌린 것은, 프랑에게 이제껏 숨겨왔던 비밀들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오늘부터 우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연인 사이가 된 것이다. 좋게 쳐 줘도 사이 좋은 친구 사이였던 어젯밤 전까지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러므로 나도 어느 정도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 순리에 맞았다.

‘마침 여기는 그쪽 용도로 만든 욕탕이고.’

이용자들의 ‘소음’이 다른 욕탕에 퍼지지 않게 방음성은 철저하게 했을 것이었다. 비밀 얘기를 하는데 적합한 장소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프랑.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모험가로 먹고 살기 위해 사르가디스에 온 게 아니야.”

“응? 뭐야? 비밀 얘기?”

내 발언에 프랑이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후후. 나한테 귀족 출신이냐고 물어봐 놓고 사실은 노르야말로 어느 먼 나라의 왕자님이라든지?”

“왕자님은 아니지만 언젠가 내 여친님한테 왕자의 아내 못지 않은 호강을 시켜줄 예정이지.”

“그렇게 말해줘서 기뻐. 그래도 무리하기는 없기야?”

“아무렴 그래야지. 아무튼 그래서 무슨 얘기냐면─.”

나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일단 서론부터 꺼냈다.

“─프랑 너, 카르미네 대학이라고 알아?”

“알지. 이 나라에 있는 엄청 유명한 학교 아냐?”

“맞아. 그리고 나는 1년 전까지… 그 대학의 번역 노예 겸 연구원생이었어.”

남의 옛날 얘기라는 것은 자칫 듣는 사람에게는 지루해지기 쉽다.

그러니 나는 되도록 간결하고 정확하게 지난 3년 간 겪은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었다.

─입국 방법에 착오가 있어서 불법체류자로 체포당해 3년의 노예형을 선고받은 것.

─노예시장에서 고고학 교수인 예르나 그라시에를 만나 카르미네 대학의 노예가 된 것.

─거기서 능력을 인정받아 대학 교수들의 일을 도우며 번역과 고고학 연구에 종사한 것.

─3년 뒤에 노예에서 해방되었지만, 내 학위를 얻기 위해 썼던 논문을 예르나에게 도둑맞고 말았던 것.

─새로 쓴 논문으로 석사 동장의 학위를 얻고 현장직 고고학자가 되었던 것.

─사르가디스에는 모험가와 학자, 두 방면의 실력을 쌓기 위해 찾아왔다는 것.

─귀족을 비롯한 누군가에게 코가 꿰이지 않도록, 여러 아내와 결혼해서 학자로서도 가장(家長)으로서도 굳건한 입지를 다지고 싶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내 꿈인 공간이동의 기술을 얻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과정인 것.

그런 이야기를 했다.

지구라고 불리는 또다른 행성이나 세계에서 찾아왔다는 얘기는 생략했다. 이것도 말해주고 싶지만 믿든 믿지 않든 골치만 아픈 이야기다.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가 보면 대충 이 이세계와 지구 사이의 관계도 윤곽이 잡혀올 것이다. 그때 가서 다시금 밝혀도 될 일이었다.

프랑은 중간부터 말 없이 내 이야기를 들었다. 물에 젖은 앞머리가 눈가를 가려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잘 안 보였다.

“─이런 사정이 있어서, 내 정확한 신분은 카르미네 대학 소속 석사 동장의 현장직 고고학자야. 그 뒤의 일은 말 안 해도 알지? 내가 수행한 의뢰 2개가 전부 다 프랑 너랑 같이 한 의뢰니까.”

나는 프랑의 조용함에 약간 불안해 하면서도 이야기를 끝냈다. 이걸로 내 비하인드 스토리의 80%는 밝혔다. 이세계인이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그렇게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프랑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 예르나라는 사람은?”

“예르나?”

첫 질문부터 내 짐작과는 다른 것이었다. 나는 기억을 되살려가면서 대답했다.

“아마 분명… 게르마니아의 대학으로 날랐을 걸? 그쪽에는 고대문명 이전의 신화시대급 유적이 자주 발토되서──”

“그런 게 아니라!”

첨벙!!

프랑이 물을 거세게 튀기며 벌떡 일어났다. 깜짝 놀라는 나를 돌아보며 프랑은 앞머리를 걷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논문을 도둑 맞았다며!! 그것도 노르가 3년 동안 열심히 만든 논문을!! 그런데 왜 그렇게 태연하게 말을 하는 거야?! 나 듣기 편하라고 그러는 거야?! 그러지 마!! 화를 내야지!! 노르한텐 그럴 자격이 있잖아!!!”

와 눈에서 불이 막 튀기네. 푸른 불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프랑은 씩씩대면서 외쳤다.

“예르나라는 엘프한테 복수해야 할 것 아냐!! 찾아내서 왜 그런 나쁜 짓을 했냐고 실컷 두들겨 때려주고!! 논문을 도둑질해서 죄송하다고 사람들한테 사과하게 만들어야지!!! 상까지 받았다는 그 연구가 사실은 노르가 만든 거였다고 세상 사람들이 다들 알게 만들어야지!!!!!!!!!!!”

“지, 진정해! 프랑! 너답지 않게 왜 이리 흥분했어?”

“노르 네가 전혀 화를 내질 않으니까 내가 대신 화를 내고 있는 거야!!!!!!!!!”

그, 그렇군요.

나는 일단 내 어깨를 붙든 프랑을 만류했다.

“아니 그야 나도 당연히 언젠가 복수할 생각이지. 하지만 당장은 뾰족한 수단이 없으니까 일단은 내 입지부터 다지고──.”

“그럼 왜 아까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어?! 나는 그게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

프랑은 눈물마저 보이면서 외쳤다.

“노르는 지금 누구보다 화를 내도 되는 거잖아!!!!! 내가 했던 고생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로 힘들고 슬플 텐데, 왜 성질 한 번 안 부리는 거야?! 노르야말로 지금 이러는 거 노르답지 않아!!!”

“그건 그, 쿠르타 족의 모 저명한 교수님께서 제창하신 증오풍화론과 탈주닌자식 증오축적 단련법에 나의 실경험을 더한 노르드식 감정조절법으로─.”

“쎳더 마우스 해!!!”

“넵.”

아가리 했다.

“씨익… 씨익….”

욕탕이 떠나가라 서럽게 소리치던 프랑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면서 욕탕에 주저앉았다.

뽀얀 뺨을 흐른 눈물이 욕탕에 떨어져 파문을 일으켰다.

“…미안 노르.”

프랑은 긴 속눈썹에서 넘쳐나는 눈물에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말했다.

“내가 조금 흥분했나 봐. 확실히 그냥 연인에 불과한 내가 노르의 생각에 이러쿵저러쿵 떠들 자격은 없을지도 몰라.”

“아니, 그런 거 아냐! 절대 그런 거 아니라니까?!”

씨발 내가 왜 예르나 그 좆프년을 위해서 우리 프랑이 마음 고생을 하게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풀이 죽은 그녀의 모습에 온몸의 살가죽이 뒤집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존나 예르나 년의 목숨이나 인생 따위는 프랑의 속눈썹 한 가닥만큼의 가치도 없다!!

“프랑 네 말이 백 번 옳아!! 그리고 뭐, 우리가 어디 그냥 연인이냐?!”

“…그럼 무슨 연인인데?”

아니 거기서 되묻기 있냐? 나는 한 순간 뇌리에서 몰아친 온갖 단어를 천고의 기지를 발휘하여 한 마디로 정리했다!!

“프랑!! 너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야!!”

“…다른 여자도 아내로 삼을 거면서?”

…이세계 꼴마초 노르드는 앞으로 나오시오.

이 씨발 넌 뒤졌어 씹쌔야.

이거 존나 가불기잖아!!! 어쩔 거야 씨발!!!! 갸아아악!!!!

“…후후. 농담이야.”

프랑은 그제서야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다 알고 노르한테 반한 거고, 다른 아내들이랑도 잘 지내고 싶은걸? 나는 노르한테 버려지지만 않으면 돼.”

“내가 너를 왜 버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프랑 너는 살리고 죽을 거야.”

“헤헤. 고마워. 말만이라도 참 기쁘다.”

내 품에 들어온 프랑이 내 몸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우리 둘 다 욕탕의 온수 속에 있었지만 나는 프랑의 체온을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하게 느꼈다.

“…노르. 날 좋아해?”

“응.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결혼해 줄 만큼?”

“그렇고 말고.”

나는 프랑의 고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프랑이 중얼거렸다.

“그러면 사랑한다고 말해줘. 노르가 가는 길에 나를 같이 데려가 준다고 약속해.”

“…네 꿈은 괜찮아? 접수원이 되겠다며.”

“그런 건 꿈이 아니야. 갈대처럼 흐름에 맡겨서 정해버린 일이지. 그리고 포기한 꿈은 추억이 될 뿐인걸.”

프랑이 몸을 조금 떨어트려서 내 눈을 빤히 쳐다봤다.

“노르가 말했잖아. 하고 싶은 걸 하라구.

──나는 있지? 노르 너를 돕고 싶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바란 거, 너무너무 오랜만이야. 태어나서 누군가를 멋지다고 생각해 본 것도 처음이었어.

그래서 깨달았어.

나는 노르 네가 노력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도와주고 싶다는 걸.

노르는 그냥 지금까지처럼 꿈을 위해서 살면 돼. 복수를 해도 괜찮고 전부 포기해 버려도 상관없구.

하지만 나 혼자 노르가 없는 곳에서 노르를 생각하면서 사는 것만은 절대로 싫어.”

프랑은 자신의 파란 눈을 깜빡거리지도 않고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말씀하셨어. 첫사랑을 놓친 후회는 한 순간의 감정을 사랑으로 착각한 결말보다 쓰라렸다고.”

─싱긋.

작은 얼굴에 어떻게 이리도 사랑스러운 얼굴이 갖춰져 있나 신기할 정도의 미소로 프랑이 물었다.

“하지만 노르는… 내가 후회하지 않게 해 줄 거지?”

“…당연하지.”

분명.

분명 저 말에 돌려줄 대답은 이 세상 천지를 다 둘러봐도, 이것 하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랑해. 프란체스카.”

“─나도야. 노르드.”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사랑을 속삭였다.

우리들한테는 백 번의 어설픈 말보다도 이런 교감이 훨씬 더 잘 어울렸다.

이래서 다들 사랑에 못 죽고 사느라 안달이구나─ 하고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모텔 대실이 기본 3~4시간이 평균인 이유를 알겠다.

섹스를 30분 땡 치더라도 옷 벗고 씻고, 다시 씻고 입어야 하니까 생각보다 별로 길지도 않을 듯 하다.

“벌써 10시네.”

욕탕에 누워 과일을 먹으면서 프랑이 말했다. 어차피 이것도 요금에 포함이니까 얼른 먹기로 했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고 나서 밥도 아직 못 먹었으니까.

“의뢰 집합장소까지 가는 시간도 포함해서 나가야지. 슬슬 준비해야 돼.”

나도 탕에 누워 포도주를 마시면서 말했다. 프랑이 마시려는 걸 말리고 나 혼자 2잔 째를 마시는 중이었다.

어제 먹은 압카디의 정신 나간 도수와 비교하니까 싸구려 포도주는 맹물 같았다. 고생을 많이 하면 소주도 달다는데 나는 고생도 존나 하고 포도주 자체도 존나 달아서 과일까지는 못 먹겠다.

그래서 탕에 누워서 물장구치는 프랑의 뒷태를 안주 삼아 마셨다. 목욕탕에서 술을 마시면서 여성의 알몸을 구경하자니 뭐라 말로 형용하기 힘든 퇴폐감이 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왜 집에 수영장을 만드는지 이해가 갔다.

“오늘 의뢰 갔다 와서 짬짬이 노르 로브랑 가면을 수선해 준다 치고… 내일이랑 내일 모레도 의뢰를 잡아 놨으니까 앞으로 2, 3일 정도인가?”

프랑이 손가락을 꼽아가며 예정을 셌다. 내 부탁에 드는 시간을 계산하는 모양이었다.

“이틀 뒤까지 일이 잡혀 있어? 대체 며칠 연속으로 일을 나가는 거야?”

“글쎄…? 여기 오고 하루도 쉬어 본 적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프랑. 아니 그건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나는 약간 표정이 굳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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