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장이들의 주요 수입원은 농기구 제작&수리를 메인니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가끔씩 모험가들이 비싼 무기나 갑옷을 사 가는 것은 곗돈을 타는 날이고, 보통은 녹슬고 고장난 농기구를 수리해 주고 생활비를 번다고 한다.
카르미네 대학이 있던 아인히르는 교역도시라서 농기구를 파는 대장간은 거의 보지 못했었지만 말이다.
나는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아는 사람의 이름을 보고 묘하게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집중해서 수확에 매진했다.
그렇게 적당한 페이스 분배로 수확을 이어나갔다.
이런 일은 많이 한다고 보수를 더 주는 것도 아니다. 일을 잘 하는 놈은 보다 많은 일을 선물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나도 적당히 딴 생각이나 하면서 느긋하게 일했다.
그리고 이런 때에 생각하는 것은 한 가지 뿐이었다.
‘아─ 프랑 찌찌 만지고 싶다─.’
낫을 휘두르면서 머리 속으로는 우리 귀여운 프랑의 폭력적인 젖을 떠올리는 나.
프랑 찌찌 왕찌찌…. 세상에서 제일 부드러운 찌찌…. 브리타니아 제일 찌찌….
프랑의 커다란 가슴은 최고다. 나는 프랑의 가슴이라면 하루 종일도 더 만지고 있을 수 있다. 슬쩍슬쩍 닿는 보드라운 감촉은 천사의 실크옷만 같다.
팔짱을 낄 때, 품에 안길 때, 옆에 다가올 때, 거리낌없이 접촉하는 프랑의 거유. 나는 그때마다 쥬지콘다를 진정시키며 늘어지는 인중을 억제하기도 바빴다.
줄기 세포 좆까. 가장 위대한 세포는 가슴이다. 피와 살로 된 생물이라면 덮어놓고 혐오하는 스카이넷의 하수인들도 거유를 한 번 만져보면 인류해방군에 투항하고 말겠지.
이렇듯 거유는 늘 옳다.
속설에 이르길, 아내의 미모는 3년을 가고 지혜는 30년을 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 가장 오래 가는 사랑이란 곧 가슴이다. 가슴은 영원하다.
있을 수 없는 가정이지만 만약에 프랑이 무언가를 잘못해서 나랑 싸우게 되더라도, 프랑이 가슴 금지령이 내리는 순간 그 싸움은 내 패배가 되고 말겠지. 일종의 무역보복 같은 것이었다.
삼국지에서 관우는 화타가 어깨를 칼로 쨀 때도 바둑을 두며 참았다는데, 나는 프랑이 내 얼굴 위에 가슴을 올려주면 갈비뼈를 벌려서 심장을 갈아끼워도 모를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세상의 진리다.
1+1은 2이라는 사실에 반박하는 놈은 지구원반선을 믿는 병신들 말고는 없다. 1+1이 2인 것처럼 사람마다 2개 있는 가슴도 우주의 진리와 동일한 삼천세계의 섭리였다.
그리고 똑같은 1이라면 좀 더 커다란 1을 골라야 한다.
500ml 콜라 1+1이랑 1.5L 콜라 1+1이 같은 가격이다? 그러면 당연히 1.5L를 고르는 것이 이과적인 선택이었다.
같은 가격인데 거기서 굳이 500ml 뚱캔을 고른다니! 그건 소아성애자의 발상이다. 즉결처형 해도 무죄다.
캔 콜라가 더 시원하고 탄산이 안 빠져서 좋다고? 아둔한 문과놈들. 변명은 국립국어원에서 하도록.
나는 그렇게 오랫 동안 낫질을 하다가 허리를 한 번 폈다.
따로 힘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프랑 생각을 하다 보니까 내 허리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의 몸은 이제 나만의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보름달 뜬 밤 이후로 내 몸은 프랑의 것이기도 했다.
시발 생각해 보니까 존나 놀랍다. 지금껏 나 말고 내 몸을 소유해 본 놈이라고는 그 애미 터진 대한민국 육군밖에 없었는데.
아무튼 수확도 꽤 많이 진행됐다. 내가 지나온 밀밭을 돌아보니 거의 운동장 절반 크기의 밀밭을 수확 완료한 상태였다. 프랑의 가슴 모양을 떠올리느라고 일 속도가 엄청 빨라져버렸던 것인가.
슈왁─ 슈왁─ 슈왁─!
놀라운 점이 또 하나. 꽤 오래 지난 것 같은데 야수회귀는 풀릴 기색을 보이지 않더라.
내 마나통이 그만큼 늘어난 걸까? 정확하게 시간을 재지를 못하니까 얼마나 늘었는지 감이 안 잡혔다.
이럴 때마다 회중시계가 고프다. 다음에 프랑이랑 같이 가서 시계를 하나 맞추든가 해야지.
시발 근데 내 것만 사는 것도 좀 에바인데. 프랑 것도 맞춰줘야 하지 않나? 존나 시계 2개면 얼마지. 내 저축금으로 살 수는 있을랑가 모르겠네.
내가 오늘까지 모은 돈은 총합 5실버였다. 존나 적은 금액이지만 이해 바란다. 노예 시절에는 따로 월급도 없었고 석사 달기 전에 받는 돈은 월 1실버였단 말이다.
저걸로다가 3년 반 만에 5실버나 되는 거금을 모았으니까 오히려 칭찬받아야 한다.
‘다음번에 데이트라도 권해 볼까.’
시계 값을 알아보고 프랑한테 시간 나는지 물어 보자. 그러고 보면 아직 프랑의 생일이나 취미도 잘 몰랐다.
나중에 시간 날 때 하나씩 물어보도록 하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서 수확을 재개했다.
그렇게 나 혼자 논밭 하나를 다 민둥산으로 만들고 나니 금방 점심시간이 되었다.
펄럭─.
나랑 프랑은 논밭 옆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점심 내내 일을 했더니 배가 고팠다. 돗자리에 앉은 내가 가져온 모험가 가방을 내려놓고 휴대식량을 꺼내려고 했을 때, 프랑이 말없이 웃는 것이 보였다.
“프랑?”
“헤헤. 사실 오늘은 내가 이런 걸 준비해 봤거든.”
내 물음에 프랑이 방긋 웃으며 가방에서부터 천으로 감싼 바구니를 꺼냈다.
바구니? 아, 이거 혹시…?
“짠!! 샌드위치랍니다!”
귀엽게 외치면서 나무 바구니의 뚜껑을 여는 프랑. 바구니 안에는 맛깔스럽게 생긴 샌드위치가 잔뜩 들어있었다.
“만들어 왔다니… 프랑 네가?”
“응! 농삿일은 힘들잖아. 점심에도 든든히 먹어둬야지!”
프랑의 말에 나는 감격하며 몸을 떨었다.
여친이 손수 싸준 도시락이란 것은 뭇 남자들한테는 꿈에 가까운 음식 아닌가. 고작 며칠 전까지 아다였던 나는 여친의 애정 어린 도시락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기에 감동은 더욱 컸다.
그리고 커다란 감동은 얼마 안 가서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자신의 얼굴이 침울해지는 것을 스스로도 알았다.
“프랑 너는 도시락까지 싸 줬는데, 나는 아무 것도 준비를 못 했네. 난 그냥 같이 먹을 고기밖에 안 가져왔어.”
내가 가져온 거라고는 건조식이랑 저번에 도르카한테 받은 고기 뿐이었다.
하수도에 가져갔어도 잘 포장해 놨었기에 냄새는 안 뱄다. 그래도 도시락까지 챙겨온 프랑에 비하면 거의 아무 것도 안 챙겨온 수준이었다.
프랑은 내 말에 괜찮다는 듯 머리를 저었다.
“신경쓰지 마. 나는 괜찮은걸?”
“괜찮기는. 이런 일일 수록 신경을 써야지.”
농담 삼아서 마망 같은 소리를 했던 나였지만 프랑은 진짜 내 어머니인 것도 아니잖는가.
친자식에게조차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에 어머니의 모성이라는 것이 존엄한 것일진대, 연인에게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자기 권리 마냥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딴 식이어서는 머지않아 연인관계가 파국을 맞이하고 말 것이었다.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오늘은 챙겨 오질 못했으니 어쩔 수 없다지만, 다음에는 기대해. 남자의 요리를 거하게 한끼 차려줄 테니까.”
“푸흐흐. 기대 안 하고 기다릴게.”
내 말에 프랑은 진심으로 기쁜 것처럼 발그레 해졌다가 다시 얼굴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었다.
“그래도 노르, 남자가 함부로 주방에 들어가고 그러는 거 아니다? 나는 정말 고맙지만, 그래도 노르가 딴 사람들한테 배알 없다는 소리 듣는 건 싫어.”
남자는 주방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나는 잠깐 벙쪘다가 제정신을 차렸다. 이세계에서 남녀차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었다.
중세처럼 존나 ‘여자는 3일에 한 대 때려야 한다’ 같은 소리를 하는 씹새끼는 거의 없지만, 이런 자잘한 부분에서는 가끔씩 태생적 환경의 차이를 느낀다.
인간은 환경에 지배받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태어날 때부터 그런 배경에서 살았으니 21세기의 상식이랑은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우리 세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여자애를 없는 애 취급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나는 내심으로 이런 자잘한 부분부터 우리 관계를 평등한 수평구조로 바꾸고자 마음먹었다.
그래도 프랑이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것은 본말전도일 것이었다. 서로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도록 하자. 이세계 하렘충 꼴마초인 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편하게 해 줄 권리 정도는 있을 것이다.
“알았어. 조심할게. 하지만 나는 우리 여친님한테 내가 해준 밥 먹여주고 싶은데 어쩌지?”
은근슬쩍 프랑을 끌어안아서 스킨십을 했다. 목을 움츠린 프랑은 즐거워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여친님? 무슨 뜻이야?”
“여자친구님. 아니, 여신님이라고 할 걸 그랬나?”
“에이, 노르도 참. 내가 무슨 여신님이야. 혼혈인 여신님이 어디 있다구.”
품 안에 안긴 프랑이 손을 뻗어서 내 턱을 쓰다듬었다. 나는 내 손을 들어 프랑이 곧잘 하듯이 그녀의 손을 덮고 따뜻한 온기를 즐겼다.
“혼혈인 신들도 엄청 많아. 그리고 출신이 뭐가 중요해? 이렇게 착하고 귀여우면 혼혈의 혼혈이어도 여신님 해야지.”
“푸흐흐. 노르, 간지러워─.”
그렇게 당분간 붙어 있다가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었지만 러브 에너지 말고 바이오 에너지도 채워야 몸이 버틴다.
프랑이 만들었다는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먹었다.
생김새로부터 짐작은 했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엄청나게 맛있었다. 나는 샌드위치를 삼키고서 입을 떡 벌렸다.
“아니 뭐야? 대체 뭘로 만들었길래 이렇게 맛있지?”
“과장은. 닭고기랑 야채랑 넣었어. 소스 재료는 베이냐 씨가 빌려 주셨어. 꽤 맛있게 됐지?”
“꽤 맛있게… 이게? 그럼 ‘엄청’ 맛있는 건 무슨 궁중요리 급은 돼야 하겠네.”
나는 프랑의 높은 기준에 말문이 막혔다.
이세계에서 샌드위치는 불을 안 쓰고 조리가 가능하기에 흔하디 흔한 간편식이었다. 대충 라면… 아니, 간장계란밥 정도의 포지션이다. 나도 3년간 물리게 먹었다.
그래도 이만큼 맛있는 샌드위치는 거의 못 먹어봤다.
이건 간장계란밥을 뛰어넘어 수란 올린 소고기 장조림 볶음밥 쯤 되는 맛있음이었다.
“헤헤. 노르가 먹을 거라고 생각해서 애정을 담아서 만들었거든. 그래서 더 맛있나?”
“으그그극…. 양심이 찔린다….”
프랑의 수줍은 웃음에 심장이 아팠다. 귀엽고 미안하고 대단하고 막 그렇다.
얘는 진짜 못하는 게 뭐지. 요리도 잘 하고 서바이벌 능력도 있고, 재봉 일은 프로급에 싸움도 나 못지 않다.
워낙 겁이 많아서 그렇지, 드워프의 파워에 재빠른 몸놀림을 더한 프랑의 공격력은 나도 야수회귀 없이는 승산을 장담 못 할 레벨이다.
아마 이기더라도 팔다리 하나 쯤은 망치에 얻어맞아 떨어져나간 뒤겠지.
혹시 내가 이세계 와서 가장 운이 좋았던 일은 쥬지콘다의 각성이 아니라 프랑의 연인이 되었던 것 아닐까.
“안 되겠다. 내가 어떻게든 성공해서 우리 프랑 꼭 호의호식 시켜 줘야 쓰겠어. 정원 딸린 집에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 수 있게.”
내가 샌드위치를 입에 욱여넣으면서 결의를 표명하자 프랑은 간지럼이라도 태워진 것처럼 웃어댔다.
“쿡쿡. 그건 사양할래. 나는 앉아서 대접받기만 하는 것보다 이것저것 만지고 움직이는 편이 즐거워서.”
“그래? 그럼 취소.”
“싱겁기는.”
프랑이 귀엽고 새콤달콤하니까 나는 밍밍해도 된다.
아무튼 더 열심히 하자. 프랑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자가 되어야 했다. 내가 그리 생각하고 있는데 프랑이 내 옷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건 그렇고, 노르는 땀을 거의 안 흘렸네?”
“응? 아, 날이 선선해서 그래. 일도 별로 안 어려웠고.”
“농삿일이 안 어려웠다구?”
샌드위치를 두 손으로 들고 먹던 프랑이 약간 놀랐다. 쪼끄마한 녀석이 저러고 있으니 햄스터 같다. 시발 귀여워서 죽어버리겠다.
품에 끌어안고 마구 뺨을 비벼주고 싶었지만 암만 그래도 싫어할 것 같아서 참았다.
배려심 많은 프랑이라면 그러려니 하면서 꺄르륵 웃어줄지도 모르지만, 이런 자잘한 부분에서의 배려가 연애 롱런의 비결이라고 하니까 말이다.
“그러면 혹시, 노르도 고향에서는 농부였어?”
그때 샌드위치를 먹던 프랑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농부? 내가?”
나는 입 안 가득하게 빵을 씹다가 눈을 깜빡였다.
“크크크. 하하하하! 설마!”
신박한 질문에 그만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가 농부라니? 우리 할아버지께서 들으셨다가는 몹쓸 놈이 농부 이름값 더럽힌다며 성을 내실 소리였다.
친가에서 수의대를 졸업하고 시골로 내려와서 동물이나 봐 달라는 농담을 듣기는 했다만.
“흐흐. 아니야. 나는 고향에 있을 때는 학생이었어. 그런데 그건 왜?”
“으음. 그게 있지? 캐묻는 것 같아서 옛날 얘기는 일부러 안 물어봤는데, 노르는 공부도 많이 했으면서 농삿일까지 잘 한다니 신기하잖아. 일하는 중에도 계속 궁금했어.”
그렇게 말하는 프랑은 만약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는 눈치였다.
나는 샌드위치를 베어 물면서 어떻게 대답을 할지 고민을 했다.
우리 여친님은 옛날 일은 옛날 일이라는 스탠스였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란 놈은 존나 이상하게 보이기는 할 것이다.
카르미네 대학에서도 내가 언어공부만 파고든 놈이라고 생각하고 신기해 하는 사람은 곧잘 있었더랬지. 나는 입에 문 샌드위치를 냠냠쩝쩝 씹어삼키고 대답했다.
“아버지네 집안이 농부셨거든. 이렇게 커다란 밭은 아닌데 나도 가끔 도와드리고는 했었어.”
“아─. 그래서 농삿일에 익숙하구나.”
“뭐, 그렇지. 어릴 적에 몇 번 해 본 정도지만.”
사실 친가에서 어린 손주한테 낫을 들려주지는 않았다. 내 실력은 군대에서 쌓은 것이다.
그런데 마냥 사실대로 말하기도 뭣하다. 이쪽 세상에서 ‘군대에 있었다’는 표현은 21세기 한국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으니 말이다.
차라리 경비대 출신이라고 하면 대충 뜻이 전해지려나.
나는 입을 달싹이다가 그냥 다물어버렸다. 키타이 쪽 문화에는 모르는 것이 많아서─카르미네 대학에서도 관련서적이 없었다─ 뭣 모르고 말했다가는 나중에 거짓말인 것이 들통날 것 같았다.
그러니 쾌걸농사꾼 노르드인 걸로 퉁쳐버리자.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도 우스우니까 말이다.
“노르는 다재다능하구나.”
“프랑 너한테 들으니까 왠지 놀림 받는 느낌인데.”
“에이, 칭찬이야.”
“크흐흐. 그럼 됐고.”
그런 식으로 나랑 프랑은 얘기를 나눠가며 식사를 마쳤다.
밥을 다 먹고 정리까지 했지만 아직 일하러 가라는 뜻의 벨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쉴 시간이 남았으니 프랑이랑 끌어안고 있어야지. 그렇게 생각한 내가 프랑한테 들러붙으려고 음흉한 속내를 내비췄을 때였다.
쿠화아아악─!
멀리서 가스가 새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엄청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연기의 거센 기세에 순간 화재가 났나 싶어서 놀랐는데, 연기는 제 의지를 가진 것처럼 모여들더니 하늘로 올라갔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프랑이 놀라서 내 팔을 끌어안았다. 나는 그런 프랑을 끌어안으며 구름을 노려봤다. 마나를 각성하여 예민해진 오감이 그 구름이 품은 막대한 마나를 간파했다.
“저건… <구름 소환(Summon Cloud)> 마법인데.”
나도 아는 마법이다. 구름 소환. 수증기로 구성된 구름을 소환하고 다루는 저위계의 마법이었다.
그래도 저렇게나 많은 양의 구름을 소환하고 다루는 것은 어려운 일일 텐데.
대체 누구지? 걱정과 놀람이 섞인 시선으로 나는 구름이 발생한 출처를 쳐다보았다. 밀짚모자를 쓴 엘프가 등에 매고 있던 막대를 들고 주문을 외우는 중이었다.
“호툴루실?”
마법사의 정체를 알고 나는 긴장이 탁 풀렸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놈의 심드렁한 얼굴이 쉽게 상상이 갔다.
푸우우우─.
호툴루실이 입에 문 곰방대에서 담배연기가 피어올랐다. 밀짚모자 엘프는 곰방대를 문 채로 주문을 완창했다.
그러자 구름에서 내리기 시작하는 비.
단순한 비가 아니라 지력(地力)을 회복하는 마법이었다. 밀을 기르느라 토질이 소모된 땅에 거름을 뿌리듯이 회복 마법을 걸어주는 것이겠지.
저 마법을 응축해서 포션으로 만든 것을 마법사 길드에서 팔기도 한다. 그걸 몇백 배로 희석해서 쓰는 것이 이세계의 고급 거름이었다.
돈 많은 농부나 영주들이 애용하는 물건인데, 호툴루실은 자기가 직접 마법으로 대체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