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1,009)

얼마 전까지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래서 살인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나는 사람들의 피로 더럽혀진 손을 가지고 가족들 앞에서 당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군세는 진군하며 나팔을 분다. 귀울림은 멎지 않고 마치 작은 별처럼. 군화의 울림은 마치 천둥소리처럼(The soldiers blow their trumpets. Like star shooting by ear. The soldiers stomp their feet, like thunder in the air).”

혹시 집으로 돌아가도 나는 지구의 평화로운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이 망할 이세계가 내 삶의 기준이 되어서, 지구로 돌아간 뒤에는 정작 그곳을 이세계처럼 느끼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것이 못내 두려웠다.

얼마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 말 놓지 않을래?

─노르… 좋아해….

이미 나는 이곳에서도 가족을 만들었다.

프란체스카. 나의 사랑하는 여인.

더 이상 나는 내가 그녀를 버리고서 지구로 떠난다는 광경을 상상할 수 없었다.

이 미개한 이세계는 어느샌가 나의 새로운 고향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독일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그 무엇도 나의 세계를 바꿀 수는 없노라고.

나는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나 강북호는 ‘노르드’인 노르이자, 드루이드인 노루이며, 어느 사랑스러운 반쪽 짜리 망치의 남편으로 살아갈 노루였기에!

“시들어 떨어져 두 번 다시 피지 못할지라도, 불꽃처럼 스러지는 것이 진정 아름다울지니(A petal falling, never to bloom again, a petal in flames, full of beauty)──”

고양된 감정을 가라앉히듯이 나는 암송을 끝마쳤다.

“──우리는 설사 모습이 없어도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Even without a form, we will never stop walking).”

이 동굴에서 처음으로 문이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벌써 동굴 끝까지 와 버린 모양이었다. 티르시는 아직 돌입 안 했나? 아무래도 상관 없겠지.

나무판을 덧덴 벽에는 옹졸한 솜씨로 만든 문이 있었다.나는 안개를 유지하며 문의 자물쇠에 주먹을 내리쳤다.

“벡터-자물쇠 따기.”

콰앙!

─우지끈!

병신 같은 보안력의 문은 벡터베어 펀치에 개박살이 났다.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가자 한 곳에 뭉쳐서 벌벌 떠는 도적들이 보였다.

손짓을 해서 안개를 흐트러트렸다. 해제한 것이 아니라 벽 쪽으로 몰아넣어서 포위하듯이 주변에 두른 것이었다. 이 새끼들에게는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방 안은 생각보다 넓었고 문도 여러 개 있었다. 다른 곳과 이어진 커다란 공동(空洞)을 방으로 삼은 모양이었다.

“모, 몬스터가 아니야!!”

“사람! 사람이다!!”

내가 안개를 걷어내자 도적놈들도 습격자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서 기급절사를 하였다.

“다, 당신은……?”

도적놈들 중에는 꽤 날렵하게 생긴 미남이 있었다. 이 씹새가 도적놈 주제에 나만큼 잘생겼군.

그래도 얼굴에 탐욕이 가득하다. 살인강도라는 증거다.

“어, 어째서요!!”

나를 멍청하게 쳐다보던 미남이 악을 쓰듯이 빽빽댔다.

그 놈이 소리를 쳐대도 다른 놈들은 얌전히 눈치만 보았다. 아무래도 저 새끼가 도적단 대장인 모양이었다.

“어째서 우리를 묻으러 온 거요! 부탁받은 ‘상품’에는 손도 안 됐단 말이오! 당신들한테 팔려서 헤이스벤트에서 예까지 왔는데!!”

내가 중얼거렸다. 얘기를 들어보니 대충 누구한테 팔려서 도둑질을 했던 모양이다.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따지냐 새끼가.’

혹시 저 새끼들은 나를 무슨 조직 같은 곳에서 파견 온 암살자로 착각 중인 걸까.

대체 왜지. 설마 아서 웨인의 코스튬이 너무 카리스마 있게 생겨서 그런가. 나는 생각한 끝에 눈치껏 이야기에 어울려 주기로 결정했다.

“……상품은 어디지?”

상품 위치를 묻는 김에 인질의 위치도 물어보자. 그걸 위해서 안개도 치웠던 거니까.

“여,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있소!”

내 물음에 우두머리는 활로를 발견한 바둑 기사처럼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내가 상품에 관심을 보이자 살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10살 이하의 여자아이 둘! 남자아이 하나! 그, 그리고 운 좋게 얻은 팔 잘린 장애인 남자 하나까지! 이 정도면 당신들의 기준은 이미 충족했겠지!!”

“……뭐라고?”

놈이 지껄인 말을 알아듣지 못한 내가 싸늘하게 되물었다.

아니, 알아듣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상상을 불허할 만큼 끔찍한 발언이었기에 알아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목소리에 우두머리는 몸을 떨더니 무기도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챙그랑!

“사, 상품의 값은 치루지 않아도 되오! 부탁이니 우리들의 목숨만은 살려 주시오! 이렇게 빌겠소!!”

꼴사나운 목숨구걸이었다. 하지만 나는 저 새끼가 무릎을 꿇든 추진력을 얻어서 천장에 대가리를 박고 자살하든 관심이 없었다.

‘10살 이하의 여자아이 둘. 남자아이 하나. 운 좋게 얻은 팔 잘린 장애인 남자 하나.’

차분하게 놈이 지껄인 말을 곱씹었다.

‘……죄 없는 미취학 아동과 외팔이를 납치한 건가.’

거기다가 저 새끼는 그들을 ‘상품’이라고 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말이다.

‘불법 노예를 얘기하는 건가.’

브리타니아는 노예제가 합법이다.

그렇기에 노예들을 국법에 따라서 생존권이나 인권을 어느 정도 보장받는다. 빈민들이 자기 스스로를 농노로 팔아지우는 경우가 있는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불법 노예란 그 법률을 무시하고 민간인을 납치, 조교하여 ‘노예를 험하게 다루고 싶은’ 손님에게 판매하는 뒷세계의 흉악범죄 중 하나였다.

다시 말해서 저 놈들은 강도짓 외에도 그런 범죄에까지 손을 댔다는 뜻이었다.

‘살인, 강도, 강간, 납치에 인신매매까지?’

도적단 놈들의 악행을 되짚은 나는 전율했다.

참된 쓰레기…!

이 새끼들은 정말로 뒤가 없는 참된 쓰레기들이었다.

그딴 새끼들이 자기 목숨은 귀했는지 내게 살려달라고 빈 것이었다!! 상상도 못할 악랄함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죽이자.

이것은 살인이 아니라 선행이다. 위대하신 선학들께서는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 새끼들은 살려둬도 범죄 외의 방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쓰레기였다.

끼이익….

그때였다. 다른 쪽 문을 열고 반생반사의 도적놈이 여기로 기어들어온 것은.

“두, 두목…….”

그 새끼는 신체의 절반에 서리가 생긴 상태였다. 나는 사람 몸에 서리가 얹힌 것은 처음 보았지만, 저 꼴이 된 도적놈이 살아남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상급 포션이나 회복마법도 신체 절반이 괴사해서는 의미가 없을 테니까.

“사, 상품 놈들을 빼앗겼습니다. 마법사가… 습격을…….”

더듬거리면서 말하던 놈은 입술까지 보라색이었다. 아마도 얼음 마법을 정통으로 맞은 것이 아닐까. 생명력이 딸리는 마나고자 도적놈에게 그것은 치명상이었다.

“동료도 전부… 당했…… 끅.”

그것이 그 새끼의 유언이 되었다. 병신 새끼들답게 도적놈은 유언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비참한 최후였지만 아무도 그의 죽음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딴 놈들에게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냉동육이 돼버린 도적을 흘겨보고서 말했다.

“아무래도 상품은 분실한 모양이군.”

내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스스로도 믿겨지지 않을 만큼 얼음장 같은 목소리였다.

“그, 그건──.”

도적 우두머리가 몸을 떨었다.

“전부…… 전부 당신의 동료가 벌인 짓 아니오!!”

몸을 일으킨 도적놈은 점차 표정이 사나워지더니 자신의 운명을 이해한 것처럼 악을 써댔다. 내가 자기들을 살려줄 마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겠지!! 상품을 모으게 만들고! 그 다음 우리를 죽여 입을 다물게 하려고!!”

“글쎄.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나는 망토를 뒤로 넘기며 그의 반론을 무시했다.

물론 유괴당한 사람을 구한 건 내 동료가 벌인 일이 맞다.

‘티르시가 잘 해줬나.’

인질로 협박당할 것을 염두한 우리는 사전에 두 패로 갈라져서 역할을 분담했다.

내가 안에서 구름 소환 마법으로 소란을 일으키고, 그 틈을 타서 티르시가 인질을 구출한다.

전부 계획대로였다.

“이유가 어찌됐든 너희는 선을 넘었다.”

안개를 눈에 띄지 않게 조작하면서 내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자비가 깊은 편이지. 도적단의 보스인 네놈 만큼은 살려주마.”

“저, 정말입니까?”

말 한 마디에 도적 우두머리는 태세전환을 했다. 그 놈의 말에 다른 도적들이 비명을 질렀다.

“두, 두목!!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닥쳐!! 어차피 저항해 봤자 뒤질 거야!! 나라도 살겠다는데 그게 뭐가 나빠!!”

“아까는 죽더라도 저 놈한테 칼빵 정도는 먹여주고 같이 죽자셨잖습니까!!”

“상황이 바뀌었잖아!!”

새끼들 바로 지랄하네. 나는 심드렁하게 손짓을 했다.

“이쪽으로 오도록. 내 옆이 무서우면 구석에 붙어 있어도 좋다. 네놈은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 없었다. 나는 유능한 놈을 좋아하거든.”

“감사합니다!!”

우두머리는 화색이 되어서 구석으로 달라붙었다. 그 새끼의 부하였던 도적들이 빽빽대는 것은 무시했다.

‘병신들.’

저 새끼도 절대 살려줄 생각은 없다. 아니, 살려는 두겠지만 체포해서 경비대에 넘길 것이다. 증언을 할 놈은 필요하니까 말이다.

아는 걸 죄다 불게 한 다음에는 경비대에서 알아서 처형할 것이었다. 살려두기에는 너무 악질인 놈이니까. 나도 경비대가 제대로 죽이는지 확인은 해둘 생각이지만 말이다.

‘뒤탈 없게 나중에 팔다리를 분지르든가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도적 하나가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눈치챘다. 남몰래 활에 화살을 매기고 있었다.

“뒤져!!”

기습을 하는데 왜 소리를 지르는 거지. 하여튼 병신처럼 외친 도적놈이 활을 들어서 재빨리 쐈다.

나를 노리려나 했는데 놈의 화살이 날아간 것은 도적단의 우두머리였다. 배신자부터 때리는 것이 정말이지 훌륭한 병신집단의 표본이었다.

쐐애액! 퍽!

“꺼억!!”

어깨에 한 방 맞은 우두머리가 고꾸라졌다. 갑옷이 얼마나 쓰레기면 화살 한 방에 뚫린대냐. 웃음도 안 나오는 모습에 나는 손에 든 도끼를 투척했다.

붕붕붕붕!!

─퍼걱!!

회전 스핀이 들어간 이세계 토마호크는 활쟁이 놈의 머리에 모히칸 헤어를 만들어 주었다. 손잡이까지 박혔으니 저 새끼 애비가 슬라임이라도 되지 않는 한은 즉사일 것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사람 머리가 터져나가는 광경에 도적놈들이 비명과 오줌을 세트로 질러댔다. 살인이 익숙한 놈들도 자기들이 죽어나가는 쪽에 선 경험은 없었을 것이다.

주르르륵─.

도끼 모히칸 헤어의 활쟁이가 쏟은 피와 뇌수가 근처의 상자에 스며들었다.

이 방은 온갖 도난품들과 생활용품으로 가득했다. 존나 씨발 개새끼들이 나보다 잘 사네 개빡치게. 그들의 동굴 속 스위트룸이 존나 안락해 보임에 따라 내 안의 교수 슬레이어도 셔츠를 찢으며 분개했다.

“──역시 네놈들도 교수로군.”

타인의 성과를 갈취하고 부려먹는 존재.

그것이 교수였다.

저들도 그랬다. 저 놈들은 스스로는 아무 것도 만들지 못하고 민간 사회에 해악만을 끼치는 해충이다!

그런 주제에 시발 욕심만 많아서는 남들이 열심히 일궈낸 노력의 성과를 약탈하는 만행까지 벌여댄다!

저기 쌓인 보물들은 모조리 누군가의 논문이었다!!

저들은 부엌 찬장 안에 서식하는 집바퀴보다도 더 악랄하고 저열한 생물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백 번 천 번 죽어 마땅하다!!!!!!

“──교수를 죽이겠다.”

나는 분노 어린 증오를 씹어뱉듯이 말했다.

“당연히 네놈들도 죽인다!!! 대학원생을 괴롭히는 교수 전부를 죽이겠다!!! 이 세상의 모든 교수를 죽일 것이다!!!”

“이, 이 미친 새끼가!! 왜 도적 소굴에서 교수를 찾아!!!”

“문답은 무용(無用)!!!!”

나는 변명을 늘어놓는 악당에게 일갈을 날렸다. 놈들은 내 살의를 뒤집어 쓰고는 이성수치가 모조리 증발한 광인처럼 무기를 뽑았다.

“죽여!! 저 새끼 한 명만 죽이면 도망칠 수 있다!!!!”

“저 새끼도, 저 새끼한테 넘어간 보스도 죽여!!!”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우르르르!!

10명을 넘는 도적들이 동시에 덤벼들었다. 나는 무기 없는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놈들의 돌격을 지켜보았다.

저 새끼들은 모조리 악질 살인범이다. 불법 노예를 납치해서 누군지도 모를 놈들에게 팔아제끼는 악당 말이다.

살려둘 가치가 없는 이산화탄소 생성기 새끼들!

여기서 죽도록 해라!

“죽음의 안개!!”

주문을 외치면서 손을 휘저었다. 정의(Justice)의 안개가 내 조작을 따라 동굴을 자욱하게 물들였다. 살상력을 부여할 수는 없어도 바람처럼 빠르게 불게 할 수는 있었다.

“쫄지 마!! 앞으로 가서 둘러싸!!”

“달려!! 포위해서 때려 죽여!!”

놈들은 머뭇거리지 않고 뛰어왔다. 나는 팔을 들어서 머리만 지키고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달렸다.

내가 뭣하러 이 새끼들과 영양가 없는 대화를 했겠는가. 다 이 방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내달려도 어디 부딪힐 만한 구조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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