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야도 안개로 가려졌지만 나는 야수회귀의 방어력을 믿었다. 안개를 가르고 대쉬하면서 부딪힌 놈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끄아아아악!!”
나와 부딪힌 도적놈은 차에 치인 것 마냥 거짓말처럼 날아갔다. 비명소리를 들은 도적들이 당황해서 멈췄다.
“정지!! 정지!! 이 새끼 빠져나갔어!!”
“어디냐!! 숨어 있지 말고 나와!!”
“흥분하지 마!! 이리로 모여!! 우리끼리 뭉쳐 있으면 저 새끼도 못 덤빈다고!!”
쪽수를 믿고 기세등등해지는 병신들. 나는 챙겨둔 짱돌을 들고 한숨을 쉬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지만 그건 용맹한 병사들한테나 해당되는 얘기다. 병신은 모여봤자 병신뭉탱이 주먹밥에 불과하다.
─부웅!!
챙겨둔 짱돌 하나를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던졌다. 내 주위의 안개를 컨트롤해서 시야도 확보했다. 표적도 커다랬기 때문에 명중률은 100%였다.
빠각─!!
─풀썩!
날아간 짱돌은 또 한 마리의 병신을 염라대왕의 곁으로 보내주었다. 놈들은 공포에 떨며 비명을 질렀다.
“또, 또 당했어!!”
“누구야!!! 누가 뒈졌냐고!!!”
“그걸 알아서 어쩔 건데!! 쫄지 말고 대가리나 지켜!!”
하여간 요란스럽기는. 약간 우스워진 나는 주변에서 던질 물건을 찾았다. 그런데 안개 밖에서 뭔가가 슬금슬금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티르시인가 싶어서 잠시 집중했는데 아니었다.
사전에 티르시한테는 안개 근처에 오지 말라고 말했다. 오더라도 미리 정한 암호를 말하도록 합의를 봤다. 바닥을 기어다닐 리가 없다.
‘우두머리 새끼로군.’
이 새끼가 안개가 깔린 틈을 타서 런하려는 것이었다.
─슬금슬금.
존나 조용히 움직이고는 있는데, 그래도 마나로 강화된 내 오감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때 네페르티티가 어떻게 나랑 프랑이 숨어있던 걸 눈치챘는지 알겠어.’
유적 경비 의뢰 때가 떠올랐다.
네페르티티는 숨는다고 숨었던 우리를 간단히 찾아냈었다.
초인적인 오감에 마나를 읽는 육감까지 보유한 전사에게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자의 은엄폐는 애들 숨바꼭질보다 못한 수준인 것이다.
아직 미스릴 클래스의 영역에는 도달하지 못한 내게도 이 정도는 가능했다. 나는 근처의 묵직한 상자를 하나 들어서 그 놈에게 냉큼 던졌다.
“걱!!”
머리통에 맞았는지 혼절하는 우두머리. 살살 던졌으니까 뒤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자.
도망자를 기절시키고 도적들을 쳐다봤다. 소란이 나는데도 그 새끼들은 쫄아서 가만히 모여 있었다. 몇 분이 넘도록 내 공격이 없었으니 공포와 긴장으로 제정신이 아니겠지.
‘흐흐.’
문득 썩 괜찮은 생각이 났다. 나는 두 손을 들어올렸다가 오케스트라의 연주자처럼 내리그었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안개는 내 명령에 충실히 복종했다. 속도를 낸 안개바람은 선풍기 약풍처럼 도적놈의 근처에서 돌조각을 긁으며 바람소리를 냈다.
─사박.
“거기냐!!!”
제정신이 아니었던 도적놈이 다짜고짜 무기를 휘둘렀다.
긴장으로 팽팽해진 의식에 갑자기 소음이 들리자 무심코 공격을 한 것이다.
저 새끼의 뇌내에서는 적의 조용한 접근을 간파하고 되려 선빵을 갈긴 자신의 영웅적인 모습이 재생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쪽에 있는 거 니 동료야 병신아.’
“꺼헉?!”
장님의 일태도에 맞은 동료가 비명을 질렀다. 공격한 새끼는 자기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거기냐!!”
“죽여!!”
“자, 잠깐! 그게 아니라── 끄으윽?!”
─챙챙챙!!
─서걱!! 푹푹!!
사람은 공포 앞에서 이리도 나약하다. 긴장이 길어질 수록 존나 아무래도 좋으니까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한다.
그렇기에 병신들은 내가 덤벼왔다는 착각을 믿어버렸다.
저들에게 동료애가 있었다면 동료를 다치게 할까 무서워서 공격을 주저했겠지만, 도적놈들에게 바랄 게 따로 있지.
저 놈들은 자기 혼자 살아남아도 되니까 얼른 나를 죽이고 도망치고 싶을 것이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끄아아아악!! 죽어!! 죽으라고!!”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 새끼!! 개새끼!! 씨발새끼!!!”
─푹푹퍽퍽서걱서걱푹찍!!
어리석은 놈들은 안개의 공포에 잡아먹혔다. 이성을 버리고 공포에 몸을 맡겨 동료들끼리 골육상쟁을 벌여댔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필연적인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진짜 괴물은 안개 속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 속에 존재하던 것이기에.
‘──와트 씨(Mr. Watt), 들리십니까?’
나는 증기기관의 창설자를 기리며 연주를 지휘했다.
‘당신에게 바치는 진혼곡(Requiem)입니다.’
비명과 전투 소리에 섞여서 안개바람이 불었다.
──그렇게 역사에 남을 광란의 연주가 막을 내렸을 때.
안개가 사라진 공간에 살아 숨 쉬는 자는 나와 우두머리 한 명 뿐이었다.
도적놈들을 몰살하고 연주의 감흥에 취해 있는 내게 어느 인기척이 다가왔다.
경계심을 곤두세운 내가 날카롭게 노려보자 후드를 쓴 여성은 정해둔 암호를 읊었다.
“글자 크기 10, 줄간격 160으로 양면 5장.”
“티… 크흠, 애시. 당신이었습니까.”
실수로 이름을 부를 뻔 했다. 가명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만.
가까이 온 티르시는 옷에 묻은 피를 닦으며 말했다.
“고생하셨어요. 덕분에 인질을 구하는데 방해되는 도적은 몇 명 없었어요.”
“확실히 제압하셨습니까? 다친 곳은?”
“다 죽였고, 멀쩡해요. 아서 당신은요?”
“이하동문입니다. 아, 우두머리만 빼고요.”
아직도 기절한 상태인 우두머리를 가리켰다. 티르시는 그것을 확인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세요. 저는 없어도 됐겠는걸요.”
“아뇨. 애시 덕분에 인질을 지키며 싸울 필요가 없어서 편했습니다. 저 놈들은 싸움에서 밀리기 시작했으면 인질로 협박하려 들었을 테니까요.”
도적놈들은 나를 무슨 악의 조직의 하수인으로 여겼지만 인질을 살려서 데려가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에서는 나도 그 하수인도 똑같은 처지였다.
만약 저 새끼들이 어린애 목에 칼을 들이밀며 날 협박했더라면 끔찍한 사태가 되었을 것이었다. 티르시는 그것을 미리 방지해 줬으니 충분히 1인분을 해 주었다.
“그래서 구해낸 인질들은 어디 있죠?”
“상태가 좋지 않길래 희석한 체력회복포션을 나눠주고 이 근처에 대기시켰어요. 운송 길드장의 아들도 살아 있었고요.”
“천만다행인 소식이네요.”
그 대머리가 운송 길드장이었나. 개인 재량으로 큰 보수를 약속할 수 있던 이유가 있었구만. 왜 나만 몰랐지.
“아무튼 일은 끝났으니까 우두머리를 포박하고 도난품 중 일부만 챙겨서 돌아가죠. 소유권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고요.”
나는 어깨를 풀면서 말했다.
“저희가 떠난 사이에 누가 여기로 찾아와서 도난품을 몽땅 쓸어가면 안 되잖아요? 그랬다간 어이가 없어서 며칠은 잠도 못 잘 겁니다.”
“후후. 그렇게 하죠. 인질들한테 기다려 달라고 말해주고 올게요.”
“예. 저는 우두머리부터 포박해 두죠.”
티르시가 인질들에게 승전보를 전하고 오는 동안 나도 우두머리 새끼를 밧줄로 꽁꽁 묶었다. 팔다리까지 전부 말이다. 나중에 풀어주면 되니까.
─슥삭슥삭.
하는 김에 머리카락도 제모해 주었다. 여기가 도적놈들의 생활 공간이었는지 면도기도 있더라.
“음. 훌륭한 대머리로다.”
맨들맨들해진 대머리를 건틀릿 낀 손으로 찰싹 후려갈기고 자리로 돌아왔다. 티르시도 인질들한테 얘기를 끝내고 돌아온 뒤였다.
“우리 가볍고 비싼 것만 챙겨서 가요.”
티르시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도난품 중의 일부는 우리 소유였으니까 이건 정당한 권리다. 갖고 있다가 소유권을 못 얻으면 나중에 경비대에 반납해도 되고.
─덜그럭덜그럭,
그렇게 나랑 티르시는 가장 먼저 우리 논문부터 챙겼다.
"찾았다……!"
자기 논문을 발견해서 품에 안은 티르시의 눈물 어린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는 나도 내가 쓴 논문을 찾아내서 제대로 챙겼지만 말이다.
우리는 그밖에도 무게 대비 값비싼 포션들이랑 은화도 받아가기로 했다. 나는 가방을 동굴 밖에 두고 왔기 때문에 논문이랑 같이 상자에 넣어서 들었다.
연금술사인 티르시가 평가하길, 이 포션들은 무려 10실버에 상응하는 금액이란다.
10실버.
내 판매금의 5배이다. 이렇게 보니까 시발 나 존나 싸네. 석사 월급으로 매달 1마리 씩 노르드 구매 가능하다.
암튼 도적질이 돈이 되기는 하는갑다. 그러니까 이 병신들이 뒤질 위험을 감수하고 굴리는 거겠지. 행상인들의 지갑에만 3실버는 들어 있더라.
“애시. 제가 이 마나 포션 하나만 마셔도 되겠습니까? 제 마나가 약간 간당간당해서요.”
나는 포션 중 하나를 꺼내서 흔들며 물었다.
야수회귀 켜고 싸울 정도는 되는데 최대치의 3할 가량만 남은 느낌이었다. 만에 하나의 사태를 대비해서 회복해 두고 싶었다.
“어디 잠시만요. 용량을 좀 확인 해 볼게요.”
티르시는 마나 포션을 받아서 들여다보거나 뚜껑을 따서 향기를 맡거나 했다.
“중하품(中下品)이네요. 음용법은 아시나요?”
“과용(過用)하지 않게 한 입씩 천천히. 맞죠?”
“네. 잘 아시네요.”
이세계의 마나 포션은 게임 속 아이템처럼 닥치고 마셔도 되는 물건이 아니었다.
마약성 재료로 만드는 것은 아닌데, 마나통 이상으로 회복했다가는 몸이 못 버티고 뻗어버린다.
MP 100인 놈이 120짜리를 마시면 100까지 딱 차고 끝, 같은 편리한 포션은 없다. 과용하면 220까지 차올라서 마나 거품을 물며 뻗기 딱 좋다. 현실의 약물이랑 똑같다.
‘대충 빠는대로 회복됐으면 민간에 유통이 안 됐겠지.’
미쳤다고 그런 위험한 걸 시장에 나돌게 두겠는가.
어느 미친 마법사가 몇 년에 걸쳐서 모은 마나 포션을 링겔로 꼽고 파이어볼 연타로 도시를 태워먹으면 어쩌려고.
“여기요, 아서.”
티르시한테 마나 포션을 돌려받고 입에 가져갔다. 병문안에 가져가는 고급 음료수 같은 크기의 작은 병이었다.
마나통의 회복량을 가늠해가며 천천히 마셨다.
이세계의 포션은 마나통 이상으로 마시는 것도, 필요 이상으로 마시는 것도 좋지 않다. 카페인 빤다고 잠을 안 자도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꿀꺽꿀꺽.
그래도 나한테는 이거 1병으로 충분했다. 3분의 1도 안 마셨는데 내 마나통은 절반 이상이 회복된 느낌이었다.
‘시발. 마나통 좀 커진 줄 알았더니만.’
중하급 포션 쪼끔으로 풀회복이다. 혀를 찬 나는 뚜껑을 도로 닫아서 품에 넣었다. 그걸 지켜보던 티르시가 짐을 챙겨서 무거워진 가방을 다시 매면서 말했다.
“이제 가요. 경비대한테 저 도적 두목을 넘기고, 인질을 집에 돌려보내 줘야──”
말을 하던 티르시가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내가 티르시를 조용히 시켰기 때문이었다.
“아서?”
“……기다려요.”
나는 티르시의 어깨에 손을 얹어서 내 뒤로 오게 했다.
내가 들어온 입구 방향에서 기척이랄 게 느껴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프레셔(pressure)였다.
──동굴의 어둠 속에, 뭔가가 있다.
‘염병. 또 뭔데?’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네페르티티 이후로 유래 없을 정도의 투기(鬪氣)였다.
그 미스릴 클래스의 괴물에는 못 미치겠지만 내가 싸워본 상대 중에서는 으뜸 가는 위압감이다.
프레셔의 주인은 어둠 밖으로 걸어나오며 말했다.
“멋진 일처리더군.”
─철컥 철컥.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 나는 그게 갑옷이 철컥거리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박수 소리였다. 저 놈이 건틀렛을 낀 손으로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어 보이길래 중간부터 구경했다.”
그 새끼는 박수를 쳐대면서 동굴의 랜턴 앞으로 나섰다.
“크흐흐. 하지만 쓰레기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장면을 연출해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존나게 크다.
내가 느낀 첫인상은 그것이었다. 키가 2미터를 훨씬 넘는 거구의 남자였다.
그는 동굴 틈이 좁다는 것처럼 천장을 손으로 더듬으면서 공동에 나타났다. 세로로 키만 큰 것이 아니고 근육으로 가득 차 가로로도 넓었다. 여기 나타난 것만으로도 공간이 줄어든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나처럼 온 몸을 완전히 가려서 피부색조차 모르겠다.
새까만 로브도 나랑 거의 비슷한 느낌이었다. 가면을 쓴 것까지 똑같았다.
프랑이 만들어 준 내 옷이 백 배 천 배는 더 세련되고 간지나지만, 망토와 로브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저 새끼가 도적놈들이 말한 ‘구매자’인가. 나랑 헷갈릴 만도 했다.
“어지간한 서커스단의 연극보다 즐겁더군. 네놈은 극작가라도 해 보지 그러냐?”
덩치에 안 어울리게 익살맞은 남자는 다짜고짜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면서 내게 삿대질을 했다.
나는 그 과장된 몸짓에 기이할 정도의 혐오감을 느꼈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참았다. 그리고 남자에게 질문했다.
“누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