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죽인 쓰레기들의 손님.”
저 도적놈들의 손님이라고?
이세계인답지 않게 알기 쉽고 간략한 대답이었다. 도적이 잡은 불법 노예를 데리러 온 사람. 흉악한 범죄자다.
덩치만 큰 것이 조폭 깍두기 같은 새끼로군.
“저희가 도적을 몰살해서 화가 나셨나 보군요.”
내가 말해놓고도 그건 아니겠다고 생각했다. 저 덩치 큰 씹새는 지켜보고 있었다고 지껄이지 않았던가.
내 기감(氣感)을 피해서 몸을 숨겼던 놈이 뭣하러 일이 다 끝날 때까지 가만히 지켜만 봤겠는가. 내 예상대로 거한의 남자는 손을 휘휘 저었다.
“화가 나? 그럴 리가. 어차피 내가 죽일 놈들이었어. 납치 전문 도적은 쌔고 쌨지만 ‘제물’의 존재에 도달할 단서를 남길 수는 없거든.”
─킁킁.
깍두기 새끼는 그리 말하며 가면 아래로 냄새를 맡아댔다.
“제물은…… 저기인가.”
동굴의 한 방향을 쳐다보는 놈. 그것을 빈틈이라고 보고 대쉬하는 것은 간단했지만, 거리가 조금 멀었다. 이 거리에서 냅다 달려들어봤자 기습의 묘리를 살릴 수는 없었다
나는 속으로 씨발을 10번 넘게 내뱉고서 말했다.
“일이 끝나셨다면 돌아가 보심이 어떠십니까? 제가 우연히 당신의 일을 대신 해 드렸지만, 따로 보수를 요구하지는 않겠습니다.”
“아니. 그건 곤란하지. 내가 받은 임무가 ‘몰살’이라서.”
나타나기 전부터 뿜어내던 위압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깍두기가 말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너희들까지 다 죽여야만 비로소 ‘전부 죽였다’고 할 수 있겠군.”
“그렇지? 내가 그럴 줄 알았음.”
씨발 내 인생이 그럼 그렇지. 나는 전투자세를 취하는 씹새의 모습에 들고 있던 포션 상자를 내려놨다.
티르시가 말없이 옆으로 물러났다. 다행히 1대 2다. 숫자로는 우리가 유리하다.
“마법사 둘. 실드를 부수고 목을 꺾어버리면 끝날 일이지만──.”
거한의 남자는 허리를 낮추며 선언했다.
“잠깐이나마 즐기게 해 다오!!!!”
호기롭게 외친 깍두기가 바닥을 박차고 덤벼왔다. 빠르다. 하지만 티르시의 마법은 아직 유지되는 중이다. 속도는 내가 훨씬 더 빠르다!!
슈파팟─!!
“《천공신께 기도하라(yáǵeswō deiwōm dyēus)》!!”
무영창도 잊고 주문을 외웠다.
야수회귀가 발동하고 신체능력을 강화한다. 나는 날아드는 깍두기에게 맞서 접근하여 놈의 몸통에 주먹을 날렸다.
“좋군!!”
깍두기는 반응했다. 커다란 주먹이 날아든다. 살상력이 높아 보이는 건틀렛을 낀 손이었다. 공격의 타겟을 수정해서 그 주먹에 맞추어 내 주먹을 때려박았다.
─투쾅!!!!
“끄으윽…!!”
“크으으…!!”
두 주먹이 부딪히자 여파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인간의 주먹끼리 부딪혔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커다란 여파였다. 나도 깍두기 새끼도 놀라며 신음 소리를 냈다.
‘내가 힘에서 밀려?!’
지구용사의 힘을 얻은 뒤로는 처음 겪는 느낌이었다.
야수회귀의 완력 보정을 뛰어넘는 힘!
덩치나 체중에서 존나 밀리니까 그럴 만도 했지만, 이딴 범죄자 새끼가 지구용사보다 뛰어난 힘을 가졌다니 믿겨지지가 않았다.
“크하하하!! 너!! 단순한 마법사는 아니로군!!”
광소하며 깍두기 새끼가 발차기를 날렸다. 미친 덩치에 딱 어울리는 다리는 통나무가 대포로 쏘아지는 것처럼 시각적인 위압감을 뿜어냈다!
부웅─!!
“이 씹……!”
근거리에서 날아든 발차기를 필사적으로 피했다. 움직임이 존나 절도 있다! 이 새끼는 전문적인 무술을 배운 놈이 분명했다!
내 코앞을 굵은 다리가 스쳤다. 그것은 야수회귀의 마나 코팅을 깎고 가면에 커다란 금을 남겼다.
“다리가 멈춰서 쓰나!!”
발차기에 쓴 다리를 회수하면서 깍두기가 진각을 밟았다.
그 놈의 커다란 덩치가 진각을 밟은 발을 주축으로 앞을 향해 가속했다. 마치 탄환이 리볼버로 미끄러지는 것만 같은 체중이동이다!
가면이 부서진 것에 놀라느라 움직임이 더뎌진 나에게 큰 공격이 작렬했다. 가드를 위해 들어올린 두 팔을 공격력 높아 보이는 건틀렛이 두들겼다…!!
투콰앙─!!
두 발로 땅을 굳게 내딛지 못했던 나는 상상 이상의 위력에 거짓말처럼 날아갔다. 뒤로 몇 미터 이상이나 날아가 동굴 벽에 부딪혔다.
─쿵!
“──커흑!”
뒤통수를 잘못 부딪혔는지 1초 정도 의식이 날아갔다.
이 시발, 이 새끼 왜 이렇게 쎄!! 나는 야수회귀 상태에서 처음 느끼는 통증에 인상을 쓰면서 주먹을 쥐었다.
기절한 탓에 야수회귀가 풀렸나 싶어 등골이 서늘했지만 내 기절이랑은 무관하게 야수회귀는 계속 유지되었다. 내 해제와 마나 오링 외에는 꺼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후두둑.
얼마나 세게 부딪혔는지 벽의 일부가 무너져서 떨어졌다. 깍두기 새끼는 내게로 걸어오며 손을 털었다.
“오호라. 그 마나. 너도 구신(九神)의 신도였나.”
“우리 집은 대대로 무교야, 병신아.”
나는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이길 방법을 떠올리기 위해서 고뇌했다. 나는 전투기술의 바리에이션이 적다. 몸싸움에서 밀리고 나니까 내 손패의 적음이 실감됐다.
“<얼음의 화살(Ice Missile)>!!”
그때 티르시의 원호사격이 들어왔다. 하수도에서도 봤던 무영창의 공격마법이다. 냉기가 흐르는 화살이 대충 10발 가량 쏘아졌다!
“흥. 시시하긴.”
깍두기는 그쪽에 눈을 굴리며 팔을 휘둘렀다. 안면을 노린 몇 발이 그 손짓에 부서져 흩날렸지만 나머지는 몸통에 적중해 서릿발을 내렸다.
“──음? 단순한 저위 마법이 아니군. 개량했나.”
자기 로브에 생겨난 서리에 살짝 감탄한 듯 한 깍두기.
하지만 그 감탄도 잠시였다. 몸을 움직여 서릿발을 털어낸 범죄자 새끼는 사납게 포효했다.
“계집년 주제에 남자의 싸움에 끼는 게 아니다─!!”
성차별적 발언을 내뱉으며 달려든 깍두기가 티르시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이 새끼가!’
나는 다급하게 쫓아가 말리려고 했지만 거리가 가까웠던 놈이 더 빨랐다. 사나운 기세로 내지른 정권이 티르시를 노리고 뻗었다!
─콰앙!!
펀치는 티르시의 몸에 닿기 전에 실드에 막혔다. 사전에 티르시가 말했던 이동형 실드 마법인가! 나는 안도하면서 등을 노출한 깍두기에게 달려들었다.
“음!”
내가 <산들바람 걸음> 마법의 효과로 발소리를 줄었기 때문일까? 놈은 거의 1미터 가까이가 되서야 내 접근을 깨닫고는 뒤로 돌아섰다.
“어딜 감히!!”
살의를 가득 담은 주먹은 놈의 손에 막혔다. 재빨리 날린 다음 일격도 놈에게 붙잡혔다.
“움직임이 뻔하다, 마법사!!!”
놈은 그대로 내 주먹을 짓뭉개려는 것처럼 우악스럽게 힘을 주었다!
“염, 병……!!”
힘에서 밀리니까 손을 잡혔을 때 답이 안 나온다! 나는 힘 겨루기에서 압도당해 두 손이 어깨 뒤까지 밀려났다.
깍두기의 새까만 가면 틈새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내 머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주마등처럼 옛 추억을 서치했다.
“전사의 흉내를 내도 결국은 책상물림 나부랭이!! 언젠가 발할라에 오를 전사에게 투쟁을 도전하다니, 백 년은 이르──”
“좆까!! <타오르는 손길(Burning Hand)>!!!”
“뭣, 끄아아아아아아아악!!!”
깍두기가 갑작스런 격통에 비명을 질렀다. 내가 발동한 <타오르는 손길> 마법 탓에, 내 손을 붙잡은 놈의 손까지 불에 타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화르르륵─!!!
그런데 마법의 출력이 내 예상과는 상당히 달랐다.
내가 사용하는 <타오르는 손길>은 마른 장작을 태우는 것만도 하루 종일 걸렸다. 내 마법 숙련도가 아직 모자르기 때문이다. 저번에 사용했을 때까지만 해도 분명 그랬다.
‘갑자기 출력이 높아졌어?’
장작을 태우기도 힘들던 마법이 이렇게 강해지다니? 나도 틈틈이 연습은 했지만 이런 출력이 나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나는 격전의 와중에도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쿠와아아악!
그때였다. 내가 내 손에서 뿜어지는 야수회귀의 마나가 붉게 물들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은.
그 붉은 빛을 보자 호툴루실의 말이 떠올랐다.
─술식 결합은 마법의 기초다. 원리만 알면 어렵지 않다.
─단문영창으로 발동하는 간단한 마법은 조합도 쉽다.
‘──술식 결합!’
나는 마법의 출력이 높아진 깨달았다.
기존의 <타오르는 손길>은 화력(火力)이 낮았다. 내 숙련도 부족으로 인해 마법에 흘러들어가는 마나가 소량이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종이 빨대로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그에 비해 야수회귀는 내 마나통에 커다란 호스를 꼽아 빨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
야수회귀 상태에서 발동한 <타오르는 손길>은 내 마나통과 통로(path)가 직결된다. 평상시에 비해서 화력이 높아진 것은 그래서였다.
장작으로 쓸 마나가 기존의 몇 배로 늘어나니까!!
‘기회다!!’
<타오르는 손길>은 초고온의 열기를 뿜으며 마나 코팅을 새빨갛게 불태웠다. 나는 내 손을 놓고 빠져나가려는 깍두기의 손을 역으로 붙잡고 놈을 밀어붙였다!
“이 씹새가 말이 왜 그렇게 많아! 부랄 떼 버려 새꺄!!”
“끄흐으으으으으으으으윽?!!!”
─화르르르륵!!!
고열로 불타는 내 손은 힘 차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타오르는 장작을 세게 쥘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이, 개자식이이이이이!!!!!”
철로 된 건틀렛이 달아오르며 심해지는 고통에 깍두기가 머리를 뒤로 튕겼다. 후드가 걷혀져 짧게 깎은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내 손을 놔라아아아!!!!!”
부우웅!!
깍두기가 박치기를 날렸다. 덩치에 맞게 커다란 대갈통이 가면을 쓴 내 콧잔등을 노렸다! 나는 거기에 맞춰 목에 힘을 빡 주고 이마를 갖다댔다!
─쿠웅!!
─콰직!!
사람 머리통에서 이딴 소리가 나도 되는지 의문이었다. 내 가면이 부서지며 머리가 띵해졌다. 놈은 그걸 노렸던 것처럼 무릎으로 내 고간을 올려찍으려 들었다!!
황급히 다리로 막고 뒤로 물러섰다. 원 인치의 인파인트 거리에서는 그 인간의 전투기술이 가장 빛을 발한다. 깍두기 새끼가 고열의 고통을 참으면서 공격하기 시작했다간 나만 일방적으로 쳐맞을 것이었다.
부서진 가면이 복면에 붙어서 덜렁거렸다.
‘이 새끼가 프랑이 만들어준 가면을 부서?’
내 얼굴이 티르시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머리에 없었다. 나는 그것을 챙겨 품에 넣고서 깍두기 새끼를 노려봤다.
“좆 같은 새끼. 넌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진다.”
“크흐으으윽…!!”
고통 어린 신음을 흘리며 깍두기는 빨갛게 달궈진 건틀렛을 벗어 던졌다.
놈의 손바닥에서 흉측할 정도의 화상이 보였다. 깍두기는 진물이 묻어나오는 손을 떨면서 내게 고함을 쳤다.
“신성한 전사의 전투에서 신체 강화 외의 마법으로 승기를 잡으려 들다니!!! 비겁하기 짝이 없구나!!! 네놈이 그러고도 구신의 신도더냐!!”
“씹새가 무교라니까 자꾸 지랄이네.”
“놈……!!!”
으르렁대던 깍두기는 짜증을 내며 반쯤 돌아간 가면을 벗어던졌다. 분노를 불태우던 나는 드러난 놈의 얼굴에 화를 내는 것도 잊고 경악했다.
“야!! 시발 니 와꾸가 뭐 그따구로 생겼어!!”
놈은 내 말에 화상의 고통도 잊은 것처럼 당황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툭 튀어나온 아랫턱과 거기서 삐져나온 송곳니!!
애꾸눈을 가리는 검은 안대까지!!
“왜 니 혼자서 인간의 안면구조 역사를 새로 쓰고 앉았어!!!”
단언컨대 나는 살아 오면서 단 한 번도 남의 외모를 비하한 적이 없었다. 지금 말한 것도 100% 팩트일 뿐이었다.
인간은 아랫턱이 저렇게 우스꽝스럽게 발달할 수가 없으며, 송곳니만 삐쭉 튀어나와서 뒤지게 두꺼운 입술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저 새끼, 가면은 못 생긴 얼굴을 가리려고 쓰던 거였나? 나는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지는 와꾸에 경악하다가 놈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니 시발 잠만, 너 혹시 하프 오크인가 하는 그거냐?”
“뭐, 라고……?”
핵심을 찌르는 나의 지적에 말을 잃는 깍두기.
내 결론은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나온 도출이었다.
어쩌면 이 새끼는 지금까지 1마리도 존재한 적이 없었던 신인류가 아닐까? 유전자 구조 상 절대 태어날 수 없다던 인간과 오크의 교배종이 어느 실험소에서 탈출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그 못생긴 얼굴을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
그냥 못생겼다는 말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추함!!
저 놈은 골격구조와 근육 형태가 현인류와 한참 동떨어진── 인류 진화의 새로운 계보였다!!
“와!! 나 씨발 존나 신기해!!”
나는 학자의 학구열을 자극하는 새로운 생명체의 발견에 상황도 잊고 가슴이 뛰었다.
내 직업은 고고학자지만 이것은 미래의 역사에도 영원불멸하게 남을 신 발견이었다. 이것은 바다의 범고래가 인간과 교미해서 탄생한 범-인간이 뭍으로 올라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버금가는 학술적 쇼크였다!!
“다, 닥쳐라!! 누가 하프 오크라는 거냐!!!”
깍두기는 존나 못생긴 얼굴을 분노로 더욱 못생기게 만들며 악을 썼다.
“이 몸의 이름은 타뷸라!! 위대하신 천상의 광기를 섬기는 에인헤리(Einheri)이자, 불멸의 전사다!! 결코 하프 오크 따위가 아니야!!!!”
“하프 오크가…… 아니야?”
그의 말에 깨달음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렇다면…….”
그것은 수면 아래에 잠긴 흙이 조약돌을 던져져 떠오르는 것만 같은 직감이었다.
잊어버렸던 사실을 상기하는 듯한 감촉에 나는 몸을 떨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