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너는── 하프 오크가 아닌, ‘하프 인간’이라고 불리고 싶었던 건가?”
하프 인간!
그것은 오크의 피가 흐르는 인간이 아닌, 인간의 피가 흐르는 오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럴 수가!'
나는 스스로의 실수를 통감하고 크게 자책했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인종 차별이었다!
이미 나는 대장장이 클라라와의 대화에서 인간과 이종족의 혼혈에 대한 차별적인 풍속을 깨닫고 개탄하기까지 했었는데 말이다!
이는 명명백백 나의 실수였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혐오하는 것이 인종차별과 빨갱이와 정치적 올바름과 교수거늘,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각한 혼혈 차별을 벌이고 만 것이다!!!!
나는 내 말이 그에게 얼마나 큰 상처였을지 생각해 봤다.
그가 자신을 호드의 전사라고 여기고 있었다면 자신의 몸 속에 흐르는 인간의 피가 얼마나 증오스러웠겠는가!
나의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은 그런 그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그를 인간으로 취급한 것이었다.
이것은 흑인 아이들이 동양인 혼혈인 아이에게 너는 왜 미국에서 사냐고 물어보는 것 만큼이나 악의 없는 언어의 폭력이었다!!
“미안하다. 용맹한 오크 전사여. 나의 실수를 용서해다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나는 타뷸라에게 진심을 담아 사죄했다.
“──그대는 오크의 피가 흐르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피가 흐르는 오크이다. 나는 더 이상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다.”
비록 우리들은 서로의 시체 위에서밖에 살아갈 수 없는 적과 적 사이였지만, 그것이 상대를 존중하지 못할 이유는 아니었기에.
─부들부들부들.
내 사죄를 들은 타뷸라는 감격한 것처럼 몸을 떨었다. 화상을 입은 주먹이 굳게 말아쥐어졌다.
그 모습에 나는 가슴이 아팠다. 대체 얼마나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길래 이런 작은 이해와 배려에도 저렇게 감격을 한단 말인가.
타뷸라의 일생(一生)은 저 추한 외모와 종족에 따른 거센 차별로 범벅되어 있었겠지. 나의 이해심이 타뷸라에게 마지막 추억이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희번뜩.
그렇게 한참을 부들대던 타뷸라가 고개를 들었다.
“……죽여주마.”
애꾸인 타뷸라의 눈이 격노에 물들었다. 커다란 덩치의 하프 인간은 지난 세월의 증오를 터트리는 것처럼 포효했다!!
“죽여버리겠어어어어어!!!!!!!!!!!! 키타이인(人)!!!!!!!!!!!!!!!!”
“아니?!”
나는 동굴을 무너트릴 기세로 분개하는 그의 태도에 크게 당황했다.
대체 어째서 화를 내는 것이지? 게다가 키타이인이라니?
가면이 부서져서 내 얼굴색이 드러났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인가? 나로서는 도저히 타뷸라가 분노하는 이유에 짐작이 가질 않았다.
나는 그쪽 나라 사람도 아닐 뿐더러, 타인을 일부러 국가색을 섞은 호칭으로 부르는 행위는 국가우월주의로 이어지는 교두보였다!
설마하니 그는 앰뒤 뻐킹 레이시스트였던 것인가? 두피에 핏줄을 세우며 달려드는 그의 흉측한 모습에 당황하던 나는, 곧 한 가지 사실을 눈치깠다.
“──아아. 그렇군.”
그는 자신을 인간이 아닌 오크로 규정한 자.
그에게 인간은 모두 적이고, 몬스터이며, 먹이일 것이었다.
나를 키타이 인이라고 부른 것은 우리들 인간이 고블린을 종류별로 늪지 잼민이, 사막 잼민이 등으로 나눠 부르는 것과 같은 논리였겠지.
“그러나 알고 있는가? 호드의 전사여.”
나는 천지마투의 태세를 취하며 선언했다.
“네가 자신의 정체성을 오크로 규정한다면── 너는 더는 인간이 아니다.”
오크는 몬스터.
몬스터는 인류의 적.
따라서 죽여도 OK.
그런 잔혹하고 감성 없는 이과식 논리전개에 항의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생물을 죽이는 것은 아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못해도 전사로서 매장해 주는 것이, 내가 그에게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일 것이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타오르는 손길>을 유지하며 손을 까딱거렸다.
“──오너라. 여기가 너의 무덤이다, 유사 인간이여.”
“죽!!!!!!!!!!!!! 어!!!!!!!!!!!!!”
격분한 타뷸라가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부우우웅!!!
직전까지 선보였던 절도 있는 무술을 완전히 상실한 돌진이었다. 기술이 사라진 대가라도 되는 것처럼 속도가 빨라졌다. 타뷸라의 신체능력이 상승한 것이었다.
타뷸라의 흉흉한 살기를 맞으며 나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근데 너 이 씨발아. 내가 말했지.”
사실 경황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키타이 인 드립으로 방금 막 떠올랐다.
저 새끼가 우리 여친님이 만들어준 가면을 부쉈다는 걸.
“넌 뒤졌어 새꺄.”
화를 내야 하는 사람은 저 새끼가 아니라 나다. 타오르는 분노가 실체를 얻은 것처럼 내 주먹은 더욱 거세게 화력을 높였다.
화르르르르륵─!!!!
왼손의 불꽃을 끄고 오른쪽에 마나를 집중했다. 내 오른손이 철판요리사의 불쇼처럼 강렬한 불꽃을 뿜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후우우우우웅─!!!
초인적인 속도로 접근한 타뷸라가 주먹을 날렸다. 직선으로 뻗은 커다란 주먹이 내 머리를 부수려고 들었다. 살의에 미쳐버린 놈이 생각할 법한 발상이었다.
그러므로── 예측하고 피하면 된다.
─슈화아악!
나는 다리를 뻗으며 타뷸라의 펀치를 피했다. 신장 차이로 발생한 주먹 아래의 틈으로 짓쳐들었다.
타오르는 오른손을 수도(手刀)의 형태로 바꾸어 휘두른다!!
“베를린의 붉은 비!!!!!”
─푸화아아악!!
“크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불꽃을 휘두른 수도가 타뷸라의 옆구리를 부수어 벴다.
수도에 날카로움 따위 쥐뿔도 없다. 불꽃의 고열과 완력을 이용해서 억지로 밀어붙인 공격이다. 때려부수면서 박살을 냈다고 해야 맞았다.
“커, 허어…….”
─쿠웅.
타뷸라가 무릎을 꿇었다. 박살나면서 미디움으로 지져진 옆구리에서 살덩이와 피가 터져 쏟아졌다.
후두두둑, 후둑─.
내게 공격당해 잃은 옆구리는 치명상이었다.
내장이 박살나고 불탔다. 폐도 약간 사라졌을지 모른다. 저 상태로 살아나는 것은 인간의 생명력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혹은 초인이나 하프 인간이어도 그렇다.
나는 <타오르는 손길>을 켜둔 채로 뒤로 물러났다.
“이, 놈……!”
뒤지기 직전인데도 타뷸라의 눈은 죽지 않았던 것이다. 확인사살을 위해서 섣불리 다가갔다가 최후의 반격에 당하는 수가 있었다.
자연에서는 상처입은 짐승이 가장 무섭다. 죽어가는 놈을 끝장내겠다고 깝치다가 다치는 꼴은 보기 싫다.
뒤쪽에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나와 타뷸라는 서로를 노려보며 그 방향에 오감의 일부를 해당했다.
“북방에 흐르는 얼음의 마나여.”
떨어진 곳에서 티르시가 마법 영창을 하고 있었다.
“그대, 수면 위에 군림하는 모든 흐름의 왕. 나는 그대의 위에 군림하는 작은 율법의 왕. 이는 4원소의 3계, 동토의 집행(執行)이니──”
떨어진 곳에서도 모여드는 마나가 느껴졌다. 타뷸라를 확인사살하기 위한 강력한 주문이다. 접근하지 않고 끝장을 낼 수 있으니 나보다는 티르시가 저격일 것이다.
“크흐. 크흐흐흐……. 내가 그까짓 하찮은 도발에 넘어가 이렇게 추태를 보이게 되다니.”
타뷸라가 실성한 것처럼 웃었다. 나는 방심하지 않고 놈을 경계했다.
“넘어간 시점에서 하찮은 도발이 아니지 새꺄. 내 대가리도 하찮아서 거기에 넘어갔냐?”
무슨 도발을 얘기하는 건지는 짐작 가는 바가 없었지만 꼴 받으라고 그렇게 말을 해줬다. 타뷸라는 미친 것처럼 웃어대다가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서 나를 가만히 흘겨봤다.
“……내가 네놈에게 하나 가르침을 주마.”
“유언이나 뱉어 병신아.”
뒤져가는 와중에 뭔 소리야. 사이코 새끼들은 대체 뇌가 어떤 구조여야지 저렇게 남들이 이해 못할 감성을 가지는 것일까. 존나 무섭다.
“크흐흐흐흐. 유언이라.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중얼거린 타뷸라가 갑자기 하나 남은 자신의 눈에 손가락을 쑤셔박았다.
─푸욱!!
“이 씹?”
영문 모를 자해행위에 나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이 미친 새끼가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정체 모를 기묘한 불쾌감이 내 등허리를 기어올랐다.
“스스로의 교만한 지혜를 니플헤임에서 후회해라.”
자기 눈깔을 쭉 잡아뽑은 타뷸라는 안와(眼窩)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말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푸화아아아악!!!
놈이 흉측하게 웃은 순간, 역겨운 느낌의 마나가 주위에서 피어올랐다. 방사성 폐기물이 눈앞에 있으면 이러할까. 사람의 원초적인 불쾌감을 자극하는 검은 마나에 나는 다급하게 후퇴했다.
“크흐흐흐! 크하하하하하하!! 결국 이리 될 운명이었는가! 나 타뷸라는 이성 없는 짐승이 되고 마는 것인가!!”
타뷸라가 안대를 벗어던졌다. 양쪽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엔 텅 빈 어둠만이 존재했다.
“허나 그렇다 해도!!! 네놈들만은 길동무로 삼겠다!!!!!!”
까만 안와에서는 깨진 병이 내용물을 흘리는 것처럼 피가 뚝뚝 떨어졌다. 타뷸라는 시신경이 덜렁거리는 눈을 하늘에 바치듯이 높게 치켜들었다.
“천공에 거하는 위대한 광기시여!! 당신의 에인헤리가 공물을 바치오니, 비천한 혈육을 불사를 가호를 바라나이다!!”
투콰아아아앙!!
검은 마나가 폭풍처럼 타뷸라의 주위에서 휘몰아쳤다. 그때 영창을 끝낸 티르시가 완드를 겨누고 외쳤다.
“빙하의 관에 갇혀 영해(瀛海)에 잠들라! <영구의 동토(Dominion of Permanent)>!!”
─쩌저저저저적!!
완드가 겨눈 곳에서 3개의 얼음 기둥이 솟아났다. 생성된 얼음 기둥은 냉기로 관을 짜듯이 얼음을 엮으며 안에 갇힌 타뷸라를 결빙시키려 들었다.
휘오오오오오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그 죽느냐 사느냐의 상황에서도 타뷸라는 드높은 광소와 함께 팔을 벌렸다.
【피를 맛보는 자들아, 내가 베르세르크에 대해 묻겠다(At berserkja reiðu vilk spyrja)!!!】
“──시발!!”
마법의 주문! 나는 좆 됐음을 깨닫고 근처의 도적한테서 창을 빼앗아 들었다. <타오르는 손길>을 끄고 야수회귀의 힘을 담아 타뷸라에게 던졌다.
쐐애애액─!!
─카앙!!
내가 던진 창은 허무하게 튕겨났다. 검은 마나의 회오리를 뚫지 못했던 것이다. 티르시의 얼음 마법도 회오리의 안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듯 했다.
【늑대 가죽을 쓴 자라고 불리며 전투에서 피투성이 방패를 밀어붙이고(Ulfheðnar heita, þeirs í orrostumblóðgar randir bera;), 피로 물든 붉은 색은 싸움에 임하는 그들의 창날이니(vigrar rjóða,es til vígs koma)!!!】
저 새끼가 지껄이는 언어가 해석됐다. 게르마니아의 언어? 아니, 현대의 바이킹들이 쓰는 것보다 더 옛말이다.
‘황금시대에 사용되던 옛 마법!’
식은땀이 났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위험했다. 무슨 효과인지는 알지 못해도 자기 눈깔을 제물로 써서 발동하는 종류의 마법이다. 발동시켰다가는 대책이 안 선다!
막는 수밖에 없다.
막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조차 불가능하다!!
【베르세르크가 울부짖음으로써(grenjuðu berserkir), 늑대는 포효하며 철창을 휘두른다(emjuðu ulfheðnar ok ísǫrn dúðu)!!】
타뷸라가 주문을 완창했다. 마나의 회오리 속에서도 멀쩡하던 놈의 눈알이 커다란 손 안에서 짓뭉개져 터졌다.
【광화(Hamask)!!】
─푸확!
검은 마나의 회오리가 멈췄다. 실이 끊긴 것처럼 원심력에 실려 자전하던 마나가 동굴에 가득 퍼졌다.
쩌엉─!!
빙결을 방해하던 회오리가 사라지자 얼음 기둥은 눈 깜짝할 사이에 관을 완성했다. 길이 5미터에 달하는 까만 빙관(氷棺)이 세워지자 타뷸라의 몸이 싹 가려졌다.
그걸 마지막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의 소란이 거짓말인 것처럼 말이다.
“……씨발.”
도적의 시체에서 검을 빼앗아서 들었다. 검은색 얼음 관을 쏘아봤다. 심장이 뒤지게 떨려서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나는 안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이런 상황에서는 적이 부활하는 게 국룰이라서? 아니다.
운 나쁜 내가 이렇게 허망하게 이길 리 없어서? 아니다.
사람 기분 잡치게 만드는 사악한 기척이.
변함없이 관 안에서 풍겨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쨍그랑!!!!!
“KyaaaaaaaaaaaaaaAAAAAAA!!!!!"
얼음 관을 부수고 거대한 덩치가 뛰쳐나왔다. 몸의 가죽에 갈색 털이 잔뜩 자라난 이족보행의 괴물이었다.
일어선 두 다리는 역관절이지만 곧게 뻗은 팔은 인간처럼 생겼다. 손가락에 달린 식칼만 한 손톱만 빼면.
두 눈은 텅 비어서 거기서부터 까만 뭔가가 줄줄 흘렀다. 점도로 보건대 아마 피일 것이다.
─터덥!
멧돼지와 늑대가 섞인 것처럼 생긴 짐승은 관에서 나와 땅을 네 발로 짚고 으르렁거렸다. 눈은 멀었지만 코도 귀도 멀쩡하다. 짐승한테는 그걸로 족할 것이었다.
“……아서.”
“제가 앞, 당신이 뒤입니다. 마법으로 지원을.”
우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거기까지만 말했다. 많은 단어를 쓰지 않아도 나와 티르시는 생각을 공유했다.
저 짐승더러 누구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Krrrrrrrr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