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코를 울리면서 일어섰다. 놈의 텅 빈 안와가 절대 놓치지 않는다는 듯이 내가 있는 장소를 쳐다봤다.
나는 히죽 웃으면서 주먹을 내밀었다.
“손.”
“──KryyyyyyyyyaaaaaaaaaaaaaAAAAAA!!!!!!!!!!!"
짐승이 도약한다.
텅 빈 눈으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검을 휘둘렀다.
터질 듯한 가슴의 공포를 투지의 장작으로 삼아서.
맞붙는 우리의 살의에 한 점의 흐림도 없었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죽느냐 죽이느냐 뿐이었으니까.
“뒤져, 이 새끼야!!!”
커다란 손톱이 붙은 손에 맞춰 도적의 검을 휘둘렀다.
──채앵!!
맨손과 강철검. 상식적으로 내가 이겨내는 것이 정상적일 텐데도 내 검은 쇳소리를 내면서 박살났다.
‘씨발!!’
힘에서 압도적으로 밀렸다!!
급하게 손을 올려서 손톱을 막았지만 팔뚝이 찢어져서 피가 튀었다.
“으큭……!!”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았다. 원래 무식하게 힘만 쎄던 새끼가 이제는 철까지 부서대니 맞겨룸이 불가능했다. 강화 마법의 효과라고는 상상도 못할 폭발적인 강화였다.
‘──역시 변이마법인가!’
신체의 체질을 바꾸고 몸을 강화하는 효과. 타뷸라의 흉측한 와꾸와 짝눈은 변이마법의 여파였던 것이다.
한쪽 눈을 바쳐서 힘을 얻었고 그 대가로 늑대처럼 턱과 이빨이 튀어나왔던 걸까. 그럼 완전히 짐승으로 변해버린 이젠 대체 얼마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지 상상도 안 갔다.
─덥썩!!
아니, 상상은 안 가더라도 직접 볼 수는 있었다.
속도까지 나를 뛰어넘은 짐승의 손이 우악스럽게 내 머리통을 붙잡고 들어올렸기 때문이다.
“Kouoooooooooooooooooooooo!!!"
“크아아아악!!!”
내 머리를 야수공 쥐듯이 붙잡은 짐승은 내 몸을 간단히 들어올려 바닥에 패대기쳤다.
─콰아앙!!
“커헉!!”
등이 바닥에 격돌하는 충격에 나는 폐의 공기를 토해냈다. 아까부터 계속 야수회귀의 방어력을 뚫고 데미지가 들어온다!!
“Kyaaaaaaaaaaaaaoooooooo!!!"
─쾅!! 쾅!! 쾅!! 쾅!! 쾅!! 쾅!!
짐승은 그대로 내 모가지를 휘두르며 나를 패대기쳤다. 장비 포함 100kg을 넘는 내 체중 따위는 아랑곳도 않는 완력!!이대로 가다간 몸이 버텨도 목이 부러져서 죽는다!!
나는 어지러움과 통증 속에서 신음하듯 마법을 영창했다.
“<타오르는 손길>!!”
“──<빙결의 창(Freezing Spear)>!!”
나와 티르시가 동시에 주문을 외웠다. 타오르는 손이 짐승의 손목을 불태우고 얼음의 창이 무방비한 짐승의 등판에 적중했다.
─화르르르륵!!
─퍼어억!!
“KyaAAAA-Syaaaaa!!!!!"
마법을 몸으로 받으면서도 짐승은 계속해서 날 휘둘러댔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존나 마법까지 안 통하는 건 선 넘었지!!”
나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눈앞이 종횡무진으로 돌아가서 구역질이 날 것 같다. 이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짐승의 손목을 비틀었다.
<타오르는 손길> 마법의 불길은 놈의 가죽에 닿자 연기가 무산되는 것처럼 효과를 잃고 있었따.
‘이건── 항마(抗魔)의 술법!’
들어 본 적이 있다.
ᚦ(Thurs)의 룬.
거인. 인내와 시련. 보호를 상징하는 뇌신 토르의 상징.
항마력을 가지는 고대 바이킹들의 주술이며, 트롤을 낳은 요툰의 룬 문자……!!
‘아마도 이 새끼한테 공격마법은 안 통해!!’
ᚦ(Thurs)의 룬에 내포된 마법 저항의 힘은 룬 문자의 효력을 상쇄시킨다. 그리고 이세계의 마법들은 90% 이상이 룬 어를 기반으로 개발된 것들이다.
우리가 마법을 사용해도 효과가 발휘되지 않는 것은 그래서였다. 술식을 구성하는 룬 문자의 구조가 붕괴해서 마나가 무산되기 때문이다.
이걸 극복하려면 ᚦ(Thurs)의 룬을 다루는 술자보다 훨씬 강한 마나 응집력이 필요하다!!
일단 내 수준으론 꿈도 못 꿀 거라는 건 잘 알겠다!!
“Kyaa!!!"
나를 휘두르던 짐승이 티르시 쪽에 손톱을 1번 휘둘렀다. 검은 마나가 몰아쳐 포탄처럼 발사됐다!!
─키이잉!! 챙그랑!!
“꺄아아아악!!!”
포탄은 실드를 깨부수고 티르시의 작은 몸을 튕겨냈다. 티르시의 몸이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처럼 바닥을 뒹군다. 나는 짐승의 손이 멈춘 틈을 타서 놈의 손목에 두 주먹을 내리쳤다!!
“새끼야!! 나한테 집중해!!”
“Krrrrrrrrrr……!!”
내 공격이 제대로 적중했지만 짐승은 아파하는 티도 내지 않았다. 기초 스펙이 차원이 다르니까 공격을 성공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
후욱!!!
짐승은 두 손으로 내 머리와 다리를 붙잡고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짐승 비린내가 풍기는 입이 쩍 벌려졌다. 이 새끼, 날 잡아먹을 생각인가!!
“관둬, 새꺄!! 난 육식주의자라서 맛 없어!!!”
─텁!!
놈의 턱을 위아래로 붙잡고 버텼다. 악어의 입을 벌리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힘을 짜냈다.
“끄으으으으……!!”
─부들부들.
위아래로 내 머리와 다리를 잡아당기는 악력에 점점 팔에 힘이 빠졌다. 어깨와 다리에 손톱이 박혀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로 씹뜯맛즐 당해서 뒤지겠다!!
“마… 비독… 200g. 비파나무. 해안선의… 말뚝.”
그때였다. 쓰러진 티르시가 떨리는 손으로 작은 병을 꺼냈다. 노란 액체가 든 병이었다.
“부패신에게 바치는, 공물…. 파도바람의 온기…. 흰 옷의 야양…. 비파나무….”
티르시가 말을 더듬는 것은 머리를 다쳤기 때문이었다. 머리에서 피가 넘쳐서 백발을 물들였지만, 그래도 티르시의 눈은 투지로 반짝였다.
“나, 작은 만의 예(禮)를 잇는 자…! 한 자루의 작살로…!! 신을 묶는 묘표를 세우리…!!”
병의 뚜껑을 딴 티르시가 목소리를 쥐어짜내며 영창했다.
“<첨섬(尖銛)의 쇠사슬(Chain of Sharp Harpoon)>!!”
─촤르르르르륵!!!
─우뚝!
마법이 발동하자 짐승의 몸이 굳었다. 마비 마법이었다. 나는 석고상처럼 꿈쩍도 않는 짐승의 손아귀에서 탈출해서 그 새끼의 안면에 발차기를 날렸다.
“질척거리지 말고 꺼져!!”
─퍼억!
─철푸덕!!
킥은 통하지도 않았고, 대신 내 몸만 병신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저 새끼 손에 하도 내팽개쳐져서 그런지 균형감각이 제대로 작동을 안 했다.
“커흑, 커허!”
기침에 피가 섞여나왔다. 다행히 폐나 내장은 멀쩡하다. 이 피는 입 안이 터져서 고여 있던 혈액이었다.
“콜록, 콜록…!”
“Kmuuu……!!"
티르시도 기침을 하면서 필사적으로 짐승을 억제했다. 짐승은 렉 걸린 게임 캐릭터처럼 몸을 수시로 떨어댔다. 마비 마법에 저항 중인 것이다.
하수구 때가 떠올랐다. 티르시는 여치벌레들을 막는 것도 힘겨워했다. 그때에 비해 상황이 다르더라도 저 짐승을 오래 묶어둘 수는 없을 것이었다.
“크, 으그으으윽!!!”
쓰러진 몸에 힘을 불어넣었다. 만신창이가 된 몸이 포기한 것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파르르르─.
나는 떨리는 턱을 이를 악물어서 멈췄다. 통증 따위 알 게 뭐냐. 좆 까라 그래라. 프랑을 내버려두고 죽을 자격은 나한테는 없다. 티르시가 막아주고 있는 사이에 대책을 짜내라!
질척─.
그때 가슴을 붙든 내 손에 미지근한 뭔가가 묻어나왔다. 피? 아니, 아니다. 옷 안에서 거슬리는 감촉이 났다.
부숴진…… 유리병?
‘──포션.’
품에 넣어둔 마나 포션이 전투의 충격에 박살난 것이었다.
‘그거다!’
머리를 스치는 발상에 나는 어느 상자를 찾았다. 도적을 쓰러트리고 얻은 포션 박스를.
─타탓!!
발견한 상자를 향해 뛰었다. 그러자 짐승의 움직임이 격해지고 티르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비 마법이 풀리기 직전인가. 나는 순간의 기지로 품에서 무기를 꺼내들었다.
저 새끼의 가죽에 내가 휘두르는 검은 들지 않는다. 주먹으로도 파괴력이 부족했다. 가죽을 무시하고 뼈와 살을 때려부수는 형태이면서 타격면적도 적은 무기여야 했다.
마침 적절한 무기가 수중에 있었다.
프랑의 무기. 원뿔 형의 쇠망치였다. 나는 그것을 굳세게 쥐고 마비로 굳어 있는 짐승의 다리를 후려쳤다.
─뻐어억!!
역관절로 된 다리에 망치를 갈기자 살점을 뭉개는 손맛이 느껴졌다. 뼈를 부수는데는 이르지 못했다. 그래도 이거면 됐다. 과욕은 금물이다.
“k……!!”
마비로 몸이 굳은 짐승은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나는 망치를 다시 품에 넣으며 달려서 상자를 챙겼다.
─촤르르륵.
상자를 열고 뚜껑을 열었다. 챙겨서 안에 넣어둔 논문 봉투는 방해되니 내던져버리고 마나 포션을 꺼냈다. 내 손은 재빨리 움직이면서도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과정을 진행했다.
─푸욱!
포션의 뚜껑을 따고 주사기가 붙은 뚜껑을 끼워서 배에 꽂았다. 록 터틀 가죽으로 만든 바지 때문에 다리에는 꽂을 수 없었다.
─주르륵.
주사기를 꽂자 파란 포션이 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이런 포션은 입으로 마셔서 위장과 간에서 여과를 거치는 것이 올바른 사용법이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즉효성을 위해서라면 뒷감당 정도는 받는 수밖에.
─푸슉!
나는 3분의 1로 내 마나통 절반을 채우는 포션을 1병 째로 비우고 배에서 뽑았다.
이건 상식적인 관점에서 미련한 짓이었다. 마나 포션을 이렇게 많이 투여한다고 마나량이 늘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부작용으로 마법의 집중력만 떨어지기만 할 것이다.
─휴와아아아악!!!
“쿨럭, 크흑!”
과다복용(Overdose)한 마나 포션이 마나통을 넘어서 몸을 휘저어댔다. 내가 아는 그대로의 부작용이었다.
나는 이 현상을 고대했다. 이를 악물고 뿌얘진 의식을 집중했다.
‘야수회귀에 이 마나를 박아넣어라!!’
꽈아아악─!
주먹을 으스러트릴 듯이 쥐었다.
아까 전. 나는 아직 인간이었던 타뷸라와 맞붙었다가 날아가서 벽에 부딪혀 기절했었다. 시간으로는 1초 정도다. 곧바로 움직일 수 있었으니 그리 문제되진 않았다.
중요한 것은 기절했다는 사실이다.
내 의식이 끊겨도 야수회귀는 계속 유지되었다.
야수회귀의 효과 체계는 나의 의식과 무관했다. 내 제어와 별도로 마나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외장 하드── 아니, 외장 CPU다.
─슈와아아아아악!!!
마나통에 못 들어간 마나가 몸을 휘저어서 토악질을 유발했다. 몸 안에 넣은 고무관에 공기를 주입해서 부풀리는 듯한 감각!!
억눌러라. 버텨라. 이를 악물고 참아라!
“Krrrrrr!!! KyaaaaaaaaaaAAAAAAA!!!!"
마비에서 풀려난 짐승이 포효했다. 자유를 되찾은 짐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티르시에게 검은 마나를 뿜어냈다. 자기 움직임을 방해하는 상대부터 숨통을 끊으려는 것이었다.
광기에 잠식됬으면서도 이성은 남아 있는 건가. 나는 걸레짝이 된 몸을 채찍질해서 티르시에게로 쇄도했다. 놈이 날린 마나의 포탄을 따라잡아 후려쳤다!
“꺼져!!”
내 주먹에 부딪힌 마나는 응집력을 잃고 와해되었다. 아까 맛본 완력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위력이었다.
‘할 만 해!’
프랑의 망치를 들고 짐승에게로 뛰어들었다.
야수회귀의 출력이 눈에 띄게 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모험가 길드의 압력석을 기준으로 1단계 반 정도 올라간 수준이 아닐까. 골드 클래스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내가 공격을 쳐냈던 것은 저 놈이 마나를 응집하거나 방출하는 기술을 쓸 줄 모르는 덕분이다.
기술이 부족한 꼴로 마나만 뿜어 봤자 위협적이지 않았다. 대포를 쏴도 포탄이 물풍선이면 위력이 떨어지는 것은 자명지사니까!
─부아아앙!!
접근하자 손톱이 날아들었다. 바닥을 기듯이 자세를 낮춰서 피했다. 강화된 몸이 공격 속도에 반응했다. 팔 아래로 빠져나가서 놈의 다리를 프랑의 망치로 후려쳤다!!
─빠각!!
─으저저적!!
“KyaAAAAAAAAAAAAAAAAA!!”
찌르르한 손맛. 프랑의 망치가 다리뼈를 부러트렸다.
─삐거덕.
과한 힘에 혹사당한 철망치가 ㄱ자로 휘었다. 나중에 프랑한테 사과하자. 나는 망치를 던져버리고 바닥을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