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1,009)

산들바람 걸음 마법은 앞으로 몇 분 남았지? 티르시에게 이 이상의 서포트는 바랄 수 없다. 내가 재정비할 시간을 벌어준 것만으로 티르시는 한 사람 몫을 다 했다.

이제는 내 손으로 끝장을 내야 한다!

“<구름 소환>!!!”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는 어느새 영창을 내뱉고 있었다.

<구름 소환> 마법이 동굴 바닥에 마법의 생성 포인트를 설정하고 수증기를 뿌렸다. 시각을 봉쇄하는 건 의미가 없다. 짐승은 처음부터 눈이 멀었다.

──그러니까 이 마법이다.

“KyuuuuuuuuuuuuuuuuuuuUUUU!!!”

짐승이 공격했다. 티르시를 노리려다가 내게 등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고통과 분노 때문에 그나마 남아 있던 이성조차 내버린 걸지도 모른다.

─부우우웅!!

피하지 못했다간 내 강화된 방어력으로도 치명상을 입을 위력의 공격이다. 변이마법과 검은 마나로 강화된 신체는 생명을 죽이는 일에 이상하리만치 특화된 생물 같았다.

─부웅!! 부웅!!

첫 발째를 피했다. 두 발째도 피했다. 세 발째, 네 발째도.

─부웅!! 부웅!! 부웅!! 부웅!!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거기까지 연달아서 나를 놓친 짐승도 과연 눈치챘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맞지 않지?

기척을 노려서 공격하고 있는데 왜?

그 답은 간단하다.

놈이 읽는 ‘기척’은 청각이나 후각이 아니니까.

푸쉬이이이이─.

동굴에 안개가 피어올랐다.

내 마나로 만들어진 안개가 말이다.

짐승이 공격을 멈추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농도를 조절한 안개에 숨어서 확인했다.

─까득!

손목의 옷을 걷고 강화된 턱으로 깨물어뜯었다. 소리를 듣고 짐승이 공격을 시도했다. 눈 먼 공격 따위에 나는 맞지 않았다.

내 몸에 튄 피냄새를 덮듯이 동굴 바닥에 피를 뿌려댔다. 피냄새가 아찔하게 풍겨오자 짐승의 혼란이 가속되었다.

‘역시나.’

저 새끼가 사람의 위치를 간파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후각인가? 청각인가? 둘 다 정답이지만 그게 전부여서는 100점은 못 받는다. 다행히 나는 100점 만점의 답을 써내릴 ‘가설’을 몸으로 겪은 적이 있었다.

떠올려라. 이 장소에서 도적 놈들을 몰살했을 때를.

어떻게 나는 도적 우두머리의 도주 시도를 알아챘지?

후각이나 청각은 나도 상당히 강화됐다. 그럼 그때 나는 자신의 오감에 집중하고 있었나? 개소리다. 진혼곡 연주하느라 바빴지.

그랬던 내가 우두머리의 기척을 느꼈다. 대체 뭘로?

‘──마나로.’

이게 유일무이의 정답이다.

후각, 청각, 다 좋다 이거다. 그런데 변이마법으로 신체와 체질이 바뀐 놈이 거기에 벌써 적응했을까? 몇 분 전까지는 멀쩡한 인간이었는데? 십 년 넘게 장님으로 산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답은 하나. ‘마나’다.

유적 경비 의뢰 때, 네페르티티가 가만히 숨어 있던 내 위치를 정확하게 추찰(推察)한 것과 같은── 영감(靈感)!!

푸쉬이이이이이──!

안개가 자욱하게 차올랐다. 내 마나가 가득한 안개로부터 나를 구분짓는 것은 짐승에게도 불가능한 듯 했다. 손톱을 세운 상태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나는 그 모습에 혀를 찼다.

‘큰일이다! 나도 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일 수는 없어!’

산들바람 걸음의 효과는 아직 남았지만 소리를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할 것이었다. 저 새끼는 인간 상태일 때도 내가 달려드는 것을 중간에 눈치챘지 않았던가!

‘내 공격이 닿는 곳까지 여기서 몇 걸음이지?’

3미터? 4미터?

그 거리를 무음으로 뚫고 나가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중간에 발소리라도 내면 그 자리에서 저 새끼는 반격할 태세를 갖춰버리고 만다! 큰일이다! 끝자락에 와서 마지막 1수가 부족하다!

“……<얼음의, 화살>.”

안개 안쪽에서부터 누군가가 주문 영창을 영창했다. 누구인지는 곧바로 알았다. 티르시가 마지막 힘을 짜낸 것이었다.

─카가가가가가각!!!

엉망진창인 술식이었다. 얼음의 화살은 화살촉만 간신히 구현되어 허무하게 바스라졌다.

‘아니, 저걸로 됐어!!’

완벽하다. 최고의 서포트다, 티르시!

─투두두두두두둑!

화살촉은 천장에 부딪혔다가 냉기로 변하지 못하고 우박처럼 쏟아졌다. 깨진 얼음 조각이 쏟아지는 노이즈가 동굴 안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내 의도를 알아차린 티르시가 마지막 1수를 보강해 줬다!!

무너질까 넘을 수 없었던 다리 끝에 벽돌 하나가 티르시의 손으로 채워졌다. 같이 오길 잘 했다. 나 혼자였다면 분명 여기서 손발이 막혀서 죽어버렸을 것이었다.

내가 숫자를 셌다. 10, 9, 8…….

짐승이 온 신경을 청각에 집중했다. 7, 6, 5…….

티르시의 마법이 조금씩 약해졌다. 4, 3, 2…….

그리고── 1.

‘──지금.’

─타탓!

죽을 힘을 다해서 뛰었다.

얼음이 부숴지는 노이즈에 0.1초만에 묻혀버린 발소리.

그런데도 짐승은 반응했다.

영점 아래 콤마 수십 개의 찰나에 내가 낸 발소리를 잡아내 정확하게 내쪽으로 대쉬했다. 조금의 미혹도 없는 손톱이 내 몸통을 찢어발기기 위해 날아들고──

─부웅!!!

──텅 빈 공간을 갈랐다.

“────k.”

빗나갔다.

아니, ‘빗나가게 만들었다’.

노이즈 속에서 짐승은 강화된 청각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티르시가 도와줬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발소리 없이 저 거리를 주파할 자신이 없었다.

타뷸라도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뛰어난 전사가 아닌─ 학자라고.

“──덤벼와 줘서 고맙다.”

내가 주먹을 당기며 속삭였다. 방금 전의 발소리는 앞으로 달려든 소리가 아니다. ‘옆으로 뛰어서 피한’ 소리였다.

나는 저 짐승이 내 발소리를 듣고 ‘먼저 죽이기 위해’ 달려들 거라고 믿고, ‘처음부터 몸을 피했던’ 것이다.

티르시가 만들어준 노이즈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초조해진 짐승이라면.

이성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에 의존해 공격해 올 것이 분명했으니까.

이성을 동원한 작전으로 나는 승기를 붙잡았다. 일부러 낸 발소리에 짐승은 반격이 아닌 선공을 택했고── 그렇게 내 앞에 자기 심장을 대령했던 것이다.

─쿠웅!

짐승이 경악과 혼란으로 정지한 1초. 나는 그걸 공격을 위한 진각에 사용했다. 주먹을 내딛으면서 발을 당겼다.

내 펀치로 놈을 죽일 방법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 봤다.

나는 전사가 아닌 학자다. 과학이 발달한 지구인이다.

공기의 특성을 떠올려라. 대류현상의 지식을 되새김질해라. 따뜻한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상부와 하부로, 밀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움직이는 것이 공기다.

구름도 마찬가지다. 압축되었다가 풀려난 기체는 뿜어지며 기압을 발생시킨다. 그것이 증기기관이 수 톤의 철도를 달리게 하는 힘이다.

“──<구름 소환>.”

슈와아아아악!!

나는 팔꿈치 뒤쪽의 포인트에 <구름 소환>으로 만든 증기 전부를 ‘겹쳐서’ 생성했다.

한 곳에 압축돼 있던 증기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법의 제어능력을 벗어나서 폭주했다!

이 압력을 컨트롤 하려 들지 마라! 나는 발생한 기압에 손을 거들 뿐!!

내 힘과 동료의 힘으로도 모자라다면── 자연의 법칙에까지 힘을 빌려서 필살의 기술을 짜내라!!

술식을 결합해라! <구름 소환>에 야수회귀를 덧씌워라!!

강화된 출력으로 뿜어지는 증기를 컨트롤해라!!! 지향성을 부여해 후방으로 밀어내라!!!! 펀치에 추진력을 더해라!!!!!

이 주먹을 탄환으로 바꿔서 쏘아내라──!!!!!!

‘힘을 빌려 주세요. 와트 씨.’

“뭉게뭉게──!!!!!!!”

나는 증기기관의 창설자에게 기도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총!!!!!!!!”

─투콱!

추진력을 얻은 내 주먹이 야수의 심장을 쏘아 부수었다.

후두두둑─.

주먹이 작렬한 곳에는 수박도 넣을 수 있을 듯한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짐승의 가슴 뒤쪽으로 거인이 스프레이를 뿌린 것처럼 핏자국이 시뻘겋게 뿌려졌다.

피로 만든 그래피티(graffiti).

이것이 인터내셔널인가.

“커헉…….”

나는 무모한 기술의 반동으로 팔을 축 늘어트리며 무릎을 꿇었다. 기립하고 있으려고 노력했지만 불가능했다.

“마나 오링난 레후…….”

사람 말 같지도 않은 소리가 입 밖으로 샜다. 뭐라는 건지 모르겠을 정도다. 처음 야수회귀를 썼을 때보다 훨씬 더 빡세고 힘들었다.

아니, 걸레짝이 된 몸뚱이로 스팀팩 과다복용하고 쌩쑈를 해댔으니 당연한가.

“퉷.”

피 섞인 침을 뱉고 짐승을 쳐다봤다. 근데 이 새끼 왜 안 쓰러지지. 꼴에 늑대인간 짭이라고 가슴살 리필 받았다가는 진짜로 이제 답이 없는데.

스으윽─.

내가 쳐다보니까 그제서야 자빠지는 짐승─ 은 시발 저 새끼 왜 이쪽으로 넘어지냐!!

“구른다!!”

나는 다급하게 옆으로 앞구르기를 시도했다. 내 위에 올라타도 되는 것은 프랑 뿐이야!!

짐승이 앞으로 쓰러졌다. 구멍에서 엄청난 양의 혈액이 쏟아졌다. 새빨간 카펫이 깔리는 느낌이다. 잠만. 이 새끼 피가 원래 빨갰던가? 검은색 아니었나?

아니 것보다 중요한 건 이 새끼가 아니지. 나는 티르시의 용태가 신경쓰여서 거기로 기어갔다.

“애시. 괜찮습니까?”

“……아, 서.”

티르시는 의식이 남아있는지 엎어진 상태로 나를 쳐다봤다. 내 얼굴이 다 드러났는데 아직 아서라고 불러주는 건가.

아니면 혹시 노르드라는 새끼는 기억에서 잊혀졌을지도 모르겠다. 모자란 꼴마초쉑 같으니.

아무튼 다행이다. 티르시가 죽었거나 했으면 진짜 죄책감 때문에 반 년은 잠도 못 잤을 테니까.

“포션은 있습니까?”

“가방, 안에…….”

“잠시 실례하죠.”

가방에서 빨간 상처회복 포션을 꺼냈다. 티르시를 무릎에 앉히고 고개를 들어서 포션을 마시게 했다. 입에 가져다댄 포션을 몇 모금 마시고서 티르시가 웃었다.

“어쩐지, 콜록. 아기가 된 같아서 부끄럽네요. 콜록콜록.”

“귀여우니까 걱정 마시길.”

“부끄럽다니까요…….”

힘없이 웃는 티르시의 입가에서 머리카락을 떼 줬다. 아 근데 시발 나도 포션 마시고 싶은데. 가방 안에 남은 포선은 지금게 전부였다.

“상처회복 포선은 이게 다입니까?”

“하나 더 가져왔는데…… 깨졌나요?”

“그런가 보더군요.”

가방 안이 약품 냄새로 가득하다. 포션병이면 튼튼한 병일 텐데도 씹창이 나버렸던 것이다. 씨발. 저 짐승 새끼가 진짜 말도 안 되게 쎘구나.

“콜록, 콜록. 어쨌든, 저희가 이긴 거죠?”

티르시는 포션 섞인 기침을 하다가 내게 물었다. 나는 그 말에 쓰러진 짐승 쪽을 쳐다봤다.

“모르겠습니다. 확인사살할 체력도 안 남아서.”

“면목 없지만 저도 그래요.”

“살아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네? 자, 잠깐만요! 위험할 수도… 케흑, 쿨럭!”

일어설 기력도 없는 티르시를 눕히고 포션병 바닥에 약간 남은 포션을 입에 털어넣었다.

“콜록, 크흥, 케흥?!”

간접키스라서 그런지 티르시가 당황해 했다. 그래도 이건 위급상황이니까 이해해 주길 바란다.

포션을 마시니 약간 회복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플라시보 효과여도 다리에 힘이 조금 돌아왔기에 두 다리로 일어섰다.

넘어져서 피를 쏟는 짐승에게로 다가갔다.

‘이 새끼. 마법이 풀렸군.’

피가 검은 색에서 빨간색으로 돌아온 것은 그것 때문일까. 눈에서 흐르던 피눈물도 빨개졌다. 그 검은 마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니 아마 내 추리가 맞지 않을까.

그래도 변이마법의 부작용인 하프-웨어인간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쿨럭.”

그때 짐승이 토혈을 했다. 의식을 되찾은 듯 했다.

“여, 기는…….”

뒤져가던 짐승이 말했다. 타뷸라의 목소리였다. 그 새끼는 텅 빈 눈을 움직이면 뭐가 보일 줄 아는지 고개를 움직이다가 내 존재를 알아차렸다.

“나는─ 내가…… 진 건가.”

“그래, 새꺄. 부탁이니까 그대로 얌전히 뒤져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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