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1,009)

의뢰서의 특이사항은 그 정도였다.

실버 클래스 모험가가 있고, 브론즈를 4인이나 고용하는데다가 보수까지 높다.

“꽤 좋은데?”

“그렇지?”

나랑 프랑은 의견이 합치했다.

1번 실패한 집단은 2번째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서 같은 일에는 철저하게 대비한다. 그렇지 않은 집단도 있지만 운송 길드의 외팔이 청년은 충분히 대비를 할 생각인 듯 했다.

‘아이 동반’이라고 적혀 있니까 분명 그럴 것이다. 도적단 새끼들에게 납치당했던 애들을 집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주기 위해서 말이다.

“헤이스벤트까지 가는데 실버 클래스까지 고용했어. 이번 운송을 꼭 성공해서 실수를 만회하려는 걸까?”

프랑이 말했다. 의뢰 접수일을 보니까 오늘 막 들어온 의뢰였다. 그런데도 2명이나 받았다.

이건 지금 놓쳤다간 다음에는 절대 못 받을 것이다. 엄청 좋은 조건이라서 다른 놈들이 채갈 테니까.

뒤에서 줄을 서던 중년 모험가가 헛기침을 했다. 빨리 좀 하고 비켜달라는 표정이었다. 우리가 접수처에서 밍기적대서 그렇다.

시발, 알게 모르게 민폐를 끼치고 있었네. 빨리 고르고 비켜줘야겠다.

“프랑. 우리 이걸로 하자. 그리고 다른 의뢰도 하나 받을까 하는데, 이거 어때?”

“어떤 거?”

나는 페르포트 마을 사람들이 보낸 고블린 퇴치 의뢰를 집어들었다. 조건을 읽던 프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수 20쿠퍼에 왕복 이틀 거리면 문제 없겠다.”

“운송 길드 마차 호위는 4일 뒤 출발이니까, 이틀 거리면 문제가 생겨서 하루 정도 늦어도 되겠지. 프랑 너도 이 의뢰로 괜찮지?”

“응. 노르가 좋다면 나는 뭐든지 괜찮아.”

“으으. 우리 프랑 넘모 착하고.”

사랑스러운 말을 해 주는 프랑을 끌어안고 볼에 키스했다. 프랑은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했다. 그러자 뒤에서 기다리던 모험가 아재가 표정이 씹창이 됐다.

왜? 꼬우신가? 꼬우시면 댁도 아내 분이랑 같이 모험가 하셔요.

커플은 공공장소에서도 애정행각을 펼치는 것의 의무라고 노르드 헌법에 적혀 있다.

우리는 그렇게 의뢰 2개를 받아서 신청했다.

길드에서 용무를 마치고서 클라라의 대장간으로 왔다. 내가 부숴먹은 프랑의 무기를 새로 구하러 온 것이었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에 죽상으로 엎어져 있던 클라라가 벌떡 일어나서 우리를 환영했다. 아직도 장사가 잘 안 되는 건가.

“앗! 저번에 오셨던 모험가 분이시네요! 잘 지내셨어요?”

“잘 지냈죠. 여기서 장비를 사간 뒤에 연인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좋은 일이 있길 바라면서 왔고요.”

“그거 듣던 중에 기쁜 소식이네요! 오늘은 뭘 구하러 오셨나요?!”

“여기, 제 여자친구가 쓸 무기를──”

“드워프 분이시군요! 잠시만요! 좋은 무기가 있거든요!!”

─우당탕탕!!

클라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금하게 대장간 안에서 무기들을 가지러 들어갔다. 간만에 온 손님을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프랑이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장사가 잘 안 되시나?”

“에이, 설마. 농번기인데 대장간이 돈에 쪼들리겠어?”

수확철은 농기구 수리를 포함해서 대장간이 바쁠 시기다. 호툴루실의 농장에서도 클라라가 만든 낫을 썼었으니까 일이 부족하진 않겠지.

‘……너무 잘 만들어서 수리도 필요 없다든가?’

어디였더라. 농가에서 쓰는 기계를 만드는 업체가 40년을 계속 써도 고장나지 않는 기계를 만들었다가, A/S 비용이나 신상품 판매로 수익을 못 벌어서 도산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새 상품을 찍어내도 구매층은 이미 저번에 사간 것에 만족하니까 새로 사질 않고, 고장도 안 나니까 수리비도 못 번다. 그래서 망해버리는 것이다.

클라라도 비슷한 처지일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이 만든 낫은 마나를 다루던 킹 워킹-고라니의 목조차 따 버리는 물건이었으니까.

“여기!! 드워프 분들이 자주 쓰시는 물건을 가져왔어요!!”

우당탕탕─!! 콰르르륵!!

상자에 담아온 무기를 빠르게 진열하는 클라라. 뭐가 존나 많군 그래.

“드워프 분께는 손재주나 힘을 살리는 무기가 추천이에요! 여기 이 고중량 해머 같은 건 어떠세요?!”

그리 말하면서 프랑에게 권유한 것은 사자 대가리도 일격에 때려부술 것만 같은 묵직한 망치였다.

아니 시발 뭔 막대 끝에다가 모루를 달아 놨어야. 저기에 맞으면 비스트 모드 타뷸라도 뒤지겄다.

내가 받아서 들어 봤는데, 진짜로 대책없이 무거웠다. 이거 프랑이 들 수 있을까?

“자, 프랑.”

“고마워.”

이게 되네 시발.

‘맞다. 평소 완력으로는 내가 발렸지 참.’

프랑은 내 체감으로 20kg은 될 것 같은 망치를 한손으로 들었다 놨다 해 봤다. 무게중심은 잘 잡혀 있어서 들기는 꽤 쉬웠지만 들고 다니기는 어려워 보였다.

존나 묠니르도 아니고 어따 매고 다니다가 행인이랑 부딪혔다간 최소 복합골절 통원치료다. 부랄에 맞았다간 그 새끼의 첫 배란일이 되는 거고 말이다.

“이거 말고 다른 건 없나요? 이렇게까지 무거운 건 다루기 힘들어서.”

같은 생각이었는지 프랑이 망치를 내려놓고 말했다. 클라라는 반지낀 손으로 턱을 짚더니 눈을 빛냈다.

“무거운 게 싫으시다면, 가장 가벼운 무기는 어떠세요? 이 투척 나이프 시리즈를 추천드려요!!”

촤르르륵─.

카지노에서 코인을 쏟는 소리처럼 작은 나이프 같은 것이 테이블에 쏟아졌다. 5개씩 끈으로 묶인 나이프는 가위의 한쪽 날이랑 비슷한 두께였다.

“이건 모험가 도적 분들이 애용하시는 투척 나이프랍니다. 인간이나 엘프 도적 분들은 활을 쓰는 분들도 계시지만, 드워프 분들은 나이프를 선택하시죠.”

“넹? 왜요?”

“어…… 투척에는 드워프 종족의 손재주랑 완력을 살기기가 좋거든요.”

그건 활도 마찬가지 아닌가?

소총 사격처럼 손재주랑 활 솜씨는 관계가 없지만, 완력은 활에도 적용된다. 활대를 몬스터 소재로 만들면 일반인은 시위를 당기는 것도 힘들 정도로 빡빡해지는데, 이걸로 쏜 화살은 바위도 뚫기 때문이다.

“……앗.”

그때 나이프를 집는 프랑을 보고서 나는 클라라가 함구한 진짜 이유를 눈치 깠다.

‘키 때문이었군.’

신장이 작은 드워프는 긴 활을 못 쓴다. 팔다리도 키처럼 짧기 때문에.

단궁(檀弓)이라면 쓸 수 있겠지만, 짧은 활으로는 완력을 살리기 힘들 것이었다.

‘이세계에서 석궁은 잘 안 보이고.’

작은 체형인 드워프들도 석궁이라면 쓰기 쉽겠지만, 이세계에서 석궁은 활에 밀려서 사장된 상태다. 사람 힘으로 쏘는 화살이 더 쎄거든. 연사력이요? 야수회귀 킨 저랑 스피드 대결 해 보싈?

이세계인들에게 석궁이란 이런 무기가 개발됐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메리트가 없는 무기였다.

“자자!! 여기 과녁을 둘 테니까 던져도 보세요!!”

─덜그럭.

클라라는 벽에다가 다트 과녁판 같은 것을 붙여놨다. 프랑은 그곳에 투척 나이프를 살짝 던졌다.

정통으로 박혔다.

벽에.

“……케흑.”

“죄, 죄송해요!!”

자기 가게에 흠집이 생기자 클라라는 자기가 나이프에 맞은 것처럼 목 졸린 소리를 냈다. 프랑이 당황하면서 고개를 마구 숙였지만 프로 무기상인은 억지웃음을 꾸며내며 참았다.

“아, 아녜요~! 제가 던져 보시라고 한 걸요~!!”

“이, 이번에는 잘 던질게요!!”

결연하게 외친 프랑이 나이프를 들자 클라라의 얼굴이 밟힌 개구리처럼 변했다.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나한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자친구 분!!! 말려주세욧!!!

─넹.

나는 그 바람에 호응하여 프랑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그리고 프랑의 손을 부드럽게 펼쳐서 나이프를 건네받았다.

나이프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부엌가위보다 조금 더 무거운 느낌이다.

“노르? 왜 그래?”

“아니, 내가 시범을 보여 주려고. 다트나 공을 던질 때는 이렇게 하는 거야.”

예전부터 나 강북호는 투척의 프로였다.

고등학생 때는 왠 미친놈이 교실에 갖고 온 다트로 매점 내기를 했었고, 군대 시절에는 미친 소대장에게 끌려가서 사내놈들끼리 캐치볼을 하며 놀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야말로 좆 같음의 극한이었지만 소대장 놈에게 전수받은 ‘공 잘 던지는 법’은 아직도 쉽게 떠올랐다.

“힘을 줄 때는 팔이 아니라 허리를 비틀어서 하체의 힘을 실는 거야. 원하는 곳에 맞출 때는 손을 놓는 타이밍이랑 손목의 스냅이 중요하고.”

원리를 설명하면서 자세를 취했다.

근데 시발 이렇게 폼 잡고 못 맞추면 개쪽인데. 나는 마나를 은근슬쩍 끌어올려서 집중력을 갈고닦았다. 오감이 크게 예민해지고 손끝까지 감각이 살아났다.

준비하시고── 쏘세요!

휘익─ 퍽!!

“와아!!”

“훌륭하시네요!!”

─짝짝짝!!

프랑이랑 클라라가 놀라면서 박수를 쳤다. 내가 던진 나이프는 과녁의 정중앙에 정확하게 꽂힌 것이었다.

시발거 반쯤 뽀록샷이긴 한데, 아무튼 맞췄으니까 됐다. 나는 우쭐해지려는 코를 손으로 슥 훑어서 달래고 말했다.

“자, 이제 대충 알겠어?”

“응! 해 볼게!”

의욕적으로 나이프를 드는 프랑. 클라라가 손에 땀을 쥐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고, 10초 쯤 뒤에 은색 나이프가 프랑의 손을 떠났다.

휘익─ 퍽!

나이프는 과녁의 끄트머리에 꽂혔다. 어쨌든 명중이기는 했으니까 박수를 치려고 손을 들었는데, 프랑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도전을 계속했다.

휘익── 퍽!!

소총의 영점을 맞추는 것처럼 점점 과녁 정중앙에 가까워지는 투척 나이프였다. 나는 그 모습에 감탄했다.

프랑의 자세는 까놓고 말해서 꽤 엉망진창이었다. 던지는 자세는 매회 제각각이고 허리의 힘은 들어갈랑 말랑 하는 것이 아마추어인 내 눈에도 보였다.

그런 부족함을 프랑은 손재주 하나로 커버했다.

던지는 자세가 엉망이어도 손을 놓는 타이밍이 맞으니 조준은 빗나가지 않았다. 매번 투척할 때마다 감각적으로 손을 놓는 타이밍이나 스냅을 조정해서 ‘어떤 자세에서도’ 투척을 성공시키는 것이었다.

‘존나 저게 올바른 자세로 던지는 것보다 어렵겠는데?’

저 기술이 경지에 오르면 막말로 침대에 엎드려서 손만 대충 움직여도 과녁에 전부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이게 그 재능의 차이인가 뭔가 하는 그거구마잉. 인간족 진짜루 병신이네 시발.

─퍽퍽퍽퍽!!

완전히 요령을 깨달았는지 프랑이 연속해서 던진 나이프가 모조리 과녁 중앙부분에 박혔다. 3cm 정도밖에 위치 차이가 없었다.

“노르! 나 이제 감 잡았어!”

“청출어람이군. ‘하산’해도 좋다.”

─짝짝짝짝!

나는 감격의 박수를 쳤다. 우리 프랑이 의외의 곳에서 자기 재능을 찾은 느낌이었다.

“청추러람?”

“그런 게 있어. 대충 스승을 뛰어넘었다는 뜻이지.”

고사성어나 속담 같은 것은 번역이 잘 안 된다. 파파고도 완전히 만능은 아닌 것이었다. 나는 과녁과 거기 꽂힌 나이프를 회수했다.

“이거 말고 다른 무기도 하나 골라둬. 가까이 온 적한테 쓸 무기도 있어야지.”

“잠깐만? 고민 좀 해 보고.”

프랑은 클라라와 상담하다가 적당한 길이의 망치를 샀다. 저번에 쓰던 것과 비슷한 송곳망치다. 익숙한 무기를 고른 것이었다.

그렇게 망치 하나랑 나이프 30개를 샀다. 프랑이 판초 안 주머니에 전용 케이스랑 같이 잘 보관했다.

“투척 나이프는 5개에 1쿠퍼고, 망치는 7쿠퍼에요. 나이프 케이스 3개까지, 다 해서 16쿠퍼네요.”

“예? 7쿠퍼요?”

값을 지불하려던 나는 깜짝 놀랐다. 지갑에서 쿠퍼 동전이 하나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이, 이 이상은 못 깎아드려요!!”

내 말에 클라라는 움찔하더니 빽 외쳤다. 돈에 쪼들리기 때문이겠지만 내가 놀란 것은 가격이 너무 싸서였다.

“제 바지가 65쿠퍼였잖습니까? 근데 무기로 쓰는 망치가 고작 7쿠퍼라구요?”

“그건 몬스터 가죽으로 만든 거라서…….”

이런 쓰벌. 그렇군.

비교해 보니까 내 바지가 소재도 더 비싸고 양도 많이 들 듯 했다. 투척 나이프는 약간 메스 같은 형태라서 만들기도 쉬워 보이고, 망치는 일상용품을 전투용으로 더 튼튼하게 만든 물건이다.

‘프랑이 망치를 쓰던 이유가 있었네.’

단돈 7만원. 준내 싸다.

아니, 내 바지가 드럽게 비싼 건가. 프랑이 쓰는 망치랑 나이프를 전부 뭉쳐도 10kg도 안 나올 테니까. 이세계는 철의 가격이 싸기도 하고.

“네, 뭐. 그 정도 가격이면 만족스럽네요. 여기요.”

1쿠퍼 동전을 줍고 18쿠퍼를 더해서 돈을 지불했다. 클라라는 두 손으로 공손히 받더니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그럴게요.”

투척 나이프 때문에라도 자주 오게 될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무기를 사고 이번에는 시계를 보러 갔다. 시계점은 어젯밤에도 왔던 고급진 부유층 거리에 있었다.

“모험가 분들을 위한 상품은 이쪽입니다.”

딱 봐도 시계공처럼 생긴 단안경 낀 노인은 모험가들이 사 간다는 투박한 시계를 권했다.

“시계를 작동시키실 때는 동봉된 태엽을 끼우고 돌리시면 됩니다. 1바퀴 당 하루는 시계가 움직이지만 10번 이상 돌리셔도 헛돌기만 하니 주의하십시오.”

처음 알았는데, 이세계 회중시계도 태엽으로 움직이는 모양이다. 이 태엽기술 자체는 골렘 때문에 발전한 거라고 듣긴 했지만 말이다.

“물에 빠지거나 멈추었을 때는 각 도시의 시계 길드에서 요금을 내고 수리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 시계는 모험가 분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거라 고장나는 경우는 드물지만요.”

“가격은 얼마죠?”

“하나에 40쿠퍼가 되겠습니다.”

애1미. 뒤지게 비싸네.

나는 혀를 차면서 가격을 지불했다. 도적단을 퇴치해서 큰 수입이 생겨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래도 브론즈 클래스가 되면 수입도 늘어나니까 커버칠 수 있을 것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