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5화 (75/1,009)

‘이세계 학문의 가치란 돈이 되는가와 귀족들에게 이득이 되는가로 정해지니까.’

그건 중세시대 지구도 그랬겠지만 말이다.

지구의 예전 고고학자들이 각국 역사를 자기들 좋을대로 왜곡해서 기록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다그닥다그닥.

우리는 농장주가 말해준 정문 쪽으로 빠져나왔다. 내가 말을 타는 법을 몰랐기에 고삐는 프랑이 잡았다. 꼴마초 노르드 놈은 그 여친님의 허리에 손을 꼭 감았고 말이다.

“히히히힝!!! (씐난다!!!)”

사람을 태우고 달릴 생각에 하말이 흥분했다. 나도 이 놈의 텐션에 이끌려서 따라 외쳤다.

“오늘부터 네 이름은 따릉이야!!”

신바람이 나서 프랑이 잡은 고삐를 붙들고 내리쳤다.

─찰싹!!

“이럇!!”

“히흥헤 히헤이잉. (아프니까 말로 해라.)”

새끼가 정색을 빠네.

아무튼 얘네랑 말이 통해서 잘 됐다. 요놈도 꽤 빠르다고 하니까 마을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가는 것은 프랑도 마찬가지인지, 부츠를 신은 귀여운 발이 말 허리를 발로 가볍게 찼다.

“따릉아, 가자.”

“히히히히헹!!! (녜!!!)”

달리라는 지시를 받은 따릉이는 기쁨에 날뛰며 풀액셀을 밟았다. 오, 이 새끼 생각보다 빠르…… 빠르…….

─다그닥다그닥다그닥다그닥다그닥다그닥다그닥!!!!!!!!

씨이이이발 왤케 빨라아앗!!!!!!!

“히흥!!!! 히헹헤헤헹히읭!!!! (야!!!! 좀 천천히 가!!!!)”

“하읏?! 노, 노르! 귀에다 대고 소리치지 말아줘!”

“히히히───힝!!!!!! (씐난다!!!!!!)”

씹새가 말을 좆등으로도 안 듣는다!!!

이건 시발 도를 넘은 가속도였다!!! 어릴 적에 같이 탄 삼촌 오토방구도 이 지랄은 아니었는데!!!

비포장도로에 4족보행 생물이라 그런지 달릴 때마다 서스펜스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프랑의 몸을 붙들고 비명을 내질렀다!!!!!

“이 시발말부랄 새꺄!!!!! 천천히 가라고오옥!!!!!!!!”

“히힝히히흥힁이이잉헹!!!! 히힝히히히헤헹헤에에에에엥!!!!! (내가 이 사람을 빠르게 만들었닷!!!! 나는 사람의 속도를 지배할 수 있닷!!!!!)”

그렇게 우리는 마굿간에서 해방된 따릉이의 폭주특급열차에 실려 페르포트 마을로 텔레포트했다.

도보로 한나절 정도 걸린다더니만, 도착하니 해가 중천에 뜨기도 전이었다.

“히─ 히히히힝!!!”

어떤 의미도 없는 울음소리와 함께 따릉이는 포르포트 마을 앞에 정차했다.

중간부터는 조금 적응해서 여유를 되찾았지만 처음 1시간은 진짜 뒤지는 줄 알았다. 떨어져서 발굽에 밟혀 터지기 전에 야수회귀 켜고 프랑이랑 뛰어낼까 고민했다. 야발련…….

‘그래도 확실히 존나 빠르긴 빠르구만.’

내리면 몇 대 두들겨 패줄려고 했는데 빨리 달려준 것이 좀 고마워서 관뒀다. 때렸다가 뒤지면 말고기 700kg을 돈 주고 강제로 사야 해서 참은 건 아니고.

하말에서 내려서 마을로 들어갔다.

페르포트 마을은 평범한 시골 마을 느낌이었다.

“이, 이보셔들. 혹시 모험가신가?”

지나가던 아지매가 우리를 붙들고 물었다. 펑퍼짐하고 딱 벌어진 어깨가 농삿일과 남편 착취에 특화한 형태로 보였다. 암흑진화 여고생 같은 건가.

“예. 저희가 모험가이긴 한데요. 왜 그러시죠?”

“왜 그러긴! 여기까지 하말을 타고 오신 거 아녀?”

도끼눈이 되서 꿍얼대는 아지매. 나는 저 인간이 왜 저렇게 지랄을 하나 했는데, 엘리트 석사 브레인은 빠르게 정답을 계측해냈다.

“하말을 빌려 타고 오느라 오래 걸렸나 보다, 뭐 그렇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맞잖수!”

나는 다시 따릉이에 올라타서 로데오를 췄다.

“히히히힝!!!!!! (씐난다!!!!!!)”

“오매 씨부럴 깜짝이야!!!”

하말이 사람을 태우고 춤추는 꼴을 처음 봤는지 아지매는 허리가 풀려서 주저앉았다.

“보시다시피 얘가 독특한 애라서 빨리 온 겁니다.”

따릉이의 등에서 내린 나는 진창에 굴러서 푹 젖은 아지매를 존나 한심해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지매는 어디 잘못 부딪혔는지 허리를 붙잡고 헤엑거리고 있다. 자업자득이니 동정심은 하나도 안 드는군.

“고블린 퇴치 의뢰가 뒤로 밀린 건 의뢰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오늘 받아서 당일에 도착한 거고요.”

니들이 10쿠퍼만 더 올렸어도 오려는 놈들이 많았을 거다,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돈만 받고 떠나면 되는 마을에서 머리 굳은 새끼들이랑 드잡이질 하기에는 내 시간이 아깝다.

“프랑, 가자.”

나는 프랑과 따릉이를 데리고 마굿간 딸린 여관을 찾았다. 보고만 있어도 정겨운 시골 마을이지만 아늑한 인상은 쥐좆 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시골은 폐쇄사회라서 강력범죄가 일어나기 쉽다.

위대한 명탐정 셜록 홈즈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으니까.

마을에 마굿간 딸린 여관은 딱 1개 있었다.

“어서옵쇼!”

주인이라는 새끼는 대낮부터 술을 쳐마시다가 우리가 들어가자 카운터 밖으로 기어나왔다.

인상이 험악한 것이 딱 사람 담그는 게 취미로 보이는 새끼였다. 번들번들한 눈알로 우리를 지그시 쳐다보는 꼴이 몹시도 좆 같다.

그래도 얼굴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다.

예르나 그 호로잡년이 나쁜 예이고, 도르카가 좋은 예다. 사람의 얼굴은 타고 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로 인성까지 가늠하는 것은 무례한 짓이었다.

“1박 묵을까 하는데요. 얼마입니까?”

“헤헤. 하루에 5쿠퍼외다.”

정정. 이 씹새끼는 호로새끼가 맞다.

“5쿠퍼는 조금 많이 비싼데요.”

내가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말했다. 허름해서 묵기도 싫은 곳인데 여기밖에 없어서 온 여관이 1박 5쿠퍼?

도르카가 땅을 치면서 서러워하겠다. 나도 시골에 여관을 차릴 걸─ 하고 말이다.

‘시발련이 바가지를 씌워?’

이런 시골에 허름한 건물 1채만 세워놓고 인생을 날로 먹으려고 들다니! 친구 놈들이랑 놀러갔던 부산의 양심 터진 민박집 주인이 떠올라서 굉장히 빡이 쳤다.

“아, 뭐. 싫으시면 1쿠퍼 쯤 깎아드려도 되고. 그런데 어디 여기 말고 다른 여관이 있으려나 모르겠구만.”

귀를 파며 딴청을 부리길래 나는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3쿠퍼. 그 이상은 차라리 마을 밖에서 야영을 하겠소.”

말투를 하오체로 바꿨다. 최후통첩이다. 그러자 움찔한 씹새는 선심 쓴다는 듯이 지껄였다.

“흠. 그렇게 하지 뭐. 달리 손님도 없었고.”

“식사는 필요 없소. 멋대로 준비해 놓고 돈을 요구하거나 하지 마시오.”

“알았수다.”

프랑과 나는 그렇게 방 키를 받아서 짐을 풀었다.

주인장 놈한테는 따릉이를 맡겼다. 따릉이는 아직 달리고 싶어하길래 나중에 또 달리게 해주겠다고 말해서 달랬다.

‘저 여관 주인 새끼는 다음에 가면 쓰고 줘패버려야지.’

타뷸라의 인상 미채 가면.

씨발거 그게 다 이런 곳에 쓸려고 쟁여둔 물건 아니던가? 이게 바로 자원의 유효활용이다. 그야말로 리사이클링 마스터 노르드.

나는 복수의 밤을 꿈꾸면서 프랑이랑 촌장댁으로 갔다.

“오오! 드디어 와 주셨군!”

촌장은 까무잡잡하게 탄 노인네였다. 우리는 집으로 초대받아서 적당히 잡담을 나누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고블린의 흔적을 쫓아서 퇴치하겠습니다. 증거부위는 어디로 가져올까요?”

증거부위란 몬스터 퇴치의 증거로 삼는 물건이다.

고블린이면 이빨이나 귀처럼 의뢰자가 정한 부위를 가져와 퇴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일부 모험가들이 예전에 잡아놓은 몬스터 부위를 가져와서 구라를 까고 보수만 낼름 쳐먹어대서 생겼다고 한다.

정보의 출처는 브람마톤 교수님의 이하 생략.

“고블린 놈들의 귀로 부탁하오. 2개 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나는 노트에 ‘고블린 귀 2개’라고 적어두었다.

“알겠습니다. 참고로 추격에 필요해서 묻는 겁니다만, 그 고블린들이 정확하게 어떤 피해를 내고 있습니까?”

“수확한 곡식을 털어가고 있소.”

촌장은 분개한 얼굴로 주먹을 부들거렸다.

“우리가 1년 내내 고생해서 모은 곡식을 창고에 넣었더니 그걸 밤새 몰래 가져가는 거요! 이걸 용서할 수 있겠소?!”

“아니오. 절대 용서 못할 일이죠.”

나는 촌장의 분노에 호응해주었다. 여기서도 잼민이 새끼들은 제 멋대로 설치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남들이 쌓은 노력의 성과를 날름 쳐먹다니.’

잼민이들 주제에 하는 짓은 교수와 다름이 없다.

아니, 저러한 행태는 이미 교수 그 자체다!

고블린들은 잼민이이자 동시에 교수인 것이다!

진짜 교수들은 그나마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지식이라도 가지고 있거늘, 저 놈들은 그저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교수의 단점만을 본받은 사악한 생명체였다!!!

─죽여, 마스터.

내 안에서 오랜만에 깨어난 교수 슬레이어가 속삭였다. 난 그의 유혹에 저항하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한 유혹이 아니라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계도(啓導)였으니까.

‘그래, 참지 마. 내 안의 교수 슬레이어.’

나는 스위트룸에서 분개하는 교수 슬레이어를 달랬다.

─이 마을에는 쓰레기가 많아.

알아. 이미 마을 초입부터 느꼈어. 내가 이 마을에서 아무 일도 없이 나갈 것 같지는 않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네가 이 마을에 바라는 폭력적인 복수극.

내가 보여주겠다.

“더 이상 질문드릴 것도 없으니 이만 출발하겠습니다.”

교수 슬레이어와의 뇌내회담을 마친 나는 촌장에게 인사를 하면서 일어났다.

“걱정 마십시오. 오늘내일로 전부 끝날 겁니다.”

이세계 그린 잼민이는 전천후에 존재한다.

늪지에도 사막에도, 하다 못해 정글이나 설원에도 산다.

고블린이란 설마 여기에도? 하고 의심쩍은 곳을 찾아보면 지역이나 풍토와 상관 없이 둥지가 보이는 해충인 것이다.

“그래도 선호하는 둥지의 특성은 거의 비슷하대.”

프랑이랑 산을 오르면서 내가 설명했다.

랜턴을 포함해서 가방에 짐을 챙겨온 우리는─여관 주인을 못 믿어서 여관엔 캠핑 키트만 두고 왔다─ 고블린이 숨어있을 법한 숲에 탐색을 하러 나왔다.

작은 보폭을 가벼운 몸놀림으로 커버하던 프랑이 물었다.

“어떤 곳을 좋아하는데?”

“천장이 막혀 있고 먹이를 구하기 쉬운 곳. 얘네들한테는 소굴을 숨긴다는 의식이 별로 없대.”

나는 브람마톤 교수님의 저서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동물들한테 물어보면 금방 찾을 거야. 오, 마침 저기 다람쥐 있네.”

떨어진 도토리를 볼에 욱여넣는 다람쥐가 보였다. 가을은 야생동물들한테도 존나 바쁜 시즌인가 보다.

─사삭!

먹이를 열심히 모으던 다람쥐도 우리를 발견했다. 나는 놀라서 튀려고 하는 다람쥐에게 외쳤다.

“찌이찍!! (잠깐!!)”

“쯱? (으엥?)”

도망가려던 다람쥐는 큰 소리로 들려오는 동족의 말에 나를 돌아보았다. 쟤네 동족들은 이렇게 큰 소리를 못 낼 테니까 놀라울 만 했다.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참았다. 동물들은 웃음=전투신호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는 저 녀석이 무서워하지 않게 다람쥐 어로 말했다.

그렇게 합의를 보았다. 고블린들을 찾아주면 호두 1알을 그대로 주겠다고 말이다.

“찌이찍쮸쮸 찌읙 찌즤찌!! (나 알아! 녹색 괴물!!)”

녹색 괴물이라고 하지 마. 헐크 같은 게 나올 것 같잖아.

그래도 운 좋게 한 번에 당첨을 뽑은 모양이었다. 일이 잘 풀리니까 기분이 좋았다. 아니면 그 잼민이 새끼들이 대놓고 돌아다녀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한텐 개이득이다. 나는 프랑에게 말했다.

“얘가 어디인지 안대. 호두로 거래했으니까 우리는 얘를 따라가기만 하면── 왜 그래?”

프랑이 얼굴이 발그레해졌길래 그리 물었다. 뭔가 이상하기라도 했던가?

“아, 아냐. 그냥 노르가 찍찍 우는 게 귀여워서…….”

“찍찍?”

키 180 넘는 남자가 다람쥐 흉내를 내는 게 귀여웠다고?

프랑이 감수성은 굉장히 특이했다. 나는 프랑이 질색할까봐 일부러 밤에 몰래 나가서 고양이들이랑 냥냥 거리다 왔는데, 설마 내가 동물을 흉내내는 모습을 귀여워 할 줄이야.

‘입장이 반대라면 이해가 가려나.’

나는 프랑이 냥냥멍멍 울어대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쓰벌 꼴리네.’

아, 아니, 귀엽다. 귀여운 거다. 쥬지콘다가 간만에 짹짹할 거냐고 꿈틀거리는 것을 딱밤을 놔서 캠 다운 시켰다. 그런 건 오늘 일 다 끝나고 하자고.

“찍쯰이익 찍쮸!! (빨리 와!!)”

그때 호두에 넘어간 다람쥐가 발밑에서 우리를 재촉했다.

“프랑, 얘가 얼른 가자네. 물리기 전에 이만 가자.”

“푸흐흐. 보채는 거야? 알았어, 서두를게.”

우리는 볼이 빵빵한 다람쥐의 안내를 따라서 이동했다.

참고로 이렇게 쓸모가 많은 번역능력이지만 몬스터들이랑 친해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학 시절에 몇 번 시험해 봤는데, 몬스터들은 죄다 분노 바이러스에 걸린지 29일 된 치와와 같은 새끼들 뿐이었던 것이다.

─안녕? 난 노르드라고 해. 넌 이름이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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