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화 (77/1,009)

“<얼어붙는 손길(Freezing Hand)>!!”

─쩌저적!!

수족냉증 한시적 해방!! 술식 결합으로 발동한 <얼어붙는 손길>이 가을철 날씨보다 차가운 냉기로 고블린들의 머리를 깨부쉈다!!

─쩌적!!

머리를 깨부수자 쏟아진 피가 냉기에 식어서 차가워졌다. 곧바로 얼 정도는 아닌가. 그래도 충분한 위력이다.

“크캬아아아악!! (위험해애애애액!!)”

“크캭──!! (위험해──!!)”

남은 잼민이들은 기습을 당했다는 것을 눈치깠지만 이미 늦었다. 승패는 진작에 기울었기 때문이다.

“미안하군. 레벨이 너무 달랐다.”

─터덥!!

영하의 냉기를 품은 손길이 고블린의 머리를 붙잡았다.

남은 2마리는 내게 아이언 클로── 아니, 아이스 클로를 당해서 눈코입이 틀어막혔다.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얼굴 전체에 얼음이 뒤덥혀서 질식사한 것이었다.

“고요히 울거라.”

10마리를 넘었던 고블린은 기습의 묘리를 살린 우리들의 총공격에 전멸했다. 나는 <얼어붙는 손길>을 해제했다.

“엄청 순식간이었네!”

깡총거리며 뛰어온 프랑이 웃으며 말했다.

보기만 해도 나까지 기뻐지는 미소였지만 나는 시체들을 확인하고서 고개를 저었다.

“정작 상위종은 밖으로 안 나왔어.”

“안에서 기다리는 걸까? 부하들만 정찰을 보냈나?”

“그렇겠지. 하는 짓이 꼭 대학원생을 부려먹는 교수──”

말하던 나는 흠칫 놀랐다. 내가 신전 안에 보내둔 <구름 소환 마법>이 강제로 해제됐기 때문이었다.

‘내 마법을 무효화했다고?’

인상을 쓴 나는 훤히 들여다보이는 신전에 고개를 돌렸다.

“……프랑. 안에 있는 놈이 주술사인가 보다.”

──고블린 주술사.

아니, 정확하게는 홉 고블린 주술사인가.

“하지만 실력은 별 것 없어.”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위 마법인 <구름 소환>을 해제하는 것에 한참 걸렸으니까. 티르시보다는 100% 약할 것이었다.

내 말을 들은 프랑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도 노르. 방심은 금물이야.”

“응. 걱정해 줘서 고마워. 조심할게.”

그렇게 나와 프랑은 긴장을 다잡고 신전으로 들어갔다.

저 새끼를 조지지 못하면 의뢰는 해결이 안 된다. 이길 자신은 충분히 있었기에 두렵거나 하지는 않았다. 고블린이 무슨 5성급 베테랑 마법사라도 되겠냐.

녹슨 경첩을 열고 신전의 가장 큰 방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여기는 신께 기도드리기 위해 만들었을 공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성스러운 공간은 어느 잔인한 몬스터에 의해서 야만스럽고 끔찍한 의식의 터로 바뀌었다.

동물의 피로 그린 그림이 바닥에 잔뜩 그려져 있었고, 그 중앙에서 빼빼마른 홉 고블린이 뭔가를 칼로 찔러댔다.

“Wqaaz UThu Aight!! (건방진 인간 놈들!!)”

홉 고블린은 찔러대던 고기를 입에 욱여넣으며 말했다.

그 새끼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맛깔나게 쳐먹던 것은 뱀 고기였다. 마법진 구석에 대가리가 수북한 것이 대충 봐도 10마리는 넘었다.

“AAs IThu ZepoR Daags? (감히 내 집을 더럽혀?)”

그렇게 지껄이며 우리를 노려보는 홉 고블린의 피부는 사람 살색이랑 똑같았다.

살색이라고 하면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있을 듯 하니까, 정확하게는 아이보리 톤의 옅은 색이었다.

“개소리 자제해. 주거침입 당하기 싫었으면 도둑질을 하지 말았어야지.

나는 저 놈의 말을 들어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홉 고블린의 문화에 관한 연구는 구닥다리 수준으로 격하된 지가 오래였다.

고블린 주술사 새끼들은 변형된 룬 문자를 다루는 독자적인 마법을 쓴다. 대단할 것도 없고, 바닥에 그린 그림이나 동물 뼈로 만든 장식물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다 미신일 뿐.

마법사가 상대니까 검을 뽑았다. 익숙한 검의 느낌에 나의 마음 속에서 교수 슬레이어가 으르렁댔다.

저 새끼는 마법 좀 쓸 줄 안답시고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고는 혼자서 밥이나 께작이던 씹새였다. 거기다 어디 저 뱀들도 저 새끼가 직접 사냥했는가? 다 지가 먹고 싶다고 부하를 시켰겠지.

어쩌면 저들 중에는 카부토마루의 친구나 가족이 있을지도 몰랐다.

남을 착취하는 고블린들을 자신이 착취함으로써 형성된 착취의 피라미드!! 저 홉 고블린 주술사 새끼는 그곳의 정점에 군림하는 교수였다!!!

“쮸이 찍찍쯔찍. (닌 뒤졌어.)”

분노에 찬 다람쥐 어가 새어나왔다. 격렬한 분노는 하얀 색의 불꽃이 되어서 나의 가슴 속 증오를 거세게 불태웠다!!

“──네놈은 ‘교수’형이다.”

타타탓─!!

나는 신전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니 새끼의 대가리를 카부토마루에게 바치겠다!!! 달려드는 내 신속한 대쉬에 홉 고블린이 지팡이를 들며 외쳤다.

“ᚺ(Hagalaz)!!!”

놈이 소리치자 목덜미가 섬칫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한인가? 아니다. 이것은 내 영감(靈感)이 마나의 흐름을 감지한 것이었다.

‘──천장!!’

신전 천장에 모여드는 마나를 느끼고 나는 옆으로 뛰었다. 그러자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벼락이 내려꽂혔다.

─콰강!

치이이이….

생각보다 강력한 마법이었다. 바닥에 남은 그을음을 보면 야수회귀 모드인 내가 맞아도 꽤나 아플 것이었다.

‘ᚼ(Hagall)의 룬?’

놈이 외친 주문을 떠올리며 천장을 보았다.

내가 아는 룬 문자 중에 하나, ‘예측하지 못하는 시련’이란 뜻을 가진 룬의 변형이었다. 저 새끼의 마나는 천장에 그려진 번개와 구름의 그림에서부터 느껴졌다.

‘이 신전의 기도실을 개조했군.’

바닥의 마법진 같은 낙서는 의미가 없지만 천장의 그림은 룬 마법을 보조하는 수단이었다.

“흥.”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딱히 위협적이진 않네.’

그게 이유였다.

마법사 길드에서 룬 어를 기반으로 마법을 개발하면서도 순수한 룬 마법은 사용하지 않는 이유 말이다.

순수한 룬 마법은 의미가 포괄적이고 용도가 광범위해서 다루기가 어렵다. 고대문명 멸망 후에도 남아 있는 마법들은 대부분이 서포트 용도이고 말이다.

이세계 그린 잼민이들 상대로는 저런 걸로도 신처럼 굴 수 있었던 모양이지만── 나한테는 어린애 장난으로 보일 따름이다.

딱 하나, 저런 병신 새끼가 쓰는 것 치고는 마법의 위력이 약간 높다는 것이 의외였다.

강력한 마법의 정체를 눈치깐 나는 홉 고블린에게 물었다.

“Uqi. Tol Stafp CosaKu? (너. 그 지팡이 어디서 났냐?)”

“──Xua? (뭐?)”

내 물음에 홉 고블린이 크게 놀랐다. 지팡이를 겨누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당황한 듯 했다.

“하여간 씨발럼들이 지들 말로 물어봐 줘도 놀라요!!!”

나는 빈틈을 발견하자마자 대쉬했다!

“말한다고 놀랄 거면 니들 말로 말은 왜 걸고 지랄이야!!”

“──ᚺ(Hagalaz)!!!”

─쾅!! 콰과쾅!!

당황한 놈이 마법을 마구 갈겨댔지만, 천장에서 바닥으로 직선으로 내려치는 게 고작이다. 피하는 건 좆도 아니었다.

게임 패턴이랑 똑같다. 천장의 마나를 느끼고 그 아래에만 안 있으면 된다!!

“야, 이만큼 실패했으면 성공할 때 됐다! 더 쏴 봐!!”

“Haga── GyaaaaaaacccCC!!”

성질을 부리며 지팡이를 휘두르던 홉 고블린의 눈알에 투척 나이프가 날아들어 박혔다. 프랑이 던진 나이프였다.

“하아니 이게 왜 안 되지!! 어?! 이 에임 고자 새끼야!!”

“ᚺ(Hagalaz)──!!!”

“눈 뜨고 쏴도 빗나가는데 눈 감고 쏘는 게 맞겠냐고!!!!”

─슈슉!

빗나간 번개가 죄 없는 바닥만 지져댔다. 그러는 동안에도 프랑이 기도실 밖에서 투척 나이프를 마구 던져댔다.

─푹푹푹!

“프랑!! 죽이지는 마!!”

“응!!”

“Gyaaaaaaaaaaccc!!!!!!!”

팔에 마구 날아들어 박히는 투척 나이프.

홉 고블린 주술사는 지랄을 떨어댔지만 프랑에게 번개를 쏘지는 않았다. 이 병신 새끼, 천장이랑 이어진 기도실에밖에 번개를 못 쏘는 것이었다!!

─뻐억!!

달려든 내가 비쩍 마른 주술사의 배를 걷어찼다. 힘 조절이 잘 됐는지 홉 고블린은 지팡이를 놓치고 벽에 부딪혔다.

─쾅!!

“D'oh!!”

주술사는 머리를 세게 박고 뒤로 넘어졌다.

나는 그 새끼의 명치를 밟아서 제압하고 목덜미에 칼을 들이밀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번뜩거리자 홉 고블린이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생각했던 그대로의 병신이었다. 칼날을 밀어서 목 가죽을 살짝 저미면서 내가 물었다.

“말해 봐 새꺄. 저 지팡이 어디서 주웠어.”

내가 친절하게 말로 해결할 기회를 줬는데도 홉 고블린은 질문을 못 알아듣고 소리를 쳤다.

“b, Bapex!! (뭐, 뭐라는 거냐!!)”

“하아. 우리 친구 왤케 눈치가 없니? 응?”

내가 아까 자기네 말로 물어봐 줬는데 벌써 까먹었나?

이 새끼 이거 순 똘추 아니냐? 척 하면 척 하고 알아들어주면 어디 덧나나. 말 여러 번 하게 만드네. 나는 성질을 내며 물었다.

“Stafp CosaKuto. (지팡이 어디서 났냐고.)”

“……Fodro Pnua? (말하면 살려줄 거냐?)”

홉 고블린은 이번에도 대답을 않고 그딴 개소리를 했다.

이 새끼는 자기가 아직 협상 테이블에 앉을 권리가 있는 줄 아는 건가?

“야. 니가 상황파악이 안 되나 본데.”

─서걱!!

“GyaaaaaaaaaaaAAAcC!!!”

목덜미 밑의 쇄골 뼈를 톱질하듯이 썰어주자 홉 고블린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명치를 제압당한 상태라서 빠져나오지는 못 했다. 우리의 힘 차이가 그만큼 강한 것이었다.

‘씹새가 목청은 왤케 커.’

나는 좆 같은 비명에 인상을 쓰려다가 참았다.

그리고 뒤에서 지켜보는 프랑에게 말했다.

“프랑? 내가 보니까 이 친구랑 다정다감한 의견 교류를 할 필요가 있을 듯 하네. 잠깐만 귀 막고 있어.”

여자 친구가 보는 앞에서 잔인한 짓은 피하고 싶었다. 싸우면서 벌이는 살육하고 제압한 놈을 고문하는 것은 얘기가 다르지 않겠는가.

맘 같아선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하고 싶었는데, 바깥에 혼자 있는 건 위험할 수 있으니까 관두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마. 이런 거로 충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프랑은 걱정 말라는 듯이 말했다.

듣고 보니 그 말대로였다. 어쩌면 나보다 이세계인인 프랑이 나보다 더 이런 폭력적인 일에 내성이 높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모험가 일을 하다보면 이런 일도 자주 생길 텐데, 그럴 때마다 걸핏하면 귀 막고 있기도 우습잖아.”

“끙. 확실히 그렇네.”

나는 프랑의 말을 긍정했다. 평소에도 꼴마초 꼴마초 거렸더니 진짜로 생각하는 방식이 마초이즘에 물들어 버렸던 걸지도 모르겠다.

여성을 무조건 보호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저열한 남성우월주의자의 발상이었다.

우리 프랑은 저렇게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엄연히 모험가다. 그런 프랑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다는 내 마음은 그릇된 이기심이 발휘한 과보호인 것이었다.

“알겠어. 억지로 듣지만 마. 싫으면 안 봐도 되니까.”

“후후. 마음만 받을게.”

프랑의 허락이 떨어지자 내 의욕은 용기백배가 되었다.

그렇게 홉 고블린 새끼의 심문을 재개했다.

“Stafp CosaKu. Iol Weques C. (지팡이 어디서 났어. 이 질문만 3번째다.)”

─번뜩.

피에 젖은 칼날이 번뜩였다. 고통에 제 정신이 아니던 홉 고블린은 그 샤이닝 삐까삐까에 금방 착한 아이가 되어서 대답했다.

“Yope! IThues UThu Yope Ku!! (동굴! 내 부하들이 인간의 동굴에서 주워왔다!!)”

“UThu Yope? Cosa? (인간의 동굴? 어디?)”

홉 고블린은 피를 철철 흘리면서 위치를 설명했다.

그런데 시발 그건 고블린 새끼들 끼리만 말아쳐먹을 수 있는 잡스러운 표현이었다. 우리 같은 인간들과는 다른 이세계 잼민이들의 감성이다.

‘존나 모르겠소요.’

대충 이 신전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나오는 동굴이라는데, 이 새끼도 정확한 위치는 기억을 못 하는 모양이었다.

듣자 하니 동굴 위치를 지식이 아니라 감으로 기억한 것이었다. 이 새끼가 근처에 가면 어디로 가야할지 알겠지만 그것을 남에게 설명하는 요령이 없었다.

고블린이 그렇지 뭐. 시발 기대도 안 했다. 나는 피 묻은 검으로 고블린의 목덜미를 스윽 그었다.

“Stafp Xue Eeid? (지팡이는 무슨 효과지?)”

“Magee Uoc! IThu Krt! (마법 강화다! 내가 만들었다!)”

마법 강화라. 마법사들의 완드에 공통된 효과였다.

그런데 자기가 만들었다니, 이 새끼는 지팡이의 소재만 주웠던 건가. 어째 지팡이 꼬라지가 말린 말좆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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