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화 (78/1,009)

“AroD PThu Zepor Asiqe? (다른 고블린의 둥지는?)”

“n, Noll!! (어, 없다!!)”

“아, 그래.”

그럼 더 이상 이 새끼한테 용무는 없었다. 볼장 다 봤군.

나는 홉 고블린의 모가지를 동강냈다.

질문에 대답해 줬다고 이런 위험한 레이시스트 새끼를 살려주는 것은 에바였으니까.

“좋은 고블린은 죽은 고블린 뿐이지.”

피 묻은 칼을 닦았다. 손질이 귀찮아서라도 잡몹들을 상대할 때는 야수회귀의 마나 손톱을 애용하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그때 프랑이 신기한 것처럼 물었다.

“있지, 노르? 노르가 쓰는 마법은 고블린이랑도 말이 통하게 만들어주는 거야?”

어 시발 그러네.

생각 못한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전투에 집중하느라 다른 쪽에 신경을 못 썼던 것이다.

진짜 <동물 회화> 마법은 몬스터한테도 통하나? 만약 안 통하는 거면 이 소식을 들은 마법사들이 그 마법을 알려달라면서 몰려들 것 같은데.

몬스터 언어학자도 있으니까 통하지 않을까? 시발 통해야 하는데.

‘씨이이발.’

프랑한테라면 내 번역능력을 들켜도 된다. 그치만 다른 미치광이 매드 매지션 새끼들한테 들키는 건 위험할 듯 했다.

그리 생각한 나는 프랑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크흠. 프랑. 이것도 비밀로 해 줄래? 운이 나쁘면 엄청 큰일이 날지도 몰라.”

“이것도? 알았어. 조심할게.”

자칫하면 나만 위험해지는 걸로는 안 끝날 것이었다. 그런 내 말에 프랑은 의아해 하더니 재밌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우리 노르는 비밀이 많구나? 아니지, 이건 키타이의 마법이니까 ‘강 부코’의 비밀인가?”

내가 알려준 본명을 어색하게 발음하는 프랑.

그냥 노르라고 불러달라고 했기 때문에 계속 이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이런 타이밍에 본명을 꺼낼 줄이야. 나는 양심이 찔리고 미안해서 어깨를 늘어트렸다.

“미안하다. 프랑 너한테는 늘상 사과할 일 투성이네.”

“됐네~요.”

프랑은 뒷짐을 지고 돌아섰다. 처음 보는 몸짓이었다. 혹시 내가 자꾸 뭘 숨겨서 화났나? 삐진 건가?

“후후. 장난이야, 장난.”

걱정이 된 나는 오늘밤에라도 비밀을 전부 까발릴까 생각했는데, 빙글 돌아선 프랑이 웃으며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나는 동화책을 읽을 때도 다음 페이지가 남아있을 때가 제일 기대되는걸? 지금도 노르가 나한테 들려줄 이야기가 아직 남았다고 생각하니까 굉장히 즐거워.”

내 품에 안긴 프랑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스러워 하는 눈빛으로다가 쳐다봤다.

“그러니까── 노르가 말해주는 날까지 기다릴게.”

못난 이세계 꼴마초는 그 하해와 같은 배려심과 애정에 꼬르륵 침몰해 버리고 말았다. 으흑흑. 세상 사람들. 저희 프랑이 이렇게 천사표에요.

“고맙다. 나중에 꼭 말해줄게.”

나는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프랑을 강하게 껴안았다.

“대신 기절 안 하게 긴장해야 된다? 내 비밀은 진짜로 말도 안 되게 놀라운 거거든.”

“노르야말로 내가 하나도 안 놀라도 쓸쓸해 하지 마? 난 노르가 사람으로 변신한 들쥐 나라의 왕자님이어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어, 큰일 났네. 그렇게까지 신통방통한 비밀은 아닌데.”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긴장이 풀린 순간이었다.

─찌르르!

갑자기 홉 고블린의 시체로부터 마나의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재빨리 프랑을 품에서 놓아주고 시체에 검을 겨눴다.

프랑도 내 뜬금없는 반응에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투척 나이프와 망치로 무장했다. 누가 우리를 보고 브딱이 후보라고 생각하겠는가. 이 빠른 반응. 누가 봐도 베테랑 모험가였다.

─슈와아아아.

그때였다. 확실히 뒈졌을 홉 고블린의 시체로부터 마나가 피어올랐다!

시뻘건 마나가 나한테 날아든다!!

“쓰벌!! 인터내셔널-!!”

나는 닌자처럼 외치면서 프랑을 업고 회피에 들어갔다.

슈우우우─!!

하지만 저 마나가 훨씬 더 빨랐다. 시발! 이건 퀵실버도 못 피한다!!

나는 급하게 프랑을 품에서 놓고 검으로 반격을 시도했다.

부웅─!

그런데 마나는 내 검에 닿았는데도 연기처럼 검을 통과해 버렸다. 염병?! 공격마법 같은 게 아니라 저주인가!!

‘아니, 잠깐만.’

이거랑 비슷한 현상이 얼마 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파앗!

검을 통과한 시뻘갱이 마나가 가슴에 적중했다. 나는 존나 쫄면서 고통에 대비했지만 내 몸에서는 아무런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슈우우우…!

내 몸에 닿은 마나는 연기를 뿜는 드라이아이스를 역재생한 것처럼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런 것까지 저번 경우와 동일했다.

“노르? 홉 고블린이 뭔가 한 거야?”

나이프를 빼든 프랑이 물었다.

프랑은 내 몸에 흡수되는 마나를 전혀 보지 못한 것처럼 홉 고블린의 시체 쪽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나와 그것을 마나통에 양보하는 내 몸!

타뷸라를 조졌을 때랑 동일한 현상에 나는 데자뷰를 느끼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눈치를 깠다.

‘이건…… 마나 계승이잖아?’

절대 흔하지 않은 특수한 현상이 2번이나 연달아서 내 몸에 일어난 것이었다.

“이럴 수가! 반나절도 안 되서 퇴치를 해 온 것이오?!”

나랑 프랑이 고블린들 귀퉁이를 챙겨서 돌아가자 촌장이 경악을 하면서 물었다. 나는 찝찝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원체 숲에서의 추적을 잘 합니다. 만약 일처리가 지나치게 빨라서 믿으실 수 없는 거라면 둥지의 위치도 알려드리죠.”

“그래 주시겠소? 아, 모험가 분들을 의심하는 건 아니오. 이 노구(老軀)는 자신의 눈을 믿소이다.”

촌장은 그리 말하고 피가 묻어나오는 고블린 귀퉁이를 가리켰다.

이세계에서는 모험가의 일처리를 확인하는 것도 촌장의 일이다. 촌장은 오랫 동안 이런 검사를 해 왔기에 우리가 가져온 귀가 방금 전에 잘라낸 싱싱한 귀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저희도 그런 오해는 하지 않으니 괜찮습니다. 그보다 여기에 지도는 있습니까?”

“가져오게 하겠소.”

가정부로 보이는 아줌마가 지도와 종이를 가져왔다. 나는 거기에 표시와 위치를 적었다.

“숲 속에 있는 신전이었습니다만, 짐작이 가십니까?”

“신전이라 하셨소? 허어.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마을 근처에 있던 신전이 있기는 하오만.”

“아마 거기가 맞겠죠. 그 신전에 고블린 놈들이 둥지를 텄더군요. 조치를 취하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

내가 종이에 설명을 다 적고 나서 말했다.

“물론 다른 몬스터들은 인간의 건축물을 둥지로 삼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고블린들은 마을과 가까우니만큼 그 신전을 자주 애용할 듯 하군요. 차후에 사람을 시켜서 제대로 폐쇄해 두시길 바랍니다.”

“조언 감사하오. 시체를 치우러 마을 청년들을 보내는 김에 부숴버릴까 하외다.”

“……뭐, 방식은 마을 분들께 맡기겠습니다.”

고고학자로서는 저 ISIS식 문제해결법을 말려야 하겠지만 그냥 넘어갔다.

그 신전은 진작에 버려진 폐허다. 고대문명 시대 이후로는 신이 천벌을 내리는 일도 없어졌으니 이 양반들이 재주껏 감당하든가 하라지.

지도를 가정부에게 치우게 한 촌장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여러분의 솜씨에 정말 감탄했소. 고용비가 전혀 아깝지 않구려.”

“칭찬 감사합니다. 의뢰 확인서에 홉 고블린 얘기를 포함해서 호평을 적어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군요.”

브딱이 후보 콤비가 홉 고블린까지 잡은 것이었다. 그것도 포함해서 부디 확인서에 적어 줬으면 좋겠다.

내 말에 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꼭 그렇게 하지. 헌데 왜 모험가 분께서는 표정이 그리 안 좋으신 거요? 무슨 문제라도 있소?”

그 말에 나는 입가를 쓰다듬었다. 내 표정이 안 좋은 이유는 아까 벌어졌던 의문의 마나 계승 현상 때문이었다.

그래도 내 딴에는 포커페이스랍시고 표정관리를 한 건데 좆도 의미 없었나 보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고블린들을 상대하다 보면 기분이 더러워지는 경험이 많아서 말이죠. 그래도 여러분들께 피해가 가지는 않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건 유감을 표하오. 그 고난을 견디며 모험가 생업을 이어가는 분들께는 평소에도 존경심이 샘솟는구려. 나도 어릴 적에는 여러분처럼 훌륭한 모험가가 되고 싶었었지.”

“영광입니다.”

시골 촌구석 유사 정치인다운 아부를 대충 회피해주고 우리는 촌장 저택을 나왔다. 의뢰 확인서는 그 자리에서 떼줬기 때문에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까악! 까악! (병신! 병신!)”

문제는 존나 라잇 나우로 해가 지고 있다는 거다.

따릉이의 발이 암만 빨라도 사르가디스 문이 닫히기 전에 도시로 돌아갈지는 못할 것이었다.

돌아갈 수 있어도 여기 마을에서 묵은 여관비를 쌩으로 날리는 셈이고 말이다.

“노르. 오늘은 묵고 가자.”

나랑 같은 생각을 했는지 프랑이 말했다. 프랑의 귀엽뽀짝한 손가락은 내 손에 깍지를 낀 상태였다.

“그래. 푹 쉬고 돌아가자. 벌레가 나올 듯한 여관이지만.”

“후후. 숲에서 자는 거랑 다를 것 없겠다.”

“비가 와도 안 젖는 게 다행이지 뭐.”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여관으로 돌아갔다. 존나 작은 마을이라서 얼마 걸리지도 않더라.

주인이라는 새끼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길래 그냥 방으로 올라가서 갑옷을 벗고 침대에 앉았다. 그래도 시발거 오늘은 큰 트러블은 없었구만.

‘아니지. 있기는 했나?’

평범한 고블린 퇴치 의뢰에서 이상한 지팡이를 든 홉 고블린 주술사를 만났으니 트러블이 있기는 했다.

홉 고블린도 브딱이 4명이면 조질 수 있는 놈이지만 이런 지팡이는 난이도를 높이는 변수가 맞았다.

내가 실력이 높아지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누워서 골골대고 있지 않았을까.

─반짝.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홉 고블린의 지팡이에서 떼온 검은 돌을 꺼냈다.

이것은 파워 스톤이라는 물건으로, 마법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진 돌멩이였다.

‘그런데 생긴 게 영 께름칙해.’

거칠고 딱딱한 검은색 돌.

그야말로 굼벵이랑 구더기한테 후장이나 따이는 새끼들이 좋아할 법한 사악한 비쥬얼 아닌가!

이건 딱 봐도 흑마법사와 관련된 물품이었다.

“노르. 거기서 사악한 마나라도 느껴져?”

가죽갑옷을 손질하던 프랑이 물었다.

“아니. 마나까지 부여하가면서 만든 고급품은 아니야. 소재 자체가 좋아서 마법 강화에 보탬은 되겠지만.”

홉 고블린의 비교적 강력한 마법의 원인은 이 돌멩이가 마법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마법사 길드에다 팔면 조금이라도 돈이 되겠지.

“내가 의문인 건, 이걸 왜 버리고 갔냐는 거야.”

나는 가방을 구석에 밀어넣고 말했다.

“엄청 비싼 물건은 아니어도 굳이 두고 갈 필욘 없잖아? 흑마법사들은 안 그래도 왕따라서 돈에 쪼들릴 텐데.”

“쫓기느라고 급하게 도망간 거 아닐까? 그게 아니면 잠깐 나간 사이에 고블린들이 훔쳐왔다거나.”

“그런 경우도 생각해 봤는데 역시 이상해.”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프랑의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버려진 은신처가 아니라면 고블린들이 안에서 뭘 훔치고 살아 돌아오진 못 했겠지. 그리고 급하게 도망갔다면 당연히 추격자들이 있었을 거고, 걔네들이 은신처를 털어서 돈 될 만한 것들은 죄다 털어갔을걸.”

“흐음. 무슨 얘기인지 알겠다.”

내가 설명해주자 프랑이 감을 잡은 것처럼 말했다.

“노르가 걱정하는 건 흑마법사가 엄청 강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거구나?”

“맞아. 그래서 이걸 ‘굳이 챙길 것까지는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오래된 게임의 고인물들이 잡템을 버리고 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이 파워 스톤은 어느 고렙 흑마법사 새끼가 인벤토리가 꽉 차서 버린 잡템이고, 좆밥 뉴비인 홉 고블린은 그걸 쌔벼서 지 무기로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인상을 쓴 프랑이 입술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일단 길드에 돌아가면 보고를 해야겠네.”

“그래야겠지. 근데 증거로 쓴다고 파워 스톤 가져가서 안 돌려주면 어쩌냐.”

“그럴 때는 계약서 쓰니까 돈을 떼먹히진 않아.”

“아, 진짜? 역시 모험가 선배님.”

“헤헤.”

프랑이 가죽갑옷의 손질을 끝내고 내게 안겼다. 나는 정면에서 안겨든 프랑을 업어서 침대로 갔다.

내가 밑에 눕자 프랑이 내 몸에 올라탔다. 나는 명치 근처에 있는 프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르가디스 주변에는 흑마법사들이 많은 걸까?”

눈을 감고 내 손길을 즐기던 프랑이 중얼거렸다.

“저번에도 흑마법사의 은신처가 발견 됐었잖아.”

“듣고 보니까 그러네. 같은 놈이 사방을 쏘다니면서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걸 수도 있겠어.”

“흑마법사가? 왠지 무섭다.”

“무슨 일이 나더라도 너는 내가 지켜줄게.”

상당히 오글거리는 말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왔다. 가식이 없는 본심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다행히 프랑은 기뻐 보였다. 게다가 여친한테는 거짓말로라도 목숨을 걸고 지켜준다고 말해야 하는 법이라고 배웠기에 나는 진심을 담아서 마지막까지 말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나부터 찾기다?”

“고마워. 근데 실은 나, 이미 그러고 있다?”

행복한 얼굴로 프랑이 속삭였다. 하얀 뺨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얘는 평소에 햇빛 쬐면서 일하는데 왤케 피부가 곱지.

“그랬어? 아이고, 우리 프랑 착하다.”

─토닥토닥.

두 손으로 프랑의 등을 쓰다듬고 토닥였다. 그러자 프랑이 내 손에 뺨을 비비면서 물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