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79/1,009)

“노르는 몸 괜찮아? 그, 마나 계승인가 하는 게 또 일어났었다며.”

“문제 없어.”

나는 그 말에 마나통을 확인했다.

타뷸라의 마나를 얻고서 마나통의 용적은 꽤 늘었다. 주관적인 의견으로는 대략 50% 이상이다.

‘흡수율을 몰라서 곤란하지만.’

타뷸라의 마나가 최대 얼마였는지 모르니까 흡수 비율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내 마나가 100이면 50이 늘어난 건데, 타뷸라의 마나가 500이었거나 하면 실제 흡수율은 10% 아닌가.

“몸에 해로운 느낌은 아냐. 흡수자의 몸에 안 받는 마나는 걸러진다고 하더라고.”

“그치만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유는 모르는 거야?”

“하하. 감도 안 잡혀.”

마나 계승은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티르시도 말했었다. 로마니아의 일부 교단에서는 교황이 다음 교황한테 신성력을 계승해 준다고 말이다.

그 말을 해석하자면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단에선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즉, 마나 계승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지.’

이세계에서는 마나가 돈보다 더 가치있다.

죽기 전에 자기 마나를 후임에게 넘겨줄 수 있는데 그걸 거절하는 인간은 머리가 모자란 놈이나 소속집단에 반의를 품은 놈일 것이다. 자기 마나의 50%만 계승해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마나 계승이 발생하기 힘든 건 맞겠지. 자식한테 유산을 넘겨줄 때도 조금이라도 더 주려고 상속세를 피하려는 게 사람 심리니까.”

그런데도 다들 마나 계승을 안 하고 있는 것이다.

부작용도 없는데 안 한다는 것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는 뜻이었다.

‘아니 시발 근데 왜 그딴 일이 나한테만 일어나냐고.’

갑자기 억울하다.

맨날 나한테만 특수한 일, 이상한 일이 터진다. 그런데 나는 죄다 영문을 모르는 일이라 이 말이지.

‘시발 이래서 상태창이 있어야 되는 건데.’

존나 어? 막 딱딱 쫘르르륵 하고 스킬 설명이 돼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그러면 알기 쉽고 얼마나 좋아!!

++

[야수회귀 LV 9]

[상세: 벡터맨으로 변신함.]

[부작용 랜덤 발생: (자지 강화 적용됨).]

[마나 계승 LV 1]

[상세: 5%의 확률로 조진 새끼 마나를 10% 만큼 쌔빔.]

[발동조건: 상대가 교수일 것.]

시발거 상태창만 있으면 저렇게 알기 쉽지 않느냐고.

저렇게 딱딱 필요한 정보만 알려줬으면 나는 ‘아 염병 여기서도 운빨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구나~’ 하고 한숨 쉬고 교수들 조질 때마다 가챠운이 좋기를 기도하면서 구배지례하고 모가지를 땄을 거 아냐!!!

존나 상태창 혐오를 멈춰주세요. 남들 다 있는 상태창 나도 좀 나눠주면 덧나냐.

그게 아니면 번역능력 패치하느라 기력을 다 빨렸나. 역시 인생은 앰뒤좆망겜이다.

나도 소싯적에는 상태창을 개씹 혐오했는데 이젠 아니다.

상태창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놈들도 이세계에서 NO 상태창으로 3년을 구르다가 띠링! 소리를 들으면 위아래로 물을 줄줄 쏟아내면서 제 능지가 2였다니 알려주셔서 감사해욧!! 할 텐데.

“노르. 마나 계승 말인데, 홉 고블린이 룬 마법을 쓸 수 있어서 그랬던 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 프랑이 내 옷에서 실밥을 떼주며 말했다.

“룬 마법?”

“그 타뷸라라는 나쁜 사람도 룬 마법을 썼다면서. 룬 문자는 오딘님이 인간들에게 내려준 마법의 글자잖아. 관계가 있지 않을까?”

프랑은 자기가 말해놓고는 아차 하는 얼굴로 정정했다.

“앗, 하지만 타뷸라가 룬 마법을 썼던 건 괴물로 변한 다음이랬나? 그러면 아마 아니겠다.”

“아냐. 그 놈이 원래부터 룬 마법을 썼던 건 맞아.”

나랑 티르시와 싸우는 중에도 타뷸라는 룬 마법을 여럿 사용했었다. 인간 상태였을 때부터 말이다.

룬 마법이라. 이건 괜찮은 가설인 것 같다.

“프랑? 내 가방에 그 놈이 쓰던 철가면이 있거든? 잠깐 그것 좀 꺼내줄래?”

“가면? 알았어.”

프랑은 내 위에 누워서 가방을 뒤져 가면을 찾았다. 그러느라고 내 얼굴을 가슴으로 몽땅 덮어버렸다.

‘헤헿.’

역시 프랑 가슴은 최고다. 이러고 있으니까 근심걱정이 전부 날아갔다. 내가 뭔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까먹었다.

“여기. 이거 맞지?”

프랑이 내 얼굴에서 가슴을 치우며 물었다. 나는 어머니의 가슴을 잃어버린 갓난아기처럼 프랑의 찌찌를 쳐다보다가 이성을 되찾았다.

“아, 응. 여기 가면 안에 붙은 나무 부적 보이지? 이것도 룬 마법으로 만든 거야. 분명 타뷸라 놈이 만든 거겠지.”

“어? 룬? 어디에?”

프랑은 깜짝 놀라서 가면을 들여다봤다. 내 손가락이 나무 부적에 붙은 ‘ᚲ’를 가리켰다.

“이게 룬 문자야?”

놀랐다기보단 아리송한 느낌의 프랑.

저게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마법사나 고고학자가 아니면 누가 이걸 문자로 보겠는가.

‘ᚲ’?

시발 이게 문자냐? 존나 에린인들이 쓰던 오감문자도 이것보다는 더 문자 같겠다.

“이건 ᚲ(Kenaz)라는 룬이야. ‘깨달음’, ‘알아차리는 것’, ‘지혜’ 등의 뜻을 가진 글자지.”

룬 문자를 아는 나한테도 문자로는 안 보이는 자그마한 흠집이다.

하지만 이 흠집의 정체는 타뷸라의 가면을 ‘은신’과 ‘인상 미채’의 매직 아이템으로 바꾸어주는 룬 문자였다.

정확한 효과는 티르시가 알려줘서 안 거지만.

“가면을 만든 놈은 이 문자를 부적에 거꾸로 적어놨어. 룬 문자는 거꾸로 새기면 효과도 거꾸로 적용되거든.”

참고로 문자의 위아래는 밑줄을 그어서 구분한다. 나는 그 나무 부적을 프랑에게 보여주었다.

“거꾸로 적용되면 어떻게 되는데?”

“이 가면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돼.”

가면은 마법적인 의미에서 정체를 감추는 도구다.

타뷸라의 철가면은 가면의 그러한 주술적인 효과에다가 룬을 조합해서, ‘쓴 사람의 인상착의를 알지 못하게 만드는’ 기능을 부여한 매직 아이템인 것이다.

“룬 마법은 룬 문자만으로는 별로 효과가 없어. 이 문자를 매개체에 새겨야 비로소 기능하지.”

룬 마법은 긴 영창이 필요없다. 대신 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적절한 매개체가 필요하다. 마법의 성능도 서포트 효과가 많다.

그래서 강력하고 즉발 가능한 현대 마법에 밀려서 많이 쇠퇴했다고 배웠다.

“홉 고블린이 천장의 벽화에서 번개를 쏜 것처럼?”

“맞아. 그건 ᚼ(Hagall)의 룬의 변종이야.”

‘예측하지 못한 재앙’을 의미하는 문자를 천재지변의 상징인 번개 그림에 새기고 마법진 삼아서 쏜 거다.

조악한 기술이라서 파워 스톤 버프를 빼면 맨몸인 내가 맞아도 안 뒤질 것 같지만서도.

“이 가면도 ᚲ(Kenaz)의 룬만으로는 효과가 미미해서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매직 아이템으로 만든 걸 거야.”

그래서 타뷸라는 가면에 붙인 나무 토막에 ᚲ(Kenaz)의 룬을 역방향으로 각인하고 주술로 가공한 것이었다. 철은 마나를 튕겨내니까, 나무 부적을 중매 삼아서.

‘타뷸라 그 새끼는 인간 상태일 때에도 티르시의 <얼음 화살>을 맞고 버텼었지.’

어쩌면 그건 마법을 맞기 직전에 ᚦ(Thurs)의 룬으로 마법저항력을 올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싸우면서 손가락으로 뭘 쓰는 모습은 안 보였으니 ᚦ(Thurs)의 룬도 매직 아이템으로 만들어 놨다가 변신하면서 박살난 모양이었다.

‘변신한 뒤에는 검은 마나의 버프로 패시브처럼 계속 발동시켜서 공격 마법이 안 통했었으니까.’

인간형일 때 <타오르는 손길>에 당했던 것은 룬의 발동이 늦었거나, 발동했는데도 화력에 압도당했던 거겠지.

건틀렛이 달궈질 정도였는데 손이 멀쩡했으니 아마 화력빨 앞에 떡발린 것이 맞을 듯 했다. 보통 건틀렛이 그렇게 달궈졌으면 살가죽이 들러 붙어서 떼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뭐, 뒤진 새끼의 스펙은 아무래도 좋다.

타뷸라 새끼도 홉 고블린도 똑같은 룬 마법 사용자였다.

그것이 하프 인간과 완전체 잼민이의 유일한 공통점이다. 나는 프랑을 안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좋아. 밑져야 본전이지. 시험해 보자.”

“시험?”

“그래. 프랑? 네가 쓰려고 만들었던 가면이 있었지? 갖고 왔으면 잠깐 빌려줄래?”

“응? 가져오긴 했는데…….”

프랑이 잘 모르겠다는 것처럼 미완성인 가면을 건넸다.

나는 그것을 받아서 왼손에 들었다.

‘집중하자, 집중.’

빡집중 모드로 손가락 끝에 마나를 모았다.

이제부터 이 손가락은 나의 붓이 된다.

‘ME는 행위예술가 노르드에YO.’

언젠가는 쥬지로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가 되겠다는 일념을 검지손가락에 담았다. 타올라라 나의 펜!!

─스슥!!

날림으로 룬 문자를 새기자 검지 손가락에 녹색의 마나가 묻어나왔다. 내 마나가 녹색으로 변해서 가면의 뒤에 각인된 것이다!

시발 이게 되네? 가슴이 두근거린 나는 그렇게 룬 문자의 이름을 불렀다.

【──ᚲ(Kenaz).】

주문은 게르마니아 어로 튀어나왔다. 내 목소리 치고는 존나 웅혼했다.

목소리 뭐야? 시발 반해버리겠네.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었을 때가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사람은 본인의 진짜 목소리를 못 듣는다고 한다. 귀와 입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목소리가 울려서 변조되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아무튼 룬 마법의 주문을 읊을 때는 본인의 목소리가 변조되지 않는 건가. 개 신기하네.

─휘리리릭! 휘리리릭!

그때였다. 내가 가면에 역방향으로 새긴 ᚲ(Kenaz)의 룬이 기동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까지 번역능력만 믿고 몰래 시도해 봤던 룬 마법은 모조리 실패했었는데, 그때와는 뭔가 감각이 달랐다.

내 안의 마나가 일류 바리스타가 내린 커피처럼 필터에 걸러져서 발동하는 느낌!!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마나는 순식간에 동이 나 버렸다.

나는 직감적으로 방금 전까지이 내가 이 마나로 배울 수 있는 글자가 단 1개였고, 그 선택권을 ᚲ(Kenaz)의 룬에 사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룬 문자의 진짜 의미를 머리가 아닌 본능으로 깨닫는 것!

그것이 룬 마법의 사용 조건이었던 것이다!

‘시발. 이러니까 아무리 시도해 봐도 계속 실패하지.’

말만 안다고 발동하는 게 아니었구만. 나는 인상을 썼다.

수학 공식을 아는 것과 그 공식이 사용된 문제를 푸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룬 어를 아는 것과 룬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교과서에 있는 간략한 공식만으로 수학시험을 만점 받기는 어렵고, 한국인이라고 한국어 시험을 다 맞지는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와 룬 마법의 상관관계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식이니까 무지렁이에 능지처참한 고블린 주술사들도 룬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였구나.’

룬 마법은 지능이나 지식의 양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러니 머리가 멍청해 보였던 하프-인간 타뷸라나 고블린 새끼들도 룬 마법을 사용 가능했던 것이다.

‘무협지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랑 비슷하군.’

원래대로라면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긴 정신수양이나 시간을 들여야 했겠지?

아마 나는 룬 마법의 습득에 필요한 과정을 홉 고블린한테 빼앗은 마나로 퉁쳐버린 모양이었다.

“노르! 룬이 새겨졌어!”

프랑이 가면에 새겨진 ᚲ(Kenaz)의 룬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도 속으로 상당히 놀랐지만, 프랑의 호화로운 리액션을 보자 약간 침착해질 수 있었다. 이토록 우리 여친님은 24시간 내내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랑스러운 동반자였다.

“잘 됐나 모르겠네. 써 볼 테니까 어떤지 봐 줘.”

그리 말하며 나무 가면을 얼굴에 썼다.

내 감각으로는 전혀 변한 느낌이 없었다. 뭐지 시발? 실은 꽝이었나?

‘내 깨달음은 어디로 간 데스?’

나는 손가락이 붓으로 변하는 스킬을 얻은 게 전부였다는 말인가?

“앗? 아앗?!”

그런데 프랑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노, 노르의 기가 사라졌어!!”

─홱!!

조급해진 프랑이 내 가면을 벗겨버렸다. 나는 프랑이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어서 눈만 껌뻑거렸다.

“프랑? 갑자기 왜 그래?”

“앗. 미, 미안해. 노르의 기척이 갑자기 흐릿해지길래 그만 나도 모르게.”

내가 꺼벙하게 묻자 프랑이 사과했다. 당황해서 벌인 실수이기는 했지만 나를 걱정해준 거니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근데 기척이 흐릿해졌다고? 성공한 건가?

나는 무척 신경이 쓰여서 가면에 손을 뻗었다.

“내 마법이니까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해제할 수 있어. 다시 써 볼 테니까 돌려줘.”

“안 돼. 싫어. 위험하면 어떡해. 꼭 실험해 봐야 하는 거면 그냥 내가 쓸게.”

─홱!

프랑이 내게 가면을 주지 않으려는 듯이 몸으로 감췄다. 그 동그란 눈에 경계심이 가득하다.

이 귀여운 생물은 대체 뭐지. 햄스터한테서 해바라기씨를 뺏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파온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럼 대신 좀 부탁할게. 나도 어떤 효과가 나오는지 내 눈으로 보고 싶으니까.”

위험하면 해제하면 된다. 마나로 발동하는 구조니까 그냥 마나만 차단해도 마법이 풀리거든.

“나한테 맡겨!”

호기롭게 외친 프랑이 가면을 썼다. 끈이 없어서 얼굴에다 대고 손으로 받치는 형태였다.

그러자 룬의 효과가 발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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