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오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섰어!!! 저 여자애 서 버렸어!!!”
“세상에─!! 떨어지면 어쩌려고 저렇게 높은 곳에!!!”
“라리루라!! 라리루라!! 라리루라!! 라리루라──앗!!”
관중의 환영을 받으며 코끼리 코 위에 선 소녀가 익살맞게 인사했다. 저렇게 상체를 기울이는데도 넘어지지 않는다니, 저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건가? 마나는 느껴지지 않는데?
고개를 들며 웃는 소녀. 이제 간신히 성인이 됐을까? 두 뺨에 ♥와 ♠ 모양의 분장을 한 미소녀였다.
마치 광대 같은 옷차림이다. 아니, 광대가 맞나 보다.
머리에 쓴 2갈래의 모자부터 시작해서 좌우 배색이 다른 광대 옷이었다. 알게 모르게 살갗의 노출도 많았다.
틀림없이 이 콜로세움에서 가장 화려할 옷 맵시였다. 존나 눈에 띈다.
누가 봐도 이 서커스의 에이스, 혹은 그에 준하는 주역으로보이는 핑크색 머리의 미소녀!
그녀는 코끼리 코 위에서 돌며 관객석에 상큼발랄한 윙크를 날려대더니 입 앞에 확성기처럼 두 손을 모아서 외쳤다.
“여러분~♡!! 오늘도 저를 보러 와 주셔서 고마워요~☆!!”
마치 설탕에 꿀을 묻힌 듯한 달콤한 목소리였다.
“그럼 시작할게요? 라리루라의 곡예쑈♥!! 즐겨주세요!!”
다시 폭죽이 터지면서 횃불이 콜로세움의 무대를 밝혔다.
바야흐로, 서커스의 개막이었다.
─휙휙휙!
광대 소녀는 다리에 매단 나이프를 뽑아서 하늘로 던졌다. 얼마나 날카로운지 칼날 횃불에 비춰지니 번쩍번쩍 빛난다.
코끼리 코 위에서 눈을 감은 광대 소녀는 미소를 띄고 그 나이프를 받아서 저글링을 했다. 날카로운 칼날에 손가락이 베이면 어쩌려고 저러지? 보는 내가 다 오싹오싹했다.
“라리루라!! 라리루라!! 라리루라아아아──악!!!!!!”
광대 소녀의 광팬으로 보이는 아재가 턱살을 잡아당기며 숨이 넘어가도록 지랄을 해댔다. 거 아재요. 체통 좀 지키쇼.
‘근데 쟤 이름이 라리루라야?’
사람 이름이 어떻게 란란루리루라 이 지랄이지. 예명인가?
─팽그르르! 휙휙!
이름만큼 개성적인 광대 소녀는 마치 코브라 댄스처럼 코끼리 코 위에서 계속 흔들거리면서도 칼날 저글링을 이어갔다. 프랑이 조마조마한지 내 목에 감긴 다리를 꼭 조였다.
평소였으면 그 부드러움에 집중했을 나지만, 지금은 무대의 모습에 눈이 못박혔다.
이세계인이 신체능력을 극한으로 갈고닦아 만들어낸 예술!
그것은 싸울 때마다 짐승새끼처럼 칼을 피범벅으로 만들고 손톱질을 해대는 내게는 눈부실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마나는 안 쓰고 있어.’
저 곡예에 마법 등의 보조는 없었다. 체내의 마나를 끌어올리는 것도 아닌 듯 하다.
단순히 본인의 재주만으로 저런 균형 감각과 위험한 저글링을 해내고 있다는 말인가?
따지자면 나도 저거랑 비슷한 흉내는 낼 수 있다. 야수회귀를 켜고 온갖 버프를 떡칠하면 반사신경도 오르니까.
‘그래도 그걸로는 모자라.’
마법으로 끌어올린 기술은 ON과 OFF의 낙차가 크다.
나는 저 광대 소녀의 곡예를 보자 자신의 전투 방식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야수회귀로 강화된 완력만 믿고 싸우는 방식으로는 격투 게임에서 니가와 약짤짤이만 갈기는 초딩이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
신체능력은 높을수록 좋긴 하다. 그래서 평소에도 단련하고 있다. 모험가 일을 하며 몬스터랑 싸우기만 해도 알아서 늘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완력 외에 내 몸의 한계에 도전해 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 없었던 것 같다.
유적에서 무기술의 부족을 느꼈던 것이 엊그제인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야수회귀랑 마법 빨로 밀어붙이는 전투방식에 적응해버렸다.
전체적인 능력은 향상됐지만 나는 아직 몸을 다루는 기술이 부족했다.
브딱이로 끝낼 3류 모험가라면 몰라도.
앞으로 실버, 골드, 그 이상까지 갈 생각인 나에게 이건 존나 큰 약점이었다.
‘타뷸라 그 새끼랑 싸울 때도 그랬어.’
하프 인간 놈이 이유 없이 갑자기 급발진해서 나한테 덤벼들어서 다행이었지, 침착하게 무술로 때렸으면 그렇게 쉽게 이기지는 못 했을 것이었다.
초반에는 내가 훨씬 빨랐는데 나는 그 새끼의 절도 있는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유효타를 쳐맞았다.
‘그게 몸 기술의 차이였지.’
짐승이 된 타뷸라는 무술이 싹 사라진 덕분에 몬스터를 패듯이 때려잡을 수 있었다. 손톱으로 붕쯔붕쯔 하는 것을 피하다가 치명타를 갈기면 됐다.
다시 말해서── 그 짐승 새끼의 전투법은 내 미래의 전투방식 중에 최악의 형태였다.
‘뭔가, 뭔가 알 것 같은데…….’
정수리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든다.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뭐라고 해야 되나. 모의고사를 치던 시절에 문제의 답에 막혔을 때와 비슷했다.
뭔가가 떠오를 듯한, 아닐 듯한, 그런 기분! 나는 서커스에 집중하는 것도 잊고 입술을 핥았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저글링이 시작된지 3분 정도 됐을까?
관객들의 긴장감의 역치가 한계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눈을 뜬 광대 소녀가 저글링을 계속하면서 나이프를 하나둘 하늘로 날렸다.
─휙휙휙휙!
회전하면서 직렬로 비행하는 나이프!
광대 소녀는 그것을 거들떠도 안 봤다. 코끼리 코 위에 물구나무를 서고는 아크로바틱하게 두 다리를 벌렸다.
시발 저게 어떻게 되는 거지? 유연한 다리가 200도 가까이 벌어진 것은 가능하다고 쳐도, 볼 위에 탄 코끼리 코에서 저렇게 움직일 수가 있나?
“저 코끼리도 대단하다!”
프랑이 손에 땀을 쥐면서 경탄했다. 존나 동감이었다. 광대 소녀도 광대 소녀지만 사람 1명을 코로 떠받치면서 볼에서 안 굴러 떨어지는 코끼리는 뭐하는 새끼냐.
휘릭휘릭─!
광대 소녀가 던진 나이프가 중력에 져서 낙하했다.
“안 돼애애액!!! 라리루라!!! 위험해애애애애액!!!!!”
나이프가 광대 소녀를 찌를 것 같자 옆자리의 아재는 뜨거운 물을 부은 개구리처럼 브루스를 춰댔다. 아니 시발 자리 선정을 잘못했네. 옆자리에 훌리건보다 더한 새끼가 있어요 여러분.
착착착착착─!
발레처럼 곡예를 펼치던 광대 소녀는 한 손으로 코끼리 코에 서면서 다른 손으로 떨어지는 나이프를 받아냈다. 그렇게 곡예를 끝내고는 기계체조처럼 춤추며 내려와서는 관객석에 인사를 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였다. 관객석의 사람들 대부분이 박수로 광대 소녀를 칭찬했다. 거기에는 프랑도 껴 있었다.
“노르! 봤어?! 봤어?! 마지막에 칼날을 손가락에 낄 때도 한쪽 눈은 감고 있더라!!”
“어. 개쩔더라. 솔직히 진심으로 놀랐어.”
해 봤자 이세계의 유흥인데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하고 깔보던 자신이 바보 같을 정도로 대단한 서커스 쇼였다.
“모두 고마워요☆!! 다음 공연도 즐겨줘요~♡?”
윙크를 날린 광대 소녀는 다시 몸을 회전시키며 무대에서 사라졌다. 코끼리는 헥헥대며 짐볼을 쳐내면서 소녀를 따라갔고 말이다.
이제 저 애의 공연은 끝난 건가? 조금 더 보고 싶었는데.
“아아~ 가버렸다.”
프랑도 아쉬워하며 내 머리를 안았다. 10분이 안 되는 오프닝으로 광대 소녀는 관중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이었다.
‘옆자리 아재가 저러는 것도 이해는 가.’
프랑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예쁘장한 아이였다. 은근히 노출 많은 옷에다가 쇼맨십까지 좋으니 이세계판 아이돌이라 할 수 있겠다.
서커스는 그렇게 1시간 동안 계속 진행됐다.
발레리나 같은 여성이 다가오는 검은 옷의 사나이들과 합을 겨루며 무도를 펼치거나,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인간 피라미드를 쌓거나, 불이 붙은 고리에 동물과 서커스단원들이 춤을 추며 넘어가거나 했다.
모든 쇼가 각각의 장점이 있어서 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했다. 그래도 역시 처음에 나왔던 광대 소녀보다 뛰어난 인물은 없었다.
다른 단원들은 자신의 기술을 펼치느라 바빠서 관객의 반응까지 유도할 여유는 없던 것이다.
─훅.
그때 콜로세움의 무대에서 횃불이 꺼졌다. 시간은 이미 밤 10시였다. 밤도 깊어졌기 때문에 관객석도 어두워졌다.
“뭐야! 앞이 안 보이잖아!”
“횃불이 사고로 꺼졌나?”
눈앞이 새까매져서 당황하는 관객들. 그렇게 관객석에 당혹감이 퍼졌을 때, 무대에서 불꽃이 켜졌다.
─화르르륵.
불타는 봉을 든 근육마초였다. 마초는 양쪽에 횃불처럼 불을 붙인 봉을 두 손으로 뱅뱅 돌렸다. 5미터를 넘는 봉이라 시각적 효과가 압권이었다. 그야말로 불의 폭풍이다.
밤의 어둠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횃불의 궤적!
한국인인 나는 데자뷰를 느끼다가 이 쇼의 정체가 무엇인지 눈치를 챘다.
“저것은…… 쥐불놀이!!”
브리타니아 이 저작권 개념도 없는 새끼들이 이제는 우리 지구의 문화까지 파쿠리를 한 것이다!
아니, 이 서커스단은 로마니아에서 왔댔으니까 로마니아 놈들이 파쿠리를 한 건가? 아무튼 이세계인답게 저작권 의식이 바닥을 치는 놈들이었다.
─붕붕붕붕!!
내가 분개하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근육마초는 화려하게 불쑈를 펼쳐댔다.
그러자 짧은 횃불 봉을 든 서커스단원들이 나타나 원형으로 돌면서 춤을 췄다. 서커스 쇼의 피날레인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불꽃은 확실히 보는 맛이 있었다.
그런데 진짜 피날레는 거기서부터였다.
─쏴아악!!
근육마초가 모래바닥에 봉을 문질러서 불을 껐다.
나는 이 제 다 끝난 건가 싶어서 약간 섭섭했는데, 마초는 불을 끈 봉을 콜로세움의 경기장 한가운데에 꽂아버렸다.
마초답게 힘이 센 그는 5미터를 넘는 봉을 1미터 가까이 박아버렸다. 새끼, 박력 봐라. 꽤 사나이로군.
“봉은 왜 무대에 꼽는 걸까?”
말도 줄여가며 구경에 몰입하던 프랑이 궁금해 했다.
“마지막 무대의 밑준비라오!!!!”
프랑의 물음에 옆자리의 아재가 무대를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며 대답했다.
“밑준비요?”
“그렇지!! 이 서커스의 피날레를 장식할 봉이라오!!”
광대 소녀가 퇴장한 뒤로는 대놓고 지루해하며 딴짓을 하던 아재가 눈을 빛내다니? 나는 저 인간이 말하는 피날레가 어떤 것인지 눈치를 깠다.
“모두~! 기다렸죠~☆?!”
콜로세움 전체에 울리는 커다란 성량이었다.
무슨 특별한 마법이겠지. 광대 옷차림 그대로의 소녀는 춤을 추는 것처럼 나타나서 봉으로 다가갔다.
“저희들 플랑궁쿨라의 피날레 쇼!! 인형의 춤(Chorus Pupus)의 시작이랍니다~♡!!”
“으오오오오오오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언니이이이이이잇!!!! 날 가져요오오오오오오옷!!!!!”
광대 소녀의 외침에 관객석의 일부에서 광란의 호응이 튀어나왔다. 나랑 프랑은 인상을 쓰며 귀를 막았다. 옆 좌석에서 소리치는 아재 때문이었다.
“다들 쉬잇♥!”
객석에서 끓어오르는 함성에 광대 소녀는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저희들의 노래, 조용히 하고 들어 주실 거죠♡?”
“네에에에에엡!!!”
옆자리의 아재는 코피를 흘리면서 아가리를 했다. 존나게 정신 사납다. 다음부터는 자리를 피하든가 해야지.
“그럼 시작할게요~★? 모두 준비는 되셨나요~?”
“옙!!”
대답한 사람은 다른 서커스 단원들이었다.
공연을 맡은 모든 서커스 단원들이 무대에 오른 것이었다.
“좋아요, 최고네요! 우리 다 같이 시작하죠!”
광대 소녀가 웃으면서 봉 위로 올라탔다. 이번에도 무중력 공간을 돌아다니는 듯한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아, 과연. 저런 동작에는 마나를 쓰는 건가.’
집중해서 광대 소녀를 지켜본 나는 소녀가 마나를 사용하는 타이밍을 대충 알 수 있었다. 4미터 가까운 철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마나가 필요할 테니까.
─빠바바밤 빠밤!
악기를 든 단원들이 북을 두들기고 관악기를 불면서 경쾌한 음악을 연주했다. 봉 끝에 외발로 올라선 광대 소녀는 그 소리의 박자에 맞춰서 두 손을 벌렸다.
광대 소녀의 손가락에서 파란색 마나의 실이 뻗어가 무대 곳곳에 이어졌다. 그것은 서커스단원 옷을 입은 밀랍 인형이었다.
소녀는 10개의 인형을 마나의 실로 일으켰다. 그리고 모든 단원들과 인형이 소녀를 중심으로 돌면서 춤을 췄다.
‘꼭두각시 인형?’
춤추는 인형들은 골렘의 일종이었다.
내부에 코어나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기관을 모조리 빼고, 꼭두각시 술사의 마법으로만 구동하는 꼭두각시(Marionette). 하지만 저 수를 전부 조종하다니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에이스 취급인 이유가 있군.’
나는 아직 어린 나이인 광대 소녀의 재능에 감탄하면서 그 피날레 쇼를 관람했다.
─둥! 두둥!
─빠라라바밤~ 빠밤~!
관악대가 걸으면서 엔딩곡을 연주하고, 4미터짜리 봉의 정상에 선 광대 소녀는 연주를 지휘하듯이 손을 흔들었다.
인형들은 폴짝 거리면서 뛰고 돌아다니며 춤췄다. 광대 소녀의 손끝에서 이어진 실이 서커스 하면 떠오르는 천막처럼 콜로세움의 무대를 다 덮었다.
그리고 인형 중의 몇 기가 코끼리들의 무등을 타고 올라 하늘에다가 뭔가를 쐈다. 마나가 느껴지는 폭죽이었다.
피이이잉─!
─퓨퓨퓨퓽!
소리는 작았지만 <광구(Light)> 마법의 변형인지 불꽃놀이 폭죽처럼 아름다운 빛이 콜로세움을 수놓았다.
“와아…!!”
프랑이 폭죽의 빛을 보며 탄성을 흘렸다.
나는 폭죽의 빛으로 반짝이는 프랑의 얼굴을 카메라로 촬영하듯이 기억에 새기려고 노력했다.
─빠~ 바바밤~ 두둥둥 빠밤~!
코끼리와 서커스 단원들, 그리고 인형과 광대 소녀는 빛무리를 맞으면서 계속 춤췄다.
정상에 선 미소의 광대 소녀는 밝은 미소를 한가득 띄우며 손을 연신 휘저었다.
그렇게 폭죽의 빛이 사라지고 불이 하나씩 꺼지자, 서커스 쇼는 막을 내렸다.
“재밌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