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89/1,009)

“햬써요! 햬써요! 그른대 아퍄욧! 져 화쟝 지어져여! 뷰에에에에!”

“그걸 아는 애가 동네 꼬마애들한테 저글링을 가르쳐?”

서커스단의 카리스마 에이스는 오데로 갔는가. 나는 그 심오한 주제로 10초 정도 고민하다가 프랑의 가슴은 왜 그리 부드러운가에 대한 주제로 넘어갔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이건 다 보호자인 제 잘못입니다. 부디 화를 내신다면 저에게 내 주십시오.”

알렉산드라 씨가 고개를 숙였다. 보호자 얘기를 하는 것을 보니 저 사람이 라리루라의 부모님인 것 같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개의치 마십쇼. 저도 배우고 싶어서 부탁한 거니까 저런 가벼운 농담 정도는 괜찮습니다.”

꽤 재밌기도 하고 말이다.

“감사합니다. 이 애가 건방지게 굴면 때려서 혼내주셔도 괜찮으니 부디 참지 마시기를.”

싱긋 웃으면서 익숙한 듯이 라리루라의 취급설명을 해 주는 알렉산드라 씨.

그녀는 품위 있게 인사하고서 여관으로 다시 돌아갔고, 버려진 라리루라는 얼얼한 뺨을 붙잡고 울었다. 화장이 지워질까봐 손도 못 대는 모양이었다.

“으이이히이이잉…… 맨날 나만 미워해…….”

“그건 니가.”

“제가 뭐 어때서요?!”

말하려다가 귀찮아서 관뒀다. 타고난 성격은 쉽게 안 고쳐지는 것이니까. 라리루라는 삐진 것처럼 툴툴댔다.

“이렇게 러블리한 미인한테 놀림받는 건 반대로 기뻐해야 할 일 아니에요? 화를 낸다니 이해할 수가 없네요.”

“니가 살아있는 건 브리타니아의 형법구조 덕분이야.”

“네에? 너무하시네요. 그야 뭐~? 제가 가끔씩 쪼오끔 선을 넘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저라면 충분히 애교로 봐주실 수 있잖아요♡?”

“어쨌든 내 탓은 아닌 듯함.”

적당히 상대해주며 다시 저글링에 도전했다. 4개까지는 되는데 5개부터는 내 대구리대구리 빡대구리(IQ 98)의 연산능력이 한계를 맞이한 느낌이 든다.

잘못 던진 공이 떨어져서 내 와꾸를 습격했다. 때탄 공이 입술에 닿아서 기분이 몹시 더러웠다. 시발거.

“으겍 퉷퉷퉷 된장쌈장.”

─퉤퉤! 푸르르르! 푸힝힝!

불쾌한 느낌에 말처럼 침을 튀기면서 입을 닦고 있는데, 구경하던 라리루라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른 것처럼 입을 가리며 웃어댔다.

“저기요 저기요? 자기보다 한참 작은 여자애들은 실력이 쑥쑥 느는데 혼자 제자리걸음하는 건 무슨 기분이에요♡?”

요년이 선 넘네. 쿡쿡 웃으며 나를 도발하는 라리루라는 프랑과 에리카를 가리켰다.

엄청 많은 공이 프랑의 손에서 계속 움직였다. 내가 잠깐 다른 짓을 하는 사이에 프랑은 벌써 10개 넘게 저글링을 성공한 것이었다.

확실히 이렇게 비교해 보니까 능력치 차이가 존나 컸다. 내 손재주가 1이라면 프랑은 20정도 되겠지.

약 20노르드. 돈으로 환산해서 40실버 값의 손이다.

“계속 실패해서 분하지 않으세요~? 저를 ‘선.배.’라고 불러 주시면 옆에서 친절하게 코칭해 드릴 수도 있는데요~♥?”

두 손을 확성기처럼 모아서 라리루라가 말했다. 나는 살짝 이마에 혈관을 띄웠다.

“선배는 개뿔이. 알아서 할 테니까 지켜보고나 있어.”

“자존심을 부리시는 것도 좋지만~ 라리루라로서는 이때다 싶을 때는 적당히 타협하실 줄 아는 것도 현명함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좋은 팁을 알려드릴 수도 있는데효옷?!”

계속 까불어대길래 옆구리를 찔러줬다. 내 기습에 라리루라는 좋아 죽으면서 몸을 비틀었다.

단장 아줌마가 폭력 허가를 내렸으니 나의 폭력에 더 이상의 자비는 없다. 허리를 붙잡은 라리루라는 눈을 크게 뜨고 항의했다.

“까, 깜짝 놀래서 이상한 소리 내 버렸잖아요! 하늘 같은 선배한테 지금 뭘 하시는 거에요?!”

“아아. 모르는 건가. 이건 벡터-참교육이라는 것이다.”

내가 대답했다. 벡터-참교육이란 건방진 꼬맹이를 올바른 청소년으로 육성시키는 지구용사의 필살기다. 어린이들의 용사들에게 걸맞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천외천을 보아라.”

라리루아의 도발에 은근히 빡쳤던 나는 양손으로 관수를 세웠다.

“벡터-참교육 「500배」.”

“꺄으얏?!”

─콕콕콕콕콕콕!

양쪽 옆구리를 연달아 찌르는 나의 관수(貫手)! 태권도 0단 시절에 배우다가 손가락을 삐어서 내가 도장을 그만두게 만들었던 기술의 봉인을, 나는 이세계에서 해방한 것이었다!!

“이얍─! 이얍─! 이얍─! 이얍─! 이얍─!”

“자, 자잠, 잠깐만요?! 꺄흣! 하, 하지, 하지 마세요 진짜!”

─휘릭!

라리루라가 뒤구르기로 내 벡터-참교육에서 벗어났다. 그야말로 광대 백 덤블링 회피! 실로 달인!

“잠깐 장난 좀 쳤기로서니 이러기에요?! 사과해 주세요!”

양쪽 옆구리를 감싼 라리루라는 화를 뿜으며 항의했다. 뭐 잔뜩 찔러대서 기분도 풀렸고, 사과 쯤이야 어려울 것 없다.

“고흐흑. 나그가 잘모해당게.”

“좋아요. 착한 제가 용서해 드릴게요☆!”

시발 이걸 봐 주네. 서커스단 에이스 깽값 존나 싸다.

“아, 그나저나 말씀드린 요령 말인데요. 알려드릴 테니까 시도해 보실래요?”

“어떤 건데?”

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일단 장점만 있는 방법은 아닐 것이었다. 멀쩡한 게 아니니까 되도록 안 가르쳐 주려고 했던 거겠지.

“요령이라기보다는 편법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네요! 쉽게 말해서, 저글링을 연습하면서 마나를 쓰는 거에요!”

라리루라는 손가락으로 ×자를 만들었다.

“마나를 쓸 수 있는 사람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에, 이상한 버릇이 들지도 모르지만, 잘만 하면 마나를 다루면서 얻는 감각을 맨몸에도 정착시키는 게 가능하죠☆!”

“이상한 버릇?”

“마나 여부에 따른 감각의 차이에 적응을 못한더라구요. 이것 때문에 고난이도의 곡예에서 막히는 사람도 많아요. 만약 포기하셔도 저는 이해해 드릴게요!”

“포기할지 아닐지는 해 보면 알겠지.”

이건 무협지에서 나오는 ‘대나무 위에 올라서기’나 뭐 그런 종류의 훈련이다. 실패한다고 좆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빡치고 속이 끓는다.

“후후훗. 의욕적이셔서 좋네요☆! 그럼 해 보실 거죠?”

“당연하지. ──「변신」.”

오랜만에 폼을 잡고 야수회귀 ON.

힘 조절에 유의하면서 공 5개 저글링에 도전했다. 아니, 야수회귀를 켰으니까 도전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럽다. ─홱홱! 시발 새끼들 잘도 도네. 왜 나랑 할 때는 이렇게 안 하는데.

“네가 원인이니, 마이 보디야?”

정녕 나 노르드는 마나가 없으면 그저 근육만 키운 병신이라는 말인가?

나는 오기가 생겨서 야수회귀를 껐다. 그러자 곧바로 손발의 감각이 둔해지고 힘 조절이 어려워졌다.

“……으응?”

─후두둑!

공이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 쏟아졌다. 옆에서 라리루라가 방실방실 웃었다. 깝치다간 또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얌전히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보다는 내 감각 차이에 집중했다.

마나를 켰을 때의 느낌이 약간 손에 잡힌 느낌이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공을 던지고 잡는 방법인지 말이다.

떨어진 공을 주우면서 이유를 고찰해 봤다.

‘아아. 야수회귀는 보통 마나 강화랑 다르지 참.’

무영창으로 ON/OFF를 나누는 야수회귀 마법은 어수룩한 내 마나 컨트롤에 비해서 발동과 해제가 빠르다.

그래서 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마나를 썼을 때와 껐을 때의 감각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이거…… 가능하겠는데?’

아마 이게 안 좋은 편법인 이유는 마나의 유무가 감각의 차이에 혼선을 빚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나는 아니잖아? 헷갈린다 싶으면 무영창으로 즉시 야수회귀를 켜서 감각을 되살리면 되니까, 나한테는 이 편법의 단점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끼요요요요요요욧!”

나는 천지마투의 태세로 저글링에 재도전했다.

1번, 2번, 3번…… 횟수를 반복할 수록 실력이 늘어간다!! 그 진화의 스피드에 내 저글링을 지켜보던 라리루라가 점점 얼굴이 굳어갔다.

“──느리구나. 떨어지는 것조차.”

파파파팟─!

연습을 시작한지 10분은 됐을까? 내 몸은 점점 마나를 쓰지 않고도 예민하고 정확무비한 움직임을 갖춰갔다.

그것은 스포츠 선수가 수천 수만 번을 반복해서 간신히 손에 넣는 ‘정자세’를 치트 모드로 확보하는 것과 같은 습득 속도였다!

아아── 잊고 있었다.

나의 재능은 마나를 다루는 힘이나 몸 기술 따위가 아닌.

──이 야수회귀의 포텐셜이었다는 것을.

“대충 알았다. 너희들의 레벨.”

파팟!

나는 외발로 우뚝 섰다. 5개의 저글링 따위 이미 시시해져서 죽고 싶어질 정도다.

“라리루라. 5개 더.”

“어, 네? 엇?? 지, 지금 마나 쓰고 계신 거죠?”

“HELL NO.”

마나 따위 더 이상은 사치에 불과하다. 나는 근엄하게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던져라, 라리루라. 네 운명을 받아들여라.”

“뭐, 뭐라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던질게요?”

“아니, 그, 적당히 던져. 적당히.”

약간 쫄려서 바로 정정했다. 빠르게 날아들면 다 잡아낼 자신이 없었다.

─홱홱!

나는 날아드는 공들을 잘 받아서 저글링을 지속했다.

10초, 20초, 30초…… 그 이상이 되도 공은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10개짜리 저글링에 성공한 것이었다

“하찮군.”

이미 나의 경지는 완숙에 이르렀다. 두 팔을 내리고 고무공을 전부 캐치해낸다.

“하지만 마음에 들어.”

─샤샤샥!

나는 두 팔 가득하게 채운 고무공을 내려놓았다.

입이 떡 벌어진 라리루라는 곧 입을 우물대며 말했다.

“저기요. 서커스에 진짜 관심 없어요?”

“흐흐. 미안하지만 따로 하고 싶은 꿈이 있어서.”

“하아. 아쉽네요.”

라리루라는 어깨를 늘어트리면서도 재미있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좋아요. 그럼 다음 갈게요? 따라올 수 있으시죠☆?”

우문이군. 나는 씨익 웃으면서 두 팔을 벌렸다.

“와바랏!”

─테엥! 테에엥!

그렇게 내가 라리루라와 고난이도의 저글링 연습을 반복해 갈 때였다.

3번째 단계인 ‘막대로 저글링하기’를 시도 중이었는데 갑자기 시계탑에서 종소리가 울었다.

또 뭐고? 궁금해서 쳐다보니까 시계탑의 시계는 12시를 가리켰다. 밥 먹고 하란 뜻인가?

“아, 점심 시간이네요☆!”

─폴짝폴짝!

내 저글링을 지도해주던 라리루라는 어린애처럼 뛰면서 프랑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도 옆구리에 막대를 끼고 따라갔다.

“프랑 언니랑 노르드 씨는 식사 어쩌실 거에요~?”

“으음. 글쎄? 노르, 어쩔래? 나는 아직 배 안 고픈데.”

공을 정리하던 프랑이 물었다.

점심이라. 나도 길냥이들 상대를 한 것 말고는 오늘 한 게 없어서 그런지 배는 별로 안 고팠다.

“적당히 근처 가게에서 먹자. 라리루라? 나중에 다시 와서 계속 배워도 상관없지?”

“네☆! 오후부터는 저도 리허설이랑 쇼 계획 점검 때문에 바쁘니까 내일 아침에 와 주세요! 아, 에리카? 에리카도 점심이니 돌아가야 되죠?”

“그럼 이걸 가져가세요!”

얌전한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자 라리루라는 웃으면서 종이로 포장한 작은 물건을 꺼냈다.

“짠! 이건 제가 에리카에게 주는 선물이랍니다☆!”

“네……?”

“아앗, 막 부담 가지고 그러지는 마세요? 그냥 점심에 먹기 좋은 샌드위치니까요!”

놀라는 반응에 당황한 라리루라는 샌드위치를 에리카의 손에 들려줬다.

“배웅해 주고 싶긴 하지만, 서커스단 사람은 나이 지긋하시고 꼬장꼬장한 분들한테는 밉보이기 쉬워서요☆ 저도 단장님한테 혼날 수 있으니까 이번에는 포기할게요♡”

“이건 가는 길에 몰래 먹고 가세요! 먹다가 지각하면 안 되고, 많이 줬다가는 원장님이 수상하다면서 버려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발랄한 말투에 에리카가 눈을 크게 뜨자 프랑이 곰곰히 생각을 하다가 물었다.

“저기, 그러면 에리카? 우리가 대신 데려다 줄까?”

“아아. 그렇네. 수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근처까지라면 별 상관 없겠지.”

나도 프랑의 의견에 찬성했다. 대낮이라 안전하다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다. 고양이들을 시켜서 무슨 일 나지 않게 지켜봐달라고 부탁해 두자. 고아라면 더더욱 납치범들의 타겟이 되기 쉬울 테니까.

에리카는 우리의 말에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그, 그러면 프랑 언니. 근처까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응! 그리고 그렇게 정중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니까.”

두 사람은 편하게 말을 나눴다. 내가 라리루라한테 벡터-참교육을 해주는 동안에 저글링을 하면서 친해진 모양이었다.

나도 라리루라한테 인사를 했다.

“잘 있어라, 라리루라. 다음에 또 보자.”

“네에~☆!”

끝까지 텐션 오지는 서커스 걸과 헤어져서 우리는 고아원으로 이동했다.

“냠…….”

에리카는 걸으면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걸신 들린 것처럼 마구 먹어대는 것을 보니까 평소에 잘 못 먹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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