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애가 식사를 마쳤을 때에 내가 물었다.
“에리카. 너 혹시 고아원장님 몰래 나왔니?”
─흠칫!
내 물음에 몸을 떠는 에리카. 프랑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점심시간 전까지 돌아간다는 건, 고아원장님이 돌아오기 전까지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지?”
“아, 아뇨. 그게, 그…….”
“원장님한테 이를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해.”
나는 그런 말로 에리카를 달랬다. 보호자 몰래 빠져나와서 놀러 나가는 것. 저맘때의 애들이 자주 벌이는 일탈이기에 나도 잘 알았다.
점심 시간에 담 넘어서 매점 가는 거랑 비슷한 거겠지.
하지만 적어도 중학교 매점 근처에 납치범은 없었다. 내가 대답을 기다리자 에리카는 흠칫대며 말했다.
“저도… 라리루라 언니처럼 멋진 공연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라리루라는 뭐래?”
“아직…… 안 물어 봤어요….”
“후우……. 그래?”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어린 나이에 저글링을 잘 하는 것을 보면 일단 재능은 있겠지만, 그걸로 먹고 살면서 어찌저찌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존나 알렉산드라 씨가 허락해 줄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알겠어. 오지랖 부리면서 참견은 않으마. 그래도 밤에는 돌아다니지 말렴. 낮에도 골목길은 피하고.”
내가 이렇게 말해봤자 얼마나 의미가 있겠냐만.
그렇게 우리는 고아원으로 돌아가는 에리카를 배웅했다. 고양이 3마리를 붙여둬서 무슨 일이 나면 내가 묵는 여관으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
“묘아아앙! (조아!)”
3마리 고양이는 생선을 배 터지게 먹여준다는 말에 홀랑 넘어가서 고아원 주변을 맴돌았다.
부디 저 떼껄룩들이 CCTV 역할을 잘 해주길 바라자.
냥냥TV 놈들에게 감시를 맡기고 나서부터 프랑은 조용히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나는 말을 걸어서 생각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있었는데, 그렇게 여관에 도착하자 갑자기 프랑이 말했다.
“노르. 내가 미끼가 돼 보는 건 어떨까?”
“미끼?”
“응. 콜로세움에서 서커스를 구경할 때도 그랬고, 이번에 라리루라가 나를 어린애로 착각했잖아. 그러니까 내가 오늘밤부터 밤에 혼자 걸어 다니는 어린아이인 척 하는 거지.”
프랑은 손가락이 세웠다. 나는 그런 프랑의 말에 탐탁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프랑 네가 미끼가 되서 납치범을 꾀어내자는 소리야?”
“가능하지 않을까? 아이들을 노리는 납치범이 아직도 마을에 숨어있다면, 요즘처럼 경비대가 돌아다니고 사람들이 조심하는 상황에는 그다지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겠지? 그럼 몸이 달아 있어서 나를 꼭 붙잡으려 들 거야.”
좋은 생각이긴 하다.
프랑이 위험하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입을 열면 거부감에 고민도 하지 않고 각하할 것 같아서였다.
위장수사는 효과적이지만 21세기에 들어서부터는 별로 사용되지가 않는다고 들었다. 위장 중에 경찰이나 형사가 범죄에 조력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위장수사를 맡은 사람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도 그걸 모를 애는 아닌데.’
프랑도 이게 위험한 작전이라는 사실은 잘 알 것이었다.
그런데도 프랑이 저런 제안을 한 이유는, 아마도 에리카와 만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사람은 남의 일에 공감하기 어려운 생물이다. 아프리카의 고아나 난민들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해도 그들 돕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었다.
우리도 그렇다. 납치당한 아이들을 가엾게 여기기는 해도, 우리의 생활을 버리고 일의 해결에 몰두할 정도는 아니었다.
납치당한 아이들 말고도 불행한 사람은 세상에 널렸다.
몬스터가 존재하고 사람의 목숨이 파리목숨이나 다름없는 세상에서 남의 사정에 경솔하게 목을 들이미는 것은 목숨을 재촉하는 일이었다.
‘나도 프랑도 어느샌가 이 일을 남의 일로는 못 여기게 된 건가.’
나는 도적단에게 납치당해 시달렸던 애들을 봤다.
프랑은 친해진 아이가 당장 내일에라도 위험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므로 아직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헤이스벤트에서 훌쩍 사라지자니 뒷맛이 나쁜 것이다.
“좋아, 프랑. 해 보자.”
나는 생각을 마치고 그렇게 말했다. 프랑이 위험을 감수할 마음을 먹었는데 내 이기심으로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애지중지하며 모든 위험에서 떨어트려 놓아서는 인형 취급이나 다름이 없다. 저번에 내가 도적단과 싸우고 나서, 우리는 이런 일이 있을 때는 함께 싸우자고 결정하지 않았던가.
프랑도 나의 대답에 수긍했다.
“밤까지 작전을 짜고 준비해 두자. 나는 미끼 역할이니까 외투 안에 무기만 챙기면 돼.”
“알았어. 그러면 잠깐 나갔다 올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포션이랑 정보를 얻어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
“어디로 가는데?”
나는 아서 웨인의 로브를 꺼내며 대답했다.
“운송 길드.”
로브를 깊이 쓰고 타뷸라의 가면을 목도리로 가린 나는 헤이스벤트의 운송 길드를 찾았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헤이스벤트에 남아 있던 로버트는 의아해 하며 응접실로 나왔다가, 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당신은 설마?”
못 알아볼 만 했다. 당당하게 소파에 앉아있기 때문에 은신 효과는 없어도, ‘인상 미채’의 효과는 예나 지금이나 지속되고 있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사했다.
“이렇게 또 뵙는군요. 그러고보면 자기 소개도 하지 않았죠. 아서 웨인입니다.”
“로, 로버트 그레이브스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매일이 거기서 거기지요.”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로버트는 놀람을 능숙하게 감췄지만, 의문은 솔직하게 드러냈다.
“다시 뵙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니, 그것보다 제가 여기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아시고……?”
“아, 거기서부터 말을 해야겠군요.”
나는 평소의 나와 다른 느낌을 주기 위해 다리를 꼬았다. 예의 바른 유교 꼴마초 노르드는 하지 않을 짓이었다.
“저번의 불미스러운 사태 이후로, 조금이나마 배송 중의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 헤이스벤트 운송 길드에 방문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당신의 소식을 듣게 되어서 이렇게 시간을 냈지요.”
“그, 그러셨군요. 그때 일은 정말 죄송했습니다.”
“아닙니다. 길드를 탓할 생각은 없고, 제 운송품은 여러 번에 나눠서 보내도 되는 물건이었으니까요.”
저번에는 트라우마가 켜져서 깨닫지 못했는데, 논문은 1달 간격으로 같은 논문을 여러 번 보내면 된다.
그러면 중간에 닌자 당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도 문제 없었다. 그렇게 일꾼 러쉬처럼 논문을 줄줄이 보내다가 대학에서 제대로 도착했다는 답변을 들으면 멈추는 것이다.
이 방법의 단점은 2개다.
하나는 운송비도 존나 나간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심혈을 기울여서 논문을 쓸 수가 없게 된다는 점이다.
잃어버릴지도 모를 논문에 정성을 들이기는 어려우니까 글씨체나 가독성의 퀄리티는 낮아질 것이다. 그래도 그 점은 대학에서 이해를 해 주겠지.
아무튼 지금 용건은 이거랑은 별개다.
“사르가디스에서 들었는데, 납치당했던 아이들을 데리고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집에 잘 돌아갔습니까?”
“물론입니다. 방금 전까지 가정에 돌려주다가 지금 돌아온 참이죠.”
로버트는 자신있게 말했다.
“한 아이는 고아원 출신이라서 저희 가게에 남고 싶다길래 제가 맡았습니다. 양자로 들일지는 고민 중이고요.”
“훌륭하십니다.”
대충 내가 상상했던 대로 풀렸던 모양이다. 나는 본론으로 넘어갔다.
“오늘 찾아뵌 이유는 로버트 씨가 제대로 아이들을 돌려보내줬는지 의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생겨서 말이죠.”
“제가 아는 거라면 뭐든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혹시, 지금 헤이스벤트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납치사건에 대해서 여쭐 수 있을까요?”
내 질문에 로버트는 얼굴이 밝아졌다.
“혹시, 이번 사건도 해결해 주실 생각이십니까?”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도 납치범들이 활동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실정이라서요.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만, 저희들이 구한 아이들 이후로도 피해자가 생겼습니까?”
내가 물었다. 이번에 로버트를 찾은 이유는 이것을 묻기 위해서였다. 프랑이 미끼 역을 맡아도 납치범 새끼들이 손을 뗐다면 위장수사는 말짱 도루묵이니까 말이다.
내 말에 입술을 잘근 깨무는 로버트.
“……예. 저와 아이들을 납치한 도적단이 소탕된 이후에도 2명, 추가로 아이들이 실종됐다고 합니다.”
“로버트 씨는 그들이 현재도 활동 중이라고 보십니까?”
“모르겠습니다.”
로버트는 하나 뿐인 손을 피가 나도록 쥐었다. 분함을 참느라 저러는 것이었다.
“제가 따로 조사해 본 바로는 가장 최근에 실종된 아이는 5일 전부터 종적을 감췄더랍니다. 기존의 범행 간격은 3일 정도였다더군요. 보고되지 않은 피해자는 제외하고요.”
“소강 상태인가, 손을 뗀 건가. 미지수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의심되는 후보는 있습니까?”
“소름 돋는 이야기입니다만…… 너무 많아서 도리어 추리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큰 소리로 말하긴 힘들지만, 헤이스벤트는 살기 좋은 도시는 아니군요.”
내가 뇌까리자 로버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늘 같은 영주님께서는 저희 같은 서민들의 삶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하십니다.”
“그거 유감이군요. 여하튼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위험하기는 해도 로버트의 말을 믿자면 프랑의 위장수사는 무의미하지 않을 듯 했다. 로버트가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가시는 겁니까?”
“예. 좋은 결과를 들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군요.”
나는 그리 말하고 떠나려다가 발을 멈추고 질문했다.
“아아, 그렇지. 혹시 포션을 구매할 만한 곳이 없을까요? 상처회복과 해독 포션이 필요합니다만.”
“길드에 상비하는 중하품이 있으니 갖다 드리겠습니다.”
“그거 듣던 중에 기쁜 말씀입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중하품 포션 2개면 기본 2실버는 한다. 200만원을 이렇게 흔쾌히 쾌척해도 되나? 내가 놀람을 숨기며 묻자 로버트가 웃었다.
“영웅의 출전에는 흐드러지는 꽃잎과 개선곡이 필요합니다. 비록 남모를 곳에서 조용히 행하는 선행이라도 누군가는 그 영웅에게 조력해야지 않겠습니까.”
“하하. 영웅이라니. 낯뜨거운 칭찬입니다.”
자기랑 자기 여친 몸을 간수하기도 바쁜 석사 새끼한테는 조금 거창한 칭호였다. 하지만 로버트는 진심이 우러나오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부끄러워 마십시오. 저와 아이들에게는 국경선의 마스터 클래스보다, 웨인 씨 당신이 더 훌륭한 영웅이니까요.”
“그건 영광이군요.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노력하죠.”
나는 로버트가 가져온 포션을 제공받고 운송 길드를 떴다.
아 시발, 근데 이렇게 되면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아서 웨인의 이름으로 해야겠네. 안 그랬다간 노르드=아서 웨인인 게 로버트한테 개뽀록나게 생겼다.
‘쓰벌. 뭐 어때.’
아서 웨인은 뒷감당 회피용 신분이라고 생각하자.
사고를 칠 때는 이 모습으로 치는 식으로다가 말이다.
나와 프랑은 밤이 되자 몰래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시각은 해가 저문 8시 10분이었다. 서커스를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콜로세움에 모여든 시간대다.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놈든 기본적으로 의심해도 돼.’
특히 프랑을 쫓아가는 새끼가 있다면 90% 납치범이다. 난 허리춤의 검을 만지며 프랑에게 말했다.
“작전대로 가자. 이리 와.”
“아, 응.”
나는 프랑의 이마에 룬을 새겼다. 새기는 것은 당연히 정방향의 ᚲ(Kenaz)다. 시발 이쯤 되면 ᚲ(Kenaz) 원툴 아니냐?
“어때?”
“뭐, 뭔가 익숙해지기 힘든 느낌이네.”
이마를 매만지며 프랑이 쭈뼛거렸다.
“노르는 평소에 이거 써도 괜찮아? 막 먼 곳의 소리까지 다 들려서 기분이 이상해.”
“마나를 다루게 되면 금방 적응할 수 있어.”
글고 보니까 나는 감각이 변화한 위화감을 안 겪고 금방 적응해버렸네. 곡예를 배울 때도 그렇고, 내가 이쪽 방면에 재능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마나인가……. 나도 빨리 쓸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흐흐. 좀 봐 주라. 네가 마나까지 쓰면 내가 힘으로 못 당해내잖아.”
농담을 나누며 긴장을 푼 우리는 거리를 벌렸다.
‘됐어. 역시 조금 떨어져도 위치는 짐작이 가.’
나는 눈을 감고 프랑의 대략적인 위치를 가늠했다.
이번에 빌린 책을 읽고 안 건데, 룬 마법처럼 원거리에서 효과가 유지되는 마법은 위치추적에도 응용할 수 있다.
이런 추적방식은 술자 본인밖에 할 수 없는 거라서 내가 타뷸라의 가면 탓에 의문의 검은 조직에게 추격당할 걱정도 없었다.
“냐옹. (가자.)”
“어. 그래야지.”
어깨에 태운 떼걸룩이 나를 재촉했다.
프랑한테도 1마리 붙여놓았는데, 일회용 무전기 및 전서구(1회용) 삼아서 고용한 녀석들이었다. 반나절 노동의 보수가 생선 1/2마리인 생체 드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사삭.
프랑은 무방비하게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내 전용 GPS인 ᚲ(Kenaz)의 룬은 프랑의 감각에도 버프를 걸어준다. 저 룬은 프랑이 납치범에게 쉽게 당하지 않도록 하는 보험인 것이다.
나는 로버트한테 받은 포션도 프랑한테 전부 맡겼다. 조금이라도 프랑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크게 걱정하고 있지는 않다.
‘납치범들에게는 윗선이 있을 가능성이 커.’
나는 도적단 우두머리가 말하던 상인들을 떠올렸다.
납치범들이 아이들을 팔아넘기는 상대가 그놈들이다. 내가 족친 놈들은 타뷸라가 부른 고액의 보수에 낚여서 사르가디스 근처까지 왔다가 뒤졌지만, 원래는 여기에서 활동하던 도적단들이겠지.
‘그 놈들은 하청을 때려서 납치를 시킨다.’
본인들이 납치범들과 연관이 없을 수록 만일의 사태에 꼬리를 자르기도 편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