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 부모님한테도 무제한 요금제 팔아먹을 새끼들!
“드, 들어왔다! 정말로 들어왔어요♡!”
삥꾸삥꾸한 분홍색 로브를 입은 라리루라가 방방 뛰었다. 얼굴을 가리는 좌우 흑백의 가면을 쓰고 있어도 높은 텐션은 변함이 없었다.
“세상에 마상에! 정말로 입구에서 ‘알 만한 분이 이러시면 곤란한대용’하면서 쫓겨나지 않다니! 저 잠깐 기쁨의 눈물 좀 흘려도 될까요?!”
내 룬의 ‘인상 미채’ 효과로 경비를 뚫은 라리루라는 존나 기뻐보였다. 나도 그런 라리루라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징징대는 애는 우리집 애 아니야. 루리는 여기서 살아. 엄마는 집에 갈 거야.”
“앗! 아무렇지도 않게 애칭으로 부르지 말아주실래요? 뭔가요? 이 기회에 슈슛 하고 저와의 폴 인 러브적인 거리를 좁혀보려는 속셈이신가요? 저기 프랑 언니? 어떻게 생각하세요?”
“헤헤. 나도 저거에 당했어.”
“꺗♡! 로맨틱해♥!”
여자애들 감성은 존나 모르겠다. 이세계 여자애들 감성은 더더욱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포기하고 말했다.
“가자. 서커스 쇼 시작까지 40분도 안 남았어.”
이세계 애1미랜드의 중앙에 있는 천막에서 이곳 서커스단의 메인 쇼가 시작된다.
─호다닥!
우리는 조바심을 내며 거기로 이동했다. 시발거 한가로운 이세계 앰생들이 바글거리고 있어서 발 디딜 틈도 없는 건 아니겠지? 존나 그러면 라리루라-나-프랑으로 쌓는 트리플 브레맨 악대 간다. 딱 대라.
천막을 열고 들어가자 거기는 ‘아ㅋㅋ 이게 서커스지ㅋㅋ’ 같은 느낌으로 설계된 공간이었다.
약간 대학교나 고등학교 축제에서 사용될 법한 넓은 강당 둘레 360도에 의자가 빼곡히 있고, 거기에 앉을 수 있는 구조였다.
“다행이다. 자리가 꽤 비었어.”
프랑이 어두운 실내의 분위기에 맞춰서 조용하게 말했다. 그 말대로 첫날인데도 좌석은 30% 정도 비었다.
하기야 남들 다 일하는 시간에 10만원 내고 놀러가는 인간이 많지는 않겠지. 이만큼이나 모였다는 사실에 감탄해야 옳을 것이었다.
─털썩.
우리는 가장 공연 자리와 가까운 곳에 가서 앉았다.
“여기, 간단한 먹거리입니다.”
그러자 어느 남자가 다가와서 종이 봉투를 주었다. 난 그 남자를 눈으로 빠르게 훑고 그것을 받았다. 안에 든 것은 비스킷이었다. 봉투 입구를 접어서 좌석 옆에 내려뒀다.
“아핫! 두근두근하네요♡ 서커스 외길 10년인 저도 관객 입장에서 서커스를 구경하는 건 처음이에요☆!”
“조용히 해. 남들 들을라.”
‘인상 미채’는 말의 내용까지 숨겨주지는 못한다. 저 소릴 듣고 주위의 직원들이 강제로 쫓아낼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라리루라는 본인이 요금을 냈으니 내가 손해를 보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뿌뿌우우우우우!!
그렇게 나랑 라리루라가 주절대고 있는데, 시간이 다 됐는지 중앙 무대에서 서커스단원이 피리를 불었다.
─쿵! 쿵!
웅장한 피리소리를 동원하며 등장한 것은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었다.
코끼리는 기본 옵션에, 코뿔소, 사자, 호랑이와 곰까지!
그리고 그들을 통솔하는 것은 호랑이의 등 위에 탄 중년의 남자였다. 우스꽝스러운 모자에 비해서 옷차림은 멀끔해서 딱 봐도 높은 사람인 티가 났다.
“안녕하십니까! 이 자리를 찾아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
다른 서커스에서도 그렇듯이 서커스단장이 진행을 맡은 듯 했다.
“저는 로마니아 제일의 서커스단을 운영하는 남자! 로만 테일러입니다!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듯이, 저도 관객 여러분들 중에 익히 아는 분들이 계시는군요!”
로만 테일러는 말하면서 관객석의 한쪽을 쳐다봤다.
VIP석처럼 다른 좌석과 분리되어 있는 자리에는 호위를 동반한 뚱뚱한 여자가 있었다. 헤이스벤트의 대상인이나, 뭐 그런 사람이겠지.
“오늘은 영예로운 헤이스벤트의 지배자, 헤이스벤트 백작(Earl Hasevent)께서도 즐기셨던 저희 크뤼소스 서커스단의 쇼를──”
주절주절 떠드는 로만. 장황설이 이어질 듯한 예감에 나는 회중시계를 꺼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였지만 아직 오후 1시가 되기 전이었다.
‘시작 전에 분위기를 고조시키려 나왔나.’
21세기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 나는 회중시계를 도로 품에 넣고 로만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그때 프랑이 옆에서 내 손을 붙잡았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프랑은 밝게 웃었다.
이야 시발, 내가 인싸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영화관에서 손잡고 꽁냥대기’를 달성하게 되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그럼 길디 긴 서론은 이쯤 하고, 쇼를 시작하지요!”
로만의 말을 방아쇠로 사자 4마리가 무대 중앙에 모였다. 다른 동물들이 퇴장하자 사자들은 좁은 발판에 올라가서 긴장한 눈치로 뻣뻣하게 굳었다.
─파팟!
천막의 천장에서 마법의 랜턴이 켜졌다. 실내가 밝아지자 동물들은 눈부신 것처럼 눈을 감았다.
“오직 크뤼소스 서커스에서만 즐길 수 있는 짐승들의 놀라운 쇼 타임! 즐기십시오!”
로만은 폭죽을 터트리며 사람용 입구로 돌아갔고, 거기서부터 쇼가 시작되었다.
“크르르르!!”
“컹! 어흥! 컹!”
사자들에게 노래를 시키거나, 호랑이가 불의 고리를 통과하거나, 말들이 공을 주고 받으며 랠리를 하거나 했다.
“이랴!!”
─철썩!
무대를 주도하는 것은 조련사로 보이는 남자였다.
곰들이 링을 돌리며 춤을 추는 것을 지휘하고, 코끼리들의 줄다리기를 심판하면서 쇼는 1시간 정도 진행됐다.
“아하하하! 후후후후!”
“그으으읏!! 꽤, 꽤 하네요☆!! 하지만 이 정도라면 아직 저희들 쪽이 더……!!”
익살맞은 원숭이들이 사과를 들고 경주하는 광경에 프랑과 라리루라도 제각각 즐기는 듯 했다.
관객석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밝았다.
그 다음 쇼로 이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아! 이걸로 세계 방방곳곳에서 모인 진수(珍獸)들의 쇼는 끝입니다!”
원숭이들의 북 연주가 끝나자 다시 나타난 로만이 말했다. 실컷 즐기던 객석의 분위기는 그 말에 다운되었는데, 로만은 그것을 노린 것처럼 팔을 펼쳤다.
“그러나 사람이 펼치는 메인 쇼는 이제부터입니다! 서커스의 피날레는 언제나 즐거워야죠!”
해맑은 웃음을 띄운 중년의 남자는 동물들이 출입하던 입구를 가리켰다.
“소개합니다! 두 얼굴의 사나이──!! 세상에 둘도 없는 저주받은 남자!!! 스파이── 크!! 올즈라이언──!!!”
천막의 랜턴이 꺼지고 스포트라이트처럼 음산한 빛이 입구를 가리켰다. ─뚜버벅. 뚜버벅. 이상한 발소리를 내며 어느 남자가 무대에 올랐다.
“아닛?!”
“허어어…….”
“꺄아아아아아아악!!”
관객들이 그 남자의 등장에 비명을 질렀다. 그만큼 그의 모습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읏.”
내 손을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프랑은 입을 막고 경악한 것처럼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대에 선 남자는 머리가 2개였다.
““안녕하십니까!!””
샴쌍둥이. 그렇게 불리는 기형의 쌍둥이였다.
그는 몸에 큼지막한 서커스단원 옷을 입었는데, 일반적인 사람보다 가로로 넓었기에 내게는 그 옷 안의 모습이 상상이 갔다.
““저희처럼 갈 곳 없는 이들을 구제해 주신 테일러 단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이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두 남자는 똑같이 생긴 얼굴로 일그러진 웃음을 지었다.
““저주받은 이들의 프릭쇼! 부디 즐겨 주십시오!!””
지구의 서양권에서 말하는 광대에는 2종류가 있다.
하나는 클라운(Clown). 라리루라처럼 미소를 지으며 쇼를 펼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광대다.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하고 곡예나 코미디를 펼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피에로(Pierrot).
절대 미소를 짓지 않고 공연 내내 울상이나 무표정한 표정을 짓는 광대다.
사람들 중에 피에로 공포증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이 피에로들은 가끔 무섭게 분장을 하기 때문이다.
피에로는 무섭고 소름 끼치는 분위기로 관객들을 휘어잡는 컨셉을 잡고는 한다. 마치 원시적인 공포영화처럼.
그렇기에 과학에 대한 지식이 발달하지 않은 이 세상에서 ‘기형아’들의 생계수단이 그곳으로 향하는 것은── 어떤 의미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투르르르르륵─!
북을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충격적인 쇼가 펼쳐졌다.
그것은 인간의 가치기준이나 상식에 정면으로 반하는 듯한 쇼였다.
무성(無聲)의 공포영화처럼 머리가 두 개인 샴쌍둥이의 남자가 천막의 정상에 매달린 그늘에 앉았다. 억지로 지은 웃음은 비틀린 감성으로 보자면 어떤 의미로 웃기기도 했다.
남자처럼 수염을 길게 기른 외팔의 여자 드워프는 똑같이 팔이 없는 남자를 목말을 태웠다. 그러고서 둘이서 저글링을 펼쳤다.
─우수수!
─철푸덕!
하지만 두 외팔이 남녀의 저글링은 10초도 가지 못하고 실패했다. 외팔이라고는 해도 순혈 드워프로 보이는 여성이 4개짜리 저글링을 저렇게 실패할까?
아니, 저것은 일부러 연출한 장면일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본 로만이 낄낄대는 것이 증거였다.
“이런! 저희 단원들이 긴장을 한 모양이군요! 공이 무서웠나 봅니다! 초임의 광대는 다 그런 법이죠!”
“하하하하!! 두 사람이 모여도 동물만도 못하군!!”
“우후후후훗. 정말이지 꼴사납네요.”
관객석에서는 괴기스러운 기형아들의 추태에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가. 그래서 평민계층이 아니라 부호층을 타겟으로 삼은 것이었다. 높은 입장료를 벌어들일 수 있을 뿐더러, 우월감을 가지고 사는 이들일 수록 저 쇼를 즐겁게 관람할 테니까.
─드르르륵. 드르르르륵.
다시 동물용 입구에서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타났다.
그것은 엉덩이 아래로 하반신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입에 밧줄을 물고서 무대 장치를 끌고 있었다.
“윽, 으윽…?!”
숨을 가빠한 프랑을 더욱이 경악시킨 것은 그때부터였다.
무대장치에는 과녁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두 팔이 없는 남자가 매달려 있었다. 어깨와 머리에 사과를 달고 말이다.
클라라의 대장간에서도 봤던 과녁과 거기에 매달린 남자! 프랑은 저 광경을 보고 무엇이 일어날지 예상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뚜벅. 뚜벅.
크게 내는 듯한 발소리를 울리며 무대에 여성이 나타났다. 저번에 콜로세움 앞에서 봤던 아나시스 세르피아였다.
아나시스는 천천히 걸어왔다. 무대의 기형아들과 대비되게 길게 뻗은 지체를 자랑하듯이.
촤르르륵─!
과녁 앞에 선 아나시스가 나이프를 던지자 칼날이 공중에 떠올랐다. 내가 모르는 마법이었다. 무슨 용도로 사용하는 것인지는 쥐뿔도 궁금하지 않았다.
이만 됐다. 이제 충분하다.
“──프랑. 나가자.”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랑은 조용히 일어나서 나를 따라왔다. 붙잡은 손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라리루라? 넌 어쩔 거냐?”
“나갈게요. 더 이상은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아졌어요.”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었던 차가운 말투였다.
우리는 그렇게 조용하게 천막을 빠져나왔다.
나는 프랑이 진정할 수 있도록 근처의 카페에 들어갔다.
솔직히 이 서커스단이랑 연관이 있는 새끼들한테 한 푼도 내 주고 싶지 않았지만, 누가 개새끼들 아니랄까봐 앉아서 쉴 곳이 아무 데도 없었던 것이다.
“후우……. 노르. 이제 진정됐어. 걱정 끼쳤지?”
시켜놓은 따듯한 음료에 입도 안 대던 프랑이 말했다. ─촤악! 나는 내 앞에 놓인 음료를 근처의 화단에 뿌려버렸다.
“그다지 자랑스럽게 말할 내용은 아니지만…… 저런 서커스단은 생각보다 흔하다고 들었어요.”
라리루라는 가면을 벗고 말했다. 로브의 후드를 깊이 썼기 때문에 서커스단원들한테 들키지는 않을 것이었다.
나는 찻잔을 대충 테이블에 던지고 대답했다.
“기형아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구걸이나 저런 프릭쇼(Freak Show)가 전부니까.”
좆 같은 사실이지만 현실이 그랬다.
기형아나 장애인은 21세기에서도 차별과 박해의 대상이다. 계몽주의가 퍼지지도 않았고 교육열도 낮은 이세계에서는 존나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나도 솔직히 기분은 더러웠지만 저것 자체를 뭐라고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무슨 PC주의자도 아니니까.’
저들이 비웃음을 사며 사는 것과 굶어죽는 것 중에서 전자를 선택한 결과가 저것일 것이었다.
남의 생계수단을 내 윤리도덕 때문에 좆창냈다간 저들에게 원망이나 사겠지. 이세계에서 장애인들의 처우나 인식이 얼마나 처참한지는 누구나 안다.
‘운송 길드의 로버트도 그렇지.’
로버트는 길드장의 아들이다. 운송 길드가 아무리 알라딘 서울대입구역점 수준의 입지라고는 해도, 절대 깔볼 대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10실버라는 거금을 자기 재량만으로 쾌척하는 사람의 아들이 행상인 노릇을 하다가 동네 도적들한테 납치를 당한다?
판타지 TRPG의 스토리라면 정석적인 국룰이지만 여기는 사람들이 사는 이세계다.
뭣하러 운송 길드장의 아들이 이세계 3D업계의 대표격인 행상인 일을 하려 들겠는가.
‘이유야 명확하지.’
길드의 대표로서 취임하기에는, 외팔이라는 사실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이렇듯 장애인의 인권과 인식이 바닥을 치는 세상에서 내가 저들의 삶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 뭣하겠는가.
보통이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보통이라면, 말이야.’
나는 라리루라의 안색을 살폈다. 벌레를 씹은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참는 듯한 얼굴이었다.
‘솔직히 얘네나 쟤네, 둘 중 하나라고 봤는데.’
유력한 후보는 처음부터 이 서커스단과 라리루라의 서커스단, 두 개였다.
이유가 뭐냐고? 시발 솔직히 의심하지 않는 편이 이상한 것 아니냐?
납치사건이 일어나는 도시의 서커스단! 누가 봐도 존나 퇴폐적이고 수상한 느낌이 나지 않는가. 그래서 그냥 감으로다가 용의자 리스트에 픽업해 놨을 뿐이다.
그런데 라리루라의 서커스단은 관찰할 수록 용의선상에서 내려갔다.
저 서커스단은 인재를 밝히긴 했지만 숙박하는 여관이 따로 있다. 인재를 교육하기에도 일정이 타이트하다.
‘반면에 여기는 다르지.’
이 놈들은 영주에게 서커스를 보여주며 저택에 머물렀다.
거리에서 영업을 시작한 뒤에는 부지를 넓게 잡았다. 이곳의 천막들 중에 아이들을 숨길 공간은 얼마든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