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98/1,009)

【그대여. 그 고양이와는 아는 사이인가?】

망아지는 일어나서 고양이의 몰골을 보고 말했다.

【다쳤구나. 허나 중상은 아니야. 피는…… 다른 아이의 것이군.】

다른 아이?

“아, 이런 염병할.”

그러고 보니까 다른 2마리가 없었다. 이 녀석만 살아서 돌아온 건가?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설마 에리카를 노렸다고? 대체 어느 틈에?’

에리카를 노릴 거라고 상상은 했었다.

아나시스는 처음부터 라리루라를 노렸다. 그리고 에리카는 라리루라와 만나서 친해졌다. 아나시스가 그걸 알고 있었다면 당연히 그 애한테도 손을 써놨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알고도 나는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경비대가 순찰하는 대낮에 에리카를 납치할 방법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화재 때문에 경비대가 순찰을 멈췄나?’

그리 생각했지만 아닐 확률이 컸다.

경비대도 납치범들의 양동작전을 걱정했는지 화재에는 딱 필요한 만큼의 인원만을 배치했다. 나머지 인원은 계속 거리 주변을 경계하고 있을 텐데?

【그대여. 내 마나를 회복시킬 방법은 없는가? 이 아이를 치료하고 사정을 들으면 될 것이다.】

혼란스러워 하는 내게 망아지가 말을 걸었다. 이 녀석 치료도 할 줄 아는 건가?

【마나 회복? 제길, 포션밖에 없는데. 이거 너한테도 효과 있냐?】

【포션. 인간들이 만든 신비로운 물 말이로군. 상관없다. 마시게 해 다오.】

【자. 입 벌려.】

나는 파우치에서 꺼낸 마나 포션을 망아지에게 먹였다.

병 입구에서 입을 떼고 쏟아붓듯이 마시게 했다. 망아지는 그 포션을 반 병 가까이 마셨다.

【그만. 이제 충분하다. 마나가 이 이상 회복되어봤자 체력이 떨어진 나는 제대로 못 다룰 터.】

“이걸로 됐어? 그러면 지금 너랑 텔레파시가 되는 마법, 이 녀석한테도 걸어줄 수 있겠냐?”

【……고양이의 말까지 할 수 있나? 여하튼 알겠다. 그리 하마.】

망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룬을 연달아 외웠다.

“ᚢ(Uruz). ᚴ(Kaunan).”

말의 성대구조로 용케도 인간의 발음을 해내는 망아지. 그 사실에 놀랄 시간도 없이 고양이의 상처는 빠르게 치유가 되기 시작했다.

【상처는 메웠으나 체력은 돌아오지 않는다. ᚴ(Kaunan)의 룬으로 심념(心念)을 이었으니 마음으로 대화하거라.】

【고맙다.】

나는 망아지에게 인사하고 고양이에게 물었다. 사정을 듣지 않고도 짐작은 갔지만,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이었다.

【이 상처는 어떻게 된 거야? 누구한테 당했어?】

【……검은 옷의, 인간 여자….】

고양이가 느릿하게 말했다. 의식이 간당간당하게 이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네가 부탁한 새끼 인간은… 자기 발로 저기에 들어갔어…….】

【──뭐?】

【우리들두 쫓아서 안에 들어갔는데…… 인간이 쓰는 무기가 날아왔어……. 내 친구들, 거기에 맞아서 죽었어…….】

죽었다는 말에는 심장이 철렁했다. 내가 부탁한 일 때문에 그 고양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뜻이었으니까.

인간조차 픽픽 죽어가는 이세계에서 길고양이들은 모두 오늘내일 하는 생물이다. 그 사실은 나도 잘 알지만, 나 때문에 죽었다고 하면 느낌이 또 다른 법이었다.

【인간 여자…… 날 밖으로 던졌어.】

고양이는 앞발로 바닥을 긁었다.

【나 저기 앞에 쓰러져 있다가, 네 냄새를 맡고 왔어……. 부탁해…. 내 친구들의… 복수를…….】

─풀썩! 말을 하던 고양이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나는 급하게 그 고양이의 맥박을 짚었다. 심장은 뛴다. 기절했을 뿐이었다.

【그 아이는 뭐라고 했지? 나는 고양이의 말을 모른다.】

【……내가 지켜주려던 애가 자기 발로 우리가 탈출한 서커스단에 들어갔댄다.】

【그런가. 둘 중 하나겠군. 배신자던가, 조종당했던가.】

망아지는 냉정하게 지적했다. 그 말에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눈앞이 띵해졌다.

조종을 당해?

조금의 비유도 과장도 없이, 그것이야말로 정답이었다.

“……<꼭두극>.”

마나의 실을 이어서 물체를 조종하는 <꼭두극> 마법.

그게 아나시스가 타겟에게 거는 마법이었던 것이다.

‘노르드, 이 시발 병신 새끼야!’

왜 눈치를 채지 못한 거냐! 단서는 잔뜩 있었잖아! 나는 자책하면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망아지는 마법의 사용으로 지친 것처럼 숨을 뱉었다.

【그대여. <꼭두극>이란 어떤 마법인가.】

【물체를 조종하는 마법이야. 실처럼 보이는 마나의 패스를 연결해서, 원하는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지.】

【그걸 부여마법으로 발동해서 원거리에서 실 없이 조종을 했단 말이냐?】

망아지가 믿기지 않는다는 것처럼 말했다.

<꼭두극>에 사용되는 실 같은 모양의 마나는 사실 와이파이에 가깝다. 신호를 연결해서 ‘통로’를 생성하는 역할이기에 끊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부여마법을 사용하면 실을 만들지 않고도 원거리에서 에리카의 몸을 조종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아니, 말도 안 된다. 사람의 의지를 빼앗고 몸을 조종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마법이라면 그리 쉽게 해주될 리가 없어.】

【<꼭두극>은 강력한 마법이 아니야. 마나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 상대라도 자유자재로 조종하지는 못 해.】

나는 망아지의 말을 긍정했다.

일부러 꼭두각시라는 골렘의 종류를 개발한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내부에 스스로 움직이는 기관 대신에 마법의 효과를 높이는 마법진 같은 걸 짜 넣는다.

【하지만 어린아이라면? 마나를 다루기는커녕 육체적인 힘도 거의 없는 어린아이가, 잠이 들어서 의식마저 없을 때를 노린다면?】

그렇다면 가능하다.

로잔나는 말했다. 자신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어느샌가 서커스단에 붙잡혀 있었다고.

‘그건 생각해보면 모순적인 이야기지.’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납치할 수 있는 도적이라고?

그런 놈이 왜 유아 납치범이나 하고 있겠는가. 아주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로잔나와 다른 아이들은 정체 모를 대도(大盜)에게 납치당한 것이 아니다.

잠이 든 시간을 노려서 발동한 <꼭두극>에 이끌려서 자기 발로 서커스단에 갔고── 거기서 붙잡혔던 것이었다.

나는 이빨을 갈았다. 한심한 놈 같으니. 어째서 이 위화감을 놓쳤단 말인가. 문제가 술술 풀리는 기분에 취해 있기라도 했었나?

【그렇다면 있을 수 있겠군. 하지만 지금은 대낮이다. 그대가 지키려던 아이에게는 수면마법까지 걸어놨을지도 모르겠어.】

망아지가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지금 같은 백주대낮이라면 어린아이가 혼자 돌아다녀도 경비대는 의심을 안 할 테니까. 나는 혀를 찼다.

‘생각할 수록 역겹군.’

아나시스의 행동은 편집증적인 증세가 느껴질 정도로 역겹고 치밀했다.

아이들 자유를 언제든 뺏을 수 있었으면서, 도망쳐도 소용없는 결계까지 설치하고, 빠져나간 아이들 중 일부는 본보기로 살인 호랑이에게 먹인다.

시민들과 대화도 불가능한 외국에서 그런 경험을 겪으면 누구라도 도망 따윈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중학교도 안 들어갈 나이의 아이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제 발로 좁은 상자에 기어들어가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내가 지켜보는 동안에는 에리카는 이 주변에 오지 않았어. 우리가 탈출하기 전부터 저 새끼들은 에리카를 안에 들여놨던 거야.】

다시 말해서 아나시스는 라리루라의 침입을 깨닫고 바로 대책을 취한 것이었다.

위기를 짐작하자마자 인질로 쓸 아이를 납치해 오다니. 대처가 늦었던 건 적극적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부하들이 10명 이하의 조련사들밖에 없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자신의 안일한 판단에 치가 떨렸다. 망아지는 내 기분을 신경쓰듯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대여. 이 고양이에게도 마법이 부여되어 있다. 우리의 위치를 알아낼 생각으로 보낸 것처럼 보이는군.】

【시발. 진짜냐.】

안 좋은 소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고양이를 의심하고 마법을 걸어서 풀어줬다고? 아나시스는 <동물 회화> 마법을 아는 건가? 아니, 그게 아니어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느낌으로 행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썅년의 도박은 성공했다.

고양이는 내 옆에서 기절했고, 저 놈들이 속는 셈 치고 이 골목에 사람을 보내면 우리 위치는 발각된다.

【어쩔 거지?】

망아지는 그런 말로 내게 의견을 물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시발, 시발!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

‘생각해라. 생각해!’

프랑과 라리루라가 와 봤자 상대한테는 인질이 있다.

양동작전을 펼쳐서 에리카를 구할까? 개소리. 라리루라가 있는 것만으로도 아나시스는 에리카를 가장 엄중하게 지키려 들 것이었다. 인질은 상대방에게 중요한 사람일 수록 효과가 커지니까.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 뿐이다.

【──나 혼자 간다.】

그게 가장 나았다.

아나시스가 인질의 가치를 의심하게 만들고.

내부에서 ‘새로운 협력자’들을 회유할 수 있는 인간.

그런 놈은 나 혼자밖에 없었으니까.

【그대여, 그 생각은 과히 무모하다. 저들은 한 차례 습격을 받아서 경계심이 가득 올랐을 것이다.】

망아지는 내 중얼거림을 듣고 정색을 했다.

【룬을 잘 사용하면 기척은 숨길 수 있을지 모르나, 그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일단 자리를 피해서 일행들과 별개의 장소에서 합류해라. 작전은 새로 짜면 된다.】

【아니, 안 돼. 인질이 잡혔으니 작전을 세워도 의미가 없어.】

나는 21세기 지구의 테러리스트 대응 철칙을 떠올리며 그리 말했다.

대 테러 특수부대원들은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 인질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두는 것은 좋지만, 인질 구조를 중점으로 작전을 짜서는 플랜이 쉽게 붕괴해 버린다.

【저 놈들은 지금만 경계하고 끝나지 않을 거야. 일이 커졌으니 이 도시를 떠날 때까지 장사를 접고 계속 습격에 대비하겠지.】

──그러니까 지금이다.

지금이라면 아직 화재의 혼란이 수습되지 않았다. 경비대도 서커스단에 주의를 기울이는 중이다.

서커스단 놈들도 범죄의 흔적을 감추고 우리의 흔적을 찾느라 분주할 것이었다. 우리가 습격자라는 증거만 찾으면 그걸 이용해서 우리를 고발할 수도 있으니까.

이 타이밍의 기습이야말로 최적해(最適解)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망아지에게 말했다.

【망아지. 미안한데 여기서 헤어지자. 그 고양이를 데리고 멀리 떨어져. 걔한테 걸린 마법은 알아서 해주할 수 있지?】

【……그 정도는 가능하다. 하지만 내게 습격을 도울 기력은 남지 않았다. 정말로 그대 혼자서 기습할 셈인가?】

【그게 제일 나아.】

혼란에서 방금 벗어났을 뿐인 내 머리로는 이 이상의 작전이 떠오르지 않았다.

에리카의 목숨을 제쳐두고 계산하면 더 좋은 방법이 있겠지만, 그럴 바에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좋다. 전사의 출전을 방해하는 무례는 범하지 않으마.】

망아지는 일어나서 고양이를 입에 물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다. 반드시 다시 만나자. 그때는 오늘의 보은(報恩)과 함께 나의 이름을 밝히겠노라.】

【다음에 만났을 때는 어디 마굿간에서 코 뚫려 있는 거 아니냐?】

【닥치거라.】

─푸르릉. 코웃음을 흘린 망아지는 골목길로 사라졌다.

나는 그녀(?)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한숨을 쉬었다. 서커스단에서 훔쳐온 피에로 가면을 뒤집어썼다.

흐미 시발 냄새 개구려. 제대로 눈구멍과 콧구멍을 맞추고 룬을 새겨서 발동한다. ─휘리리릭! 마나가 빨려들어갔다.

‘로브가 없으니 불안하군.’

완전히 어쌔신 느낌이었던 아서 웨인의 코스튬에 적응한 탓일까? 갑옷도 로브도 안 입은 지금은 벌거숭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뭐 됐다. 옷이야 안에서 훔쳐 입어도 될 일이다.

나는 남은 마나 포션을 원샷 때리고 담장을 뛰어넘었다.

기습의 묘리는 은밀함과 속전속결이다.

은신의 효과를 너무 믿는 것도 병신짓이었다. 저번에도 프랑을 뒤쫓다가 경비병한테 들켰으니까.

─사사삿!

나는 주변을 경계하면서 까맣게 탄 서커스단의 천막을 잘 피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조련사들 중에서 3명을 내가 죽여 놔서 그런지 사람은 이쪽에 거의 없었다.

“씨발!! 이 목걸이, 도노반이잖아!! 그럼 옆에 있는 시체는 니콜란이냐?!”

“그 새끼들 신원 파악은 나중에 해! 있다가 집합하면 결원이 누구인지는 다 나와!! 그보다는 바이콘이랑 인질 놈들의 흔적을 찾아!!”

화재 현장을 뒤적거리면서 조련사들이 소란을 피워댔다.

경비병들은 없다. 들여보냈다가는 좆 되는 수가 있으니 밖에서 핑계를 대면서 막고 있는 걸까? 이유가 뭐든 나한테는 좋은 징조였다.

천막과 천막을 빠르게 가로지르면서 몸을 숨겼다. 그렇게 나는 결계가 해제된 서커스단의 중심부로 달려갔다.

내가 급조해낸 작전대로 굴러가려면 추가 협력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분명히 이쪽에 있을 것이었다.

발을 멈추고 천막 뒤에 숨어서 목표를 살폈다. 조련사 두 명이 긴장된 얼굴로 서 있었다.

‘경비 중인가. 예상대로야.’

빠르게 제압하고 다시 소란을 일으키자.

─화륵!!

주문을 외워서 <타오르는 손길>을 발동했다. 검이나 몸에 피가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지구용사의 힘을 각력에 담아서 초고속으로 대쉬!!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10미터의 거리를 파고들어서 양손을 동시에 휘둘렀다.

“베를린의 붉은 빛.”

한 놈의 목을 날리고 다른 놈의 배때지에 불타는 손을 쑤셔박았다.

“꺼어어억…!!”

불에 달궈진데다 강철보다 단단하기까지 한 손이 배때지를 쑤시자 조련사가 입을 벌리며 절규했다.

“어허. 얌전히 있어. 가을에도 배탈이 안 나려면 배를 따듯하게 해야지.”

“끄르르르륵……?!”

조련사(는)은 거품광선를(을) 사용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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