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105/1,009)

모험가들이 핏대를 세우면서 외치자 접수원도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목청의 크기로 선발되기라도 했는지 접수원은 목소리가 뒤지게 컸다.

“수백 마리를 넘는 골렘이 발생했으나 그중 도시를 습격한 것은 일부입니다!! 사르가디스의 길드들이 조사한 결과로는 자연발생이나 고대문명의 유적에서 쏟아져 나온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고대문명의 유적이면 위험한 것 아니오?!”

모험가 중 한 사람이 외쳤다.

저 말도 맞다. 고대 유적에서 기어나온 골렘들은 절대 멀쩡한 놈들이 아닐 것이었다. 특히 이 시대까지 남아서 움직일 정도의 고급품이라면 말이다.

근데 나는 안다. 보통 그런 케이스는 거의 없다는 걸.

“아닙니다! 고대문명에서 만들어진 골렘이 아닌, 묻혀 있던 실내에서 세월이 흘러 생성된 엘리멘탈 골렘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엘리멘탈 골렘?”

프랑이 잘 모르겠다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귀를 쫑긋 세운 라리루라가 나 대신 설명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골렘을 그렇게도 말하죠☆!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생성된 골렘이에요!”

“흙에 마나가 고였는데 압력이 부족해서 희귀금속이 되지 못하면 엘리멘탈 골렘이 되기 쉬워. 이런 케이스는 저번에 말했던 흙 골렘 같은 놈들이 되는 거야.”

내가 내용을 추가해서 말했다. 프랑은 우리의 설명에 뭔가 떠오른 것처럼 손가락을 세웠다.

“앗, 들어본 적 있어! 니다벨리르에서도 광산에서 흙 골렘이 자주 나온다고 했었거든! 그게 그래서였구나.”

“저도 자세한 원리까지는 몰랐어요! 아핫♡, 선배도 참~ 똑똑하셔라!”

“흐흐. 내 얼굴에 금칠해도 나오는 거 없다.”

우리가 얘기하는 것을 듣고 주변의 남자 모험가들이 혀를 차거나 나를 째려봤다.

“쯧!”

“칫.”

지들이 훔쳐들어 놓고 왜 저 지랄들인지 모르겠구만. 내가 뭐 양다리 하렘남으로도 보였나. 나는 아직 여자친구라곤 한 명밖에 없는 건전한 이세계 브남충인데.

의아해 하는 눈빛을 보내자 급하게 눈을 내리까는 그들. 플레이트가 안 보이도록 잘 숨겨서 다행이다. 아딱이인 걸 들켰으면 100% 시비가 걸렸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현재 사르가디스에서는 영주님의 지휘 아래에 임시 길드 연합이 설립되었습니다!”

접수원은 주변의 소란이나 잡음에는 신경을 쓰고 자기가 할 말만 빠르게 내뱉었다.

“모험가 길드 3개, 마법사 길드, 사냥꾼 길드를 포함하여 총 6개의 길드가 보수와 사르가디스 방호를 위하여 경비대와 협력 중입니다!! 헤이스벤트의 길드들에도 원호 요청이 와 있으므로, 관심이 있으신 분은 자율적으로 참여해 주십시오!!”

“참여라니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발생한 흙 골렘들에게는 코어가 있습니다!! 그걸 채취해 길드로 가져오시면 실적과 보수를 내 드립니다!!”

여자 모험가의 질문에 접수원이 말했다. 코어는 대부분의 자율기동 골렘이 공유하는 약점이자 심장이다. 자연 발생한 흙 골렘이라도 가지고는 있겠지.

‘코어라.’

생각해 보니까 이 이벤트에는 나도 참여할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나는 아나시스한테서 루팅한 부여마법 책을 떠올렸다. 아직 3페이지도 읽지 못했지만 내용이 뭔지는 대충 안다. 마법을 부여한 매직 아이템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매직 아이템 제작에는 언제나 마나를 품은 재료가 들어간다.

예를 들어서 룬을 새긴 가면을 만들 거라면 룬 문자를 쓸 염료는 마나가 담긴 특수한 연금용액이나 가루를 써야 되는 것이다.

“자연발생 골렘이므로 위험도는 코어에 비례합니다!! 흙 골렘의 코어 크기는 곧 덩치의 크기로도 이어지니, 그것으로 적의 강함을 짐작하고 토벌해 주십시오!!”

“가장 중요한 보수에 대해서 말씀을 안 하셨어요!!”

“보수는 코어의 무게에 맞춰 지불합니다!! 마법 재료로 쓸 수 있는 코어는 고가로 판매되니, 열띈 참여 부탁드립니다!!”

고함을 주고 받는 이들의 말을 듣고 우리는 골렘들의 주요 서식지와 개괄적인 정보를 획득했다.

강함은 최소 아딱이에서 최대 실버로 짐작 중.

실버 클래스의 골렘은 덩치가 존나 크고 속도도 느리기 때문에 함부로 덤비지만 않으면 된댄다. 다행히 비선공형 보스몹이라서 밥 먹다가 쳐맞고 빈대떡 부쳐질 일은 없겠다.

“우리도 가 볼까?”

프랑이 성벽 바깥을 멀리 내다보며 말했다. 사르가디스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사르가디스는 걱정 없을 걸. 자연 발생한 골렘은 움직임에 통일성이 없어. 뭘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어라? 마을을 습격하는 경우는 꽤 된다고 들었는데요!”

라리루라가 질문하는 학생처럼 손을 들며 물었다. 링링이 3호까지 움직이지 말렴 욘석아. 지나가던 사람들 놀래잖아.

“골렘이 사람 사는 곳을 습격하는 건 자연산 골렘은 돌멩이나 흙을 몸에 채우는 습성이 있어서 그런 거야. 돌로 만든 성벽에 이끌리는 거지. 마법사 길드 같은 곳에는 마나가 담긴 돌도 있고.”

“성벽에 몰려든다구? 그런데 왜 위험하지가 않아?”

“골렘에게는 해자를 넘을 지능이 없어용.”

우르르 몰려와서 와르르 해자에 빠지면 거따가 마법이나 창질을 해서 조지면 만사 OK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골렘이 뒤져서 흙으로 돌아가면 해자가 막힌다는 점일까. 그래도 이 배수로 작업 500배는 아딱이들의 가을철 일감이 되겠지.

하하하. 미개한 심해 티어 놈들. 배수로 작업(포대에 실고 사다리로 해자 기어올라가야 됨) 맛 좀 보싈?

“흙 골렘이 수백 채나 있다는 곳만 피해서 테두리의 낙오 골렘만 잡아 볼까? 자연산 골렘의 코어 정도면 이번에 부여 마법 연습용으로 쓰기는 차고도 남을 텐데.”

“부여 마법♡! 크라운 크라운 님의 저서 말이군요!!”

라리루라는 두 손을 모으면서 하트를 뿅뿅 날려댔다.

“선배, 선배!! 어떻던가요?! 그 책은 어떤 내용이었어요?!”

“아직 안 읽음.”

“네엣?! 기껏 얻었는데 왜요?! 그건 인생의 절반은 손해를 보고 있는 거라구요!!”

“인생 전부 손해볼 때까지 존버 갈 거임. 말리지 마렴.”

개소리를 떠들면서 프랑을 보니까 내 의견에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아, 인생 존버에 동의한다는 것이 아니라 골렘 사냥 여정에 떠날 생각이라는 뜻이었다.

“라리루라? 우리는 골렘 잡으러 가 볼게. 넌 어쩔래?”

“으음~.”

내 말에 고개를 모로 꼬는 라리루라.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도 갈게요☆! 벌 수 있을 때는 벌어두는 게 좋죠♥! 한 도시에 머물러서 공연만 하면서 먹고 살기는 힘들잖아요!”

“잘 생각했어.”

음유시인이든 서커스든 같은 도시에서 오래 있을 수록 돈 벌이는 점점 떨어진다.

같은 공연을 몇 번이고 다시 보면서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골수 팬밖에 없어서 그렇다. 그래서 공연 예술가들은 유람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검 손잡이를 쥐며 말했다.

“가자. 재료로 쓸 코어만 몇 개 줍고 오면 되겠지.”

당분간은 쉴 생각이었지만, 제 발로 굴러들어온 호박이다.

걷어차서 내용물만 싹싹 긁고 돌아오도록 하자.

“정말로 동물들이랑 대화를 하실 수 있으시네요.”

성밖에 나와서 생체 드론 시스템을 돌리는 나에게 라리루라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나는 대가리가 사각형인 뱀과 마음의 소리를 나누다가 대답했다.

“고향의 마법이야. 말이 통한다고 대화가 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것도 충분히 대단하다구요~? 서커스를 위해 태어난 듯한 사람이시네요, 선배는♡!”

“나더러 동물 조련사라도 하라고? 크크크. 관둬. 내 취향 아냐.”

예전에 초등학교 교실에서 햄스터를 키우다가 지들끼리 잡아먹고 죽어버렸던 기억은 지금도 눈에 선명하다.

동물이란 사람 친구보다 더 작별하기 쉬운 삶의 동반자인 것이다. 모험가 일을 같이할 정도의 동물 파트너는 조련하는 것부터가 난항일 것이고 말이다.

“짹짹!! (섹스!!)”

배가 터지게 밀을 쳐먹은 참새는 발정기 어필을 하면서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사르가디스와 헤이스벤트 사이의 초원에 돌처럼 굳어 있는 골렘 무리가 보였다. 세 보니까 10마리였다. 같은 곳에 모여가지고 개꿀잠이라도 자는 건가?

나는 그 놈들의 질감을 살피다가 혀를 찼다.

“염병. 진흙 골렘이잖아.”

골렘들은 그냥 흙이 아니라 진흙으로 된 놈들이었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골렘 중에서는 일반적인 흙으로 된 녀석들이 가장 상대하기 편하다. 부수기 쉽고 무르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강철 못지 않게 귀찮은 것이 진흙이다.

진흙은 검이나 망치로도 데미지를 주기 힘들다. 코어를 노리려고 해도 진흙이 방해가 된다.

그야말로 갯뻘에 숨은 게를 작살로 찔러 죽이는 것에 버금가는 난이도!

“이 시발 이세계 보령 머드 축제!!”

칼부터 몸까지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서 허우적거리는 건 싫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른 두 사람은 의견이 다른 모양이었다.

“진흙이면 맞아도 크게 다치진 않겠다.”

“움직임도 느리니까요~. 프랑 언니, 선배? 파묻혀서 숨이 막히지 않도록만 조심하세요☆!”

전투태세를 갖추는 파티의 여인들.

흠. 그런 사고방식도 있나? 하긴 더러워지는 것도 다치는 것 중에서 선택하라면 나도 골렘 피부팩을 하는 쪽을 고를 것이었다.

달팽이 크림이 아닌 골렘 크림! 효과가 있을까? 있다면 거칠어지기 쉬운 프랑의 손바닥에도 발라주고 싶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게 가진 손패의 차이를 깨달았다.

“크흐흐.”

그렇다. 책상물림의 대학원생 노예였던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야말로 석사(취직함)과 석사(취함) 정도로!

‘나와라, 불주먹에 밀려서 봉인되어 있던 나의 빙염룡이여.’

양손을 교차하며 주문을 외웠다.

듣기만 해도 짜릿해지는 소리를 내며 내 손이 푸르게 물들었다. 나는 두 팔을 들어서 Y자로 펼치면서 선언했다.

“매직키드 마수리, 노르드.”

강림.

가을바람보다 차가운 냉기가 나의 손끝에 머물렸다.

나는 겨울을 초래하는 자. 얼어붙은 혹한의 군주. 위대한 아렌델의 레릿꼬 마스터.

앞으로 10분 동안, 내 이름은 노르드 메네실이다.

“고대인이 사르가디스에 골렘을 풀었다!!!”

─쩌저적!! 야수회귀의 마나 코팅을 푸른 빛으로 물들이며 내가 외쳤다.

“전원 돌격!!! 놈들의 심장을 적출해라아아아아──앗!!!!”

“저기요. 이 사람 원래 싸울 때마다 이래요?”

“보다 보면 귀여워져.”

뒤에서 날아온 말에 뒤통수를 까인 기분이었지만, 괜찮아. 튕겨냈다. 프랑 눈에 귀엽다면 됐다.

“응애.”

─파파파팟!! 초원의 잡초를 파헤치면서 대쉬하자 돌 무더기처럼 보이던 골렘들이 밍기적 거리며 일어났다.

느리구나. 잠에서 깨어나는 것조차.

“굿 모닝!!”

─퍼석!! 나의 냉동펀치가 골렘의 대가리를 부쉈다.

물론 이 새끼들은 코어만이 급소였기에 대가리는 부숴도 별 의미가 없다. 머리통이 완전히 날아가도 잘만 보고 잘도 돌아다닌다.

근데 시발 그럼 대가리는 왜 있어. 존나 메인 카메라야?

“빠빠빠 빰빰 빠빠빠빠! 굿 모닝!! 빠빠빠 빰빰 빠빠빠빠!”

기상을 알리는 국룰 알림벨을 외치면서 주먹을 쏘아낸다.

기상나팔을 불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그건 마공 같은 거라서 나한테까지 데미지가 온다. 이까짓 잡몹들 상대로 내상을 입을 수는 없으니 참았다.

─퍼퍼퍼퍽!!

얼음 펀치의 러쉬는 골렘의 진흙을 얼려서 부수기 쉽게 만들어주었다.

급속냉동을 할 정도의 출력은 사실 나오지 않았는데, 튄 흙이 얼어서 털어내기 쉬워진다는 것만도 감지덕지였다.

뭐, 이런 커다란 부피의 골렘을 얼려버릴 정도라면 사람은 나랑 악수만 해도 10초만에 냉동-인육이 되어 버리겠지. <얼어붙는 손길>은 그렇게까지 강력한 마법이 아니었다.

“상천에 내려앉아라!! 사륜환!!!”

─푸슉!! 파헤친 가슴에서 코어를 뽑았다.

자연적으로 태어난 골렘들은 가슴 안쪽에 코어가 생긴다. 이 새끼들은 마나를 품은 돌이 금속이 되지 못하고 팔다리가 덕지덕지 붙은 것이라서 위치는 거의 비슷했다.

─와르르!

골렘은 주먹을 들려다가 무너져버렸다. 사람으로 치면 심장이랑 뇌를 뽑힌 거니까 저렇게 될 수밖에.

이걸로 한 마리 컷! 나는 다음 타겟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퍼석!!

근처에서는 프랑도 망치를 들고 싸우고 있었다. 나이프로 진흙 피부를 관통할 수는 없으니까 망치로 타협한 것이었다.

“좋네요~! 느린 표적은 좋네요~♡!!”

그때 홍소를 높인 라리루라가 마나의 실을 당겼다. ─끼리릭!! 손가락을 수도로 만든 링링이 3호가 골렘을 겨눴다.

“관절에 흙이 끼는 건 싫으니까~ 이걸로 해치워 드릴게요☆?”

─키이잉!

꼭두각시 피에로의 손톱에 빛이 고였다. 모여드는 마나! 난 뭐가 날아올지 눈치를 깔 수 있었다.

이세계의 AK47 격인 범용 공격마법!

“<마법의 화살(Magic Missile)>!!!”

“왜 선배가 주문을 외우세요?”

─투두두두두!! 라리루라의 어이없음과는 별개로 날아든 마법의 화살은 골렘 하나의 팔다리를 터트려버렸다.

<마법의 화살>의 투사체는 속도가 느린 편이었다. 그래도 풀 군장으로 3시간을 행군한 병장처럼 엉기적거리며 돌아 댕기는 골렘에게는 충분했다.

라리루라는 실을 당겨서 꼭두각시의 마법을 풀었다.

“저기요~ 프랑 언니? 진흙 투성이 되시지 말구 저랑 협업 안 하실래요? 저, 코어를 잘 뽑아낼 자신이 없어서요~♡”

“좋은 생각이네. 이거 생각보다 흙이 많이 튄다.”

─휙휙! 코어를 뽑은 손에서 흙을 털어낸 프랑이 말했다.

나도 골렘 하나를 붙잡고 기화냉동법을 시도하면서 의견을 하나 추가했다.

“팔다리부터 떨구고 코어는 나중에 뽑자. 이 새끼들 다리 없으면 도망도 못 치니까.”

“찬성♥!”

“나도 차, 찬성…♥?”

목소리 뭐야. 존나 귀엽네.

“끼요요요요요요욧──!!!”

프랑의 애교에 호랑이 기운, 아니 벡터맨 베어의 기운이 솟아난 나는 꽁꽁 언 골렘을 높이 들었다.

“새끼 꽤 무겁구만!!!”

그치만 지구용사의 힘을 다루는 매직 키드에게는 쌀 반가마니만도 못하다──앗!!

“아이스 블록── 빨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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