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힘껏 내던진 골렘은 다른 놈과 부딪혀서 흙더미가 되어 폭발사산했다. 사요나라, 굿바이, 아디오스다.
쿵…! 쿵…!
다른 흙 골렘들이 일로 몰려왔다. 내가 뽑은 코어에 관심을 가진 모양이었다.
살아있는 동족이라면 냅두지만 뒤진 동족의 심장은 갖고 싶은 모양이다. 약육강식의 세계를 살아가는 놈들 답구나. 아마 그런 걸 생각할 지능도 없겠지만.
나는 손의 온도를 더욱 낮추려고 마나를 짜내며 외쳤다.
“썰렁포!!”
─투확!! 달려드는 놈의 팔을 부쉈다.
이 시발, <얼어붙는 손길>의 효과 범위는 손 한정이라서 다리를 부수기가 존나 힘들었다. 부여 마법을 제대로 배우고 올 걸 그랬나!
“빙인 칠연무!!”
수도를 세운 손으로 다리를 자르고 골렘을 자빠트렸다. 쪼그려 앉았다가 일어나기가 무섭게 또 다음 놈이 덤벼든다!
“냉동빔! 프리즈볼트! 얼다세계!”
─퍽! 퍽! 투콱!
나는 쉴새없이 덤벼드는 놈들을 모조리 때리고 부서댔다.
“개새끼들아!! 기술 레파토리 동났어!! 그만 좀 와!!”
이 시발, 씹새들이 왜 나한테만 와!! 이 집 어그로 존나 잘 끄네!!
“갸아아악!! 입에 흙 들어갔다아악!!”
“아가리를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튼 그렇게 난장판인 전투가 이어졌다.
사지절단맨으로 진화한 내가 골렘의 팔다리를 때려부쉈고, <마법의 화살>이 전장을 수놓았다. 프랑은 망치로 골렘의 다리를 박살내다가 이후에는 서포트로 들어갔다.
“사라져라 보령의 망령──!!!”
내 마지막 어퍼컷을 피니쉬로 10마리의 골렘은 전멸했다.
지저분해지기는 했어도 무난하게 거둔 승리였다. 인터넷에 올리면 스캇충이라고 오해받고 1분만에 짤릴 듯한 비쥬얼이 됐다만, 까짓거 닦으면 되지 뭐.
“흐, 골렘…… 잘랐다고…….”
나는 흙탕물을 밟은 댕댕이처럼 몸을 쉐킷하면서 묻은 흙을 털었다. ─후두두둑!! 얼어붙은 흙들은 금속 갑옷인 것도 있어서 생각보다 쉽게 떨어졌다.
“다른 골렘들도 다들 이렇게 진흙으로 돼 있으려나. 뭔가 대처법을 생각해두는 편이 낫겠다.”
프랑이 망치를 손질용 천으로 닦으면서 말했다. 나는 우리 여친님의 말은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생물이기에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하려고 했다.
쓰러진 골렘에게서 피어오르는 갈색의 마나!
이제는 크게 놀랍지도 않은 광경이었다. 나는 팔을 벌리고 내게 날아드는 마나를 받아들였다.
파아앗─!
내 마나통이 늘어나는 감각!
이걸로 3번째로 겪는 마나 계승이었다.
“선배? 무슨 일 있어요?”
“어. 잠만 기다려 봐.”
라리루라가 갑자기 주댕이를 닥친 나를 이상하다는 것처럼 쳐다보며 물었다. 나는 대충 대답하며 <물 생성(Water Creation)> 마법으로 골렘의 코어를 깨끗하게 닦았다.
암만 봐도 마나가 깃든 것 외에는 평범하게 생긴 돌멩이였다. 표면에는 아무런 각인이나 글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 착각인가?’
나는 돌멩이를 보면서 눈알을 굴렸다.
지금까지 마나 계승은 모두 룬을 다룰 줄 아는 놈들을 조졌을 때만 일어났었다. 그래서 이 골렘들도 룬 마법으로 만든 녀석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던 것 같았다.
코어에 룬이 새겨진 것도 아닌데다가 흙더미에서 마나라곤 좆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골렘이라는 추측은 아마 맞다.
마법사 길드에서 전수조사를 했다고 하니까 아마도 석사 동장인 고고학자의 뇌피셜보다는 그쪽이 확실하겠지.
그러므로.
“이거 버닝 이벤트 각이냐?”
나는 몸 속에서 느껴지는 마나통의 상승량을 가늠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이번 해프닝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상당히 바빠질 듯 했다.
마나를 늘리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수련이다.
전사가 몸을 단련하거나 마법사가 명상을 하거나 하는 것은 모두 마나통을 늘리고 몸이 마나에 친숙해지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점에 있어서 내 몸에 발생하는 마나 계승은 일종의 치트키 역할을 한다.
남들이 몇 달을 수련해서 얻을 마나 상승을 하루만에 채울 수 있을 정도로.
근데 시발 이 속성수련법에도 문제도 쬐끔 있긴 하다.
‘마나 계승의 정확한 원리를 모루자나요.’
그러니까 앞으로 홉 고블린 주술사를 발견해서 겟또다제!! 이 지랄을 해도 마나통이 늘어날 거라고는 단언 못 하겠다.
산삼을 앉은 자리에서 다 쳐먹는다고 버프량이 곱연산으로 들어가서 병이 낫고 몸이 좋아지지는 않잖은가.
같은 몬스터를 잡아도 마나 계승이 얼마나 더 일어날지도 감이 안 오는 상황!
그런 나였기에 이번 기회는 놓치기 힘든 찬스였다.
‘골렘 경험치 효율 쌉오졌다.’
폭렙을 할 찬스 말이다.
골렘 10마리로부터 획득한 마나는 거의 극소량이었지만, 100마리 쯤 잡으면 타뷸라를 조졌을 때와 비슷한 정도의 상승량을 도모할 수 있을 듯 했다.
0.1%도 100번 모으면 10%가 되는 법!
2000년대에서 잼민이 시절부터 단련된 나의 경험치바(Bar) 계산능력이 꿈틀댔다!
이것은 일종의 버닝 이벤트이자 점핑 이벤트였다!
시발, 어? 몹 하나 잡을 때마다 스탯이 팍팍 늘어나는데! 이걸 놓치는 새끼가 병신이지!
스톤 골렘 잡을 때마다 내 INT가 1씩 늘어난다고 생각해 봐! 도저히 놓칠 수 없는 개꿀 이벤트란 말이지!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골렘은 내 원수가 아닐까? 하고.”
“이제 슬슬 선배의 인품도 감이 잡혀 오네요☆!”
라리루라는 돗자리 위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말했다. 얜 분장을 하고도 밥을 잘만 먹네. 숙련된 배우의 솜씨였다.
사극 배우들은 수염 때문에 식사하기 힘들다던데, 뺨에다 모양을 그려넣은 게 전부라서 별로 신경은 안 쓰이나 보다.
“들어보니 참 개성이 풍부한 분이시네요. 고고학자에 모험가에, 마법사에 전사에, 똑똑한가 싶으면 바보 같고, 이상하다 싶으면 정상적이고.”
“전혀요♡! 중구난방인 사고력은 광대의 재능이니까요☆!”
“나는 뷔페 같은 남자 노르드. 질리지 않는 맛의 변화구로 즐거움을 선사하는 남자지.”
“솔직히 매일 새롭긴 해.”
“프랑아. 지금 그 말은 약간 가슴이 시려오는데.”
아무튼 내 사정을 대충 들은─아서 웨인으로서 활동하던 것을 들켰기에 걍 말해버렸다─ 라리루라는 내 삶의 굴곡에 흥미를 보였다.
“과연과연. 흥미진진한 얘기였습니다♡! 옛날 얘기였다면 조금 각색해서 이야깃거리로 삼고 싶을 정도네요!”
“남의 비밀을 영업용 썰풀이에 쓰지 말려무나.”
유튜버와 만화가에게 개인적인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시발 쫌 불안한데.
“아핫! 설마 제 입의 무거움을 의심하시는 건가요오~☆?”
라리루라는 자길 믿으라는 듯이 가슴을 툭툭 쳤다. ─출렁출렁! 자칭 미성년자로는 도저히 안 보이는 은근한 거유가 그 움직임에 출렁거렸다.
“그런 걱정일랑 접어두시라! 광대에게 입솜씨는 건물에 있어서의 주춧돌 같은 것! 튼튼하고 뛰어나야 하지만, 제대로 간수를 잘못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거거든요! 일류 광대인 라리루라의 입은 바위보다 무겁답니다♡!”
“믿을게. 프리실라.”
“본명으로 부르지 마세요, 부코 선배.”
그렇게 점심 식사를 마친 우리는 잠시 휴식에 들어갔다.
“사르가디스의 안전을 위해서 싸웠다고 입을 털려면 저기 생긴 길드 연합이라는 곳에 참가하는 편이 낫겠지?”
“지금 선배가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 발언을 하시기는 했지만, 말 자체에는 동의할게요.”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여한 사람이랑 겉도는 골렘만 잡은 사람은 보수나 대우도 다를 거야.”
“OK. 역시 이득을 보려면 사르가디스로 돌아가야겠군.”
우리의 결론은 경비대한테서 저번 일의 보수만 받고 사르가디스로 돌아가는 것으로 정해졌다.
“라리루라. 너도 사르가디스에 가서 골렘 토벌전에 참여할 거냐? 의리 때문에 억지로 어울려줄 필요는 없는데.”
내가 물어보자 라리루라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흐음~. 반대로 선배랑 언니는 어떠셨어요? 저, 아까 전의 싸움에서도 도움이 됐었나요?”
“응. 충분하고도 남았어.”
“맞아. 너 생각보다 쎄더라.”
나랑 프랑은 생각할 것도 없이 긍정했다.
꼭두각시의 공격력은 내 상상 이상이었다. 저번에 에리카를 구하면서 선보인 점프력을 생각해 봐도 노멀 모드의 나보다는 쎌 듯 했다.
“근데 그 <마법의 화살>은 뭐였냐? 네가 쓴 거야?”
“마나는 제가 쓴 건데, 마법은 꼭두각시의 팔에 붙여놓은 마법진에서 나가는 거요. 저위 마법이라서 저희 서커스단의 마법사인 미르들렌 씨가 생일 선물로 새겨줬답니다~♡.”
“아아, 부여 마법인가.”
“맞아요. 마나가 떨어지면 링링이 3호도 조종할 수가 없게 돼 버리니까, 장기전이 필요할 때는 안 쓰지만요☆.”
그럴 때는 입에서 쏘는 장침이나 꼭두각시의 펀치로 대신 싸우는 건가.
다종다양한 기능은 꼭두각시의 장점이다. 아직 숨겨진 기믹이 잔뜩 있겠지. 프랑이 진지하게 말했다.
“라리루라가 파티에 있어 주면 안심이 될 거야. 노르가 또 혼자서 무리하지 않게 도와주면 좋겠어.”
“흐흥~♥!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파팟! 거창한 몸짓을 취하면서 라리루라가 웃었다.
“두 분의 마음, 제게 닿았습니다☆! 이렇게나 유능하고 사랑스러운 저 라리루라가, 당분간 여러분의 파티에 실례해 드리도록 할게요♡!”
“그래. 고맙다.”
실례해 드린다? 신박한 표현이구만. 내가 감사를 표하자 프랑이 손가락을 세웠다.
“보수는 각자 1:1:1로 배분할게? 괜찮지?”
“그 점은 맡길게요! 돈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은 아니라고 믿으니까요!”
“믿어주는 건 고마운데, 네 몫을 챙기는 법도 배워 둬. 나중에 엄한 곳에 가서 사기 당하지 말고.”
“네에~♡!”
애교가 듬뿍 묻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라리루라. 알아들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구만.
당분간은 우리 옆에 있을 테니까 됐나. 나는 새 빵을 집어들며 말했다.
“좋아. 잠깐 쉬었다가 오늘 저녁까지 헤이스벤트 주변의 골렘을 청소하고, 보수를 받는대로 사르가디스로 복귀하자.”
언제 출발하게 될지 모르니 내일 중으로 에리카한테도 작별인사를 해 둬야겠다.
아마 사르가디스의 골렘 소탕작전은 곧 개시될 테니까.
불법체류자 난민을 쫓아내려는 동물들의 협조와 각고의 노력 끝에, 우리는 그날 중에 30여 마리의 골렘을 조졌다.
“저는 링링이 3호를 받아주는 저렴한 여관을 찾으러 가 볼게요~☆!”
“싸다고 무조건 혹하지 말고, 웬만하면 원래 묵던 곳으로 가라? 내일 우리 여관으로 오고.”
“네에~!”
라리루라와 헤어지고 15쿠퍼 여관으로 돌아온 나와 프랑.
15쿠퍼짜리 여관의 장점은 방 안에 작은 샤워실까지 있단 점이었다. 얼굴을 가리고 출입해야 하기 때문에─아서 웨인의 명의로 받은 거라서 이렇게 되었다─ 샤워 시설이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됐다.
‘여친이랑 모텔 온 느낌이구만요.’
프랑의 샤워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책을 펼쳤다.
복붙한 논문은 사르가디스에 가서 다시 부친다 치고, 지금 읽으려는 것은 부여 마법에 관한 크라운 뭐시기 씨의 저서였다.
소책자 느낌으로 작은 책이다. 꼰대 아재들이 들고 다니는 유모-아(Humor)집이나 사자성어 모음집처럼 손바닥에 착착 감기는 사이즈 말이다.
팔랑─.
책의 내용은 회고록이나 수필 같은 문체였다. 수제자라는 양반이 스승의 말을 그대로 옮겨적은 모양이었다.
글의 내용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로마니아 어였다.
<저번에 나는 기예에서 마나를 배제할 수록 효과적이고 큰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보다 화려하고 커다란 마법이 사람이 펼치는 곡예보다 큰 인상을 남길 수 있기는 것도 사실이다.>
초반부의 서론은 그런 내용이었다.
<귀족 분들이나 일반 시민에게는 본인의 실력이 허락하는 한에서 화려한 마법 효과를 동반하는 것이 반응이 좋다. 이것은 인체의 곡예와는 달리 관객들이 지루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좋다.>
‘그렇긴 하겠지.’
애니메이션 영화의 CG는 시각적인 유흥에 익숙한 21세기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준다.
자연현상과 마법 외에는 호화로운 구경거리가 드문 이세계인들에게는 효과가 직빵일 것이다. 처음으로 영화관에 간 아이들이 상영이 끝나도 흥분을 이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그런 마법을 부릴 수 있는 뛰어난 마법사는 나와 같은 광대를 꿈꾸어 주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또 같은 마법사들에게는 화려할 뿐인 마법보다는 마나를 배제한 곡예가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음을 상기하라. 이를 잘 파악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능력이 일류와 이류를 가른다.>
<내가 부여마법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여기에 있다.>
페이지를 넘기면 간단한 설명 후로는 부여마법의 원리나 응용 방법이 쭉쭉 이어졌다.
<마나를 배제한 움직임을 취하면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몹시 고된 집중과 노력을 요구한다.>
<단, 이 문제는 미리 만들어 놓은 매직 아이템으로 극복할 수 있다.>
<나는 이전에 언급한 불을 통한 곡예를 불 마법을 부여한 왼손의 장갑으로 펼친다. 그것이 광대의 부상을 줄이고 관객의 호응을 높이는 기책이다.>
책의 서론 부분은 대충 훑고 넘겼다.
논문을 주로 읽으면서 생긴 나쁜 버릇이다. 증빙자료만 검색하느라 속독 기술은 늘었는데 차분하게 책을 읽는 재주는 떨어진 것이다.
한시바삐 부여 마법을 배워두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약간 이소룡 같은 양반이구만.’
그게 책을 읽으며 느낀 가감 없는 소감이었다.
크라운 뭐시기 씨는 이소룡이나 할리우드의 톰 크루즈처럼 본인이 직접 펼치는 연기나 기술에 자존심과 고집을 가진 사람인 듯 했다.
그런 면모에 비해서 안전을 중시하는 부분이나 마법의 원리를 설명하는 파트에서는 마법사들에 가까운 합리적인 면모도 보였다.
<부여 마법은 물체에 부여하는 AOE식과 생물에 부여하는 ABE식으로 나뉘는데──>
<전문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을 위해서 설명하자면──>
나는 이어지는 TMI를 공책에 옮겨적었다. 포스트잇도 없는 세상이라서 이렇게 해 두는 편이 찾아보기 편하다.
<인체로 펼치는 기예가 곡예라면 마법의 기예는 술식의 결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