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에 마법을 더하고, 변형시키며 섞는 작업은 서커스와 많이 닮았다.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예상한 대로의 결과물을 낳기도 하며, 전혀 다른 결과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가장 쉽고 빠른 방법으로써 실전 연습을 준비했다.>
<본인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이하의 술식 구조와 조합하여 원하는 장소에 적용하라.>
<※: 마법의 효과를 반드시 감안할 것.>
<폭발 마법을 자기 몸에다가 인챈트하는 천치는 없으리라 믿는다. 가능하다면 방어마법을 발동하길 추천한다.>
술식의 결합이라는 개념은 이 양반이 글을 쓴 시대에도 있었는가 보다.
‘읽어보니까 꽤 옛날 사람 같은데.’
TMI 파트나 서론에서 예시로 드는 비유가 거의 고대문명 시기의 것이었다. 아무래도 멸망 전후의 인물인 모양이다.
나는 라리루라가 좋아 죽길래 어디 외국의 궁정에서 일을 하는 현대인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존나 메이저리거라고 생각했더니 광대계의 세종대왕님이었다니. 소소한 반전이었다.
슈와아아아아악─!
나는 부여 마법의 조언대로 방어를 위한 야수회귀를 켰다. 그리고 책자에 적힌 술식을 점검하면서 구석에 뒀던 검을 뽑았다.
‘마나의 움직임을 마법을 짜낼 때처럼 돌리고, 그 마나를 화덕 안쪽에서 고급 식기를 구워내는 느낌으로 변용시켜서…… 랬나?’
술식의 구조와 요령을 반추하며 <얼어붙는 손길>을 검에 사용한다. 손등에 맺히기 시작하는 냉기를 느끼며 나는 주문을 외웠다.
“──<부여(Enchant)>. <얼어붙는 손길>.”
마나를 돌리자 손에서 발현하려던 냉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냉기는 검과 접촉한 손잡이를 타고 기어올라가 칼날에 맺혔다.
차가운 은색의 칼날이 푸른색으로 빛난다!!
“이것은── 검기(劍氣)!”
물론 개소리다.
무기에 마나를 담는 건 미스릴급은 되야 가능한 기술이다. 이건 그저 검에 얼음 속성 마법이 걸린 것에 불과했다.
“않이 머야 존나 멋있잖아!!”
그래도 이건 존나 간지 그 자체였다!
“시발! 내가 정말로 참백도를 다룰 수 있게 되다니!”
존나 이 두근거림은 사내 새끼라면 누구든 공감할 수 있을 것이었다!
긴 막대만 들어도 신나서 텐션이 올라가는 것이 남자인데, 그 막대가 칼 모양이고 그게 파랗게 빛난다고?
“아 이건 못 참지.”
나는 검을 들었다. 이 여관 방이 검을 휘두르기 충분할 정도로 넓어서 다행이었다.
“끼요요요요요욧──!!!”
붕붕붕붕쯔쯔쯔쯔──!!
나는 어디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면서 검무(劍舞)를 췄다. 내 검이 지나간 궤적에 하얗게 냉기가 남았다.
“어딜 보시는 거죠? 그건 제 검의 「잔상」입니다만?”
검을 멈추면서 온갖 포즈를 취하는 나!
우리 아버지가 어릴 적에 애1버랜드에서 광선검을 사줬을 때에 필적하는 갬성이 솟아오른다아아──앗!!
“나는 경기도 안양의 강북호다──!!!”
재빠르게 비천삼검류의 연격기인 쓰리섬을 날렸다.
그에 따라 새겨지는 삼각형의 잔상!
이거 뭐야 존나 재밌네! 이 멍청한 노르드 새끼! 이걸 어젯밤에 배워뒀으면 오늘 골렘들한테 진짜로 나선빙륜환을 먹여줄 수 있었을 거 아냐!
검에다가 <타오르는 손길>도 부여해 볼까? 아니, 관두자. 존나 화재 일어날 것 같으니까.
─끼릭.
그때 샤워실에서 수도꼭지가 잠기는 소리가 났다. 허미 씹. 프랑이 샤워 다 하고 나오는갑다.
나는 깜짝 놀라서 얼른 마법을 껐다.
바이바이. 내 예쁜 소드 오러야. 큰 물에서 다시 보자. 다시 은빛을 되찾은 검을 검집에 되돌리고 자리에 앉았다.
“노르. 방금 뭐 했어?”
나신으로 샤워실에서 걸어나온 프랑이 머리를 말리면서 물었다. 젖은 머리와 반짝거리는 가슴이 내 쥬지에 크리티컬.
“부여 마법 연습했지. 성공했어.”
“벌써? 빠르다.”
프랑은 머리를 말리면서 감탄했다. 수건으로 물기를 터는 동작에 가슴이 마구 움직였다. ─출렁출렁! 내 눈이 거기에 못 박히자 약간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는 프랑.
“안에서 옷을 입고 나올 걸 그랬네.”
“아냐. 앞으로도 계속 밖에서 입어.”
“……노르 변태.”
“변태? 최고의 칭찬이군요.”
나는 웃으면서 프랑의 머리를 말려줬다. 프랑의 손재주에 비교할 거리는 못 되지만, 내게는 비장의 기술이 있다.
“<타오르는 손길>. <구름 소환(Summon Cloud)>.”
이중 술식 결합.
“헤어 드라이기 ON.”
푸화아아아악─.
이제 나는 이 2개의 마법을 완전히 결합 가능하다.
마법으로 이뤄진 열증기가 내 손에서 뿜어져나왔다. 스팀 건조기와 같은 원리로 따뜻한 바람이 불어서 프랑의 머리를 말려주었다.
프랑은 눈을 감고 내 손길에 몸을 맡겼다. 얼굴을 보니 꽤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헤헤. 호화로운 방에, 머리를 말려주는 집사님까지. 내가 무슨 공주님이라도 된 것 같아.”
“온도는 적당하신가요, 공주님?”
“네. 최고에요, 왕자님.”
아까는 집사라더니 이번에는 왕자님이라 그러네.
뭐, 아무튼 프랑이 좋다니까 됐다. 이 마법은 잘 응용하면 에어컨 역할도 가능하지 않을까. 역시 마법의 세계는 이토록 심오한 것이었다.
‘미스터 캐리어. 당신의 유지는 내가 잇겠습니다.’
나는 에어컨의 창조주인 윌리스 캐리어에게 기도했다. 눈을 감고 내 손놀림을 즐기던 프랑이 말했다.
“저기, 노르. 나도 부여 마법을 배울 수는 없을까?”
“프랑이? 안 될 건 없지.”
우리 여친님이 하고 싶다는데 못 해 줄 게 무엇인가. 나는 척추반사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는 부여 마법의 달인이니까, 오히려 프랑 네가 나보다 더 잘 배울지도 모르지. 근데 마법부터 배워야지 않아?”
“그게 있지, 이것 봐 봐.”
프랑은 물을 푸듯이 손을 들었다.
“<타오르는 손길>.”
프랑의 두 손이 빨갛게 달궈졌다. 불꽃이 피어오를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마법이 발동한 것은 틀림없었다.
나는 놀라서 머리를 말려주는 손을 멈췄다.
“엇? 프랑, 너도 화력조절 할 수 있게 됐어?”
“헤헤. 노르 몰래 연습했었거든. 어제 처음 성공한 거야.”
내가 놀라는 걸 보며 자랑스럽게 웃는 프랑.
마치 자기가 그린 그림을 자랑하는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느낌이었는데, 냉정하게 봐도 이건 자랑할 만 했다. 정체 모를 치트키를 쓰는 나랑 다르게 프랑은 이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저번에 겐트릭한테 마법서를 사고서부터 며칠 지났지? 일주일은 됐나?
“<얼어붙는 손길>은 아무리 연습해도 진전이 없더라구. 그래도 이건 불 속성 마법이라 그런지 어떻게 조절하는 것도 성공했어.”
프랑이 설명했다. 어쩌면 프랑의 말처럼 드워프의 혈통이 마법 습득에 보탬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드워프는 불이나 흙 속성 마법에 적성이 높댔나?”
“응. 우리 어머니도 흙 속성 마법은 몇 개 쓰셨었어.”
내가 아는 한, 이세계의 마법은 등급제가 아니다.
이건 1레벨 마법이고 저건 9서클 마법이고 하면서 레벨이 오를 때마다 스킬이 해금되는 것처럼 올라가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난이도가 높은 마법과 낮은 마법은 있다.
보통은 그걸 저위 마법, 고위 마법이라고 부른다.
마법사 길드에서 말하는 N성급 마법사 운운하는 것도 비슷한 원리였다. 난이도 100의 마법을 6개 할 수 있으면 6성급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자세하게 파고들면 마법도 재능과 적성의 영역으로 귀결된다.
누구는 하루만에 배우는 마법을 누구는 평생 못 배우는 식으로 말이다.
예를 들자면 지구의 학문과 같다.
내가 수학은 잘 했지만 국어는 존나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시발 글쟁이가 뭔 생각으로 글을 썼는지를 나더러 어떻게 알라는 것이지?’
해 봤자 ‘마감 1시간 전이네 조졌다 시발’이라느니 ‘오늘 저녁은 뭐 먹지’ 같은 생각이나 했겠지.
적어도 나는 논문을 쓸 때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쓴다.
아무튼 이렇게 지구인들이 타고난 재능이나 성향으로 학문의 성취가 갈리는 것처럼, 이세계인들은 체질이나 자질로 마법의 습득 속도가 갈린다.
‘변이 마법도 그래서 발달한 거였고.’
체질 변화를 일으키는 변이 마법은 그걸 위해서 존재한다.
대부분은 앗! 벌레가 돼 버렸어요! 엔딩이지만.
“아무튼 알았어. 부여 마법은 차근차근 배워가자. 당장 마법 한두 개 쓴다고 전력이 획기적으로 늘어나는 건 아니니까.”
내 말에 프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룬 마법 외의 다른 매직 아이템이라면 드워프인 프랑이 만들어주는 게 훨씬 더 좋은 품질로 완성되지 않을까.
우리 여친님이 내가 쓸 무기나 옷을 직접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약간 기대가 되는 것도 같다.
“그건 그렇고, 노르. 마침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프랑은 다 말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면서 말했다.
“나한테 마나를 다루는 법을 알려줘.”
“마나?”
내가 되물었다.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프랑이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마법의 요령이 아니라 ‘신체에 마나를 돌리는 법’을 말하는 거겠지.
“우리도 곧 브론즈 클래스잖아. 앞으로도 쭉 모험가로 싸워나가기 위해서는 나도 좀 더 강해질 필요가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프랑은 몹시 진지했다.
프랑도 나름대로 장래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 의아하게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 내가 평소에 장래의 계획을 세우는 동안, 프랑도 우리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던 거겠지.
평소에 이런 얘기를 안 나눠서 몰랐을 뿐,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준비해. 아직 밤은 한참 남았으니까. 오늘부터 시작하자.”
“오늘부터? 좋아. 옷 입을 테니까 기다려.”
“──아니.”
일어나려는 프랑을 얌전히 앉혔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는 프랑. 내 입술이 음충맞은 웃음을 지었다.
“크흐흐흐. 공주님. 이 세상에서 가장 원초적인 마법이 무엇인지…… 혹시 아시는 바 있습니까?”
“어? 어? 자, 잘 모르겠는데. 뭐야? 뭔데?”
아까부터 계속 전라였던 프랑은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나는 그녀의 귀에다가 대고 정답을 속삭였다.
“섹스.”
20대 커플이 모텔에서 섹스하지 않는 것은 범죄다.
남녀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모텔에 들어갔는데 체크아웃할 때까지 침대가 젖지 않았다? 노르드 9시 뉴스에 따르면 그건 십중팔구 마약 거래 현장일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10%는 남자가 고자이거나 그날을 기해서 커플이 깨진 경우다.
그러나 나는 개시팔 말할 것도 없이 성욕충만한 쥬지소드 마스터였고, 우리는 한참 알콩달콩한 커플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는 이 15쿠퍼짜리 여관의 침대를 흠뻑 적실 의무가 있다. 반론은 받지 않는다.
나는 샤워를 끝내고 방으로 나왔다.
가을의 쌀쌀한 날씨는 나의 오리지널 마법 <윌리스 캐리어의 손길(Willis Carrie‘s Hand)>로 뎁혔기에 문제 없음.
내가 씻고 나올 때까지 쭉 알몸으로 대기하고 있던 프랑은 잘 익은 토마토 같은 얼굴이 돼 있더라.
“저, 정말로 이게 맞는 방법이야?”
“프랑. 부라더 믿지? 이게 직빵 맞다니까. 피부로 마나를 느낌으로써 자기 몸 속에 있는 마나의 존재를 깨닫는 거야.”
프랑은 태생적으로 마나 친화력이 높은 드워프다.
하프이기는 해도 오랫 동안 몸을 써 오면서 알게 모르게 마나가 몸에 쌓여 있을 것이었다. 디폴트 상태에서의 힘은 나보다 프랑이 더 쎄니까.
체중이나 덩치로는 설명이 안 되는 그 완력!
그것은 무의식적인 마나 사용의 증거였다.
“아, 알몸일 필요는 없지 않아? 뭣하면 윗도리만 벗어도…….”
“어허. 토 달지 말 것.”
역시 우리 여친님. 눈치 참 빠르다.
하지만 나는 강압적으로 밀어붙였다. 0.1%라도 마나를 깨닫는데 도움이 된다면 남자친구인 내 앞에서 알몸으로 있는 게 뭐가 대수란 말인가!
“이제부터 내가 허락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 것. 아프거나 힘들 때 외에는 입술 꾹 닫고 마나에만 집중을 하는 거야. 알겠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프랑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불안이 남은 듯 했지만, 나를 믿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 역시 더 진지해질 필요가 있었다.
“자, 프랑. 눈가리개도 차자.”
“……읏?!”
내가 길쭉한 천을 가져오자 프랑은 무언으로 항의했다. 당황한 얼굴로 뻐끔대기만 하는 것이 항의라고 한다면 말이다.
“어허. 사람의 인식능력은 시각에 크게 의존하는 거야. 마술의 기본은 눈속임이라는 거 몰라?”
나는 딱 잘라서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마나를 느끼는 것은 제 6감인 영감(靈感)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오감을 차단해서 다른 감각의 집중도를 끌어올리는 것은 실로 과학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세계에서도 일반적인 명상 방법이고 말이다.
부디 마음의 눈으로 보려무나, 프랑.
질끈─.
결국 설득당한 프랑은─정확하게 말하면 넘어가 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기 손으로 눈을 가렸다.